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선교의 미래를 조망한다
PART Ⅲ
21세기 선교의 과제들
시작하는 말
세계복음주의연맹(World Evangelical Alliance, WEA, 1846) 선교위원회는 1999년 10월 브라질의 이과수(Iguazu)에서 선교학(宣敎學, Missiology)에 대한 범세계 평가회의를 가졌다. 마지막 시간에 “21세기는 선교학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에 대한 토의가 있었다. 그 당시 토의 내용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선교학은 완전히 새 판을 짜야 할 정도를 선교에 있어 현재와 다른 ‘불연속적인 요소’가 많을 것이라는 견해였다. 또 하나는 과거의 것들이 다 무용지물이 되지 않고 계속 유효하되 상황에 따라서 수정되어야 할 것이라는 소위 선교학의 ‘연속적인 성격’을 찬성하는 의견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서 많은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나 우리는 21세기 선교학이 불연속적인 면도 많지만 연속적인 것들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분명한 것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선교학 분야에 있어 실로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경험 할 것이라는 점이다.
필자는 이 같은 전제를 가지고 21세기 선교의 현실과 이슈들을 이야기할 것이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서서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선교계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되 그 발전과정에 관해서도 언급할 것이다. 먼저는 몇 가지 중요한 거시적인 추세를 다루고 그 다음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선교적 현실과 문제점들을 다루겠다. 가급적이면 변천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 진전사항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통해 21세기에 들어선 우리가 선교에 있어 어떤 점들을 보완하며, 어떤 점들을 축소하며, 어떤 점들을 포기할 것이고 또 어떤 것들을 계속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토의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Ⅰ. 21세기 세계선교의 거시적 인식과 현실
과거 25년간 세계선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거나 끼치고 있는 상황과 이슈들로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은 21세기 들어서 처음 나타났다고 하기보다는 이미 과거에 있었던 것들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좀 더 가시화 된 것들일 것이다.
1. 일반적 현실
(1) 세계화 현상
세계화 추세에 대해서 세계선교 공동체가 한자리에서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은 1989년 마닐라에서 열린 제2차 로잔선교대회 때였을 것이다. 그 후 선교계가 이를 피부로 느끼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흘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 영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변상황이 인터넷의 보편화와 시장경제의 세계화를 통해 많은 변화를 경험했고 이런 현상으로 인해 보다 세계가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5년과 1997년 두 차례에 걸쳐서 AD2000년 운동이 주체한 세계복음화대회(GCOWE)도 한 몫을 했다고 본다.
21세기는 교회가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적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2세계, 3세계 선교운동의 활성화됨으로써 선교도 더 이상 서구교회 고유의 산물만이 아니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이는 2세계. 3세계교회를 포함한 세계교회의 것이라는 인식이 그 자리를 굳힌 것도 한 몫을 하였다. 21세기 들어서면서 IT산업의 급격한 발달과 현대화로 인해 세계화 현상은 더욱더 가속도가 붙었다. 세계화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추세인 반면에 선교와는 끊을 수 없는 불안정한 동반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처럼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화가 선교에 미친 영향은 날이 갈수록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서는 두 가지만 언급하겠다.
첫째, 1970-1990년대까지 선교학계에서 강조되고 있던 상황화에 대한 영향이다.
한때 상황화는 절대적인 선교학적 개념으로 받아드리는 경향이 있었다. 데이빗 보쉬(David Bosch) 같은 분은 상황화를 하나의 선교 패러다임으로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세계화에 대한 인식이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더 구체화됨에 따라서 지역성만을 강조하기 쉬운 상황화에 대하여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비록 지역성은 계속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동시에 세계성과의 균형 속에서 상황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시각이 생기기 시작했다. 상황화를 통해 강조되는 지역적인 것과 세계성 내지는 보편성 사이에는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상황화와 세계화 이 둘은 서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긴장 관계 속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이 둘 사이에는 계속 활발한 상호 교화작용이 일어나는 것이 세계화가 가져다 준 현상 중에 하나이다. 이로써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서 나타난 세계교회 및 세계선교 공동체와 지역교회 및 지역선교 운동권 사이에는 활발한 정보교환을 비롯한 전반적인 교류가 일어나게 되었다. WEA선교위원회나 로잔운동이 간간히 개최한 선교대회는 이를 위해 좋은 장이 되었다.
