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45) 생명에 이르는 회개

제15장 구원에 이르는 회개(1)
제1,2항 :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요소
1항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복음의 은혜다.(슥 12:10, 행 11:18) 모든 복음 사역자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교리는 물론 이 교리를 전해야 한다.(눅 24:47, 막 1:15, 행 20:21)
2항 죄인은 회개를 통해 영적 안목과 의식이 깨어나 스스로의 죄가 하나님의 의로우신 율법과 거룩하신 성품을 거스르는 위험하고 더럽고 추악한 행위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회개하는 이들에게 베푸시는 긍휼을 굳게 붙잡으며, 죄를 슬퍼하고 미워하며, 모든 죄에서 하나님께로 돌이켜(겔 18:30,31,36:31, 사 30:22, 시 51:4, 렘 31:18,19, 욜 2:12,13, 암 5:15, 시 119:128, 고후 7:11) 그분과 동행하며, 그분의 모든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하기에 이른다.(시 119:6,59,106, 눅 1:6, 왕하 23:25)
해설
이 장의 주제인 회개(悔改)를 ‘생명에 이르는 회개’라고 일컬은 이유는 회개가 사망을 낳는 세상 근심과는 달리 영생의 즐거움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고, 이를 ‘은혜’로 일컬은 이유는 회개가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로 성령의 사역을 통해 죄인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행 11:18)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내가 돌이킨 후에 뉘우쳤고”(렘 31:18,19)
아울러 이 조항은 회개를 ‘복음의 은혜’로 일컬어 율법적인 회개와 구별한다. 율법적인 회개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비롯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회개는 그분의 긍휼을 믿는 믿음에서 비롯한다. 전자는 하나님을 분노하시게 한 죄를 후회하는 것이다. 가인과 가룟 유다는 회개했지만 그들이 회개한 이유는 단지 죄가 자신들에게 미치는 결과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참된 회개는 경건한 슬픔 곧 하나님을 생각하며 죄를 슬퍼하는 것을 가리킨다.(고후 7:9-10)
‘모든 복음 사역자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교리는 물론 이 교리를 전해야 한다.’는 명제는 율법폐기론 이단을 논박한다. 율법폐기론 자들은 복음 사역자가 회개를 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회개를 전하는 것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에 매우 해롭고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그리스도의 명령은 물론 그분이 친히 본을 보여주신 일에도 역행한다. 주님은 공적 사역을 행하시면서 군중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고 명령하셨고, 사도들에게 복음 전도를 당부하시면서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눅 24:47)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사도들도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회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행 2:38, 3:19, 14:15) 바울 사도는 ‘죽은 행실을 회개함’(히 6:1)을 기독교의 핵심원리 가운데 하나로 간주했다. 그는 에베소 장로들 앞에서도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행 20:21)고 말함으로써 ‘회개’와 ‘믿음’이라는 두 가지 큰 원리로 자신의 가르침을 간결하게 요약했다.
회개해야 할 대상은 죄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말씀에는 의로운 사람은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 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고 말한다. 따라서 회개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 17:30) 신실하고 의로운 증인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3)고 엄숙히 경고하셨다. 그러므로 참 회개는 이러하다.
- 참 회개는 죄를 깨닫고 의식하는 데서 비롯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죄를 확실하게 깨닫고 의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일은 성령의 깨우치심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은 성령의 사역이다.(요 16:8) 성령은 율법으로 죄를 깨닫게 하신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성령이 죄인의 생각을 깨우쳐 거룩한 율법의 순결함과 신령함과 엄숙함을 알게 하시면 죄인은 자신의 죄가 ‘심히 죄가 된다.’는 사실을 의식한다. 다시 말해 죄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의로우신 율법을 거스르는 위험하고 추악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에 이른다.
- 참 회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회개하는 이들에게 베푸시는 긍휼을 굳게 붙잡는다.
하나님을 냉혹한 재판관으로만 인식하면 아담처럼 정의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그분에게서 도망칠 수밖에 없다. 그런 경우에는 죄를 진지하게 뉘우치며 그분께 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나님은 죄 사함의 은혜를 믿을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마련해 주셨다. 하나님은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중략)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출 34:6,7)고 선언하셨다.
성경이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사 55:7)고 초청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고 너그럽게 용서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롬 3:25) “이 사람(그리스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행 13:38)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하였느니라.”(행 10:43)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긍휼을 믿음으로 붙잡으면 마음이 녹아져 죄를 슬피 뉘우치게 된다. 복음의 회개는 이토록 관대한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회개하는 영혼은 겸손히 죄를 뉘우침으로써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값없이 죄를 용서하셨다는 확신에 도달할 수 있다. 성경은 진정으로 죄를 뉘우친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네가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16:63)
믿음과 회개의 순서는 시간상의 차이로는 따질 수 없다. 영혼 안에서 이 둘이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때는 없다. 믿음과 회개는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그러나 본질상의 순서를 따지면 믿음이 회개에 선행(先行)해야 한다.
