성경해석론

개혁주의 신앙 관점의성경의 계시와 영감

개혁주의 신앙 관점의성경의 계시와 영감

시작하는 말

인간은 유한하고 하나님은 무한한 분이시다. 그러기에 만일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啓示)하시는 방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간에게 현시(顯示)해 주실 때만 인간은 그를 알 수 있고 그와 교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계시는 바로 성경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성경은 무오(無誤) 한가?
  • 성경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시로서 즉 참 진리로서 믿을 수 있는가?
  • 하나님은 완전하신 자신의 계시를 우리에게 전달하시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셨는가?

이러한 의문점들에 대한 답은 신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어느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신도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충분할지 모르나 이 글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 즉 성경 영감(靈感)에 대한 개념과 “영감을 통해 주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기를 바란다.

1. 계시의 일반적 개념

종교는 어느 종교나 자연스럽게 또 필연적으로 ‘계시’(啓示, revelation)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모든 종교에는 계시가 있으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 1873-1957)의 ‘조직신학’(組織神學, Systematic theology)을 보면 “모든 종교는 계시에서 시작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종교사(宗敎史)를 연구해보면 계시에 대한 믿음에서 종교는 시작이 되며 모든 종교가 계시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증거 할 수 있다. 기독교 계시는 두 가지 ‘일반계시’(一般啓示, general revelation)와 ‘특별계시’(特別啓示, Special revelation)이다.      

(1) 일반계시(一般啓示, general revelation)

‘일반계시’는 언어가 아닌 일반 자연만물(自然萬物)을 말한다. 그것은 인간 마음의 구성과 자연 전체 구조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적 다스리심의 과정으로 보여주는 것들이다. 일반계시를 통해 하나님은 자연현상들 속에서 또 인간의 의식이나 경험 그리고 역사적 사실을 통해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신다.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이를 그의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 마음속에 정녕 자연적인 본능에 의해 신성(神性)에 대한 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논의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주장한다. 왜냐면 하나님이 사람으로 모르는 체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신(神) 되심에 대한 약간의 관념을 부여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한 기억을 늘 새롭게 하시고 때로는 강화(强化)시켜 모든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과 그분이 곧 자기들을 만드신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들이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자기들의 삶을 성별(聖別)하지 않을 때 양심에 의해 정죄 받도록 하셨다.”(제1권 3장 1항) 

또 그는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우리가 이미 말한 종교의 씨 두시기를 기뻐하셨을 뿐 아니라 우주(宇宙) 전체 구조 속에 하나님의 솜씨를 나타내시고 하나님 자신을 날마다 우리의 눈앞에 두셔서 우리로 눈만 뜨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했다.

(2) 특별계시(特別啓示, Special revelation)

반면 특별계시는 신학(神學)의 유일한 ‘외적 인식의 원리’(신학의 원천이라는 의미)를 말하며 그것은 곧 성경(聖經)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만 특별계시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으므로 이 원천(源泉)에 의존해야 한다. 특별계시는 일반계시와 달리 그 모든 부분과 방법에 있어서 보다 구체적인 ‘특별 은총’ 즉 ‘구원의 길’에 대한 계시이다.  

그러나 특별계시가 그것을 직접 받는 사람에게는 유익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 가치가 무용(無用)할 수 있다. 왜냐면 하나님은 각각의 사람들을 위해 그의 계시를 반복하여 직접 말씀하시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보존해야 한다. 성경 계시는 반복 되는 게 아니라 오직 한 번 단회적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2. ‘계시’로서의 성경

위에서 언급한 대로 성경이 인간으로 하나님을 알고 그와 올바른 관계를 갖도록 하시려고 필요한 진리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수여(授與)해 주신 특별계시라고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우리에게 주셨는가? 다시 말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특별계시로서의 특별한 성격을 가지게 된 그 원인(原因)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의 정밀(情密)한 구성에 있는 게 아니라 영적 감동(感動, inspiration)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성경의 영적 감동(靈感)을 말할 때는 그것은 어떤 시상(詩想)이 아니라 ‘신적권위’(神的權威)를 의미하는 것이다. 성경이 독특한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인간 저자들에게 불어넣어 주신 것(靈感)이기 때문이다.(벧후 1:21) 

