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회복의 길(2) 화목한 사랑의 가정
가정회복의 길(2) 화목한 사랑의 가정

존 하워드 페인(John Howard Payne, 1791–1852)이라는 미국인이 있었다. 그는 한 번도 가정을 가져본 일이 없는 방랑자였다. 그는 고향을 떠나 돈 한 푼 없이 프랑스 파리의 어느 낯선 거리를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거닐다가 “나에게도 가정이 있다면 …”이라고 울먹이며 하나의 노래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낯선 이국땅 알제리에서 쓸쓸하게 인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그가 가정을 그리워하며 지은 노래가 세계인의 애창곡이 되고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가 되었다. 바로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이라는 노래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우는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집 내 집뿐이리!
클린턴 가드너(Edward Clinton Gardner, 1920-2005)라는 사회학자가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가정이 있으면 아직 다 잃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가져도 가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다.” 그렇다. 가정이 무너지면 다 무너진 것이다. 가정이 무너지면 우리들의 삶의 기반이 무너진다.
사람이 사업에 성공하는 것 좋다. 사회적으로 명예를 얻고 출세하는 것 좋다. 직장에서 인정을 받아서 진급하는 것 좋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긴급하고도 중요한 일은 가정을 세우는 일이다. 내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만드는 일이다. 가정은 언제든지 돌아가고 싶은 곳이어야 한다. 언제든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디모데전서 5:8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으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가족과 친족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버리고 배반한 자라고 했다.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했다.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신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 직분 자를 선택할 때에도 그 가정을 보라고 했다. 가정을 건강하고 화목하고 복되게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교회 직분 자로 세우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가정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면 교회 역시 제대로 돌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맨 먼저 찾아가신 곳이 가나의 혼인 잔치 자리였다. 그만큼 기독교는 가정을 우선시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많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했을지 모르나 가정은 병들어가고 있다. 화목이 깨어지고 가정의 위기를 만나고 있다.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했다고 할지라도 가정에 실패하면 결국 인생의 전부를 실패한 것이 된다.
모든 사람은 더 좋은 세상에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보다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이런 생각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좋은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살기 좋은 세상에 대한 건강한 개념이 없다는 데 있다.
오늘 여러분이 바라고 소원하며 바라는 살기 좋은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쉽게 말해 여러분의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가 꿈꾸고 바라고 소원하는 세상은 뜻밖에도 너무 단순하다. 어쩌면 그 단순함이 지나쳐서 어리석기까지 하다.
대부분 사람이 바라고 꿈꾸고 소원하는 살기 좋은 세상은 소위 돈 많은 부자로 사는 세상이다. 그래서 좋은 옷을 입고, 근사한 집에서 좋은 것을 먹으며, 좋은 자동차를 타고 호의호식하며 편안히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꿈꾸고 바라는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소아적인 생각이요 지극히 어리석은 생각이다.
물론 돈이 없으면 참 힘들다. 남들보다 가난하게 사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지나쳐서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을 걱정하게 된다면 다른 것을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이 된다. 심각한 가난은 정말 우리를 못살게 한다. 그러므로 가난하지 않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노력하는 건 정당한 일이요, 건강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가난할 때는 가난이 문제 전부로 알았다. 가난만 벗어나면 천국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가난에서 벗어나면서 보니까 그렇지 않았다. 가난 못지않게 아니 가난보다 더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가정이 허물어지고 해체되는 것이다. 안식과 화목과 사라진 가정이다. 이것은 풍요 속에 닥쳐온 가정의 위기이다. 이 세상에 돈이라고 하면 천국 하나도 부럽지 않을 만큼 많이 가지고 있는 부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행복하지 않다. 결국에 인생의 행복은 돈의 문제가 아니다. 건강한 가정이다.
