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

오늘의 우리에게 성경이 주어지기까지

시작하는 말

제가 운영하는 인터넷 성경공부 사이트(biblenara.com)에 ‘독자의 난’이 있습니다. 이곳은 네티즌들이 평소에 성경에 관해 궁금했던 내용을 질문하고 답변해 드리는 곳입니다. 그 곳에 얼마 전에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그 글의 내용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어떻게 정경으로 결정되었는지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 진 글을 읽고 혼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분이 읽은 글은 “성경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권력자인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자기 입맛에 맞는 책을 골라 성경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글이었습니다. 그 분은 실제로 자기 친구 중에 한 사람이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성경에 회의를 느끼고 교회를 떠난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분의 글을 읽으면서 ‘성경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성경이 기록되고 이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 (啓示)

성경은 6개의 단계를 거쳐서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단계는 ‘계시’의 과정입니다. ‘계시’라는 말은 연극에서 막을 여는 것처럼 숨겨졌던 것을 열어서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연극에서 막이 오르기 전까지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막이 오르게 되면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무대 위의 연극과 같이 처음에 하나님에 대한 일도 사람들에게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은 그 막을 열어서 자신과 자신의 뜻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신학용어로 ‘계시’(啓示)라고 합니다.          

1. 일반계(一般啓示)

하나님께서 자신과 자신의 뜻을 계시하신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며 우리는 이것을 ‘일반계시’(一般啓示)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보여 주시는 것이며 우리는 이것을 ‘특별계시’(特別啓示)라고 합니다. 그러면 먼저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신 ‘일반계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종교 본능 : 하나님을 아는 지식

첫째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방법은 우리 안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종교심’ 또는 ‘종교 본능’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9에서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밝히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밝히 보이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눈과 귀로 하나님을 보고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에 그 본성 안에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제3의 눈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만이 가진 영적인 통찰력이며 종교심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神)을 찾고 섬기거나 또 찬송을 부르거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동물들은 신(神)을 찾거나 섬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간과 가장 닮았다고 하는 원숭이가 사원을 짓고 신에게 제사하거나 기도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사는 세계에는 항상 종교가 있습니다. 문명사회에도 교회가 있고 야만 사회에는 신당(神堂)이 있습니다. 동양에도 종교가 있고 서양에도 종교가 있으며 또 아프리카에도 종교가 있습니다. 과거에도 종교가 있었고 지금도 종교가 있으며 앞으로도 인간사회에는 종교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위급한 일을 당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한 목사님의 설교 중에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한 청년이 괴뢰군에게 붙잡혀 북으로 끌려가다가 삼각산 골짜기에 숨었습니다. 바로 그때 유엔군 비행기들이 편대를 지어 와서 그들에게 폭격을 하고 기관총을 쏘아댔습니다. 그때에 그 청년이 숨어서 보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공산당원들과 정치보위부 사람들이 모두 나무 아래 엎드려서 “하나님, 하나님!”하고 소리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이렇게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위급한 일을 당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신(神)을 찾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인류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모두 고칠 수 없는 종교라는 병(病)에 걸려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인간의 본성 안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종교심’을 부여하셨습니다.  

(2) 도덕성(양심) : 하나님의 뜻을 아는 능력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양심의 법 즉 도덕성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2;14,15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을 행할 때에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송사하고 때로는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의 마음 안에는 처음부터 일정한 법이 새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문화(成文化) 된 율법을 받지 않은 이방인들도 자기 안에 있는 법을 따라서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법을 ‘양심’(良心) 또는 ‘도덕성’(道德性)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에 처음부터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을 받지 않은 이방인들도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과 간음 그리고 도둑질을 금지하고 또한 거짓 증언이나 이웃의 것을 탐하는 일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양심이 율법과 같이 선명하게 선악을 구별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완전하지는 않지만 선악(善惡)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법을 만들고, 재판을 하며 윤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우리 안에 이러한 법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은밀하게 음란한 행동을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즉시 우리의 양심은 우리의 그릇된 행동에 대해 고발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는 마음의 평정(平靜)을 잃고 갈등하게 됩니다. 그러면 또 한쪽에서는 우리가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시하고 우리의 행위를 변명합니다. 이러한 정죄와 변호가 반복되면서 우리 마음은 우리 행동이 옳았는지 아니면 잘못되었는지를 스스로 판단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 안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일정한 법이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은 다른 짐승들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원숭이가 죄를 짓고 고민하다가 자살(自殺)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사람들 중에는 인간의 도덕성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양심이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양심이 사람들이 태어난 후에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습득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양심 가운데 후천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양심에 분명히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선천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양심의 법칙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바울은 이 양심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말합니다.(롬 2:12-15) 하나님은 자연계에 자연법칙을 주셨듯이 사람들 안에 도덕적인 법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칸트(Kant)는 “하늘에는 별이 있고 사람의 속에는 도덕적 의식이 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양심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자주 양심을 거역하기 때문에 양심이 불도장을 맞은 피부처럼 마비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양심의 일부가 마비되는 경우는 있지만 양심이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양심이 선하다고 판단하는 일을 할 때에 기쁨을 느끼고 양심이 악하다고 판단하는 일을 할 때에는 불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양심은 우리 마음속에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안에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종교성과 도덕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3)  :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알려줌 

