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갈빈주의 강연(5) 칼빈주의와 학문(하)

요약, 갈빈주의 강연(5)

칼빈주의와 학문(하)

– Summary, Abraham Kuyper’s Lectures on Calvinism –

4. 학문의 본질적인 자유

이제 계속해서 칼빈주의가 학문의 본질적인 자유를 어떤 식으로 발전시켰는지 살펴보자.  

자유와 진정한 학문과의 관계는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와 우리 신체의 관계와 같다. 물고기가 참으로 자유롭게 살고 번성하려면 온전히 물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 이처럼 모든 학문은 자신의 주제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자신의 고유한 방법이 요구하는 바를 엄격하게 지킬 때에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학문의 자유는 방종(放縱)이나 무법(無法)에 있지 않고 모든 부자연스러운 속박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그 속박이 부자연스러운 것은 학문에 꼭 필요한 원칙에 뿌리를 박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세에는 국립 대학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학문이 ‘학자 공화국’(respublica litterarum)을 만들었다고 흔히들 생각했는데 이들에 대한 자유의 침해는 국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영역인 교회에서 왔다.

(1) 공화제적 조직체제의 도입

수세기 동안 인간생활에는 두 가지 지배적인 권력이 있었는데 곧 교회와 국가였다. 몸과 영혼의 이분법이 이런 인생관에 반영된 것으로 교회는 영혼이고 국가는 몸이었다. 제3의 권력은 없었다. 교회 권력은 교황에게 국가 권력은 황제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 이원론이 갈등을 일으켜 좀 더 높은 통일성이 요구되었을 때 교황과 황제는 대권을 두고 격렬하게 부딪히곤 했다. 하지만 르네상스 이후로 제3의 권력으로 학문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13세기 말 학문은 대학생활로 그 모습을 드러냈고 교황과 황제로부터 독립된 존재임을 주장했다.

대학의 공화제적(共和制的) 특성은 모든 군주제적(君主制的) 특성의 배제(排除)를 요구했다. 그러나 교황과 황제는 이 제3의 권력의 성장을 경계하고 대학을 자신들의 통치 아래로 끌어들이기 위해 모든 일을 시도했다. 그 당시 모든 대학이 확고한 태도를 취했다면 학문의 자유는 유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쟁에 밀려난 약한 대학들은 교황에 도움을 청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강한 대학도 그 뒤를 따르게 되었다. 여기서 근본악이 나타났다. 이런 식으로 학문은 독립적 특성을 포기했다.

우리의 의식(意識)을 통해 우주에 대한 지적인 내용을 수용하고 반성하는 학문의 영역이 교회와 전혀 다른 영역을 형성한다는 사실이 간과되었다. 종교개혁은 이 악을 억제했으며 칼빈주의는 그 악을 정복해 버렸다. 칼빈주의는 교회 안에서 군주제적 위계(位階) 제도를 제거하고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 공화제적이며 연방적인 조직을 도입했다. 그리하여 대학을 다스리는 영적인 교회라는 머리(교황)는 사라졌다.  

루터교도들에게 그 (대학을 다스리는) 가시적 머리는 땅의 통치자였다. 그들은 이 통치자를 ‘제1 주교’로 존경했다. 그러나 교회와 국가를 다른 영역으로 구분했던 칼빈주의가 대세인 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들의 체계에서 박사 학위증서는 여론이나 교회의 동의 또는 교회의 규례로부터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기관의 학문적 특성에서 의미를 가졌다.

(2) 교회는 특별 은총의 영역으로

대학에 대한 교황의 보호와는 상관없이 교회는 또 다른 압력을 학문에 가했다. 교회는 혁신자들이 표현한 의견과 출판한 저술 때문에 그들을 괴롭히고 비난하고 핍박했다. 로마는 가톨릭교회는 옳은 것을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말의 자유를 반대했다. 오직 (교회가 인정하는) 진리만 사회에서 학문은 자신을 선전할 권리를 갖고 있었다. 이것은 학문의 자유를 해쳤다. 교회 관할권이 해결할 수 없는 학문적 문제는 시민법정의 판단에 맡겨졌다. 갈등으로 움츠러든 사람은 침묵하거나 상황에 순응했다. 그리고 반대에 맞섰던 사람은 날개가 잘린 채 벌을 받았다. 그가 잘린 날개로 날아보려고 하면 목이 비틀어졌다. 아주 대담히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결국 종교재판과 단두대를 만났다.