3. 영감의 정의

‘영감’(靈感, inspiration)이라는 단어는 신약에 단 한 번(딤후 3:16, 개역 성경에는 ‘감동’으로 번역) 그리고 구약에서도 단 한 번 언급되어 있다.(욥 32:8, 개역 성경에는 ‘기운’으로 번역) 또 ‘영감’은 다만 기록에 적용된 것일 뿐 저자에게 적용된 것은 아니다. 영감을 받은 것은 성경이지 인간 저자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경은 영감을 받은 산물이지 사람은 아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영감의 의미를 살펴보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感動, inspiration)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感動, inspiration)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게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感動, inspiration)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하나님은 ‘계시’(啓示)를 통해 선지자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 즉 천사, 환상, 꿈, 음성, 이정 등으로 말씀하셨다.(히 1:1) ‘영감’이란 이같이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시는 방법을 말한다. 따라서 영감에 관한 고전적 인용문들을 종합해 보면 ‘성경 영감’이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으신 그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 말씀은 곧 성도의 믿음과 생활의 실천을 위한 하나님의 권위인 것이다.

4. 성경 영감의 특징

(1) 하나님이 영감의 원천자(源泉者)

하나님은 성경의 영감에 있어 그 원천(源泉)이시다. 인간을 감동하여 움직이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다음 그들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그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감 이론의 시초(始初)가 되실 뿐 아니라 가장 근본적 요소인 성경 진리의 궁극적인 근원(根源)과 원천적(源泉的) 요인이 되신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저 요인이 되신 것만은 아니다.

(2) 예언적 도구(道具)

이 말씀을 기록한 선지자들은 기계적으로 한 게 아니다. 그들은 글을 받아쓰는 그 이상의 역할을 했다. 그들은 자신의 필체와 어휘를 적절하게 구사함으로 온전한 의식을 가지고 기록했다. 선지자들의 성품은 초자연적인 개입에도 침해받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기록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일 뿐 아니라 인간의 언어도 되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성품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계획을 전하셨다. 그러므로 기록을 맡은 직접 요인은 선지자들이었지만 궁극적인 요인은 하나님이셨다.

(3) 성문화(成文化)된 권위

예언적 도구를 통해 수행되는 신적 권위의 최종적 산물은 성경의 성문화된 권위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感動)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다.(딤후 3:16) 성경은 교리나 윤리 문제에 있어도 최종(最終) 진리이다. 이같이 성경의 권위는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5. 성경 영감의 성격

벌코프(Louis Berkhof, 1873-1957) 방식대로 영감의 성격에 대해 먼저 잘못된 견해 두 가지를 언급하고 우리가 옳다고 보는 견해를 살펴보겠다.

(1) 기계적 영감(機械的 靈感, Mechanical inspiration) 

이 견해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일반적인 오해 중 하나다. 즉 성경의 ‘축자적(逐字的) 영감’(Verbal inspiration)은 필연적으로 ‘기계적’(機械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그렇지 않다. 이 두 용어는 분명 동의어가 아니며 영감 사역의 서로 다른 두 측면을 말하고 있다.

‘축자적(逐字的) 영감’은 영감의 범위(範圍)를 말하고, ‘기계적 영감’은 영감의 성격(性格)을 말한다. 또 기계적 영감이 필연적으로 축자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축자적 영감이 반드시 기계적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성령께서 사용된 단어를 선택하는 일까지도 인도하셨으나 그 일을 기계적으로 하게 하신 것은 아니다.

‘기계적 영감론’에 따르면 인간 저자들이 기록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들은 그저 서기(書記)로서 성령의 말씀이 흘러간 통로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그들의 정신 상태가 정지되고 그들 스스로는 자신들이 기록한 내용이나 형식에 그 어떤 방법으로도 기여(寄與)하지 못하고 오직 성령의 지정(指定) 대로만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개혁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이 ‘기계적 영감’ 이론은 전혀 지지받을 수 없다. 또 이 ‘기계적 영감’의 관점은 ‘벨직 신앙고백’(Belgic Confession, 1561)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오늘날 개혁 신학이 받아들인 교리도 분명 아니다. 개혁주의자들은 그들이 말하는 성경의 제이차적 저자들(성경 기록자들)이 하나님의 손에 있는 수동적(受動的)인 도구(道具)에 불과한 존재들이었다거나 그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받아 적은 서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그들이 기록한 것들이 엄밀한 의미에서 그들 자신의 의식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성령의 지정(指定)대로 한 것임을 믿지도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제이차적 저자들도 진정한 저자로 인정하고 기록 작성에 있어 그들의 인격적 공헌을 충분히 정당하게 보는 관점을 취한다.    