  • 우주를 만드신 분(인과의 법칙) 

또한 하나님은 사람들의 내면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계시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20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창조 때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속성들을 그의 만드신 만물을 통해 알리셨으며 이로 인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밝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부터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속성을 만물을 통해 알리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분명하게 사람들이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 우주는 어떻게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을까요?

이 우주는 누군가 만든 분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인과법칙’(因果法則)을 믿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모든 일에는 그 일이 있게 한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은 바로 이 ‘인과법칙’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세상이 ‘인과법칙’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과학자는 실험을 통해 일정한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주는 처음부터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현대에 와서 점점 그 힘을 잃고 있습니다. 과학자들 중에는 이 우주가 어느 순간에 이루어진 큰 폭발로 인해 생겨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빅뱅이론’이라고 말합니다. 과학자들은 지금도 지구나 태양계 또는 우주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아내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구의 연령을 매우 길게 잡고 있지만 우주가 일정한 시각에 시작되었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습니다.

또 이렇게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결과에 원인이 있다면 하나님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존재도 원인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무지한 주장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무한(無限) 절대(絶對)의 신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배후에 다른 원인(原因)이 있다면 그 분은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증거는 성경의 증거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수학을 공부하신 분들은 무한대(無限大)의 개념을 잘 알 것입니다. 하나를 하나로 나누면 하나입니다. 그러나 하나를 영으로 나누면 무한대라고 합니다. 이 무한대는 열을 영으로 나누거나 만을 영으로 나누거나 모두 무한대입니다.

  • 우주의 구조와 질서

또한 이 우주는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 분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주는  자세히 살펴보면 일정한 질서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을 하늘을 보면 별이 되는대로 널려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망원경을 통해서 그 별들을 자세히 보면 그 별들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태양계 안에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행성들이 있습니다. 이 행성들은 일정한 궤도를 따라 일정한 속도로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또한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행성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일정한 궤도와 속도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서 갤럭시(galaxy)라고 부르는 별무리를 이루고 이러한 별무리들이 모여서 우리가 보는 대 우주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주에는 일정한 질서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땅에도 놀라운 섭리가 있습니다. 비오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바다에 가면 물이 많이 있습니다. 햇볕이 내리쪼이면 바다의 물은 수증기로 변해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수증기는 공중에서 찬바람을 만나 다시 비가 되어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 비는 내려오면서 공기 속의 먼지를 청소해 줍니다. 이 비는 공기의 온도를 내려 시원하게 만들어주고 또 땅에 있는 먼지를 청소해 줍니다. 이 비는 산에 떨어져서 나무에 열매를 맺게 하고 들에 떨어져 풀과 곡식을 자라게 합니다. 그리고 이 빗물은 시내와 강물을 통해 모여서 다시 바다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바닷물은 소금을 가지고 더러워진 물을 다시 소독합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과정을 반복하여 우리가 사는 곳의 온도를 조절하고 열매를 맺게 하시며 청결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또한 우리 몸 역시 놀라운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 유전자 암호를 해독해서 인간 복제 문제가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동안 우연히 생물이 생기고 그것이 진화해서 인간이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세포 안에 있는 유전자 안에 인간의 모든 삶을 좌우하는 정보가 담겨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정보를 찾아내서 여러 가지 유전적인 질병을 치유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전자의 규칙은 너무나 정교해서 조금만 잘못 되어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교한 유전 정보를 사람들의 세포 안에 넣어 주신 분은 정말 크고 위대하신 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선택할 이론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이 우주가 어떻게 된 건지 나는 모르겠다.”고 포기하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이며, 다른 하나는 “이 모든 것이 저절로 우연히 생겨났다.”고 말하는 진화론(進化論)입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시편 19:1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고 있다.” 시편 기자의 노래와 같이 하늘은 지금도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으며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솜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이 만드신 만물을 통해서 자신의 신성과 영원하신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2. 특별 계시(성경)

우리는 앞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 주신 계시 즉 ‘일반계시’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본성 안에 처음부터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종교심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도덕성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밖에 있는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속성을 알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두 번째로 하나님이 택하신 특별한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특별계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계시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을 했는지 생각 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두 가지로 반응했습니다.