이처럼 자유로운 학문 탐구의 권리는 허용되어 있지 않았다. 알 수 있고 알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이미 모두 알려져 있고 그것도 분명하게 알려져 있다고 굳게 믿었던 그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는 학문을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원리인 ‘삶을 위한 투쟁’도 몰랐다.  

칼빈주의는 일반은총의 영역을 발견함으로써 이런 해로운 입장을 버렸다. 칼빈주의는 교회가 특별은총의 영역으로 돌아가야 하며 일반은총의 넓고 자유로운 영역이 교회의 통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결과로 형법의 형벌은 점점 사문화한 법률로 축소되었다.

(3) 창조명령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는 ‘믿음의 확실성’

또 하나 학문이 융성하기 위해 대중의 마음이 자유를 얻어야 했다. 하지만 교회는 삶의 유일한 목적을 그 공로를 통해 하늘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쳤고 사람들은 교회가 이 주된 목적과 일치한다고 인정하는 만큼만 세상에서 향유할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는 아무도 지상적 실존에 대한 연구에 공감을 갖거나 헌신할 수가 없었다. 영원한 구원을 열망하는 일 말고 지상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우주에 관하여 웅대한 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은 납득될 수 없었다. 칼빈주의는 지상의 삶이란 하늘의 복된 상태를 공로(功勞)로 얻도록 정해져 있다는 로마 가톨릭의 모든 생각을 가장 절대적인 의미에서 뿌리째 잘라버렸다.

모든 참된 칼빈주의자에게 이 복된 상태는 ‘중생’에서 자라며 ‘성도의 견인’에 의하여 보증된다. 이 ‘믿음의 확실성’을 근거로 칼빈주의는 기독교 세계에 창조명령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그 가운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그래서 순례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변하지 않았지만 칼빈주의는 영원한 본향을 향해 가는 길에서 지상의 중요한 일을 행해야 하는 순례자가 되었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무한한 전체영역에서 일을 해야 했다. 칼빈주의는 열정과 정력을 갖고 이 노동에 자신을 드렸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면 땅의 모든 것은 사람에게 종속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땅을 정복하기 위해 땅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었고 대양(大洋)과 자연에 대한 지식 그리고 이 자연의 속성과 법칙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학문을 권장하기를 거리끼리는 백성이 새롭고 활기 넘치는 힘으로 자유의 느낌을 향유하도록 학문에 박차를 가했다.  

5. 두 학문 체계의 갈등과 대립

또한 칼빈주의는 학문적 원리의 갈등에 신속한 해결책을 제공했다. 자유로운 탐구(探求)는 필연적으로 상호 충돌에 이르고 그 결과로 다양한  학파와 사조(思潮)가 생겼다. 낙관주의 대(對) 비관주의, 칸트학파 대(對) 헤겔학파, 결정론자 대(對) 도덕론자 등 모든 분야에서 대립하는 이런 논쟁이 그 원리의 상이성(相異性) 때문이라 하더라도 그러나 이런 부수적인 갈등들은 모든 나라에서 지성(知性)을 격렬하게 혼란시키고 있는 ‘원리의 갈등’에 의해 완전히 가려졌다. ‘원리의 갈등’이란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에 대한 신앙고백을 고수하는 사람들과 이신론, 범신론, 자연주의 안에서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사람들과의 강력한 갈등이다.

(1) 모든 학문은 신앙을 전제한다.

이 갈등은 신앙과 학문의 갈등이 아니다. 그런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학문은 어느 정도 신앙에서 출발하지만 반대로 학문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은 잘못된 신앙이거나 미신이다. 참되고 진정한 신앙은 그렇지 않다. 모든 학문은 신앙을 전제한다. 특별히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는 원리에서 신앙을 전제한다. 이는 학문적 탐구에 필요한 모든 공리(公理)가 우리의 자의식(自意識)과 더불어 주어져 있음을 뜻한다.

반면에 모든 신앙은 발언하려는 충동을 내적으로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신앙은 말과 용어와 표현을 필요로 하고 이 말들은 사상의 구현이 되어야 한다. 이 사상들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황과 함께 상호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래서 신앙이 우리의 의식에 빛을 비추자마자 학문과 논증의 필요가 생겨난다.  

