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와 칼빈의 아디아포라에 대한 해석
루터와 칼빈의
아디아포라에 대한 해석
고전 8:1-13, 초대교회 우상제물을 먹는 문제는 아디아포라였다.
1. 루터와 칼빈의 일치점
루터와 칼빈은 근본적으로 성경에 기초한 개혁을 말했다는 점에서 이 두 개혁자의 형식적 원리(formal principle)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점은 루터나 칼빈만이 아니라 쯔빙글리나 멜란히톤에게 있어서도 동일했다. 심지어 루터는 교황의 무오성의 문제도 만일 로마 가톨릭교회가 성경에 근거하여 그 점을 밝혀낸다면 받아드릴 수 있다고 보았을 만큼 개혁에서의 성경의 권위에 의존적이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교회는 교황의 무오성을 성경으로 증명하지 못했다.
2. 루터와 칼빈의 차이점
그러나 루터와 칼빈 간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아디아포라(adiaphora)의 문제였다. 루터는 성경이 명백하게 금하지 않는 한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통(관습)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칼빈은 성경이 명(命)하지 않는 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모든 전통이나 관습들은 거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원리는 교리적인 문제에서 뿐 아니라 교회관이나 교회정치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1) 디아포라(diaphora)
성경이 명백하게 가리켜 말하고 있는 것을 디아포라(diaphora)라고 하는데, 이것을 존 머리(John Murry)는 ‘규정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라고 불렀다. 규정적 원리란 성경이 명백하게 말하는 ‘간섭받은 영역’을 의미한다. 이 용어 자체는 성경에 없다. 그러나 성경은 의미상의 이 원리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 문제를 1장 6항에서 다루고 있다.
(2) 아디아포라(adiaphora)
이 같은 ‘규정적 원리’와는 달리 성경이 명백하게 말하지 않았고, 따라서 현재 상황에 따른 임의로 할 수 있도록 남겨진 영역을 아디아포라(adiaphora, adiáphŏra, 가도 불가도 아닌 아무래도 좋은 행위나 의견)라고 말한다. 이것은 불간섭의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몇 시에 예배드릴 것인가, 예배 시에 어떤 색깔의 옷을 입어야 할 것인가, 예배순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등의 문제가 여기 속한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신앙과 양심과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것을 카이퍼(R. B. Kuiper)는 ‘성화된 상식’(sanctified common sense)이라고 불렀다.
1) 예배 찬송에 대한 루터와 칼빈의 견해
그런데 루터는 칼빈은에 비해 아디아포라의 영역이 훨씬 넓었다. 시편송의 문제는 좋은 예가 된다. 루터는 스스로 곡(曲)과 가사를 만들어 불렀고, 그의 후예들도 그러했다. 그래서 루터교는 그 후 2세기 동안 교회음악에 영향을 끼쳤고 캐롤 송의 발전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칼빈은 사람이 만든 찬송 가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영감으로 주신 시편의 노래, 곧 시편 송 보다 더 좋은 찬송이 없으며, 따라서 이것 외에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교회음악으로 적절치 못하다고 보았다. 예수님께서도 만찬을 잡수시고 시편을 부르며 감람산으로 향하셨다는 기록을 중요한 근거로 삼았다.
그래서 칼빈은 ‘제네바 시편찬송’(Geneva Psalter)에서 시편 150편을 노래하도록 했고, 그 전통이 칼빈의 가르침을 따르는 후예들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예배 음악을 루터는 아디아포라(adiaphora)로 보았으나, 칼빈은 디아포라(diaphora)로 보았다.
2) 성상(聖像)에 대한 루터와 칼빈의 견해
루터와 칼빈의 견해차를 볼 수 있는 또 한 가지는 성상(聖像) 문제였다. 쯔빙글리나 칼빈은 성상(聖像)을 비 성경적으로 보아 제거 또는 철거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이를 위해 고투했으나, 루터는 성상(聖像)의 문제를 아디아포라의 영역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성상(聖像) 철거에 소극적이었다. 이런 루터의 견해는 1522년 3월 바트부르크 성(城)에서 비텐베르크로 돌아와서 행한 8편의 연속 설교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영향으로 루터교회는 심지어 가톨릭처럼 10계명의 제 2계명, 곧 “너는 나를 위해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아무 형상(形象)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을 1계명에 포함시켜, 그 의미를 희석시킨 로마 가톨릭교회 입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제 2계명을 그 본래대로 회복하는 일에 루터교는 관심이 없었다. 이것은 루터가 상(像)의 문제를 아디아포라의 영역으로 이해했던 점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두 개혁자 간의 뚜렷한 차이점을 볼 수 있다.
3. 디아포라 적용 문제
그러나 규정적 원리 즉 디아포라의 영역을 지나치게 협의의 개념으로 곡해한 경우가 재세례파라고 할 수 있다. 재세례파는 성경이 유아 세례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 않는다고 이를 반대한다. 그러나 칼빈은 유아세례 문제를 깊이 생각했다. 고린도전서 1:16에 “또한 내가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말씀 등에 근거하여 세례의 범위는 어린아이를 포함한 가족(household)이라고 보았고, 그래서 유아세례를 성경의 규정적 원리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재세례파는 그것에 대한 분명한 성경의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것은 규정적 원리를 지나치게 협의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린도전서 1:16의 증명된 예(approved examples)처럼 유아세례는 아디아포라가 아니라 디아포라로 보아야 한다.(*)
글쓴 이 /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역사신학) 출처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