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53) 그리스도인의 자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53) 그리스도인의 자유

제20장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1)
제1항 : 그리스도인의 자유
1항 그리스도께서 복음 아래 있는 신자들을 위해 값 주고 사신 자유는 죄의 책임과 하나님의 정죄하는 진노와 도덕적 율법의 저주로부터의 해방이요 (딛 2:14, 살전 1:10, 갈 3:13) 현세의 악한 세상과 사탄의 속박과 죄의 지배와(갈 1:4, 골 1:13, 행 26:18, 롬 6:14) 고통의 해악과 사망의 쏘는 것과 무덤의 승리와 영원한 정죄로부터의(롬 8:28, 시 119:71, 고전 15:54-57 롬 8:1) 구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이 자유는 노예의 두려움이 아니라 자녀로서의 사랑과 기까운 마음으로(롬 8:14,15, 요일 4:18)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가(롬 5:1,2) 복종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모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던 신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갈 3:9,14) 그러나 신약시대의 신자들이 누리는 자유는 구약시대의 교회가 복종했던 의식법에서의 해방을 통해 더욱 크게 확대되었다. (갈 4:1-3,6,7, 5:1, 행 15:10,11) 그들은 율법 아래에 있던 신자들보다 더욱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히 4:14,16, 10:19-22) 자유로우신 하나님의 영과 더욱 온전히 교통할 수 있다.(요 7:38,39, 고후 3:13,17,18)
해설
‘시민적 자유’는 말로 다할 수 없이 귀한 특권이 아닐 수 없다. 그 자유가 상실되었을 때 그것을 되찾으려고 노력할 때나 그 자유를 누릴 때 또는 그것을 안전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할 때 치러야 하는 희생은 아무리 크더라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시민적 자유’가 아무리 귀하다고 해도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에게 허락하신 자유에 비견할 수는 없다. 영혼은 육체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후자와 관련된 자유가 전자와 관련된 자유를 능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리스도께서 자유롭게 하신 자들은 진정으로 자유롭다.(요 8:36)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신약시대의 신자들이 누리는 특별한 자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대를 막론하고 신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누린다. 그들이 누리는 자유를 몇 가지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신자들은 죄책과 죄의 지배로부터 자유롭다. 죄책이란 죄를 지은 대가로 영원한 형벌을 당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주어진 죄 사함의 은혜를 통해 죄책(罪責)을 온전히 면제(免除) 받았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贖良)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그러나 죄는 죄책만을 동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죄인을 가혹하게 지배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중생(重生)을 통해 죄의 지배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그들 안에는 죄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지배력은 성화를 통해 차츰 약화되며 때가 되면 완전히 사라진다. 이런 이유로 바울 사도는 신자들에게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중략)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14,22)고 말했다.
(2) 신자들은 하나님의 정죄하는 진노로부터 자유롭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
불순종의 자녀들은 곧 진노(震怒)의 자녀들이다.(엡 2:2,3) 그러나 신자들의 경우는 그리스도의 의(義)가 전가(轉嫁) 된 덕분에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온전히 해방되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하나님이 그들에게 잠시 얼굴을 숨기실수는 있지만 그분의 법적 진노는 그들에게서 영원히 사라졌다.(사 54:9,10, 롬 5:10)
(3) 신자들은 행위 언약으로서의 율법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율법의 저주 아래 놓여 있다.
왜냐하면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갈 3:10)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의 보증인(保證人)으로서 그 저주를 친히 감당하시고 자기를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셨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 3:13)라고 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도덕적 율법을 삶의 규칙으로 삼아야 하지만 행위 언약으로서의 율법으로부터는 온전히 해방되었다. 신자들은 율법의 정죄(定罪)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 졌기 때문에 죄로 인한 저주(咀呪)를 더 이상 감당할 필요가 없다.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롬 6:14)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롬 7:6)
(4) 신자들은 현세의 악한 세상으로부터 자유롭다. 세상은 또 하나의 전횡적(專橫的)인 독재자다.
모든 사람이 세상 권세와 영향 아래 놓여 있다. 그러나 신자들은 이 매혹적이고 파괴적인 원수의 권세로부터 자유롭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이 자유를 얻어 그들에게 주신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갈 1:4) 신자들은 십자가의 강한 능력을 통해 세상에 대해 못 박혔고 세상은 그들에 대해 못 박혔다.(갈 6:14)
(5) 신자들은 사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다. 모든 인간은 본질상 사탄의 포로다.
이것이 사탄이 ‘이 세상 임금’으로 불리는 이유다. 사람들은 모두 그의 올무에 걸려 그의 먹이가 되어 사로잡힌 신세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나타나셨고(요일 3:8), ‘죽음을 통해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히 2:14) 곧 마귀를 멸하셨다. 그리스도는 복음으로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들에게 자유를 선언하시고(사 61:1), 유효소명을 통해 그들을 사탄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신다.(골 1:13) 사람들은 현세에서 여전히 마귀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지만(벧전 5:8) 그에게 더 이상 속박되지 않으며 때가 되면 그의 유혹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 그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성경은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롬 16:20)고 약속했다.
(6) 신자들은 고통의 해악에서 자유롭다. 물론 그리스도는 만민에게 공통된 어려움에서 그들을 온전히 자유롭게 해주시지는 않지만 형벌로 주어지는 고통으로부터는 온전히 자유롭게 해주신다.