둘째, 세계화는 선교전략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제는 더 이상 지역성만을 강조하는 선교전략은 설자리가 없어져 간다. 복음전파도 이런 추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지역문화를 포함한 지역성을 중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동시에 범세계 교회가 존재하는 21세기 세계화 상황에서는 선교구조의 세계화, 범세계 교회의 선교전략화 등 거시적인 시각을 가지고 선교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도달했다. 서구선교도 비서구선교도 서로를 의식하지 않는 선교전략은 더 이상 세계화된 선교현실에 적합하다고 볼 수가 없다.
(2) 타종교의 선교에 대한 도전과 기회
타종교 특히 이슬람과 힌두교와 불교는 과거 반세기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한때 삼대 세계 종교로 이 셋은 뚜렷한 지역성을 가지고 있었다. 힌두교는 인도와 스리랑카 등을 중심으로 이슬람은 인도네시아와 중동아시아 및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활동을 해 왔다. 불교도 일부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삼았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후 엄청만 변화를 겪었다. 21세기에 들어서 미국의 9.11사태와 테러와의 전쟁 등으로 그 변화 속도가 주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 타종교들이 모두 명실상부 지역적으로 세계화되었다.
이에 구소련의 해체도 한몫했다. 중앙 아시아권에 속한 민족들이 속속 독립하면서 빠른 속도로 이슬람권이 강화되었다. 그 밖에도 이민과 난민과 취업 등은 이들 종교권의 디아스포라를 창출했고 이들은 종교분포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이들 종교들은 더 이상 지역적인 종교가 아니다. 이들도 세계화가 되었다. 바로 이런 점이 이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유리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선교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는 한편 기회도 되지만 위협도 되고 있다.
그 외에도 이슬람권의 경우 이들이 석유달러를 이용하여 해외에 파송한 이슬람 선교사(2005년 중반 통계는 141,630명임, IBMR 2005년 1월판)의 경우 거의 기독교 세계선교사의 수를 훨씬 능가하는 수이다. 이들은 전략적으로도 삼자원칙 같은 것은 지키지 않는다. 우선 돈을 쏟아 부어 무슬림 모스크를 먼저 짓기가 일수다. 이들은 또 진정한 회심에 대해서도 상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무조건 이들은 이슬람 국가에 속하여 이슬람 문화권에 살면 모슬렘으로 관주하는 경우가 많다.
(3) 포스트모더니즘과 다원주의의 출현
현대화가 되면 될수록 종교는 필요 없게 될 것이라는 통념을 깨고 세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종교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문제는 세계화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인식을 한 것까지는 좋으나 한걸음 더 나아가서 종교적으로도 더욱 더 다원주의(多元主義)가 되었다는데 있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도 이런 다원주의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확산 시키는데 일익을 했다. 반면에 사람들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깊은 영적 갈증을 느끼게 되었다. 갈수록 사람들은 이런 영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기독교 이외에도 여러 타종교를 찾게 되었다.