첫째,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고의로 왜곡시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1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않았으며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계시를 왜곡시켜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무한하고 전능하신 창조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왜곡시켜 하나님을 사람들과 비슷하거나 사람들보다 조금 나은 존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아는 모든 신화(神話)에 나오는 신들은 모두 이러한 신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전능하신 창조주로 인정하여 그 분에게 영광을 돌리거나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짐승 모양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미련한 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21에서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허망하게 되고 미련해져서 영적 분별력이 어두워졌습니다.”  

둘째, 사람들은 이러한 신적 계시를 고의로 거부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8에서 “사람들이 고의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여 주신 계시를 거부하고 신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신을 없앤 후에 그 자리에 인간을 올려놓았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인간들을 타락한 상태로 방임(放任, 遺棄)하셨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양심이 정죄하는 비정상적인 일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정욕과 쾌락을 좆아 온갖 음란과 불법을 행하고 있습니다.(롬 1:28)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이들을 향해 하늘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왜곡된 계시를 바로 잡기 위해서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과 그 뜻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 중에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불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통해 인류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백성들 중에서 일부 사람들을 선택하여 그들을 통해서 다시 하나님과 그 뜻 그리고 인류 구원의 계획에 대해서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계시는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특별계시’라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 계시를 글(文字)로 기록하도록 명하셨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계시를 글로 기록한 것을 모아놓은 것이 바로 ‘성경’(聖經)입니다.

< 이제까지의 요약 >

우리는 성경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 손에 전달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지게 된 첫 번째 단계인 ‘계시’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람의 본성 안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종교심’(종교의 씨)이라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에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마음의 법을 새겨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양심’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들은 다른 짐승에게는 없고 오직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자연을 통해서도 자신의 신성과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연계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사용해서 자신의 속성과 그 뜻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러한 종교심과 양심 그리고 자연계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일반계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를 고의로 왜곡하고 거부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타락한 상태로 방임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영적 총명이 어두워져 창조주 하나님을 인간이나 짐승의 모양으로 바꾸어 섬겼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좆는 대신 정욕과 쾌락을 좆아 온갖 불법을 자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민족 중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 중에서 특별한 사람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계시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에 ‘특별계시’라고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바로 이 ‘특별계시’입니다.        

. 성령의 영감(靈感)

두 번째 단계인 ‘성령의 영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해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느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옛적에’라는 말은 예수께서 오시기 전 즉 ‘구약시대’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전달하시기 위해서 특별히 선택하신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구약성경은 이러한 사람들을 가리켜 ‘선지자’ 또는 ‘대언자’라고 부릅니다.

또한 하나님은 말씀하실 때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직접 음성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꿈이나 환상 그리고 선지자의 삶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 모든 날 마지막’은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후 즉 신약시대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지만 신약시대에는 친히 아들을 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을 기록한 것이 ‘구약성경’이라면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을 기록한 것은 ‘신약성경’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특별한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후에 그 내용을 기록해서 보존하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그 계시를 기록할 때에 자신의 뜻을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특별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가리켜 ‘성령의 영감’(靈感)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3:16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말했으며 사도 베드로 역시 베드로후서 1:21에서 “모든 예언은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다.”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감동’은 성령의 영감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유대인과 이방인을 대표하는 사도인 베드로와 바울이 모두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감동’이라고 번역된 말은 헬라어 ‘데오 프뉴스토스’란 단어를 번역한 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데오)이란 말과 ‘영’(프뉴스토스)이란 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합성어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의 경우 ‘영’(靈)이란 단어는 동시에 바람이나 호흡(呼吸)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 또는 ‘하나님의 호흡’이 불어넣어진 책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이 계시를 기록할 때에 성령의 호흡을 통해 오류가 없도록 보호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령의 인도를 ‘영감’(靈感, Inspiration)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하실 때에 흙으로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아담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은 성경의 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할 때에 성령의 숨결을 통해 그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비록 사람의 손을 통해 기록되었지만 그 근원은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성경의 원 저자(著者)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성경 기록자의 인격과 지식 그리고 그의 모든 경험을 사용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각 책마다 독특하고 다양한 문체와 특성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한 분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고 오류 없이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약 1600년에 걸쳐서 40여 명의 손을 통해 기록된 책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체적으로 볼 때에 한 사람이 쓴 것처럼 목적과 내용에 있어서 놀라운 통일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매우 강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룰 것이다.”(마 5:18)라고 하셨고 “성경은 폐하지 못한다.”(요 10:35)고 말씀하셨습니다.  