그들이 마셔야 할 고통의 잔은 참으로 크고 깊지만 그 안에는 형벌로 주어지는 진노가 단 한 방울도 담겨 있지 않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유익하게 하는 고통만을 감당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통해 여로 모로 큰 유익을 얻는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종종 고난당하는 것이 더 유익이 되었다고 말하곤 한다.(시 119:71) 그들은 때로 혼란에 사로잡혀 자신의 시련이 어떤 유익을 가져다줄지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사가 협력해 자신을 유익하게 해줄 것이라고 온전히 확신한다.(롬 8:28, 히 12:6-11, 고후 4:17)
(7) 신자들은 사망의 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죽음이 영혼과 육체의 분리만을 의미한다면 신자도 죽음의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히 9:28, 시 89:48)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저주로 인한 사망과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요 11:25,26) 그분은 사망의 쏘는 것을 무력화시키셨고, 사망이 자기 백성에게 아무런 해를 입히지 못하게 만드셨다.(고전 15:56) 사망은 신자들에게 해를 입히기는커녕 말로 다할 수 없는 유익을 가져다준다. 다시 말해 신자는 죽는 순간에 모든 슬픔과 갈등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와 온전히 함께 거한다.(빌 1:21,23)
(8) 신자들은 무덤의 승리로부터 자유롭다. 신자들의 육체는 무덤에 묻혀 썩지만 무덤은 감옥이 아닌 안식처다.
그들은 몸이 부패한 상태로 그곳에 영원히 머물지 않고 마지막 날에 영광스런 불멸의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다.(욥 19:26,27)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 안에서 잠든 모든 자들의 부활을 보장하는 증거요 약속이다. 그 약속은 때가 되면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호 13:14)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전 15:54)
(9) 신자들은 영원한 정죄로부터 자유롭다. 이 세상에서 죄의 형벌을 온전히 다 당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악인들은 결국 모두 지옥에 갈 것이다.(시 9:17)
마지막 심판의 날에 그들에게 정죄가 선고되고 그들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마 25:41)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신자들은 영원한 정죄를 당하지 않고 다가오는 진노로부터 온전히 구원 받는다.(요 5:24, 살전 1:10) 하나님의 진노의 큰 날이 도래하면 그들은 악인들이 보응을 받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그런 형벌로부터 온전히 자유롭다.
(10) 신자들은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갈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애로우신 아버지로 알고 자유롭게 그분 앞에 나가 자녀로서 모든 사정과 소원을 아뢸 수 있다. “우리가 그 안에서 (중략)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엡 3:12)
(11) 신자들은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악인들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은 노예가 독재자에게 복종하는 것과 같다.
그들이 독재자를 미워하면서도 그에게 복종하는 이유는 단지 형벌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들은 노예의 두려움에 온전히 벗어나 기꺼운 마음과 넘치는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긴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 눅 1:74,75, 고후 5:14, 요일 4:18 참조)
앞서 말한 자유는 신약시대 신자들은 물론 율법시대 신자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신자들이 누리는 자유는 여러 가지 면에서 더욱 확대되었다. 이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신약시대 그리스도인은 의식법의 멍에로부터 자유롭다.
구약시대의 교회는 ‘세상의 초등학문’(갈 4:3)에 매여 있었지만, 신약 시대의 교회는 더 이상 그런 성가신 멍에를 짊어지지 않는다.(행 15:10) 고대의 의식법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폐지되었다. 그것은 복음이 온전히 선포되고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까지 잠시 명맥을 유지하다가 그런 율법을 지키는 것이 불법으로 간주되는 순간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중략)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고 말했다.
- 신약시대 그리스도인은 더욱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간다.
바울은 자유롭고 자신 있고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을 구약시대의 신자들은 누리지 못한 신약시대의 신자들만의 특권으로 종종 언급했다.(히 4:l6, 10:19, 요일 3:21, 4:17, 5:14)
- 신약시대 그리스도인은 구약 시대의 신자들보다 자유로우신 하나님의 영과 더욱 온전하게 교통한다.
성령은 구약시대 교회에도 임하셨지만 신약시대에는 더욱 온전하고 충만하게 임하신다. 예수님이 영광을 얻으시기 전에 성령이 아직 임하시지 않았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요 7:39) 구약은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신약시대 특권으로 종종 예언했다.(사 44:3, 욜 2:28,29) 그리스도께서 승천 후 신약시대가 열리는 순간 성령의 놀라운 은사들이 사도들은 물론 일반신자들에게까지 임했다. 성령의 일반적 은사들과 은혜로운 영향력도 구약시대에 비해 현저하게 증가했다. 바울은 ‘영의 직분’(고후 3:8)을 신약시대의 영광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지금 논하고 있는 ‘영광스런 자유’는 참으로 놀랍기 그지없다. ‘시민적 자유’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영광스런 자유는 그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르고 얻어진 자유다. 신자들이 그분께 진 빛은 너무나도 크다. 신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대속의 제물로 내주신 주님의 관대하심을 기억하고 그분께 넘치는 감사를 돌려야 마땅하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가장 수치스러운 노예 상태에서 해방하셨고 전횡을 일삼던 잔인한 주인으로부터 건져 내셨다. 그러니 이제 그분의 쉽고 가벼운 멍에와 짐을 짊어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참 신자라면 누구나 그것을 당연한 의무요 무한한 특권으로 여겨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종이 되어 자유롭게 그분을 섬길 것이 분명하다.(*) 출처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 로버트 쇼 저, 조계광 역, 생명의 말씀사, 2014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