따라서 21세기에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강력한 기독교 선교의 라이벌들이 존재한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만 있다면 어떤 종교든지 상관없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무엇을 믿던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의식의 변화이다. 진리는 하나가 아니라 진리는 여러 개라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또한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인은 초월적인 윤리와 진리를 추구하는 면은 약화 된 반면 종교성은 더욱 더 강해지고 있다. 21세기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4) 난민을 포함한 디아스포라 현상
이것이 21세기에 국한된 현상만은 아니지만 특히 요즘 한층 더 느끼게 되는 것이 있다. 디아스포라(diaspora, 자기 모국을 떠난 유랑민)가 곧 그것이다. 디아스포라 발생 요인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두 가지만 생각해 보겠다. 하나는 정치, 경제적인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적인 이유이다. 최근 이 같은 이유로 민족이 집단으로 이주하는 현상이 더욱더 잦아지고 있다. 아프간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으로 기독교인 다수가 이라크를 떠나 주변 나라에 디아스포라가 된 것이 최근의 예이다. 이런 현상들은 세계의 종교적인 상황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이슬람권도 디아스포라가 그 상황을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처럼 21세기에 들어와서 디아스포라는 기독교 선교는 물론이고 타종교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에 첫째는 이들이 거주하고 있는 해외가 선교 기지화와 동역의 장이 될 수 있다. 둘째는 이들이 선교 인력자원이 될 수 있다. 이들이 있는 곳에서 전략적인 선교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이민의 경우 세계에 흩어져 있는 700여만 명의 디아스포라가 앞으로 세계선교를 위한 좋은 자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중앙아시아를 복음화 하는데 고려인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원리는 타종교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힌두교 이슬람교의 디아스포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중국화교들과 피난민들은 21세기에 기독교 선교의 기회도 되고 도전도 되고 있다. 이들이 가는 곳에는 이들의 문화와 더불어 종교도 함께 따라간다. 반면에 이들은 복음화 되기가 자신들의 고향에서 보다는 용이할 것이다. 21세기에는 이런 현실을 잘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5) 테러와 대형 자연재해와 새로운 전염병의 위험
과거에도 테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특히 21세기 들어서면서 테러는 범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서구 특히 미국은 최소한 이슬람 지역에서 그 운신의 폭이 그만큼 줄어들었다. 그러나 한국과 일부 2/3세계 선교사들이게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대형 재해들도 선교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기독교의 경우 이런 재해는 선교의 장해도 되고 때에 따라서는 기회도 될 수 있다. 최근에 있었던 동서남아 지역의 쓰나미가 그 좋은 예이다. 선교사들에게는 선교지가 보다 위험해지고 있는가하면 또 다른 한편 평상시에는 침투하기 힘들던 곳 까지 구제나 개발 목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아직 이라크는 열리지 않았으나 새로운 질서가 마련될 경우 선교의 기회가 올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아프가니스탄은 기독교 선교를 위해서는 좋은 쪽으로 기울어졌다고 보아야 하겠다.
최근 발생하는 조류독감 등 새로운 종류의 전염병은 선교사들에게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런 대형 자연재해가 더 빈번히 일어나는 것이 주님 재림의 징조라면 우리에게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장기적인 계획과 발전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전략적으로도 장단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전략을 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6)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에이즈(HID/AIDS)문제
세계화는 일부 특정국가나 지역에 경제적 여건이나 생활환경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세계화는 강대국과 부유한 국가들의 주도하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강대국은 더욱 더 부유해지고 약소국은 더욱 더 가난해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경제적 빈곤문제와 동반해서 나타나는 에이즈 같은 질병문제는 범세계적인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이렇게 세계는 더 나아지기보다는 갈수록 더 나빠지고 있다.
이에 따라서 선교 현장도 급변하고 있다. 다가올 세계적인 기후 변화로 말미암아 식량고갈까지 온다면 세계는 엄청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선교는 이런 중에서도 계속되어야 되겠지만 이런 시대 속에서 과연 선교가 어떻게 지속 될 것인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주님이 허락하시는 때까지 쉬지 말고 선교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역경 속에서의 선교를 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2. 21세기 한국교회의 현실
지금까지 거시적인 관점에서 현실이 선교에 영향을 주는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 선별적으로 언급했다. 이제 아주 간단하게 보다 직접적으로 선교에 영향을 주는 환경에 대해 언급을 하겠다. 선교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소는 아마도 다음 두 가지가 될 것이다.