(2) 동력적 영감(動力的 靈感, Dynamical)

우리는 한편으로 ‘기계적 영감론’을 피하기 원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소위 ‘동력적 영감론’에서도 벗어나기를 원한다. ‘동력적 영감’이라는 말은 슐라이에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영감 이론을 말한다.

이 이론은 성경책들을 만들어 내는 일에 성령의 직접적인 활동 개념을 부인하고 그 개념을 저자들의 일반적인 영감으로 대치시킨 것이다. 이는 영적 조명과 그 정도의 차이가 성경 기록자와 일반성도의 상대적인 차이에 불과한 것이 된다. 따라서 이 이론은 성경 영감의 초자연적 요소를 제거해 버리고 영감 개념을 변형시키며 그것을 지성적(知性的)인 영역에서 도덕적(道德的) 영역으로 축소 시키는 것이다. 또 이 이론은 전적으로 주관적(主觀的)인 것으로 성경을 순전히 인간적인 산물로 만들며 하나님 말씀에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함으로 성경에서의 초자연적(超自然的)인 성격을 제거하고 그 무오성(無誤性)을 파괴하는 것이다.

(3) 유기적 영감(有機的 靈感, Organic inspiration)

유기적’(有機的)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성경의 기록자들을 마치 기록자가 펜을 휘두르듯 기계적인 방법으로 사용하신 것이 아니며 또 그들이 기록하기를 원하셨던 말씀을 그들의 귀에 속삭여 넣으신 것도 아니며 성경 기록자들 개개인의 내적 존재 법칙에 조화(調和)되도록 유기적인 방법으로 그들에게 작용(作用)하셨다는 이론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성경 기록자들을 있는 그대로 그들의 성격과 기질, 은사와 재능, 교육과 문화, 어휘와 문체, 스타일 등을 사용하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조명(照明)하시고 격려하여 기록하도록 하셨으며 그들의 글 쓰는 일에 죄의 영향을 억누르시고 그들이 언어를 선택하고 생각을 표현하도록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성경의 설명과 가장 잘 조화된다. 그것은 성경의 기록자들이 수동적(受動的)이 아닌 능동적(能動的)이라는 사실을 증거 한다.

예를 들면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일반적으로 역사적 상황에 의해 결정되고 있으며 신약 서신서들도 구체적인 각자의 성격을 갖고 있다. 시편 기자들은 종종 자기들의 개인적인 범죄 및 사죄의 경험(시 32편, 51편), 둘러싼 위험과 은혜의 구원(시 48편, 116편) 등을 노래하고 있다. 도 각 성경 기록자마다 자기 나름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시인들과 선지자들의 시(時)와 정치적 언어가 있는가 하면 역사가들의 평범한 산문(散文)도 있으며 이사야의 순수한 히브리어가 있는가 하면 아람어가 섞인 다니엘의 히브리어도 있다. 또 논리적인 바울의 스타일도 있고 단순한 요한의 언어도 있다. 기록자들은 자기들의 문학적 작품에다 자기들의 개인적인 흔적과 자기 시대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처럼 성경은 기계적(機械的)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 자체가 증거 해 주고 있다.

(4) 축자적 영감(逐字的 靈感, verbal inspiration)

축자적(逐字的)이란 영감의 범위(範圍)에 대한 관점이다. 성경 영감의 범위에 대해서는 ‘축자적 영감’ 외에 두 가지의 관점이 더 있다. 하나는 18세기 이신론(理神論) 및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부분 영감’이 있고 또 하나는 ‘사상 영감’으로서 이는 성경의 사상(思想)은 분명 신적으로 영감 되었으니 그 사상을 입은 언어는 인간 저자들이 하나님의 인도(引導)하심이 없이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 두 가지의 이론에 전혀 반대하고 있다.  