따라서 학문적 갈등은 신앙과 학문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우주가 ‘정상적 상태’(무신론의 입장)인가 ‘비정상적 상태’(기독교의 입장)인가 하는 주장 사이에 존재한다. 만일 우주가 정상이라면 우주는 잠재력에서 이상(ideal)으로 가는 영원한 진화(進化)의 의미로 움직인다. 그러나 우주가 타락으로 인한 비정상이라면 과거에 혼란이 일어났고 그 최종 목적 달성을 보증할 수 있는 것은 중생의 능력뿐이다. 이 대립은 학문의 영역에서 사유(思惟)하는 두 지성(知性)을 전투대형으로 만들었다.

(2) 우주 정상론자 vs 우주 비정상론자

  • 현재의 우주가 정상적(正常的)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자연(自然) 자료 이외에는 의존하지 않으려 하며 모든 현상에서 동일한 해석을 발견하려고 한다. 그들은 원인과 결과의 논리적 추론을 파괴하거나 제어하려는 모든 시도를 반대한다. 그들도 형식적 의미에서 신앙을 존중하지만 다만 신앙이 인간의 일반적 자료와 조화를 이루는 한에서나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기적은 존재하지 않으며 냉혹한 방식으로 지배하는 유물론적  자연법칙(自然法則)만 존재할 뿐이다.

그들에게 죄(罪)같은 것은 없고 저급한 도덕적 입장에서 고등한 도덕적 입장으로 진화(進化)가 있다. 그들이 아무튼 성경을 허용한다면 인간의 작품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모두 잘라내는 조건에서 허용한다. 필요에 따라 그들도 그리스도를 인정하지만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인간적 발달에서 생긴 산물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한 신(神) 또는 최고의 존재를 인정하는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불가지론(不可知論)에 따라 가시적 우주 뒤에 숨어있거나, 범신론적으로 모든 사물 속에 숨어 있거나, 인간 지성의 이상적 반영으로 간주되는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창조개념을 거부하며 진화만 받아들일 수 있다.

  • 현재의 우주가 비정상적(非正常的)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상대적 진화는 공정하게 판단하지만 무한 진화는 반대하여 원초적 창조(創造)를 고수한다. 그들은 인간을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形像)이 반영되어 있는 유일한 존재로 보기 때문에 인간을 독립적 종(種)으로 본다. 그들은 죄를 우리의 원래 본성의 파괴로 보며 따라서 하나님을 거스르는 거역으로 본다. 그 때문에 그들은 기적적인 것을 비정상적인 것을 회복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주장한다. 중생의 기적, 성경의 기적,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기적을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중생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이상적 규범을 계속 발견한다.

(3) 두 학문체계의 대립

유신론(有神論)과 무신론(無神論)의 이 두 가지 학문적 체계가 각자 자신의 신앙을 가지고 서로 대립한다. 이 두 학문은 모두 인간 지식의 전체 영역을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최고 존재에 관한 제안을 자신의 세계관을 위한 출발점으로 갖는다. 우주의 정상론과 비정상론의 이 두 가지 학문체계는 서로를 인정하는 상대적인 대립자(對立者)가 아니다. 그것들은 전체 영역을 두고 서로 다투고 있으며 각자 자신의 주장을 전체 체계 위에 세우려는 노력을 단념할 수 없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자신의 출발점을 신실하게 믿지 않는 것이며 진지한 전사가 아니다.

성경의 가능성을 자신의 체계에 아주 작게라고 갖고 있는 우주 정상론자는 이중적인 학자이며 학자의 이름을 상실한다. 반면에 창조를 진화로 변형시키며(유신론적 진화론) 중생과 그리스도와 성경을 인간적 원인의 결과로 설명하려고 하는 우주 비정상론자 역시 이중적이며 비학문적인 사람으로 우리의 대열에서 추방해야 한다. 우주 정상론과 비정상론은 절대적으로 그 출발점이 다르다. 그 기원에는 공통점이 전혀 없다. 우리는 둘 중 하나만을 택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을 선택하든 모든 것에 있어서 일관성 있게 해야 한다.