하나는 선교 지원체제의 견실성(堅實性)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한국교회와 연관성이 있다. 또 하나는 선교의 역동성(逆動性)을 얼마나 유지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선교인력의 수급과 관계가 있다. 이 두 가지는 가깝게는 한국내의 복잡한 정치, 경제, 사회적 현실과 연관성이 있다. 멀게는 세계적인 상황과도 연관성이 있다. 여기서는 지면관계상 위에서 지적한 두 가지에 대해서만 언급을 하겠다.
(1) 선교지원 체제의 견실성
선교는 예술로 치면 종합 예술과 같다. 한 가지만 잘 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선교사를 다수 파송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다 맞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가령 남미대륙이나 아프리카대륙을 놓고 볼 때 이 지역에 인력이 모자라거나 교회가 부족한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아프리카의 경우 지역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전통적으로 서구선교사들이 선교를 해 온 지역은 교회도 많고 교인들도 많다. 하지만 국제여행을 하는 선교사들을 지원할 정도의 재정적인 능력이 부족하다. 또 세계무대에 나아가서 활동할 수 있는 인력도 부족하다. 경제력과 학력과 전문성이 타 대륙 특히 현대화된 아시아에서 활동하기에는 일부 엘리트 계층을 빼놓고서는 부족하다. 따라서 아프리카대륙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사정은 좀 다르지만 남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남미대륙 전체의 타문화권 선교사 수가 우리나라의 선교사 수에 턱도 미치지 못하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약 7,000여명의 우리나라 남미 선교사 대부분이 남미대륙 특정지역 내에서 밀집 사역을 하는 것도 이들이 기동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동력이 생기기 위해서는 거의 서구선교사에 맞먹는 규모의 재정과 인프라가 필요하다.
한국선교의 현실을 보면 과거 25년간은 아주 빠르게 파송 선교사의 수적 상승곡선을 그렸다. 그런데는 아마도 한국교회가 그 만큼 수적 성장세를 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21세기 한국선교 현실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는 거시적인 상황도 아니고 한국 교회의 견실성(堅實性)이 될 것이다. 다른 여러 가지는 한국이 처해 있는 지형학적 정치, 외교적 상황 때문에 어느 정도는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한국교회가 부실해진다면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곧바로 재정부족과 국내외 선교의 인프라 구축에 대한 영향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아직 이런 분야에 있어서는 시작한 단계인데 그대로 머물 가능성이 크다.
이와는 반대로 일반적인 한국 상황은 1970년대나 1980연대에 선교현장에서 일 해 본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고 현재 배출되는 선교 인력들은 고생을 해 본 인력이 아니다. 앞으로 더욱 더 그런 인력들이 나오게 될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여건이 합쳐졌을 때에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상승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2) 한국교회의 선교운동의 역동성
한국 선교운동사를 훑어볼 때 한국교회가 최초의 해외 선교사를 파송한 것은 1900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전에는 하와이, 일본, 멕시코, 미국 등지로 이민을 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한국선교의 선구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선교사들을 다수 파송하기 시작한 시기를 1970년 말 이후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때를 기점으로 한국교회 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 된 것으로 본다면 그 정점은 약 25년 후인 21세기 초에 도달했다고 여겨진다.
이런 역동적인 선교운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여건들이 맞아야 한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앞서 말한 대로 교회의 견실성이다. 한국교회는 지난 25년간 선교에 있어 큰 발전을 했다. 한국교회가 21세기에도 과연 이런 추세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것이 유지되지 않을 경우 선교는 현재를 정점으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다. 단기선교나 전문인선교 실버선교 등으로 어느 정도는 유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는 이런 추세를 바꾸는데 결정적 요인이 될 수가 있다.
