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24)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제3장 ‘유기 예정’의 신비
제3장 8항
이처럼 매우 신비로운 예정교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에 순종을 한 사람들로 하여금 확실한 유효적 부르심으로부터 그들의 영원한 선택을 확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특별히 신중하며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그리함으로써 이 교리는 복음에 진실하게 복종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께 찬양과 경외와 경배를 드리며 겸손함으로 근면히 행하며 풍성한 위로를 누리게 될 이유를 알려주게 될 것입니다.
해 설
“예정교리는 호기심으로 헛되게 이성과 경험으로 판단할 수 없어”
기독교강요 제3권 제3장 8항에서 교훈하는 것은 이러하다.
첫째, 예정교리는 지극히 신비로운 것이므로 아주 신중하게 주의를 기 울여 특별히 다루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을 하는 사람들은 확 실한 유효적 부르심으로부터 예정교리를 통해서 영원한 선택을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셋째, 복음에 진실하게 복종하는 사람은 예정교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외하며 경배를 하여야 할 이유를 알게 될 것이며, 또 한 겸손함으로 근면히 행하여야 이유와 풍성한 위로를 누리게 될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예정교리는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은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교리이다.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작정을 하시고 작정하신 바를 또한 실행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예정교리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없다. 따라서 예정교리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정수이며 절정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가장 분명하고 높고 깊은 수준에서 고백하고 찬미하는 교리가 예정교리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언약과 선택 그리고 예정의 구원에 대한 심오한 신학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그는 먼저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말한다.(롬 9:8) 이어서 하나님의 자녀는 오직 하나님의 선택으로 된다는 사실을 전한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며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실 것이며(롬 9:15), 이러한 선택과 관련하여 하나님에게는 어떤 불의도 없음을 선포한다.(롬 9:14) 그리고 그 유명한 토기장이와 토기의 비유를 들어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대해서 허물하거나 그 뜻을 대적할 수가 없음을 교훈한다.
이러한 이해를 기초로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원과 관련한 교훈을 이어가면서 바울은 마침내 절정의 찬미를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3-36)
사람은 부패하여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도 못하며 인정하기도 원치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과 같은 차원의 존재로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성과 경험에 비추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존재조차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부패한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이미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이다. 그러한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중생의 은혜에서 주어진다.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 사실에 눈을 떠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진리를 배우고 신앙을 고백하면서 비로소 사람은 하나님의 높고 높으신 영광의 위엄과 사람의 낮고 낮은 비참한 처지를 바르게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때에 사람이 가장 아름답고 존귀한 신분을 누리게 되며 의와 진리로 거룩하고 순결한 상태를 누리게 됨을 고백하게 된다. 이럴 때에야 참 신자는 겸손히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선하심과 지혜에 대해 점차 깨닫고 알아가며 찬미하게 된다.
예정교리는 사람이 호기심에서 헛되게 자신의 이성과 경험 안에서 판단하고 이해하려고 시도할 그런 주제가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바대로 믿어야 할 교훈이다. 예정교리를 어떻게 받으며 가르칠 것인가와 관련하여 신명기의 말씀은 적절한 교훈을 주고 있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라.”(신 29:29)
예정교리를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할 수가 있다. 하나는 예정교리의 오묘한 신비이다. 하나님께 속한 것인 줄을 알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계시된 일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니 잘 가르치고 배워 행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따라 예정교리 또한 계시된 사실인 만큼 교회는 이를 잘 가르치고 또한 배워 신앙의 행위에 교훈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두 가지 측면에 대해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잘 쓰고 있다. “오직 내가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 감추신 비밀한 일들은 탐구하려 하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은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일반적인 규율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편으로는 헛된 호기심으로 행한다는 정죄를 받지 않게 될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감사를 알지 못한다는 정죄를 받지 않게 될 것이다.”(기독교 강요 3권 21장 4항)
“예정교리 깨달을 때에 비로소 영원한 선택 확신할 수 있어”
신앙고백서는 예정교리를 가르쳐지고 선포하여야 한다는 데에 강조를 두고 있음에 유의를 하여야 한다. 신앙고백서가 예정교리는 아주 신중하게 주의를 하여 가르쳐야 한다고 할 때 그것의 의도는 가급적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되 신중하게 하라는 말이다. 즉 가르치라는 데에 중점이 있다.