성경의 솔로몬을 보라. 솔로몬은 세상적으로 보면 대단한 사람니었다. 그는 한 나라의 왕이었다. 많은 나라가 그에게 와서 조공을 바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왕이었다. 세상의 어떤 지혜 자도 솔로몬에게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지혜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가정에서는 실패자였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실패한 삶을 놓고 이렇게 고백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肉膳, 고기반찬)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다. “산해진미 차려 놓고 서로 미워하느니 밥 한 그릇이라도 나눠 먹으며 서로 아끼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그런가 하면 잠언 21:9에는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도 움막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고 19절에서는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물론 가난이 행복의 조건은 아니다. 분명히 가난은 삶을 힘들게 한다. 어떤 때에는 그 가난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비록 가난은 하지만 화목한 가정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 가정이야말로 복된 가정이라고 믿는다. 아무리 부유할지라도 화목이 깨어진 가정은 정말 불행한 가정일 것이다.
화목이 깨지고 다툼만 있는 가정이라면 화려한 왕궁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집과 좋은 차와 좋은 것 다 가지고 있다 해도 다툼이 있고 싸움이 있어서 화목이 깨어진다고 한다면 그 가정을 도망쳐 나와서 움막이나 광야에서 혼자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의 권세와 명예와 재물과 수많은 여인을 거느리며 살았던 솔로몬이 그의 인생 말년에 서로 화목하게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고백하고 있는 그의 소리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화목한 가정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도 교훈하고 있다. 잠언 10:12에 보면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운다.”고 했고, 17:9에서는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그렇다. 사랑하게 되면 허물이 있어도 덮어준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자꾸 허물을 까발려 결국은 너도나도 다 망하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저 자식은 희망 없는 자식이고 망나니야!”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 아들을 그렇게 희망 없는 망나니로 보지 않는다. 사람이 달라서 그러는가? 아니다. 어머니에게는 사랑이 있다. 그러므로 화목한 가정을 위해서 지금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는 사랑이다.
옛 속담에 “불붙는 집에 키질한다.”라는 말이 있다. 화목하게 사는 사람은 그렇게 남의 집에 화를 돋우는 키질하지 않는다. 이것은 제대로 된 사람은 아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물을 흐린다.”라는 말과 같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화목한 가정 사랑으로 화목한 교회를 위해서 모두가 힘써야 한다. 화목하기 위해서 힘쓰는 사람은 매사에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화평한 가정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말과 행동 조심해야 한다. 화평한 교회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 서로 조심해야 한다. 서로 세워주며 덕되는 말만 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색깔이 아름답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무지개가 아름다운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다양성의 조화이다. 각각 다른 일곱 가지 색깔이 조화를 이루어서 아름다운 것이다. 만약 이 세상에 획일적으로 한가지 색깔만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래서 온 세상이 빨간색으로만 존재한다면 세상은 다 새빨갛게 보일 것이다. 정말로 눈이 피곤하고 아플 것이다. 답답할 것이다. 색깔을 잃어버린 사회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 색깔과 같은 한 가지 색깔을 요구한다. 그래서 다양한 색깔을 오히려 거부한다. 이것은 비극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무지한 것이다. 색깔이 아름답다는 것은 여러 가지의 색깔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음악의 음도 마찬가지다. 여러 음이 어우러진 화음이 가장 듣기 좋다. 불협화음이 되어 보라. 잠시만 들어도 짜증 나서 다 나가고 말 것이다. 음은 화음을 이루어야 하고, 사람들은 화목을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루어가야 할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복된 가정이다.
솔로몬은 잠언 5:18에서 중년기에 접어든 아들에게 이렇게 교훈하고 있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했다. “네가 젊어서 얻은 아내를 행복하게 하고 그녀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렇다. 지치고 힘든 남편이 아내를 통해서 새로운 힘을 공급받고 새로운 능력을 공급받는 보금자리가 된다. 그래서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고 한다. 남편은 아내와 아내는 남편과 함께 즐거워하라. 부모는 자녀와 함께 자녀는 부모와 함께 즐거워하라. 이렇게 온 가족이 화목한 가운데 주님만 섬기는 가정! 이런 가정이 바로 천국과 같은 행복한 가정인 것이다.(*) 글쓴 이 / 오주철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 언양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