. (原本)

이제 우리는 두 번째 단계를 마치고 세 번째 단계인 ‘성경 원본’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양피지(羊皮紙, parchment)와 파피루스 두루마리(papyrus parchment paper)에 기록했습니다. 양피지는 양의 가죽을 말린 후에 얇게 펴서 만들었으며 파피루스는 애굽의 나일 강에서 자라는 파피루스라는 식물을 얇게 잘라서 붙여서 만들었습니다.

구약성경은 주로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일부분(창 31:47, 단 2:4-7:28, 스 4:8-16,18, 7:12-26)은 아람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당시 국제어였던 헬라어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 저자들이 직접 쓴 이러한 책들을 가리켜 ‘성경원본’(original bible texts)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성경에 오류(誤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성경원본’이 오류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성경 39권은 약 25-30명의 선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은 주전 1500년에서 주전 400년까지의 약 1,000년이란 긴 시간에 걸쳐서 기록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은 약 8,9명의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으며 50년~100년 어간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구약성경이 모두 기록되기까지는 약 1,600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러한 성경 원본들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는 뒤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 (寫本)

이제 우리는 네 번째 단계인 ‘성경사본’(聖經寫本, manuscript bible)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경의 저자들이 직접 기록한 성경원본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성경의 저자들이 직접 기록한 원본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성경원본을 베낀 성경사본을 참고해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원본을 가져가신 대신에 그 원본을 베낀 수많은 사본(寫本)들을 우리에게 남겨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원본을 가져가심으로 인간이 만든 책이 신격화되지 않도록 조치해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거룩한 책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사본들은 그 내용이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 사본들은 베끼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수로 인해 그 내용이 일부분 변형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변화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본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들을 서로 비교해보면 원본의 전체 내용을 충분히 추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The Great Isaiah Scroll, 1QIsa (Dead Sea Scroll)

현재까지 발견된 히브리어 성경사본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사해 사본(死海寫本, Dead Sea Scrolls, DSS)입니다. 이 사본은 1947년 사해 근처에 있는 쿰란동굴(qumran caves)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학자들은 이 사본들이 B.C. 3~2세기경에 기록되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해사본에는 이사야, 하박국, 신명기, 사무엘, 예레미야, 소선지서, 출애굽기, 민수기 시편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경원본은 원래 자음으로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자음으로만 기록을 해도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약 7-10세기경에 맛소라(Masorah, 전통이란 뜻)라는 유대인 전통학자들이 성경 내용을 정확하게 보존하기 위해 모음부호를 만들어서 성경에 첨가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주후 500-1000년 사이에 만들어진 성경본문을 ‘맛소라 본문’(Masoretic Text, MT)이라고 합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맛소라 성경’은 아쉐르(Aaron ben Moses ben Asher, ?-960)라는 유대인이 기록한 것인데 그는 이 성경에서 처음으로 성경을 장과 절로 구분했습니다.

구약성경 전체가 기록된 사본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레닌그라드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레닌그라드 사본’(leningrad codex)입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번역 성경들은 대부분 이 ‘레닌그라드 사본’의 본문 비평 자료 BHK(Biblia Hebraica Kittel, 1937)와 BHS(Biblia Hebraica Stuttgartercia, 1977)를 기초로 해서 만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공동번역 성경’도 이 BHK를 기초로 해서 번역한 것이며 개신교 ‘개역 성경’은 BHS를 기초로 해서 번역한 것입니다.          

. 정경(正經化)

우리는 지금까지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지게 된 4가지 단계 즉 계시, 영감, 성경원본 그리고 성경사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성경 정경화 작업’(bible canonization process)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다섯 번째 단계는 왜 교회가 수많은 책들 중에서 66권만을 성경으로 인정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왜 교회가 수많은 책 중에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66권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했는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구약성경의 기록과 정경화 과정

  • 율법서(律法書, 모세 오경)

히브리 성경의 순서는 우리말 성경의 순서와 많이 다릅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세 부분 즉 ‘율법’과 ‘선지서’ 그리고 ‘성문서’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 성경에서 제일 앞에 나오는 책은 모세가 기록한 다섯 권의 책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책들을 율법서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 책들은 모세를 통해 기록된 순간부터 즉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한 책으로 인정을 받았었습니다.