(4) 세계를 정복한 우주 정상론의 세계관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우주 비정상론자는 오랜 세월 동안 계속해서 발언해왔지만 도전을 별로 받지 않았다. 물론 모든 시대에 우리의 신앙을 비웃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1,000년 동안 학문적으로 이러한 보편적 확신에 반대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르네상스(Renaissance, 文藝復興)는 불신앙의 경향을 은근히 장려했고, 인문주의(人文主義, Humanism)는 그리스 로마의 이상을 향한 열정을 창출했으며 중세 말엽 우주 정상론자의 반대가 시작됐지만 그 후 수세기 동안 전통적인 학문체계의 기초를 손대지 않았다.

그런데 18세기에 이르러 우주 비정상론 반대 의견이 학문의 중심을  차지했다. 새로운 18세기 철학은 최초로 일반적인 수준에서 기독교 세계관의 원리를 전적으로 지지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우주 비정상론을를 반대하는 데 일치하는 다양한 철학체계로 서서히 발전되고 점차 법학, 의학, 자연과학, 역사학의 영역에서 우주의 무한한 정상적 과정이라는 새로운 가설을 그들 학문탐구의 출발점으로 도입했다. 결국 우주 정상론의 세계관이 주도적 중심에서 세계를 정복했다.  

신학자들은 변증학적으로 자신의 명분을 옹호하려 했으나 그것은 오히려 신학체계의 왜곡을 가져왔다. 특히 독일의 유능한 신학자들은 이 우주 정상론 철학체계 중 하나를 기독교를 지지(支持)하는 버팀목으로 사용하려 했는데 이 같이 철학과 신학의 혼합(混合)에서 생긴 첫 번째 결과는 소위 ‘화해의 신학’(mediating theology)이었다. 이 신학은 신학적인 부분에서 좀 더 빈곤해지고 철학적인 부분에서 점점 풍요해져서 마침내 현대신학(現代神學)을 발생시켰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셨다고 하고 성경을 여러 저술의 모음집이라고 주장했다.

6. 학문의 원리적 갈등에 대한 해결

칼빈주의는 이 같은 유신론과 무신론의 학문의 원리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사소한 충돌에 골몰하지 않고 곧바로 인간 의식(意識)으로 돌아갔다. 모든 학자는 자신의 의식으로서 이 인간 의식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의식은 사물의 비정상적 특성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는 죄 의식(意識)이 매우 강하나 어떤 사람에게는 약하거나 전혀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신앙의 확실성이 중생(重生)의 결과로 분명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도 못한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의 증거가 크게 울려 퍼지고 어떤 사람은 그 증거를 전혀 듣지 못했다고 한다. 죄 의식과 신앙의 확실성과 성령의 증거 이 세 가지는 모든 칼빈주의 자의 의식(意識)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우주 정상론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그들은 자기 의식(意識)을 강요하려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의식이 자신의 의식과 동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신의 의식과 다른 사람의 의식이 실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하는 순간 사물의 정상적 조건은 허물어진다.

반대로 칼빈주의 자는 자신의 의식(意識)이 우주 정상론자 안에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칼빈이 주장했듯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종교의 씨’(semen religionis)가 있고, ‘하나님에 대한 느낌’(sensus divintatis)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칼빈의 체계가 믿는 사람의 인간 의식과 믿지 않는 사람의 인간 의식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죄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가질 수 없으며,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신앙의 확실성을 가질 수 없으며, 성령의 증거가 없는 사람은 성경을 믿을 수 없다.(요 3:3, 고전 2:14 참조)

(1) 두 종류 의식의 차이점

이렇듯 의식(意識)의 단절(斷切)을 모르는 우주 정상론자(비중생자)가 있고 단절과 변화에 대한 경험을 갖는 비정상론자(중생자)가 있다. 인간은 자신의 의식을 원초적(原初的) 진리로 삼는다. 그리고 모든 학자는 학문을 이 의식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의 논리적 결론은 일치할 수 없다. (중생과는 상관없이) 정직한 학자는 전체 우주에 대한 학문적 건물을 자신의 의식에 주어진 근본적 자료와 조화를 이루도록 세워야 할 의무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칼빈주의적 해결책에서 학문은 평가절하(平價切下) 되거나 무시되지 않으며 전체와 모든 부분으로서 우주를 위하여 요구된다. 우주 정상자의 학문과 비정상론자의 학문의 차이는 탐구의 상이한 결과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종류 의식(意識)의 차이 위에 서 있는 것이다.

