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52) 혼인의 비밀과 정당성

제 41 주일(문 108,109)
요절 :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라.(고전 6:19,20)
문 108 : 제7계명은 무엇을 가르칩니까?
답 : 모든 불륜(不倫) 행동은 하나님께서 정죄하시기에 반드시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미워해야 하며 거룩한 혼인관계에 있든 지 독신으로 있든 지 순결하고 단정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문 109 : 이 계명에서 하나님께서 간음 또 그와 같은 부끄러운 죄 만을 금하십니까?
답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과 영혼은 성령의 전이므로 우리가 몸과 영혼을 순결하고 거룩하게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부정한 행동이나 몸짓 그리고 말이나 생각이나 욕망 또한 그리로 유혹하는 모든 것을 금하십니다.
해설
얼마 전 한국에서 대법원이 간통죄는 더 이상 죄가 될 수 없기에 이를 문제 삼지 않겠다고 판결했다. 이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현대를 특징짓는 세 가지 표현이 있다. 그것은 ‘3S’ 인데 속도(Speed), 영화(Screen), 성(Sex)이다. 이 ‘3S’는 공통적으로 ‘성적취향’(性的趣向, Sexuality)을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각 분야의 예술인들은 불륜을 주제로 한 작품을 통해 돈벌이를 하며 현대인들에게 알게 모르게 성적타락을 조장하고 있다. 타락된 성(性) 문화의 현상이 온 사회를 지배하며 음풍(淫風)이 온 세상을 휩싸고 있는 형국이다.
어느 인류학자는 이런 시대적 풍조는 바로 로마제국이 멸망하기 직전의 사회적 현상이라고 진단하며 경고하기도 했다. 로마에 가면 폼페이 시(市)가 화산에 의하여 멸망당한 유적지를 관광하게 된다. 발굴 된 유적들을 종합 판단해 볼 때 당시 사회의 타락상이 현대의 타락한 성(性) 문화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ironical)하게도 그 폼페이 시(市) 매춘의 타락된 거리 깊숙한 구석에 십자가가 달린 아주 보잘 것 없는 건물 하나가 있다. 타락한 자들을 선도(善導) 하기 위해 그 교회가 존재했었는지 아니면 그들의 죄를 사(赦) 해 주는 사역을 위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지만 그러나 당시 사회상에서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은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을 범하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면 ‘간음’(姦淫)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율법은 이렇게 말한다.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그 통간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통간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 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읍 중에 있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신 22:22-24)
이처럼 율법은 간음죄를 강력히 금하고 있다. 이 계명에서 보듯이 간음이란 결혼을 했든지 안 했든지 상관없이 한 외간 남자가 결혼한 여인을 상대로 성적 행위를 저지른 경우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런 간음 행위는 이웃의 결혼을 파괴하는 죄악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인간의 삶에 가장 기초가 되는 가정의 성결과 사회의 기본적인 질서를 위한 올바른 인간관계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지침으로 이렇게 강력하게 ‘간음을 금지’하셨다. “너희의 전에 있던 그 땅 거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 있기 전 거민을 토함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무릇 이 가증한 일을 하나라도 행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레 18:27-29)
이는 가정과 사회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온 사회가 음풍에 휩싸여 무질서하게 되어갈 때 그 사회와 국가는 망할 수밖에 없음을 역사가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랬고 로마가 그랬다. 이런 현상을 타산지적으로 삼아 성적으로 타락한 가정과 사회 그리고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1. 간음의 경우를 규정하는 예들
어떤 경우에 간음죄가 성립되는가? 두 가지 경우이다.
(1) 소유권에 대한 범죄
남자가 기혼(旣婚)이든 미혼(未婚)이든 관계없이 여인의 신분의 소속과 그 당시 행동거지가 어떠했었느냐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다. 그 일례를 우리는 창세기 38장의 족장 유다와 며느리 다말과의 관계 기사에서 볼 수 있다.
유다에게는 엘, 오난, 셀라라는 세 아들이 있었다. 유다가 장자 엘을 결혼시켰는데 그 며느리가 다말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한 엘이 어느 날 후손도 없이 갑자기 죽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신 것이다. 유다는 당시 유대인들의 관례에 따라 둘째 아들 오난을 형수에게 주어 장자 엘의 대를 잇게 했다. 그런데 둘째도 죽고 말았다. 그러자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친정에 가서 수절하고 있을 것을 명했다. 그리고 막내아들 셀라가 대를 잇도록 성장하기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그런데 셋째 아들 셀라가 성장했음에도 유다는 약속을 어기고 며느리 다말을 부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유다의 아내 수아가 죽었고 유다는 자기 목장이 있는 곳으로 양털을 깎으러 갔다. 이 소문을 들을 며느리 다말은 창녀처럼 꾸미고 우물가에서 시아버지를 유혹했다. 유다는 이때 며느리인줄 모르고 관계를 맺은 후 후일 대가를 주겠다는 약조 물로 도장, 끈, 지팡이를 다말에게 주었다. 며칠 후 유다는 친구를 통해 창녀를 찾았지만 거기에 창녀는 없었다.