신명기 31:24-26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의 말씀을 기록한 후에 레위 인들에게 “그 기록들을 언약궤 곁에 두어 증거가 되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었을 때에도 이 율법 책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강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모세가 기록한 율법 책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수 1:8)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다섯 권의 책은 다윗이 왕으로 있을 때인 주전 1000년경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시아 왕 18년인 주전 621년에 제사장들은 성전을 보수하다가 이 율법 책을 다시 발견하였습니다.(왕하 22장) 이때에 요시야 왕은 이 율법 책의 권위를 인정했으며 그 안에 기록한 대로 지켜 행했습니다.(왕하 23:3) 

주전 586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주전 536년에 다시 본국으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은 유대민족의 신앙의 기초가 되는 율법 책을 매우 귀중하게 여겼습니다. 에스라는 주전 400년경에 고국에 돌아온 후에 무너진 유대인의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 이 율법 책들을 다섯 권으로 묶고 정경으로 인정했습니다.  

  • 선지서(先知書)

히브리 성경에서 율법서 다음에 나오는 책은 선지서입니다. 히브리 성경의 경우 선지서는 우리 성경과는 달리 ‘전선지서’와 ‘후선지서’로 나뉘어 있습니다. ‘전선지서’는 우리가 역사서로 취급하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그리고 열왕기서와 같은 책들이며, ‘후선지서’는 우리가 선지서로 분류하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그리고 12소선지서입니다.

히브리인들이 역사서를 선지서로 분류한 것은 여호수아와 사무엘과 같은 사람들을 선지자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전선지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부터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책들은 기록될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한 책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여호수아나 사무엘서는 저자의 이름 때문에 귀중한 책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열왕기서는 엘리야나 엘리사와 같은 유명한 선지자의 행적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메시지가 다른 선지자들과 비슷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책을 귀중한 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유대인들이 후기 선지서로 분류되는 아모스, 호세아, 미가, 이사야, 예레미야, 스바냐, 나훔 그리고 하박국과 같은 책들은 이스라엘이 포로가 된 후에 귀중한 책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멸망에 충격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선지자의 책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러 번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했었다는 사실을 비로써 알게 되었습니다.

후에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하였을 때에 그는 유대인들에게도 헬라문화를 주입하려 했습니다. 이때에 유대인들은 큰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그들의 정경을 정리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이 계기가 되어 주전 250-175년경에는 이러한 선지서들이 수집되어 정경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 성문서(聖文書)

히브리 성경에서 선지서 뒤에 나오는 책들은 ‘성문서’(聖文書) 즉 거룩한 문서들로 알려진 책들입니다 히브리 성경에 나오는 ‘성문서’는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시가서(詩歌書)라고 부르는 욥기, 시편, 잠언서이며, 둘째는 특별한 절기 때에 읽혀졌던 다섯 권의 책들 즉 아가서, 룻기, 애가, 전도서, 에스더서입니다. 유대인들은 아가서(雅歌書)를 유월절에 읽었고 룻기는 오순절(五旬節)에 애가(哀歌)는 예루살렘 멸망의 날에 전도서는 초막절(草幕節)에 그리고 에스더는 부림절(Purim)에 읽었습니다. 그리고 셋째 나머지 책들은 바벨론 포로 때부터 다시 고국에 귀환하기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다니엘서, 에스라, 느헤미야서 그리고 역대기입니다.

한글 구약성경은 메시아의 오심을 예견하는 말라기가 가장 뒤에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인의 구약 성경은 잃었던 다윗의 전통을 다시 수립하는 역대기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이 거룩한 문서에 포함된 이유는 다양합니다. 시편과 룻기는 다윗과 연결되어 있으며 잠언, 전도서, 아가는 솔로몬과 연결되어 있고 애가(哀歌)는 예레미야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욥과 다니엘은 자체적으로 거룩한 책으로 인정을 받았고 에스라, 느헤미야와 역대기도 저자인 에스라로 인해 거룩한 책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책들의 대부분은 주전 550년 이후에 수집되기 시작했습니다. 주전 175-165년경 수리아 왕 에피파네스(Ptolemy V Epiphanes, 210BC-181BC)는 유대인을 헬라화하기 위해서 유대인의 성경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이때에 유대인들은 큰 위협을 느끼고 그들이 사용해 온 거룩한 문서들을 보존하려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계기가 되어 주전 150년경에는 ‘성문서’로 분류되는 책들이 정경에 편입되었습니다.