Ⅱ. 21세기 선교 현실과 과제들
지금까지 선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거시적 상황에 대해 선별적으로 언급했다.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이런 현상과 더불어 21세기에 나타날 선교 현실과 과제들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는 중요시 되는 주제들을 나열하고 그 다음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루기로 하겠다. 21세기 기독교 선교에 있어 우리가 생각해야 할 과제들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 전문인 선교의 정착
- 선교의 정의에 대한 변화
- 서구 선교사들의 역할 변화
- 2/3세계 선교사들의 약진
- 범 세계선교 운동의 변화
- 디아스포라선교의 중요성 대두
- 기독교권의 붕괴와 그 후의 추세
- 교회론과 선교의 연관성
- 선교 전략의 다변화
- 선교지의 변화
- 확대된 선교지의 개념
- 새로운 선교형태
- 선교 역사관에 대한 재정립 시도
- 선교학의 변화
- 오순절운동권의 선교
- 단기선교운동
- 국제화 현상
이상은 21세기 선교계의 현실과 당면 과제들로 떠오르고 있는 주제들이다. 이것을 카테고리화하면 다음 몇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선교학(선교신학 포함)의 영역문제, 둘째, 선교지에 대한 문제, 셋째, 선교전략에 대한 문제, 넷째, 선교의 관점에서 본 교회론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다. 이상에 대하여 중요한 것들을 한데 묶어서 아래와 같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하고자 한다.
1. 21세기의 선교학적 현실과 과제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선교학과 선교신학이 아직은 20세기에 시작한 것을 계속 연장하는 선에 그치고 있지만 그러나 앞서 말한 변화들을 수용하는 선교학과 선교신학이 재(再) 형성되지 않으면 한국교회의 선교는 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선교의 정의는 물론이고 선교사, 선교지, 선교전략, 선교훈련, 선교원리 등도 21세기 세계화 된 상황에 알맞게 보다 성경적인 재정립이 필요하다.
(1) 선교의 정의(定義)에 대한 현 시각
복음주의 진영의 경우 1974년 로잔 제1차 대회 전만해도 선교가 무엇인가는 하는 ‘선교의 정의’(定義)가 비교적 명백했다. 선교는 ‘문화적 장벽을 넘어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사역을 하는 행위’로 받아 들였다. 그런데 로잔대회는 이 같은 선교의 정의를 1)‘복음 전파’와 2)‘사회적 책임’ 두 가지로 확대 시켰다. 그 후 30여 년간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이 문제를 가지고 계속 논의해 왔다.
이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논의는 매듭이 지어졌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일 것이다. 확대된 선교의 정의를 받아드리는 데는 더 이상 아무도 이의를 제시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복음이 선교의 핵심인가, 아니면 복음이 교회의 여러 사회적 책임처럼 선교의 여러 의제(議題) 중 하나인가?”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특히 성경이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는 데이빗 보쉬(David Bosch)는 ‘복음 전파’를 그가 언급한 열세가지 선교에 대한 의제들 중 하나로 보고 있다.(mission includes evangelism …)
성경이 21세기 선교학이 규정하는 ‘선교의 정의’를 명확히 말씀하지 않고 있다고 보는 보쉬의 이 같은 주장도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경은 ‘복음 전파’를 배제한 그 어떤 ‘선교의 정의’도 있을 수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반면에 선교에 있어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이 부분에 있어서는 포함범위나 카테고리에 있어서 어느 정도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감안한 ‘선교의 정의’(定義)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예수님 때부터 1960년 이전 >
- 복음서 : 복음전파, 치유, 축귀(하나님의 왕국 증거, 확장)
- 초대교회 이후(사도행전, 서신서) : 복음전파, 교회개척
- 중세교회(6세기 – 종교개혁) : 기독교권 확대, 기독교화, 기독교 문화화
- 종교개혁 이후(신교) : 기독교권 확대, 복음적인 교회개척(재세례파 등의 중심 선교)
- 종교개혁 – 1960년대 : 복음전파, 하나님나라 확장, 교회개척
< 1960년대 이후 – 현대까지 >
- 1차 로잔대회(1974) : (전)복음전파, 교회개척, (후)복음전파, 교회개척, 사회적 책임
- 현대 : 복음전파(교회개척 포함), 사회적 책임(복음전파가 우선)
위에 있는 ‘복음전파’(교회개척 포함)’, ‘사회적 책임’(복음전파가 우선)두 가지 선교 모델은 현제 복음주의 진영에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복음전파와 교회개척’ 모델이 보다 성경적인 선교의 정의를 나타낸다고 본다. 그 이유는 선교 현실에 따라서 신축성을 가지고 인간적인 필요(영적, 실제적)을 채우는 것이 타당하지만 그러나 ‘복음전파와, 교회개척’이라는 선교 모델에 의하면 복음의 필요성과 복음의 우선성(centrality of the Gospel)이 그 어떤 경우에도 간과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도와 교회 개척, 사회적 책임’ 이 선교 모델의 경우는 복음 우선성이 침해받을 가능성이 있다.