(2) 자유롭지 못한 학문의 부작용

자유로운 학문은 이 두 종류의 인간 의식(意識)의 공격을 막는 거점이다. 우주 정상론은 신자의 의식도 자신의 의식과 동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신자의 의식에서 믿고 바라는 모든 것은 거짓이라고 하며 자기 기만(欺滿)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우주 정상론자가 자신의 의식으로부터 잘 구축된 학문을 세울 수 있는 자유를 공격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신자의 권리와 자유 역시 보호하려고 한다.

그런데 시대적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오래 전에는 모든 대학에서 우주 비정상론의 입장을 모든 학문의 공리(公理)로 보았다. 오히려 소수의 우주 정상론자는 교수직을 얻기가 어려웠고 박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우주 정상론자들이 상황을 주도하여 모든 영향력을 통제하고 더 많은 교수직을 차지하고 있다. 그 결과 우주 비정상론자는 공적 위치에서 내쫓기고 있다. 전에는 우리가 그들을 문밖으로 내쫓았는데 이제는 그들이 우리를 거리로 내몰고 앙갚음을 하고 있다. 그래서 최후 소송에까지 승리할 수 있는 용기와 인내와 힘이 훨씬 높은 수준에서 기독교 학자에게 있는지가 문제가 된다.    

(3) 우주 정상론자들에 맞선 기독교 학자들

우주 정상론자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우리 보기에 거룩한 모든 것을 없애버리는 일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모든 기독교 학자는 이 싸움을 피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자신의 학문적 양심을 위해 낙담의 불평을 하거나, 신비적 감정을 붙들거나, 비 신앙고백적인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원리에 따라 사유하고 이 원리의 노선에서 모든 학문적 탐구를 새롭게 하며 자신의 힘 있는 연구를 학계가 받아주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겠다는 강렬한 자극제를 얻어야 한다.

우리가 반대자에게 세속(世俗) 학문을 맡겨도 아무런 위험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신학을 건지려고만 한다면 우리의 전술은 어리석은 타조의 전술이 될 것이다. 집이 온통 불타고 있는데 위층만 건져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 모든 학문은 원리의 대립과 다소간 연관되고 따라서 원리의 대립에 틀림없이 개입한다. 기독교 학자가 현실에 대하여 눈을 감는 것으로 안전을 조금씩 추구할 때 아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거기서 안전한 방패를 발견하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현실을 자신의 학문에서도 통합되어야 할 사실로 기록해야 한다.

(4) 학문의 자유는 결국 진리를 승리로 이끈다

그런데 지금의 많은 대학은 학문이 하나의 동질적 인간 의식에서만 발전하며 학문과 능력만이 전문 교수직을 차지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아무도 원리의 근본적 차이 때문에 두 노선의 대학이 서로 대립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주 정상론자와 비정상론자의 범세계적 갈등이 불거질수록 대학생활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만일 칼빈주의의 요구에 따라 교회와 국가가 자신의 권위를 대학생활에서 제거하면 학문 영역에서 대립 원리의 지지자들이 평화롭게 분리되어 정직한 진보와 상호이해가 보장될 것이다. 역사는 이런 분리가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증거 하는데 로마제국의 ‘하나의 국가’라는 이념이 몰락했을 때 유럽의 숨어있는 정치력이 발전하였으며, 로마제국의 몰락 후 유럽의 ‘하나의 세계교회’(로마 가톨릭)라는 이념이 추방되었을 때 그리스도인들에게 좀 더 높은 발전으로 나아가는 길은 열렸다.

그러나 학문의 피상적 통일성은 오래지 않아 깨지고 학문은 분열될 것이다. 다양한 학문 영역이 일어날 것이며 다양한 대학이 번창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학문에서 체계를, 교훈에서 일관성을, 교육에서 통일성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자유로운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원칙에 엄격하게 매여 있는 한 모든 부자연스러운 속박에서 벗어날 힘을 갖는다.

칼빈주의가 우리에게 열어준 학문의 자유는 결국 승리하게 될 것인데, 첫째 모든 주도적 가치관이 자신의 원리로부터 학문의 추수를 거둘 수 있는 충분한 힘을 보장함으로써 그리할 것이며, 둘째 자신의 결론에 힘을 실어주는 원리를 감추려 하는 학자들에게 학문의 이름을 주지 않으려 함으로써 그리할 것이다.(*) 요약 / 편집 : 나쥬니, 

출처 http://www.nazuni.pe.kr/faith/books/calvinism/lifesystem.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