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육

개혁교회의 학교운영 원칙

영역주권과 개혁교회 교육

자신이 설립한 제네바 아카데미를 시(市) 장관들과 방문 학생들을 격려하는 칼빈(1559년)

1. 개혁교회와 교회학교 교육 

역사적으로 칼빈신앙의 후예들은 무엇보다도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개혁교회는 교육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개혁교회의 선진들은 차츰 하나님이 주신 영역(領域)의 주권(主權)을 깨닫고 이를 귀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개혁교회 신자들은 이 진리를 성경에서뿐 아니라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배우게 된 것이다.

(1) 로마 가톨릭교회가 보여 준 역사적 교훈  

지난날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영역주권에 대한 침범과 혼란은 교회에 큰 손상을 초래하였다. 특별히 로마 가톨릭교회가 하나님의 영역주권을 분별하지 않았다. 그들은 세상 모든 영역을 교회의 권위 아래 두려했다. 그러므로 로마 가톨릭교회는 원리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를 교회의 지배 아래 두고 있다. 이 원리가 중세시대의 교황과 황제들과의 무서운 투쟁을 가져오게 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오늘도 안으로는 이 원리를 지켜가고 있는데 특별히 교회가 교회교육 뿐 아니라 일반교육의 영역도 주관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2) 개혁교회의 교육에 대한 원칙 

그러나 개혁교회는 제도로서의 교회가 직접 해야 할 교육의 영역이 있고 믿는 부모나 신자들이 책임을 지고 할 교육의 영역이 따로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교회는 교회 안에서의 ‘성경 교리교육’과 이를 담당하게 될 목사를 양성하는 ‘신학교육’의 영역을 맡게 되고 믿는 부모와 신자들은 교회가 고백하는 교리를 기반으로 하는 ‘일반교육’의 영역을 책임지게 된다.      

개혁주의 원리에 의하면 교회가(당회, 노회, 혹은 총회를 통해) 직접 해야 하는 교육의 영역은 먼저 ‘신앙교육’과 ‘영적교육’에 한정(限定) 된다. 교육의 사명은 교회의 청소년들에게 ‘성경’과 ‘신앙고백서’의 내용을 가르치는 일이다. 이 교육은 주로 목사가 담당하게 된다.

개혁교회에서는 목사의 직책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설교이고 그 다음이 청소년들에게 교리교육(Catechetic instruction)을 하는 것이다. 목사는 청소년들이 개혁주의 교리에 확신을 얻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입교문답을 할 때까지 교리교육의 책임을 지게 된다. 그래서 목사가 설교 준비 외에 가장 많은 시간을 이 교리교육에 바치게 된다. 목사는 매주 이를 위해 적어도 6시간 내지 8시간을 보내게 된다. 개혁교회 청소년들은 10세에서 17,8세가 되어 입교문답을 할 때까지 매주 한 시간씩 교회에 와서 목사로부터 가르침을 받는다.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책임 있게 협조하여 자녀들을 교리교육에 꼭 참석하게 한다.

(3) 개혁교회 교육의 핵심인 신학교육

다음으로 제도로서의 교회가 해야 하는 교육의 영역은 ‘신학교육’이다. 한 교파 교회들이 연합하여 말씀의 봉사자들을 양육하는 신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는 것이다. 신학교육은 교회의 존립과 확장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교회에는 전도자가 언제나 있어야 한다. 복음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믿을 수 없고 전파하는 자가 없이는 복음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롬 10:14) 그래서 개혁교회는 신학교를 직영하고 있다. 신학교는 충성된 복음의 증인들을 양성하여 교회에 공급하고 역사적인 신앙의 유산들을 후대에 전해주는 사명을 가진다.

그래서 개혁교회는 교회의 신학교의 설립과 운영에 대한 사명을 교회의 법조문에 밝히고 있다. 이 조문은 “교회들은 목사후보자의 훈련을 위한 기관(신학교)을 유지해야 한다. 신학교수의 책무는 그들에게 위임된 훈련과정으로 신학도들을 가르쳐 교회에 공급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교회는 신학교를 설립하여 직영하게 된다.