초대교회는 전교인이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오게 하는 것’을 핵심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선교가 복음만 전하는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가시적으로 오게 하는 것(사회적인 책임과 참여를 하는 것도 포함)이냐?”하는 논란을 약 30여 년간 벌려 왔다. 현재는 선교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여전히 핵심이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적인 변화와 책임지는 것도 포함한다는 것으로 대부분 받아드리고 있다.
(2) 선교역사관 재정립과 2,3세계 선교의 약진
데이빗 보쉬(David Bosch)는 기독교 선교를 토마스 쿤(Thomas Khun)과 한스 퀸(Hans Kung)이 제시한 이론을 토대로 다음과 같이 6개의 패러다임으로 나누었다.
- 초대교회 선교 패러다임 : 1세기
- 동방교회 선교 패러다임 : 1세기 말부터 6세기
-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 선교 패러다임 : 600-1500년
- 종교개혁 이후 신교 패러다임 : 16세기부터 17세기
- 계몽주의 이후 현대 선교 패러다임 : 18세기부터 20세기
- 에큐메니칼 선교 패러다임 : 1960년 이후
2005년 4월판 IBMR(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에서 알랜 크래이더(Alan Kreider)는 이런 분류에 대해 이의(異義)를 제기하고 여섯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셋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기독교권(christendom)이 형성되기 이전 : 초대 교회부터 4세기경까지
- 기독교권이 형성된 후부터 해체되기까지 : 중세부터 현대까지
- 기독교권이 해체된 후 : 20세기 후반
이상의 구분은 주로 서구권에 해당된다. 물론 비서구권에 속해 있는 교회들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주로 서구교회가 비서구권에 선교 할 때와 기독교권이 존재한 때와 겹치는 것을 보아도 이를 알 수가 있다. 하지만 비서구 교회에 속해 있는 우리로서는 다음과 같은 분류가 좀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가 있다.
- 서구중심으로 한 기독교권이 형성시기 : 1세기부터 6세기까지
- 서구중심 선교시대 : 6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 범세계 선교시대 : 20세기 중반부터 21세기 현재까지
현재는 서구교회의 선교와 2,3세계 교회의 선교가 공존하는 시대이다. 선교의 세계화는 범세계 교회의 탄생과 범세계 선교의 시대를 열었다. 이는 2천여 년 간 존재한 서구교회의 선교와 2,3세계 교회의 선교로 이루어진 21세기 현상이다.
2,3세계의 교회는 빠르게는 19세기 말부터 늦게는 20세기 중반에 일어나기 시작한 2,3세계 선교의 역할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21세기는 이런 인식 가운데 선교가 전 방향에서 전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교회의 선교는 이런 현실 가운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으며 앞으로도 해야 할 것이다.
(3) 새로운 선교형태
선교사는 전통적인 의미의 선교사를 포함 단기선교사, 비거주선교사, 전문인선교사, 평신도선교사, 증인 등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공통점이 있다면 파송의 주체가 있고, 선교하는 과정 중에 관리를 받으며, 선교의 정의에 입각한 선교사역이 있다. 그러나 갈수록 선교사 이외 선교적인 삶을 살아가며 증인의 역할을 하는 대중들의 중요성에 대해 세계 교회가 인식해야 할 것이다.