그러나 정경에 관한 논의는 그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이 일 후에 논의된 정경성 문제는 주로 에스더, 전도서, 아가서, 잠언 그리고 에스겔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에스더가 문제가 된 것은 그 책 안에 하나님이란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도서는 회의주의와 쾌락주의에 대한 암시가 있다고 생각되었고, 아가서는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 포함되어 있어서 정경 채택에 논란이 있었습니다. 또한 잠언에는 서로 상충되어 보이는 내용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며, 에스겔은 모세 오경의 내용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는 주장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은 70년에 로마에게 점령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성전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때 기독교가 일어나 유대종교를 크게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안전과 통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성경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정경을 선정하는 일이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유대인들은 90년에 얌니아 종교회의(Council of Jamnia, AD 90)에서 우리가 가진 구약 39권을 정경으로 채택하였습니다. 이때에 유대인들이 이 책들을 정경으로 선택한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 책이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만 경배할 것을 천명하고 있는가?

둘째, 그 책이 그 동안 보편적으로 거룩한 책으로 인정받았는가?

셋째, 그 책이 거룩한 저자들에 의해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았는가?

넷째, 그 책이 신적인 권위를 가진 증거가 있는가?  

(2) 신약성경의 기록과 정경화 과정

우리는 지금까지 구약성경 39권이 어떻게 정경으로 채택되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성경 27권은 어떻게 정경으로 채택되었을까요?

주님이 세상을 떠나신 때는 주후 30년경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약 20여 년 동안 제자들은 말로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때에는 성경 기록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50여 년이 넘어가면서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기록으로 남길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목격한 증인들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주님의 증언을 기록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으며 교회의 여러 가지 상황도 기록된 증언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초로 기록을 남긴 사람은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는 회심한 후 각 지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했으며 그 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 문제들을 해결하고 그들의 신앙을 지도하기 위해 교회에 보내는 편지들 즉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서, 고린도서를 썼습니다. 그는 3차 전도여행을 마친 후에 스페인 선교를 계획하면서 로마서를 썼고 후에 로마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옥중 서신인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썼습니다. 그 후에 그는 잠시 놓였다가 체포되었는데 이 기간에 바울은 목회 지침서인 디도서와 디모데서를 썼습니다. 이런 바울의 서신들은 약 50년에서 64년 사이에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같은 때 야고보는 형식화된 유대 기독교인들을 위해서 야고보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70년이 넘어서면서 복음서들이 기록되기 시작했습니다. 마가는 박해받는 로마의 기독교인들을 위해 베드로의 증언을 기초로 마가복음을 기록했고, 베드로는 로마의 성도들을 위해 베드로서를 썼습니다. 그 후에 마태는 유대인을 위해 마태복음을 기록했고, 누가도 직접 자료를 조사하여 누가복음을 기록 데오빌로에게 헌정했습니다. 이러한 복음서들은 약 70년부터 90년 어간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9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부분의 사도들이 세상을 떠나고 사도 요한 만이 세상에 남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통해 마태, 마가, 누가가 빠뜨린 주님에 대한 기록들을 보충했으며 요한 1,2,3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1세기가 끝날 무렵에 사도 요한은 기독교 박해 때에 체포되어 밧모 섬에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요한은 성령의 지시를 받고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위해 요한 계시록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1세기가 끝날 무렵에 신약 성경의 대부분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기독교인들에게 거룩한 책으로 읽혀진 것은 이것들 외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 성경 27권이 정경으로 채택이 되게 되었을까요?

주후 140년경 말시온(Marcion of Sinope, 58AD-160AD)이라는 사람은 최초로 신약성경 중에서 정경을 확정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결정한 정경은 지나치게 영지주의(靈智主義)의 색채를 띠었기 때문에 교회 지도자들에게 많은 반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바울 서신과 누가복음만 정경으로 인정하고 다른 책들은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 지도자들은 “어떤 것을 성경에 포함시켜야 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논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교회의 지도자였던 오리겐(Origen, 185-254)은 각 지역의 교회를 순회하면서 어떤 책들이 거룩한 문서로 인정하고 사용하고 있는지를 조사했습니다. 그는 조사 결과 거룩한 책으로 인정되고 있는 책들을 두 종류로 분류했습니다.

