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들에게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무신론자, 불가지론자들은 증거를 제시해도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 한다. 증거가 없어서 불신하는 것이 아니다.” 영국의 기독교 변증학자(辨證學者)이며 스코틀랜드의 목회자인 데이빗 로벗슨(David Robertson) 목사의 말이다. 그는 최근 영국 크리스천투데이에 기고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명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What to say when someone asks for proof of God’s existence)라는 글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며 “증거를 제시하면 정말 믿겠느냐?”고했다. 다음은 칼럼 전문이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명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존재(存在)한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 이 말은 매우 합리적인 것처럼 들린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신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그렇게 어려워야 되느냐고도 한다.

Rev. David Robertson
Rev. David Robertson

반(反) 신론자(anti-theism, 무신론자)라 불리는 강경한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의 무신론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왜냐면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다 온건한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충분한 증거만 있다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신론자들은 불가지론자들이다. 하나님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한다.
어찌 보면 이렇게 모른다고 하는 것이 합리 적이고 겸손해 보인다. 이들은 충분한 증거와 정보가 없어 하나님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도 하나님이 존재 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당신들도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만일 우리에게 충분한 증거와 정보를 준다면 우리도 하나님을 믿을 것이다.”

이런 입장은 영국의 철학자였던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잘 말해주고 있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에 만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왜 나를 믿지 않았느냐?”라고 묻는다면 “충분한 증거를 제공해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생각은 신(神)에 대한 무관심과 냉담함 때문이다. 신(神)이 없다는 사람들은 밤에 침대에 누워 삶의 의미를 깊이 생각지도 않으며 실존적 불안에 대한 고통도 없다. 그들은 스포츠 경기의 승패나 페이먼트 그리고 병원에 갈 일을 더 염려한다. 이처럼 그들 일상생활에는 신(神)에 대한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영화 ‘제리 맥과이어’(Jerry Maguire)에서 구딩 주니어(Cuba Gooding Jr.)가 톰 쿠르즈(Tom Cruise)에게 “내게 돈을 좀 보여 줘!”(show me the money)라고 말한 것처럼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좀 보여 달라(show me the evidence)는 말이 겉보기에는 악의가 없는 말처럼 들린다.

오늘도 나는 어느 지역신문에서 한 무신론자의 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오직 증거에 기초한 사실만을 가르쳐야 한다. 기독교는 증거에 기초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가르치면 안 된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먼저 그들의 오만과 편견에 대해 생각해보자.

1. 오만(傲慢, 건방지고 교만함, arrogance)

실제로 겸손하고 합리적인 요구처럼 보이는 이 주장의 밑바닥에는 엄청난 교만이 숨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 자신이 신(神)의 존재 여부(與否)를 판단할 위치에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들은 자신들이 객관성과 지성(知性)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들은 사실상 자신들을 재판관 위의 재판관의 위치에 올려놓고 있다. 그리고는 하나님도 하나님이 행하신 일도 믿을 수 없다고 판결(判決)한다.

이제 내가 이런 무신론자들에게 첫 번째로 질문하고 싶은 것은 “왜 어떤 근거로 당신들은 당신들이 신(神)의 존재(存在)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느냐?”는 것이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겸손이 무릎을 꿇을 때에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실체를 십자가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최후의 심판 날에 러셀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나는 증거가 부족해서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핑계치 못할 이유이다. 그는 결국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이 눈먼 자였다는 것에 대해 놀라고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2. 편견(偏見, prejudice)

계속 하나님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증거가 없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음모를 꾸미는 자들과 논쟁하는 것과 같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고려할 가치가 없다.”며 묵살한다. 왜냐하면 종교는 무지(無知)한 자들을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특정 문제에 대한 질문에 답하거나 증거를 제시하면 질문한 사람이 다른 것으로 화제를 돌림으로 질문했던 문제에 대해 회피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러므로 이런 쓸데없는 논쟁으로 인한 시간 낭비를 피하기 위해 증거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증거를 제시하면 정말 하나님을 믿을 것이라는 증거가 무엇인지를 먼저 물어보라.

리차드 도킨스 같은 무신론자들은 그들 머릿속에 하나님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거대한 손이 하늘에 ‘나는 존재한다’라고 쓴다면 그들은 이것을 쓴 신(神)의 존재를 인정하기보다는 어떻게 글이 써졌는지 그것을 설명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들은 전능한 인격적인 창조주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빅뱅이 증명되었을 때 성경이 말하고 있는 대로 우주가 실제로 시작점이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 무신론자들은 그들이 처음에 거부했던 것을 받 아들여야 하는 이 상황이 말해 주 는 명백한 의미에 대해 회피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증명 되 지 않은 다중 우주론으로 재빨리 도망쳤다. 다중 우주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외에 또 다른 우주가
기독교를 조롱하는 무신론단체 포스터(2)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그들의 철학을 나는 ‘애브기즘’(ABGism, Anything But God, 하나님 외에 무엇이든지)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증거가 없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증거가 없어야 한다’는 자신들의 욕망에 감정적으로 이끌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전에는 보지 못하는 자였지만 이제는 본다. 그러나 현실에서 상황은 더 심각하다. 당신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요청할 때 그것은 앞을 보지 못하는 자에게 모나리자의 복잡함과 섬세함에 대해 감탄하며 칭찬하라는 것과 같다. 그것은 죽은 돌에게 말을 걸고 춤을 추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또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에게 살아 움직이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복음 전도자들, 설교자들, 기독교인들을 절망에 빠뜨리기에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성경말씀을 아는 자들에게는 예외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성령께서 이 말씀을 통해 눈먼 자를 보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아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성령의 권능으로 생명은 다이나마이트처럼 역사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물론 아니다. 성령께서는 때로는 어떤 도구와 수단도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생각을 통해 우리 마음에 말씀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인내하면서 무신론자들에게 모든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면서 성령께서 우리가 제시하는 증거를 사용하셔서 이 증거에 대해 듣는 자들의 마음에 역사하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이들이 사도 바울처럼 다메섹의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니다. 불가능의 산(Mount Improbable)을 한 순간에 뛰어넘는 한 번의 거대한 도약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성령께서 여러 요인들을 사용하신다. 증거나 경험, 성경, 우연의 일치, 친구, 가족, 반대자들까지도 사용하신다.

나는 사람들에게 유명한 TV 드라마 ‘엑스 파일’(The X-Files)의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the truth is out there)라는 모토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성적인 불가지론자들은 그 진리를 찾는 자들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그 진리를 찾는 자들이 아니라 진리를 제시하려는 자들이다.

‘도킨스에게 보내는 편지’(The Dawkins Letters)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기독교가 진리라고 믿는 10가지 이유들을 제시했다. 천지창조, 인간의 마인드와 영(the human mind and spirit), 도덕법(the moral law), 미(beauty), 종교(religion), 경험(experience), 역사(history), 교회(the church), 성경(the Bible)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이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리스트들을 만들 수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지적으로 그리고 통찰력 있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를 제시하는 중요한 많은 책들이 있다. 내가 추천하는 책은 조시 맥도웰(Josh McDowell)의 ‘평결을 요구하는 새로운 증거’(New Evidence that Demands a Verdict)라는 책이다. 길지만 중요하고 가치 있는 정보들이 많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도와 사랑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 하는 자들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여 눈먼 자 귀먹은 자 그리고 벙어리 된 자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 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증거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없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그 증거가 될 것이다.(*) 글쓴 이 / David Robertson, 번역 / 미주 재경일보 노승현 편집국장, 출처 / 기독일보 Jan 23, 2016, 편집 / 월간 개혁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