2. 확대된 선교지와 선교세력
(1) 전통적 선교지 현실과 새로 부상하는 선교지역
한 때 선교지(宣敎地)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태평양 군도 등 소위 제3세계라고 불리던 곳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선교국과 선교지가 따로 없고 어디든지 선교가 필요한 곳이 되었다. 하지만 이슬람권이나 힌두교권이나 불교권 등 선교의 진척이 느린 지역이 중요한 타문화선교 지역으로 남아있다. 또한 날이 갈수록 유럽 등 서구도 선교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2005년 현재 세계 미전도 인구는 약 18억이다. 이는 세계인구의 약 27%에 해당된다. 반면 2005년 세계인구 64억(2016년 74억) 중 기독교인은 약 22억이다. 세계 인구비율로 보면 33.1%다. 각 종교별로는 모슬렘 13.3억, 힌두교 9억, 불교가 4억이다. 그리고 현재 전 세계 불신자는 약 43억이다. 이에 비해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기독교인은 약 7억 명이다.(이상은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2005년 1월 호에 나온 내용을 한국선교연구원-KRIM이 번역한 파발마 2005년 4월 11일호 참조)
(2) 새로운 선교인력 디아스포라와 선교
선교학적으로 이제는 더 이상 전문 선교사만 선교한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증인으로서 세계 각처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의 선교적인 중요성을 한국교회가 인식해야 한다. 한인 디아스포라 자신들도 올바른 정체성을 가지고 보다 적극적으로 선교를 해야 한다. 다음은 선교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몇 가지 예이다. 선교사로 헌신하여 평생을 선교지에서 사역을 할 수 있다. 선교전략 지역에 직장을 얻어 그 곳에서 전문인으로서 사역을 할 수도 있다. 또 전략적 지역에 사업을 시작하여 선교사를 위해 비자를 내주기도 하고 또 현지인을 고용하여 훈련시킬 수도 있다.
3. 21세기 선교전략의 변화
(1) 단기선교의 활성화
한국교회는 아직까지 단기선교사에 대해 절실하게 느끼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장기선교사의 수급이 비교적 잘 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현재 40만 명의 선교사들 중 5만여 명을 제외하고35만 여명이 단기선교사들이다. 최근 판 미주 선교핸드북에서는 간접적인 선교인력까지 다 합친다면 많게는 약 백만 명의 단기 선교인력이 현재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한국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계속 장기선교사들이 충원되면 좋겠지만 신자들의 평생선교에 대한 의식이 바뀌고 선교사의 충원이 안 될 경우를 위해 한국교회는 미리 대비해야 할 것이다. 미주 한인교회는 지금 단기선교의 붐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이미주 한인교회 상황에 잘 맡기 때문이다.
(2) 선교의 국제화 현상
서구교회들은 이미 1960년대에 선교의 국제화를 시작했다. 이들은 2,3세계의 선교사들을 국제선교 기관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후 그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서구중심의 국제 선교단체는 하나의 좋은 패러다임으로 부상한지 오래다.
21세기에는 2,3세계 선교단체들이 국제화하지 않으면 안 될 현실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흩어져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이들도 타 문화권으로 추정하여야 한다)는 물론이고 서구 선교사들과 2,3세계 선교사들을 받아드려야 하는 현실이 다가 오고 있다. 문제는 이런 현실이 얼마나 빨리 올 것이며 과연 우리가 그런 상황을 위해 얼마나 준비를 갖추는가 하는 것이다.
(3) 전문인선교의 보편화
전문인(專門人) 선교는 이제 보편화된 선교양식이며 전략이다. 앞으로 전문인선교를 더욱더 활성화 시켜야 될 것이다. 특히 한국인의 고령화를 고려하고 남아도는 중년층 이상의 인력을 생각할 때 이 영역에 대한 연구와 선교인력 화는 미래의 선교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이들은 대개의 경우 재정자립도가 높기 때문에 더욱더 중요시 되고 있다. 이 문제는 선교체질화 된 교회개념과 맞물려서 21세기 교회의 선교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이 분야에 대해 선교학적으로 정립하는 것도 시급하다.