신학교의 운영은 전 교회 세례교인의 부담금으로 이뤄진다. 화란 개혁교회에서는 1993년도에 매 세례교인 당 17달러가 배정되어 매 가정당 연평균 100길더(한화 약 5만원)를 부담하게 되어 있다. 캐나다 개혁교회는 적은 교파이기 때문에 매 세례교인 당 25달러를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아 개혁교회의 포체스트롬 신학교도 100퍼센트 교회의 재정지원에 의해 직영되고 있다.        

개혁교회 법은 신학교의 설립과 운영에 관하여 언급할 뿐 아니라, 신학생들을 위해서도 “교회들은 신학생이 항상 있도록 힘쓰고 필요한 자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교회에 신학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오늘 구미세계에서는 지망생이 줄어가고 있다. 교회는 신학생이 계속 있어 주의 일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기도하고 힘쓸 사명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교회는 신학생들을 경제적으로 도울 책임을 지고 있다. 개혁교회에서는 노회마다 신학생을 돌보는 위원회가 있어 학생들을 형편을 살펴 어려운 자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이렇게 개혁교회에서는 교회가 직접 책임지는 교육 영역을 한정하고 있다. 그것은 성경 ‘교리교육’과 ‘신학교육’이다. 교회가 직영하는 학교는 신학교뿐이다. ‘일반교육’의 영역은 신자인 부모가 책임질 영역으로 본다. 그래서 개혁교회는 교회가(교회 치리회인 당회, 노회, 총회) 직접 각종 학교를 세우지 않는다. 교회가 의학, 법학, 영문학, 수학 등의 교육의 사명을 받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철두철미 부모의 교회가 고백하는 믿음의 터 위에서 자녀들을 바로 교육할 사명을 가진다. 그래서 이 책임을 다하려는 부모들이 연합하여 각종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한다. 교회가 더욱 교회다워지고 교회로서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같이 교육에 있어서 자기 영역을 지켜야 한다.

2. 개혁교회와 일반학교 교육 

개혁교회 신자들은 ‘기독교학교 교육’에 큰 관심을 가진다. 아마 이들만큼 ‘기독교학교 교육’에 큰 관심을 갖고 책임을 다해가는 신자들을 찾아보기는 힘들 것이다. 개혁주의 생활에서 가정, 학교, 교회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개혁교회가 서 있는 곳마다 거의 예외 없이 그 주변에 학교가 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

(1) 일반학교 설립은 성도들의 몫이다.            

그런데 개혁교회 신자들은 ‘기독교육’이라는 평범한 말을 잘 쓰지 않고 ‘개혁주의 교육’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이유는 분명하다. 개혁주의 세계에는 개혁주의 특유의 교육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개혁주의 교육은 하나님의 언약에 기반을 둔 교육이다. 자녀란 인간 자신이 생산해 낸 것이 아니고 언약의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자녀들’이다. 개혁교회 신자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관계 속에서 그들의 자녀를 보게 된다.(창 17:10) 그리스도인들은 다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혁교회의 신자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을 가르치고 바르게 교육할 사명감을 크게 의식하게 된다.

특별히 교육문제는 언약의 자녀를 얻어 유아세례를 받을 당시 부모로서 하나님 앞에 서약한 것에 대한 이행문제로 생각한다. 유아세례 시 부모는 “이 아이가 이해력을 갖자마자 부모로서 이 교회에서 고백하고 가르치는 교리를 최선의 힘을 다해 가르칠 것을 약속합니까?”라는 물음에 “예!”라고 대답을 한다. 이 약속은 하나님 앞에 증인들 앞에서 한 것이다. 이 약속 이행의 책임은 가정교육에서부터 학교교육으로 연결된다.

결과적으로 개혁교회에서 부모들은 자기들이 믿고 고백하는 신앙교리의 기반 위에 자녀들 교육의 책임을 의식한다. 그들의 자녀들이 개혁교회의 신앙고백 내용을 익히고 영적으로 성인이 되어 자립할 때까지 자녀교육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는 곧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교육을(신앙적으로 성인이 되기까지) 일반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개혁교회 신자들은 적어도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는 자신들의 힘이 미치는 한 신실한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교사들에게 자녀들을 맡겨 교육을 하게 된다.

(2) 일반학교 운영도 성도들의 몫이다.

이에 대한 이들의 소명감과 열심은 대단하다. 예를 들면 호주의 한 도시에는 개혁교회가 단지 네 교회뿐이니 신자의 수가 약 2천 명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러나 이들은 유치원으로부터 고등학교까지 설립하여 직영을 하고 있다. 정부가 사립학교에 주는 지원금이 학교 운영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교인들이 학교 후원회 회원이 되어 월 100여 달러씩을 부담하고 있다.            

