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52) 하나님의 율법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52)  

하나님의 율법

   19 하나님   

제1항 :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법

1항 하나님은 아담에게 행위 언약인 율법을 허락하시어 그와 그의 모든 후손 에게 그 율법을 인격적으로 온전하고, 정확하고, 영구히 지켜야 할 의무를 부과하셨다. 그분은 율법을 지키면 생명을 주시고 어기면 죽음의 형벌을 내릴 것이라고 경고하셨고, 그에게 그것을 지킬 수 있는 힘과 능력을 허락하셨다.(창 1:26,27, 2:17, 롬 2:14,15, 10:5, 5:12,19 갈 3:10,12, 전 7:29, 욥 28:28)

해설    

하나님은 인간을 지성적(知性的)인 피조물이자 도덕적(道德的)인 자율성(自律性)을 지닌 존재로 창조하시고, 그에게 율법(律法)을 허락하시어 행위(行爲)의 규칙으로 삼게 하셨다. 이 율법의 근거는 하나님의 무한히 의로우신 본성이다. 이 율법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필연적으로 도덕적인 관계가 성립되었다.

이 율법은 본래는 인간의 마음에 기록되었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의무를 다하는 것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또한 자기에게 요구된 복종을 실천할 수 있는 힘과 능력까지 부여 받았다. 인간은 하나님의 도덕적인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이미 그 형상 안에 그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창 1:27)

아담의 마음에 기록된 율법은 종종 ‘창조의 율법’으로 일컬어진다. 그 이유는 그것이 주권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성(理性)을 지닌 피조물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의 생각과 마음속에 율법을 새겨 주셨다. 또한 이 율법이 ‘도덕법’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것이 도덕적인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담은 도덕적 행위의 기준이자 규칙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율법이 자연적인 형태로 아담에게 주어졌고 그에게 완전한 복종의 의무를 요구했다. 더욱이 이 율법은 언약의 형태로 주어졌다. 즉 복종하면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과 어기면 사망의 형벌을 내리겠다는 경고가 덧붙여졌다. 아담이 모든 율법에 복종할 것인지를 시험하기 위한 잣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이 주어졌다.(창 2:16,17) 이 언약은 인류의 첫 조상과 맺어졌지만 그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앞서 말한 대로 그는 자신의 모든 후손을 대표하는 머리로서 언약을 맺었다.

바울은 언약의 형태를 지닌 이 율법을 ‘행위 율법’으로 일컬었다.(롬 3:27) 아담에게 주어진 율법은 ‘행위언약’이었다. 이런 형태의 율법은 의무를 규정할 뿐 아니라 복종에 대한 보상으로 생명을 약속하고 불순종에 대한 징벌로 사망을 선고하는 형식을 취한다. ‘생명을 주기로 작정된’ 율법이 육신(타락한 본성의 부패함)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제 율법은 우리가 행할 수 없는 의무들을 요구한다. 행위 언약인 율법을 지켜 생명을 얻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그런 방법으로는 더 이상 구원의 소망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생명을 얻으라고 가르친다. 모든 사람은 언약을 어긴 상태로 율법 아래 있으며 그 형벌을 짊어져야할 운명이다. 인간은 누구나 율법의 명령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아담과 맺어진 ‘행위언약’은 그 자신만이 아니라 그의 모든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아담이 언약을 어긴 순간 그의 모든 후손이 언약을 어긴 상태로 전락했다. 따라서 인간이 처한 본질적인 상태는 참으로 비참하기 그지없다. 성경은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갈 3:10)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구하려는 것은 이성과 분별력을 잃은 처사다. 왜냐하면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이다.(롬 3:20) 

제2항 : 도덕법(道德法)

2항 이 율법은 아담이 타락한 후에도 계속해서 완전한 의의 규칙으로 남았고,  하나님은 이를 시내 산에서 십계명의 형태로 두 돌 판에 새겨 전달하셨다.(약 1:25, 2:8,10-12, 롬,13:8,9, 신 5:32, 10:4, 출 34:1) 처음 네 가지 명령은 하나님께 대한 의무이며 나머지 여섯 가지 명령은 사람에 대한 의무를 각각 명시 한다.(마 22:37-40)

해설        80

인간의 타락 후 ‘행위언약’으로 알려진 율법은 폐지됐지만 ‘도덕법’인 율법은 계속해서 완전한 의(義)의 규칙으로 남았다. 창조 당시에 인간의 마음에 기록된 이 율법은 타락한 후에는 완전히 지워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이성을 지닌 피조물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런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즉 하나님을 경배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원리들이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어느 정도 새겨져 있다.(롬 2:14,15)