4. 선교의 관점에서 본 교회론에 대한 새로운 각성
‘선교적 교회론’(missional ecclesiology)에 대해서는 과거 10년 내지 15년 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다. 이 분야의 책도 많이 나왔다. 세계 교회가 존재하는 21세기에는 선교적 교회론에 대한 논의가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서구교회 선교를 모델로 하여 자연스럽게 그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었다. 그중 아주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언급한다면 오늘날까지 서구교회는 기독교권 내에서만 전도하고 해외는 선교단체에게 위임했다. 그러나 이제는 기독교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2,3세계의 경우 교회가 처해 있는 곳이 바로 선교지 임을 감안할 때 더 이상 이런 이원론적인 선교관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교회는 자신들이 처해 있는 어떤 상황에서도 선교(전도)를 할 수 있도록 교회를 선교체질화 해야 한다. 이 말은 선교사를 더 이상 파송할 필요가 없고 선교단체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안디옥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한 것을 보면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은 초대교회의 모델이며 이는 또한 비슷한 상황에 처한 모든 시대의 교회의 모델일 것이다.
다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안디옥교회나 예루살렘교회나 또 나중에 바울 사도가 개척한 소아시아와 구라파 교회들이 그대로 묵묵히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데살로니가교회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교회는 주위는 물론 다른 지역에 또 교회를 세웠다. 21세기 현실에서는 선교단체를 통해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권장하며 아울러 교회가 처해 있는 어떤 상황에서든 교회의 선교의 사명을 다 하는 교회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단일 문화권으로 여겨왔던 한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비록 문화는 같지만 현대화와 세대 간의 차이와 인터넷 문화권에서 양육된 신세대들 때문에 더 이상 이전의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전도와 교회성장이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 한국문화 속에서도 이제 다양한 속문화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교회는 선교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사역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2016년 200만 명, 2021년 300만 명 전망)은 한국교회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선교대상이라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선교사들의 의식(意識) 전환이다.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처음부터 이런 선교적 교회관을갖고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결론
한국교회는 더 이상 선교의 관한한 초년생이 아니다. 한국교회가 1900년 초 이민자들이 하와이, 미국 서부지역, 멕시코 그리고 일본 등으로 나아감으로 선교를 시작한 때와는 다른 현실 속에 있다.
1907년 이기풍 목사를 제주도에 파송하고 1912-1913년 세 명의 한국선교사를 중국 산둥성에 파송하였을 때와도 다르다. 심지어는 선교운동이 일어난 1970년대 말과도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 과거 25년간 한국교회 선교는 장족의 발전을 하였다. 현재는 한국교회가 파송한 선교사 수가 해외선교로는 세계 제2위이다. 21세기에 들어선 한국교회 선교의 이런 현실은 자동적으로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거시적인 변화와 시시각각 변화하는 선교 현실을 우리는 직시하고 이에 대한 신속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 70지금까지는 우리가 우리 산업현장에서처럼 기초가 없이도 약진할 수가 있었다. 21세기 현실 속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한 시대착오이다. 우리는 앞으로 1년, 5년, 10년을 위하여 각각 해당되는 일들을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많은 세월을 허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에 하나라도 한국교회가 선교의 정점(頂點, peak)을 지나쳤다면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의 선교현실이 아닌가하는 점이다. 늦게나마 에스 커브(S-curve)를 그리는 것은 아주 안 그리는 것보다 날 것이다.(*) 글쓴 이 / 이태웅 박사(한국해외선교훈련원, Global Mission Training Center, GMTC 원장), 미국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 선교학 박사, 세계복음주의협의회 선교위원회 회장, (사)한국해외선교회 이사장, 세계복음주의연맹 선교위원회 세계지도위원, 본 논문은 설악포럼(2005.11.1-4) 발제내용임, 출처 : https://www.gmanradio.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