첫째로 그는 4복음서와 바울의 13서신, 베드로전서, 요한일서, 사도행전, 계시록은 모든 교회에서 아무런 이의 없이 거룩한 책으로 인정되고 읽혀지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두 번째로 히브리서, 베드로후서, 요한 2-3서, 야고보서, 유다서, 바나바서, 허마스의 목자, 디다케, 히브리인의 복음서 등은 거룩한 책으로 인정하는 일에 다소 논란이 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 후에 정경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여 온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260AD-340AD)도 정경에 대해 연구하여 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조사해 본 결과 오리겐 시대에 다소 논란이 있던 책 중에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 2-3서가 이미 거룩한 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나바서, 디다케, 히브리인의 복음서 등은 아예 정경에서 배제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주후 303-311년에 로마 제국의 디오클레시안 황제는(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 245?–312?) 기독교를 크게 박해했습니다. 그는 기독교 박해 정책의 일환으로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성경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디오클레시안이 성경을 압수하고 불태우게 되자 기독교인들은 정경을 결정하는 일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알렉산드리아 감독 시릴(Syril, 315-386)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27권의 신약 성경 중에서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26권을 ‘거룩한 책’으로 추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견해가 라오디게아 종교회의(the Council of Laodicea, 363–364AD)에서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367년에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인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of Alexandria, 296-373)는 최초로 우리가 사용하는 신약성경 27권을 기독교 경전으로 추천했습니다. 그리고 393년 레기우스 종교회의(the Synod of Hippo Regius in North Africa)와 397년 카르타고 종교회의(Councils of Carthage)에서 이러한 추천이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때 카르타고 종교 회의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우리가 정한 66권의 정경 외에는 어느 것도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에서 읽힐 수 없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이 성경들은 아무런 이의 없이 교회에서 정경으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이때에 교회가 정경을 선택한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 책이 그간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거룩한 책으로 인정되어 왔는가?

둘째, 그 책이 복음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셋째, 그 책이 사도들의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받은 책인가?

넷째, 그 책이 성령의 인도를 받은 증거가 있는가?

. 번역(飜譯)

우리는 앞서 5가지 과정 즉 계시, 영감, 성경원본, 성경사본 그리고 정경화 과정에 대해서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 단계인 번역 성경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은 처음에 히브리어로 보존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적으로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포로가 되어 각 나라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히브리어보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의 언어에 더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1. 헬라어역 성경 칠십인경(70人 譯)

  히브리어 구약성경으로부터 가장 먼저 번역된    성경은 헬라어 구약성경이었습니다. 주전 3세기경(250-150년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72인의  장로(학자)들이 모여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을 했습니다. 이 성경은 우리에게 ‘70인경’(七十人 經, Septuagint, LXX, 사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헬라어는 당시에 전 세계가 사용하던 언어였기 때문에 구약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된 일은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 성경으로 인해 헬라어를 사용하는 모든 나라 사람들은 구약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이러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하기 위해 주님께서 미리 준비해 주신 귀중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3세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성경이 복음과 함께 전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렇게 준비를 해 주셨습니다.

2. 아람어역 성경 탈굼과 수리아역 성경 페시타

 그 후에 구약성경은 아람어(Aramaic)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주전 586년에 나라를 잃고 바벨론(Babylonia)에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살던 유대인들은 점차적으로 히브    리어(Hebrew)를 잊고 그 지역에서 사용 되던 아람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람어는 당시 페르시아와 그 종족들이 사용하던 주된 의사소통의 매개체였습니다. 또한 아람어는 당시 정치와 상업부분에서 국제어로 사용이 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모르는 후세들을 위해 예배 시간에 읽은 히브리어 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해야 할 필요를 느꼈으며 ‘탈굼’(Targum, 사진)이라는 아람어 번역 성경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또한 당시에 시리아에 거주하던 유대인 기독교인들 역시 ‘페시타’(Peshitta)라고 하는 시리아 역 성경을 만들었습니다.

3. 라틴어역 벌게이트 성경  

그 후에 번역된 언어는 라틴어(Latin)였습니다. 첫 번째 라틴어 역 성경은 ‘이탈라 역본’(Iittala Version)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2세기에 편집되어 200년경에 완성이 되었습니다. 이 성경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에서 직접 번역하지 않고 헬라어 번역 성경인 70인경을 라틴어로 번역해서 만들었습니다.