그러나 율법이 지닌 본래의 기능이 크게 훼손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온전하고 새로운 형태로 다시 허락하시는 은혜를 베푸셨다.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지극히 엄숙한 절차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수여하셨다. 하나님은 그 율법을 열 가지 계명으로 간단히 요약해 반포하셨다. 하나님은 친히 자신의 손가락으로 이 계명들을 두 돌판에 새겨 주셨다.(출 32:15,16, 34:1) 

처음 네 가지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나머지 여섯 가지 계명은 사람에 대한 의무를 각각 명시한다. 주님은 이 모두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두 가지 계명으로 축약하셨다.(마 22:37-40)

그러나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경과 달리 첫 번째 돌판에는 처음 세 가지 계명만 기록되었고, 나머지 일곱 가지 계명은 두 번째 돌판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첫 번째 계명과 두 번째 계명을 하나로 묶는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두 번째 계명이 로마 가톨릭교회의 관행을 단죄(斷罪)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두 번째 계명이 첫 번째 계명에 딸려 있는 내용인 것처럼 간주해 우상의 형상(形像)을 금지하는 의미로만 이해한다.        

그들은 이를 근거로 참 하나님과 성인(聖人)들을 묘사하는 경우에는 얼마든지 형상을 만들어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처음 두 계명을 하나로 합쳤기 때문에 열 가지 계명을 맞출 요량으로 마지막 계명을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와 그 이하의 내용으로 나눈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아무 성경의 근거가 없다.

처음 두 계명은 서로 독립된 계명이다. 첫 번째 계명은 경배의 대상이 살아 계신 참 하나님밖에 없다고 가르치고, 두 번째 계명은 예배의 수단 곧 형상이나 사람이 고안(考案)한 다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 주신 의식만을 통해 예배하라고 가르친다. 열 번째 계명은 서로 나눌 수 없는 하나의 계명이다. 전체 내용이 한 가지 주제 즉 탐심과 그릇 된 욕망에 집중되어 있다. 이를 둘로 나누면 ‘탐내지 말라’라는 명령이 서로 중첩된다.

로마 가톨릭교회처럼 이 계명은 대상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기만 하면 그 가짓수를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왜냐하면 대상을 말하고 나중에 ‘탐내지 말라’는 말만 갖다 붙이면 되기 때문이다.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 7:7)는 바울 사도의 말은 이 계명이 한 가지 계명이라는 것을 분명히 암시한다.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행위언약’의 형태로 반포하셨다. 물론 그 목적은 이스라엘과 새로운 ‘행위언약’을 맺으시고, 율법을 지켜 생명을 얻으라고 요구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율법을 ‘행위언약’으로 제시하신 이유는 완전한 의가 없이는 곧 율법의 모든 요구에 복종하는 것이 없이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그들 자신에게 그런 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어 ‘은혜언약’(곧 그들이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도록 완전한 의를 공급하는 언약)을 붙들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시내 산 언약’에는 ‘율법’과 ‘은혜’라는 두 가지 원리가 혼합되어 나타난다. ‘시내 산 언약’에 ‘은혜언약’이 담겨 있다는 것은 십계명의 서두에 기록된 말씀(‘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이 여호와니라.’)과 ‘의식법’의 반포를 통해 분명하게 암시되고 있다. 그러나 ‘시내 산 언약’에는 ‘행위언약’인 도덕법도 아울러 포함되어 있다. 도덕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부패함과 비참함을 알게 하고 속죄의 필요성을 깨우쳐 주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씨(그 안에서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게 될 약속의 후손) 곧 복되신 중보자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도록 이끈다. 이처럼 시내 산의 ‘행위언약’은 ‘은혜언약’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지금도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갈 3:24)로서 여전히 복음에 기여한다.

제3항 : 의식법(儀式法)

3항 하나님은 아직 미성숙한 교회였던 이스라엘에게 흔히 도덕법으로 불리는  이 율법 외에 의식법을 허락하셨다. 그 안에는 예표가 되는 여러 가지 의식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부분적으로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은혜와 행위와 고난과 축복을 예표하고(히 9장, 10:1, 갈 4:1-3, 골 2:17) 부분적으로는 도덕적 의무를 일깨우는 다양한 교훈을 가르치고 있다.(전 5:7, 고후 6:17, 유 1:23) 이 의식법은 신약시대에 이르러 모두 폐지되었다.(골 2:14:16,17, 단 9:27, 엡 2:15,16)

제4항 : 재판(裁判法)

4항 하나님은 정치체제를 구축하고 있던 이스라엘에게 여러 가지 사법적인 율법을 허락하셨다. 이런 율법들은 그들의 국가와 더불어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법률적 공정성이 요구하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아무런 구속력을 발휘하지 못한다.(출 21장, 22:1-29, 창 49:10, 벧전 2:13,14, 마 5:17,38,39, 고전 9:8-10) 