복음적인 회개는 죄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하지 많으면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없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그분께 나아올 수 없다.(요 14:6, 6:35) 복음적인 회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짓 없이 사랑하려면 참된 믿음이 있어야한다.(딤전 1:5)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슥 12:10)라는 예언의 말씀대로 우리가 찌른 분을 바라봐야만 비로소 경건한 슬픔을 느끼며 통회할 수 있다. 스스로의 죄책과 불행을 의식하면 죄를 뉘우치며 그것을 버려야겠다는 결심이 서게 된다. 왜냐하면 영원한 형벌을 의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본질상의 순서에 의하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먼저 필요하다.
- 참 회개는 죄에 대한 경건한 슬픔과 깊은 후회를 동반한다.
거짓 슬픔을 참된 슬픔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단지 죄의 형벌이 무서워 죄를 슬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린 슬픔을 느끼는 사람들은 두려움이 가라앉으면 더 자유롭고 격렬하게 죄를 저지르곤 한다. 그러나 참 회개 자는 죄를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분의 권위를 거스르며, 그분의 거룩한 율법을 어기고, 그분의 선하신 은혜를 저버리는 가장 추악한 행위로 여겨 슬피 뉘우치며 자신의 죄악 된 삶을 돌이킨다.(시 51:4)
- 참 회개는 죄를 미워하는 마음을 동반한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 이유는 죄가 우리를 사망으로 인도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 곧 우리를 그분 앞에서 혐오스럽고 역겹게 만드는 죄를 그 자체로 가증스럽게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진정이라면 죄를 범한 우리 자신을 혐오하고 미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마음은 우리는 물론 다른 사람들의 죄에까지 확대된다.(욥 42:6, 겔 36장, 렘 31:19, 시 119:128)
- 참 회개는 진지한 의도로 죄에서 하나님께로 돌이켜 그분과 동행하며 그분의 모든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참 회개의 표징이며 그 진정성을 가늠하는 잣대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계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행 26:20)고 했다. 참 회개 자는 더 이상 우상을 섬기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죄를 버린다. 죄를 행하는 것은 물론 죄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모두 버린다. 특히 전에 가장 심하게 중독되었던 죄와 자신을 가장 쉽게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일을 경계한다.(시 18:23) 그는 모든 죄를 경계하며 죄에서 온전히 구원 받기를 갈망한다.
또한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주님이요, 주인으로 여기고 그분의 은혜에 의지해 일평생 성결과 의(義)로 그분을 섬기기로 다짐한다. 그는 마음속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목표를 세우고 깨어 있는 태도로 성실하게 모든 은혜의 수단을 부지런히 활용하며 죄를 멀리하고 거룩함을 추구한다. 물론 이 말은 참 회개 자가 죄 없는 완전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 회개 자는 죄를 지을 때마다 매일 새롭게 죄를 뉘우친다. 그들의 영혼에서 죄가 완전히 제거되기 전까지는 그들의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을 것이다.
제3항 :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절대적 필요성
3항 회개는 죄를 보상하는 근거나 용서의 원인이 아니라(겔 36:31,32 16:61-63)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의 행위다.(호 14:2,4 롬 3:24, 엡 1:7) 하지만 회개는 모든 죄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며 누구도 이것 없이는 죄 사함을 기대할 수 없다.(눅 13:3,5, 행 17:30,31)
해설
- 로마 교황주의자들은 회개를 죄를 보상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죄를 지은 사람이 고행이나 고해성사를 통해 죄 값을 치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회개가 죄 사함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한편 소시니안주의(Socinianism) 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속죄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부인하고 오직 회개만이 속죄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조항은 “회개는 죄를 보상하는 근거나 용서의 원인이 아니다.”라는 말로 그런 주장들을 논박한다. 앞서 말한 대로 회개는 모든 죄인의 의무다. 그러나 그 의무를 잘 이행하고 있다고 해서 과거의 죄에 대한 속죄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회개가 국가에 대한 범죄의 형벌을 면제해 주는 법적근거가 될 수 없다. 또 하나님을 상대로 저지른 죄도 단지 회개했다고 해서 충분한 속죄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을 희생시키심으로 하나님의 정의를 온전히 만족시키셨다. 오직 그분의 보혈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할 수 있다.(요일 1:7)
죄 사함은 아무 대가 없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것은 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의 행위다. 죄 사함이 은혜가 되기 위해서는 행위와는 더 이상 아무 상관이 없어야 한다. 따라서 회개의 행위는 죄를 위한 만족스런 보상이 될 수 없다.
- 참 회개와 죄 사함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회개했다고 해서 저절로 죄 사함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죄 사함을 받으려면 회개가 반드시 필요하다. 회개하지 않은 죄인은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 이 둘은 구원의 경륜 가운데서 서로 인과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지만 값없는 은혜와 거룩함의 일관된 관계를 보여 준다. 국가가 인격의 변화를 입증하는 증거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무작정 범법자를 사면해 사회에 복귀시킨다면 이는 벌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죄를 지을 수 있는 허가증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인간이 생각하기에도 그런 일이 불합리하다면 하나님의 통치 행위와 관련된 일은 더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아무 원칙 없이 긍휼을 베푸시지 않으신다. 그분은 죄 사함을 회개와 죄의 고백과 연관시키셨다. 회개와 죄의 고백은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유일한 증거며 둘 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글쓴 이 / 로버트 쇼(Robert Shaw, 1795-1863) 출처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 로버트 쇼 저, 조계광 역, 생명의 말씀사, 2014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