‘축자적 영감’은 성경의 모든 부분이 영감 되었다는 이론이다. 모세 오경의 경우 여호와의 축자적 전달을 거듭하여 언급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등이 그것이다. 또 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기록하고 있다.(사 1:2, 렘 1:9) 사도들은 구약 성경의 말씀과 자기들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한다.(고전 2:13, 고후 13:3)

6. 중요한 몇 가지 구분

(1) ‘계시’와 ‘조명’에서 구분되는 영감

영감이 주는 의미와 대조시킴으로 그 의미가 뚜렷해지는 두 가지 연관된 개념이 있는데 그것을 ‘계시’(啓示, revelation)와 ‘조명’(照明, illumination)이다. ‘계시’는 진리의 노출(露出)을 의미하며 ‘조명’은 진리의 발견(發見)을 의미한다. ‘계시’는 진리를 드러내는 데 관련되어 있으며 ‘조명’은 진리 이해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 ‘영감’은 이 중 어느 것도 관련이 없다. ‘계시’는 진리 근원(根源)과 부여(附與)에 연관되며 ‘영감’은 진리 보존(保存)과 기록(記錄)에 그리고 ‘조명’은 뒤따라 일어나는 감지(感知)와 이해(理解)에 연관있다. 그리고 인간 저자들에 의해 기록된 계시를 가져다준 영감은 그 영감 자체가 인간 스스로 계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보증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성(知性)과 양심(良心)의 조명은 필요하다. ‘계시’는 주관적인 발로(發露)이며 조명은 객관적인 이해(理解)이다. 따라서 ‘영감’이란 계시가 주관적인 발로가 되는 수단을 의미하며 ‘계시’는 하나님과 대화의 사실이며 ‘조명’은 그 대화를 이해하는 은사이다.

(2) 영감은 성경 원본에 주어진 것이다.

성경의 영감과 권위는 각 사본이나 번역본에 자동적(自動的)으로 파급된 것은 아니다. 즉 영감은 원본(原本)에 주어진 것이지 사본(寫本)에 주어진 것이 아니다. 다만 성경 기록자의 자필(自筆) 원고로 알려진 최초의 필사본만이 영감을 받은 것이다. 복사나 번역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실수나 변경에는 이 같은 원래의 영감설을 주장할 수 없다.

는 말

성경은 그 전체가 성령의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록한 하나님 말씀이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0,21)

성경은 또 이 세상 평범한 책들과 구별된다. 역사적으로도 성경은 가장 오래된 책 중 하나며 아직도 그 어떤 책 보다 가장 많이 읽혀지고 있는 책이다. 성경은 역사적으로 옛 동방 세계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근대 서방 세계를 이룩해 놓은 기틀이 되기도 한다.  

인류 역사상 성경만큼 많이 인용되고 출간되며 번역되고 그만큼 인류에게 영향력을 발휘한 책은 없다. 이는 신구약으로 구성된 성경 66권 전체가 분명히 하나님의 영감 된 하나님 말씀임을 말하는 것이다.(*) 편집 / 정은표 목사(본지 편집 발행인) * 자료참고 : Henderson Christian Seminary in New York(역사적 개혁주의에 입각한 신학 교육기관으로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충실한 사역자 양성 목표하는 신학교) ㈜ 이글은 본지의 편집방법에 맞도록 재편집된 글입니다. 원글은 출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제이차적 저자들 : 예언의 말이 하나님을 삼인칭으로 언급하면서 시작한 뒤 인칭변화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이 일인칭으로 이어지는데 이때 선지자의 말은 아무런 모양의 변화 없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곧장 바뀌어 기록된 것을 말한다. 이는 시작하는 말은 선지자의 말이지만 독자들에게 변화의 준비도 시키지 않은 채 인간의 저자는 시야에서 슬쩍 사라지고 저자이신 하나님께서 중개자 없이 명백하게 말씀하신 것이다.(사 10:12, 19:1,2, 호 4:1-6, 6:1-4, 미 1:3-6, 슥 9:4-6, 12:8,9)

   < 참고서적 >

1) 벌코프의 조직신학, 루이스 벌코프 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2) 성경의 유래, 노르만 L. 가이슬러, 윌리암 닉스 공저, 생명의 말씀사

3) 성경 핵심 교리, 웨인 그루뎀, CLC

4) 에릭슨 기독교 신학 시리즈 I 서론, 밀라드 J. 에릭슨, CLC

5) 성경 무오 : 도전과 응전, 노르만 L. 가이슬러, 도서출판 엠마오

http://www.hendersonny.org/board/zboard.php?id=theology&page=1&sn1=&divpage=1&sn=on&ss=off&sc=off&keyword=%B1%E8%20%BF%A1%BD%BA%B4%F5&select_arrange=hit&desc=desc&no=182  (참고 자료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