제5항 : 도덕법의 영속성(永續性)

5항 도덕법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물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영구히 복종을 요구한다.(롬 13:8-10, 엡 6:2, 요일 2:3,4,7,8) 그 이유는 그 안에 담겨 있는 내용만이 아니라 그것을 허락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 때문이다.(약 2:10,11) 그리스도께서도 복음 안에서 이 의무를 폐하지 않으시고 더욱 강화하셨다.(마 5:17-19, 약 2:8, 롬 3:31) 

해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도덕법 외에 의식법과 사법적인 율법을 허락하셨다. 이 두 가지는 그 용도가 일시적이고 제한적이다. 그러나 도덕법은 보편적이고 항구적인 의무에 해당한다.    

(1) 의식법(儀式法) 

의식법(儀式法)은 유대민족이 교회로서 행해야할 의무를 다룬다. 이 율법은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지켜야 할 의식과 규례를 규정한다. 이 의식(儀式)들은 주로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그분을 통한 구원의 길을 아는 지식으로 인도한다. 이 율법은 신약시대에 이르러 모두 폐지되었다. 그 이유는 이렇다.

  • 이 율법의 자체적인 속성 때문이다.

이 율법의 목적은 유대 민족을 다른 민족의 우상숭배 의식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그들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는 순간 그들을 나누는 벽이 허물어졌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엡 2:14,15)

  • 이 의식법이 다가올 좋은 것을 예표하기 때문이다.

이 율법은 새 언약 시대가 열려 그리스도를 통해 폐지될 때까지만 효력을 발휘했다. 이 율법은 그분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다.(히 9:9-12)

  • 이 율법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죽음을 예표하고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으로 하나님의 정의를 만족시키심으로 의식법이 예표 하는 모든 것을 성취하셨다. 따라서 모든 예표는 폐지되는 것이 마땅했다.(골 2:17)

  • 의식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대부분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성전이 파괴되면서 의식들도 함께 사라졌다.      

  • 사도들이 분명히 가르치는 대로 새 언약의 시대에는 더 이상 의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행 15:24)

. 히브리서의 주제 가운데 하나는 의식법이 폐지되어야 할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히 7:12)

(2) 사법적인 율법

사법적인 율법은 유대민족이라는 국가 체제에 국한된다. 이 율법은 국가를 통치하기 위한 법률적 성격을 띤다. 이 율법이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유대 민족의 정치 체제가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민족에게 공통되는 자연법의 원칙을 따르는 법령은 여전히 효력을 발휘한다.

(3) 도덕법

도덕법이 도덕법으로 불리는 이유는 일시적인 의무만을 다루는 실정법과는 달리 도덕적 행위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율법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거나 하나의 국가나 민족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율법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관계에 근거하기 때문에 시대를 초월한 권위를 발휘한다.

이 조항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물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영구히 복종을 요구한다.”는 말로 신자들이 도덕법의 의무에서 해방되었다고 주장하는 율법폐기론 자들을 논박한다. 물론 신자들은 언약의 형태로 주어진 도덕법으로부터는 온전히 해방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여전히 이 율법을 삶의 규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바울은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고전 9:21)라고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엄숙하고 확실한 태도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들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복종을 통해 언약으로서의 도덕법을 모두 성취하셨고, 자기 백성을 대신해 끔찍한 고난을 당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그들에게 하늘의 계명을 완전한 의무의 규칙으로 제시하시고 가장 설득력 있는 동기를 부여하신다. 복음은 도덕적 율법의 의무를 약화시키기보다 오히려 그 권위를 강화하고 공고히 하며 가장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 그 계명에 복종하게 한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

신자들에게 도덕법은 더 이상 언약의 기능을 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내용과 권위는 여전히 변함없이 동일하다. 율법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진 언약의 형태를 띠기 전까지만 해도 인류의 첫 조상을 위한 단순한 삶의 규칙이었다. 이 점을 생각하면 율법의 언약으로서의 기능은 폐지되었더라도 도덕적 행위의 규칙으로서의 기능은 여전히 그대로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제6항 : 도덕법의 유익