그 후 유다는 며느리 다말이 임신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러자 유다는 그렇지 않아도 두통거리인 며느리 다말을 율법에 따라 죽이려고 했다. 그 때 성경은 다말의 죄를 심문하면서 그녀의 간음행위를 문제 삼았다. 그러나 유다에게는 간음행위로 그녀를 문제 삼지 않았다. 그 이유는 창녀 즉 소속이 없는 여인을 상대로 관계를 맺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다말의 불륜 행위는 그 자체보다 다말의 사회적 신분에 관한 문제로 보고 있다는 증거라 하겠다. 즉 그 당시 여인은 남편의 소유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제10계명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출 20:17)
이런 상황에 대한 말씀은 잠언에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 그 남편이 투기함으로 분노하여 원수를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고 아무 벌금도 돌아보지 아니하며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듣지 아니하리라.”(잠 6:32-35) 즉 여인의 간음의 문제는 그녀가 소속되어있는 남편에게 달려있음을 알 수 있다.
(2) 공동체의 순결
이것이 언약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하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합법적인 결혼에 의한 부부관계 이외의 어떠한 성적 행위도 금지하셨다. 즉 이웃 아내와의 관계, 근친상간 즉 친자매(Sister), 의붓 자매(Stepsister), 손주, 딸, 아버지의 아내(첩)와의 관계, 동성관계(Homosexuality) 나아가 동물과의 관계(獸姦)까지 철저하게 금지하셨다.(참고, 레 18:6-18,20,22,23)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철저하게 응징하게 하셨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루는 공동체의 순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대한 강력한 경고와 징계의 말씀도 발견된다. 만약 여인이 불의의 사건을 만나 강간과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여인의 반응이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행위가 없었다면 그 여인 역시 같은 범주의 타락된 성적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간주되어 동일한 처벌을 하도록 명령하셨다. 이 역시 다 백성 중의 악을 제거하시려는 하나님의 강력한 명령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자기 백성의 거룩성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에서 하신 명령이었다.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그 통간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통간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 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읍 중에 있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 할지니라.”(신 22:22-24)
2. 결혼에 대한 성경적 정의
결혼(結婚)이란 하나님과 증인들 앞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맺은 언약으로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이는 강력한 접착제(接着劑)와 같은 성격을 갖고 있는 일종의 계약이다. 그런데 이를 파괴하는 행위가 음행이다. 즉 이 음행은 바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결혼의 언약제도를 파기하는 타라가한 악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창 2:24)라고 결혼의 의미를 확실하게 규정해 주셨다.
그래서 잠언에서는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그는 소시의 짝을 버리며 그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잠 2:16,17)라고 어리석은 간음과 음행을 지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결혼제도에서 보이는 부부간의 언약 관계성은 부부간에 맺어지는 것은 물론이요 이러한 부부의 모티브는 주님과 교회 간에 맺는 특별한 의미로 확대 적용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즉 지상에서의 남녀 간의 결혼의 개념은 교회의 신랑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주님과 맺게 되는 언약관계로 설명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이를 다음과 같이 그 신비한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5-27) 즉 결혼의 비밀스러움과 신성함은 바로 주님과 교회와의 신비한 관계성으로 설명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결혼은 곧 구속의 신비함 속에서만 제대로 설명되는 것이기에 단순히 감정적이고 사회적인 그 어떤 요건에 치중하여 맺는 요즘의 추세와는 완연한 차이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드시 성도는 이러한 결혼이 내포하고 있는 바 구원의 영적 신비스러움이 있음을 인식하고 신중한 결혼에 임해야 할 줄 믿는다.
오늘날 이혼율이 가파르게 급증하는 추세에 있어 간음과 간통은 더 이상 사회적으로 큰 문제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철저하게 성적 타락의 현상인 간음을 금하고 있다.
3. 성적 타락을 대처하는 방법
오늘날처럼 성적 유혹과 시험이 많은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성적 타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1) 소극적 대처 방법
첫째, 음란을 마음으로부터 미워하라.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유혹에 쉽게 흔들려 넘어가기 쉽다. 그러나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은 그 마음으로부터 이러한 음란한 것에 대하여 싫어할 수가 있다. 즉 성령의 전으로서의 구별된 의식과 생각으로 죄의 유혹을 미워하고 싫어하도록 힘써야 한다.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유 1:23)
둘째, 순결과 규모 있는 삶을 살아라.