이것은 칼빈의 교훈과도 일치한다. “어떤 사람들이 지극히 소극적이며 자신이 없어, 예정에 대한 모든 언급들을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않도록 묻어버리자고 할 때, 그들의 행동은 그들도 사려깊이 보고 있는 위험성을 하나님께서 미처 보지 못한 채 적절한 배려를 하지 못했다는 식의 비난을 간접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교만을 무슨 색깔로 덧칠해 감출 것인가?”(기독교강요 3권 21장 4항)
목회적인 고려를 할 때 예정교리를 가르치면 안 된다는 주장은 두 가지 점에서 잘못된 것이다. 하나는 앞서 이미 말한 것처럼 소극적인 것으로 하나님께서 예정교리를 계시하신 것은 예정교리로 인하여 나타나게 될 목회적인 문제점들을 하나님께서 미리 보지 못하신 불찰 때문이라는 식의 비난을 하나님께 대하여 하는 셈이 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보다도 지혜롭지 못하다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그릇된 판단을 담고 있다.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측면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정교리를 계시하심으로써 그것을 통해 영적인 유익을 얻도록 하신 바가 있는데 이를 무시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이러한 잘못과 달리 신앙고백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을 하는 사람들은 예정교리를 통해서 영원한 선택을 확신할 수 있게 됨을 교훈한다. 예정교리는 구원의 확신을 굳게 한다.
예정교리를 통해 영원한 선택을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유효적으로 받아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을 한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참으로 회심한 사람이라야 예정교리가 말하는 선택의 은혜를 고백할 수가 있는 것이다. 누구도 예정의 사실을 먼저 알고 난 후에 회심을 하는 법은 없다.
따라서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예정의 사실을 미리 알고서 비로소 복음에 순종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나, 혹은 선택이 되었는지 알 수 없으니 복음에 순종하려고 애를 써보아야 소용이 없는 일이라는 주장은 결코 인정이 될 수가 없다.
사람은 먼저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후에 비로소 자신이 선택의 예정에 따라 영원한 선택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가 있게 된다. 베드로는 이러한 사실을 담아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 지 아니하리라.”(벧후 1:9) 그러므로 이처럼 복음에 진실하게 순종을 함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이 유효적으로 나타난 사람은 자신이 선택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이유가 전혀 없다.
복음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은 선택을 받은 자로서가 아니라 죄인으로서 행한 것이지만 그렇게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순종으로 반응한 사람은 이제 선택의 예정에 관한 계시를 통해서 그 순종이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의 예정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깨닫고 자신의 영원한 선택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예정을 통한 영원한 선택을 이처럼 확신하게 되면서 복음에 순종한 사람은 이제 신앙고백서가 바르게 지적하고 있는 바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외하며 경배를 한다. 즉 예정교리는 하나님께서는 예정을 하신 이유와 관련해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엡 1:6)이라고 말씀한 바와 같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외하고 경배를 할 이유와 동기를 밝히 보여준다.
아울러 예정교리는 영원한 선택을 확신하는 믿음의 사람을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경건을 쌓기에 근면하며 고난 가운데서도 위로를 풍성히 누릴 수 있게끔 한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롬 8:33)라는 말씀은 신자의 유일한 위로의 근거가 자신의 의로움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선택에 있음을 가르쳐 준다.
만일 구원의 확신이 신자 자신이 행한 노력과 공로에 근거한다면 어떤 신자라도 자신이 행한 숱한 무력과 불순종과 불의 때문에 결국 어떤 구원의 확신과 위로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중생한 신자라도 옛사람의 흔적 때문에 시달림이 있으며 또한 연약한 믿음으로 인하여 실족함이 없을 수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바라보는 주관적 근거로는 영원한 선택을 확신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효적 부르심을 통해 신실한 믿음으로 복음에 복종하는 자를 선택하셨음을 가르치는 선택의 예정교리를 배우고 또한 깨달을 때에 비로소 신자는 영원한 선택을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왜 예정교리를 가르치는 일을 신중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교회에 선포되고 가르쳐져야 하는지에 대한 답변이 된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예정교리로 인하여 복음을 진실히 믿는 모든 성도들이 다 함께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 찬양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러한 찬양을 통해 참된 믿음의 자태가 더욱 고양이 되기를 바란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글쓴 이 / 김병훈 교수(합신 조직신학)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