교회는(당회와 노회 등) 학교 설립과 운영에 직접 관계하지 않는다. 학교의 운영은 교회 자체의 소관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 치리회는 언제나 교회의 영적인 관리의 책임만을 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미 언급해 온 대로 하나님이 주신 영역주권의 문제이다. 학교의 설립과 운영은 신자인 부모들이 협회를 조직하여 하게 된다. 여기에는 목사도 장로도 부모와 신자의 자격으로 다 학교후원의 회원이 되어 참여를 하게 된다. 교회가(당회, 노회, 총회 등의 치리회) 학교를 직영하지 않는다 해서 학교의 설립과 운영에 결코 무관심하지는 않다.

(3) 교회는 일반학교 신앙교육의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

목사는 설교를 통해서 장로들은 심방하는 중에 세례시의 서약을 따라 자녀를 신앙 안에서 교육할 부모의 책임을 강조하고 자녀를 이 학교에 보내고 학교를 지원하는데 적극 참여하도록 가르치고 격려한다. 교회법에도 “당회는 부모들로 하여금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교육이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는 학교에 그들의 자녀들을 참석케 하도록 도모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이런 교회의 규정을 따라 목사와 장로들은 개혁주의 학교교육을 신자들의 의무로 독려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매주일 예배 시 학교를 위한 기도를 잊는 일이 거의 없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이 학교를 위한 영적, 정신적인 지주와 보루가 되는 셈이다.

교회와 학교는 교육면에 있어서 서로의 주권영역을 분명히 달리하고 있다. 교회가 학교의 운영이나 교과 내용을 감독하고 간섭할 수 없다. 이것은 자기 영역이 아니다. 이는 자녀를 학교에 보낸 부모가 해야 할 영역이다. 또 학교가 교회의 협조는 요구할 수 있어도 당회의 하는 일을 간섭할 수 없다. 당회는 교회의 영적, 목자적인 관리의 고유한 사명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영역의 주권을 존중하고 생활하는 것이 혼란을 피하는 길이 되고 각 영역의 참된 번영을 도모하는 길이 된다.

이런 개혁주의 교육원리는 교회와 기독교 대학과의 관계에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개혁주의 세계인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에서 한국 이외에 교회가 대학을 직영하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 19세기 초까지는 교회 직영의 대학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개혁주의 교회들은 영역의 주권을 차츰 인식하고 대학의 운영을 신자들의 봉사영역으로 넘겨주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는 신학교만을 직영하게 되었다. 이것은 말씀의 원리를 따른 지속적인 교회개혁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결론 

교회와 학교의 영역주권이 분명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가 직영하는 대학을 가지고 있다. 개혁주의 교육을 위한 대학이 있다는 것은 좋다. 그러나 역사의 교훈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더욱 교회다워지고 개혁해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대학직영을 재검토해야 한다. 영역주권의 원리를 무시하게 될 때에 교회는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되고 대학은 바람직한 발전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번 고신총회에 대학 이사회와 신대원 이사회를 분리하자는 안이 총회 교회발전연구위원회로부터 나오게 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 안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져서 이것이 개혁주의 원리를 따라 교회생활을 정리해가는 귀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실행 됨 – 편집자) 교회가 대학이나 병원을 직접 설립하여 운영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개혁주의 원리를 따라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대학운영은 차츰 신실한 신자들에게 맡겨 운영하게 하고 교회는(총회) 이를 직영하는 데서 손을 떼야 한다.            

교회는 다만 배후에서 이 기관들을 보호하고 적극 지원함으로 개혁주의 고등교육에 협력할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더욱 교회다워져야 한다. 교회가 직접 할 일은 성경교육과 복음진리의 파수와 복음전파와 선교이다. 교회가 자기 본래의 영역으로 돌아와 자기 사명 완수에 진력할 때 밝은 미래가 열리게 될 것이다.(*) 글쓴 이 / 허순길 교수(칼빈학원 및 고려신학교 졸업, 계명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화란 캄펜 신학대학원 졸업 신학석사 1969년, 박사 1972년, 서문로교회 목사,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호주 자우개혁교회 목사,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및 원장 1988년-1999년, 2017년 1월 10일 소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