  그 후에 두 번째 라틴어 번역 성경으로 제롬의 ‘불가타’(Latin Vulgata or Vulgate Bible by Jerome, 405) 역이 탄생했습니다. 382년에 교황 다마수스(Pope Damasus I, 305-384)는 제롬(Jerome, 347-420)에게 70인역 성경을 참고해서 첫 번째 라틴어 번역 성경인 ‘이탈라 성경’을 개정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제롬은 이 명령을 받고 번역 작업에 착수하여 390-404년에 걸쳐서 번역을 마쳤습니다. 이 라틴어 성경은 ‘벌게이트(Vulgate, 대중적이라는 뜻, 사진 ) 역’이라고 불렀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로마의 공식 언어인 라틴어로 번역된 ‘불가타 성경’은 그 후 약 1,000년 동안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공식적인 경전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4. 종교개혁시대 이후

그러나 이러한 라틴어 성경의 독주 시대는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경보다 교회의 전통을 더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성경과 다른 결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므로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와 같은 종교 개혁자들은 전통보다는 성경을 더 높은 권위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는 거룩한 책인 성경을 라틴어가 아닌 다른 말로 번역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므로 라틴어를 모르는 평민들은 성경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회가 성경과 다른 일을 결정해도 그것이 잘못된 것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루터와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각기 자기나라 말로 성경을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루터는 그 후에 직접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그 후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468)는 인쇄기를 발명한 후 가장 먼저 성경을 인쇄하여 출판했습니다. 이러한 인쇄술의 발달로 수많은 번역 성경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성경 보급에 획기적인 전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 수많은 영어 번역 성경들이 나타났는데 그 중에 특히 제임스 왕의 명에 의해 1611년에 출판 된 ‘흠정역’(欽定譯, King James Version, KJV) 성경이 유명했습니다. 이 성경은 영어 문헌의 표준 작품이며 기독교 기도 문장의 보배로 인정받았습니다. 그 후 복음의 전 세계로 확장되어 나가면서 성경이 급속하게 각 나라 말로 번역되기 시작했습니다.    

 5. 한국교회의 한글 성경  

한국에서 가장 먼저 번역된 성경은 피터스 (A. A. Pieters)가 번역한 ‘시편촬요’였습니다. 그 후 1882년에는 존 로스(John Ross, 1842-1915) 선교사가 ‘누가복음’을 번역했습니다.(사진) 그리고  이를 계기로 해서 선교사를 중심으로 한 ‘성경번역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그들은 성경 번역 작업을 시작 1900년에 신약을 모두 번역했고 1911년에는 구약을 모두 번역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최초로 한글 신구약 ‘성경전서’가 1911년 출판되었는데 이 성경은 1938년에 다시 한 번 개역이 되었습니다. 이 성경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 ‘개역 성경’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56년에 이 성경은 ‘한글 맞춤법 표기’에 맞추어서 다시 한 번 부분적으로 개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은 원어성경이 아닌 영어 성경 ‘흠정역’과 한문 성경을 기초    로 해서 번역되었으며 또한 자국인이 아닌 외국 선교사들을 주축으로 번역되었다는 점에서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1968년에 대한성서공회는 레닌그라드 비평 자료인 BHK를 기초로 해서 천주교와 공동으로 번역에 착수했습니다. 그 결과 대한성서공회는 1971년에 신약을 완역하였으며, 1977년에 구약과 외경을 완역하여 ‘공동번역 성경’을 출판했습니다. (사진 한글 성경전서 1887년)

그러나 개신교는 ‘공동번역 성경’에 포함 된 로마 가톨릭교회의 외경에 거부감을 가지고 ‘공동번역 성경’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대한성서공회는 다시 개신교 단독으로 원문의 내용에 근거해서 충실한 번역 성경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3년 ‘표준 새 번역성경’이 출판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각 교단은 이 성경에 여러 가지 번역과 신학 문제가 있다고 해서 사용하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러므로 대한성서공회는 내용을 더욱 보완하여 2000년에 다시 ‘개역개정판 성경’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이 성경을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각 교단들이 활발한 토론이 있었으나 몇 번의 수정을 거쳐 현재는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가 이 성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론

우리는 이제까지 성경이 우리 손에 주어지게 된 6개의 과정을 생각 했습니다. 1)계시, 2)영감, 3)성경원본, 4)성경사본, 5)성경 정경화 작업, 6)번역 성경이라는 과정을 통해 성경이 오늘날 우리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위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또 수많은 탄압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보존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후에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서 이 성경이 우리의 손에 들어올 수 있도록 섭리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 말씀 즉 성경을 귀중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가까이 하며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의 길이 평탄하고 형통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이 율법 책을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샬롬!(*) 글쓴 이 / 최영찬 목사(총신대 기독교교육과 및 신대원, 웨스턴신학교 선교학 박사과정 수료, 리폼드신학교 목회학 박사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