앞에서 언급했지만 부부관계는 그 의미하는 바가 주님과 교회와의 관계임을 인식하여 부부간의 순결과 절제 그리고 규모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란한 행위는 죄에 쉽게 적응하고 거부감 없이 빠지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 13:4)
(2) 적극적인 대처 방법
오늘날 특히 IT 시대에 젊은이들이 겪게 되는 성적 유혹과 타락의 기회는 말할 수 없을 만큼 흔한 일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풍조 가운데서 순결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적극적으로 성적 유혹과 시험에 빠지지 않고 순결과 거룩을 유지할 수 있는가?
첫째, 모든 불륜을 자극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멀리하라.
현대인들이 접촉할 수 있는 전달매체인 신문, 영화, 소설, 연극 등에서 성을 주제로 하지 않는 것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현대문화는 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널려있는 것이 성적 유혹물들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일 것이다. 이 매개체를 통해 성적 타락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그러기에 적극적으로 이런 매체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스스로 그러한 것들과의 접촉기회를 차단하는 데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요셉과 다윗을 예로 들어보자. 요셉은 스스로 세상 적으로 쉽게 성공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단호하게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바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고 감옥에 갇히는 고난의 길을 택했다.(참고 창 39장) 그러나 그 길이 비록 고난의 길이기는 했으나 단련 받아 가장 신속하게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쓰임 받는 요셉이 되었던 것이다.(참고, 시편 105:17-19, 창 50:20)
그러나 다윗은 스스로 밧세바를 통한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음행의 죄를 범함으로 그는 그의 죄를 결코 숨길 수 없었고 그에 대한 철저한 죄 값을 치러야 했다.(참고 삼하 11장 이하)
사도 바울은 이런 성적 타락과 유혹으로부터 어떻게 순결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행동할 것인가를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엡 5:3-5)
우리 주님은 간음과 음란 행위의 결과를 말씀하지 않고 동기를 지적하며 그 죄 성의 심각성을 부각시켜 경고하셨다.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7,28) 즉 주님은 어떤 행동에 대한 동기를 중요하게 여기셨는데 이는 마음으로부터 음행을 철저하게 미워하고 거부하고 경계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둘째, 부부간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
부부간의 간음과 음란의 문제는 합당한 부부간의 관계를 제대로 맺으며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생활비가 많이 들어 맞벌이 부부가 되다 보니 옛날과 달리 훨씬 쉽게 많은 남녀가 접촉하는 사회생활이 되었고 따라서 유혹과 시험에 빠질 가능성이 그 어느 시대보다도 높다. 그러므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부부간에 화목하고 끈임 없이 서로 깊은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문제를 다루면서 다음과 같이 권면했다.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 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7:2-5)
셋째, 자기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명심하라.
우리가 간음과 음란과 성적 타락을 이길 중요한 성경지침으로 우리는 다음의 말씀을 생각할 수 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5-20)
우리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인 나의 몸의 순결을 지키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간음, 음란, 성적타락의 길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성령의 역사에 내어 맡겨 항상 거룩한
주님의 전으로서의 몸과 마음을 유지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특별히 오늘날 인터넷과 같은 매체와 발달한 과학기술로 인한 은밀한 성적 범죄가 유행하고 있는 이때 이러한 거룩한 자의식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며 이러한 근본적인 성도로서의 의식 그리고 주님의 전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의식으로만 이길 수 있다고 본다.
결론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도 성적 자극을 유도하는 매체들이 다양하게 있어서 어느 곳에 눈을 고정 시키고 살아가야 할 지 모를 시대를 맞고 있다. 너무나도 현란하고 자극적이며 혼란스러운 가치관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경건한 삶이란 하나의 종교적 구호에 그치는 듯한 느낌이다.
어른들은 물론이고 나아가 청소년들까지도 특별하게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교회에서도 순결교육과 가정의 성교육에 깊은 관심으로 가지고 성도 모두가 순결한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성경은 간음과 음행의 악함을 강력하게 지적하시며 경고하고 있다. 레위기에서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레 11:45)라고 하시고, 히브리서에서는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 13:4)라고 경고하셨다.
이 음풍(淫風)으로 뒤덮인 악하고 패역한 시대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그의 거룩한 영을 모시고 살아가는 거룩한 성령의 전임을 깊이 인식하고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자신과 가정의 순결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임을 명심하고 개인은 물론이요 온 교회가 힘써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글쓴 이 / 박병은 목사(덴버 둘로스장로교회 담임)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