6항 참 신자는 행위 언약으로서의 율법을 통해 의롭다 하심을 받거나 정죄 당하지 않는다.(롬 6:14, 갈 2:16, 3:13, 4:4,5, 행 13:39, 롬 8:1) 그러나 율법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물론 그들에게도 크게 유익하다. 율법은 삶의 규칙으로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그들의 의무를 알려 주고 거기에 합당하게 행하도록 명령하고 인도하며(롬 7:12,22,25, 시 119:4-6 고전 7:19, 갈 5:14,16,18-23), 그들의 본성과 마음과 삶이 죄로 인해 부패했다는 것을 일깨워 주어(롬 7:7,  3:20, 7:24) 스스로를 살펴 죄를 더욱 깨닫게 하고, 죄를 미워하게 하며,  겸손한 태도를 취하도록 이끌고(약 1:23-25, 롬 7:9,14,24) 그리스도와 그분의 완전하신 복종의 필요성을 더욱 분명하게 의식하게 만든다.(갈 3:24, 롬  7:24,25, 8:3.4) 이와 같이 율법은 거듭난 자들에게 그들의 부패함을 억제할 수 있는 유익을 끼친다. 율법은 죄를 금지할 뿐 아니라(약 2:11, 시 1 119: 101, 104,128) 경고를 통해 그들이 비록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었더라도 죄를 지으면 어떤 징벌을 받고 또 현세에서 어떤 고난을 받게 될 것인지 알려준다.(스 9:13,14, 시 89:30-34) 또한 율법은 약속을 통해 복종하면 하나님께 인정받고 또 비록 행위 언약으로서의 율법을 통해 마땅히 주어지는 것은 아닐지라도(갈 2:16, 눅 17:10) 그런 행위로 인해 어떤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지 알려 준다.(레 26:1-14, 고후 6:16, 엡 6:2,3, 시 37:11, 마 5:5, 시 19:11) 물론 선을 장려하고  악을 제지하는 율법에 따라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하는 행위가 율법 아래 있고 은혜 아래 있지 않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롬 6:12,14, 벧전 3:8-12, 시 34:12-16, 히 12:28,29)

제7항 : 도덕법과 복음의 은혜

7항 지금까지 언급한 율법의 용도는 복음의 은혜와 상충하지 않고 오히려 잘 조화를 이룬다.(갈 3:21) 그리스도의 영이 사람의 의지를 정복하시어 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이 요구하는 바를 자유롭고 즐겁게 행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신다.(겔 36:27, 히 8:10, 렘 31:33)

해설      

이 조항은 참 신자가 행위 언약으로서의 율법으로부터 온전히 해방되었다고 진술한다. 참 신자들의 대표자요 보증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죽음에 이르는 고난을 통해 율법의 저주를 남김없이 감당하시어 율법의 정죄하는 권세로부터 그들을 온전히 자유롭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 3:13)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만일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만을 감당하시고 자기 백성을 정죄하는 권세를 지닌 언약으로서의 율법 아래 그대로 남겨 두셨다면 그들은 아담이 죄를 짓기 전에 처했던 불확실한 유예 상태와 동일한 상태에 처해 죄를 지으면 다시 율법의 저주를 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형벌로 인한 고난을 모두 감당하셨을 뿐 아니라 그 계명에 온전히 복종하심으로 자기 백성을 율법의 정죄하는 권세는 물론 그 명령으로부터 온전히 구원하셨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롬7: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롬 6:14)와 같은 말씀들은 이 자유의 온전한 본질을 명확하게 증언한다. 신자가 언약으로서의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교리는 방종을 부추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말한 대로 신자는 율법을 삶의 규칙으로 받아들여 지켜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율법은 다른 사람들은 물론 신자들에게도 여러 모로 유익하다. 바울은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딤전 1:8)고 말했다. 신자든 불신자든 율법을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적절하게만 사용하면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율법은 거듭난 자에게나 거듭나지 못한 자에게나 여러 가지 중요한 목적을 지닌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간단하게 진술하면 다음과 같다.      

  • 거듭나지 못한 자가 도덕적 율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은  다음과 같다.

많은 죄를 억제할 수 있도록 돕는다.(딤전 1:9) 스스로의 부패함과 불행을 깨닫게 해준다.(롬 3:20, 7:9)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의식하고 그분을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구주로 받아들이도록 인도한다.(갈 3:24) 계속 죄 가운데 살면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주님을 끝까지 거부할 경우 더 이상 변명할 수 없게 만든다.(롬 1:20, 2:15, 요 3:18,36)

  • 거듭난 신자가 도덕적 율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사랑하시어 율법의 모든 계명을 이루시고 그 형벌을 대신 감당하심으로 언약으로서의 율법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그분을 더욱 보배롭게 여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갈 3:13, 4:4,5)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행위를 바르게 하도록 도와준다.(미 6:8) 스스로를 성찰해 마음과 삶 속에 도사리고 있는 부패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달아 그리스도를 계속 의지하고, 점진적으로 거룩함을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이끈다.(빌 3:10-14) 스스로의 진실성을 시험해 자신이 진리에 속해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고 의무를 이행하는 데 많은 부족함이 있더라도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준다.(요일 3:19, 롬 7:22,25, 고후 1:12)(*) 출처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 로버트 쇼 저, 조계광 역, 생명의 말씀사, 2014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