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 관점에서 본 영어성경 번역의 문제점

PART Ⅲ
1. 두 가지 성경 번역 원천(源泉)
첫째는 원어성경에도 종교개혁시대에 사용된 Received Text(Majority Text, Byzantine text)가 있어 KJV(King James Version, 1604-1611)같은 성경은 여기서 번역했고,
둘째는 19세기 중엽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Westcott-Hort’의 헬라어 신약성경 사본이 있는데 요즘 새로 나온 성경들은 대개 이것에서 번역되어 나온다.
웨스트코트(Brooke Foss Westcott, 1825-1901)와 홀트(Fenton John Anthony Hort, 1925-1901) 두 사람 모두 영국의 캠브리지(Cambridge) 대학의 교수들이었는데 이들은 나름대로 1881년에 헬라어 성경 사본(寫本)을 수집하여 그들의 성경번역 도구로 삼았다. Westcott-Hort 성경번역을 하는 사람들은 Majority Text(Byzantine text)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Received Text는 복사된 시기가 늦다는 것을 강조하며 거부한다. Received Text는 대개 6,7세기에 복사된 비잔틴계통(Byzantine text)의 사본(寫本)들이다.
그러나 사본(寫本) 시기가 늦다고 반드시 부정확한 것도 아니고 사본(寫本) 시일이 빠르다고 해서 모두 정확하다는 보장도 없다. 성경 사본의 종류에는 대개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다.
- Byzantine text,
- Western text,
- Alexandrian text
- Neutral text(중립사본)
Westcott 와 Hort는 ‘Neutral text’가 가장 원본에 가깝다고 주장했는데 중립사본에 속한 성경 사본은 알레프(א) 즉 시내사본(S. Codex Sinaiticus)과 B 즉 바디칸 사본(B. Codex Vaticanas)이다.
2. 두 가지 성경번역 원칙(原則)
또 성경 번역에도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직역(直譯, Formal Equivalency)이 있고 의역(意譯, Dynamic Equivalency)이 있다. 따라서 번역하는 사람의 철학이나 신학에 따라서 번역이 달리질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성경은 직접 원어에서 번역되어야 함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 직역(直譯, Formal Equivalency)
직역(直譯)이란 원어 성경을 번역할 때 문장의 흐름은 약간 무리가 있어도 원어에 충실하게 원어의 단어중심으로 번역하는 방법인데 예를 들면 KJV(King James Version, 1604-1611)이나 Geneva Bible(1560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번역) 성경은 직역한 성경들이다.
- 의역(意譯, Dynamic Equivalency)
의역(意譯)한 성경은 너무도 그 수가 많다. 우선 NIV(New International Version, 1978)를 들 수 있다. 그리고 Living Bible, Today’s English Bible. English Bible 등이 그러한 부류에 속한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이나 English Standard Bible 은 모두 직역한 것이지만 Received Text(RT)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3. 의역 성경 번역의 현황
성경을 의역(Dynamic Equivalency)하는 방법이 생긴 것은 오랜 된 것이 아니라 근래일이다. 1960년대에 시작되어 성경번역 학자들 사이에 급속이 번져갔다. 솔직히 성경을 번역자가 의역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지금 세계적인 성경번역 추세는 의역 법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미국의 UBS(United Bible Societies)는 모두 137개의 성서공회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200개국서 활동하는 성서공회들이다. 이들 성서공회는 지금 세계 600개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있다. 2002년 한 해 동안에 UBS가 배포한 성경의 부수는 신약만 2,500만부이다. 그리고 성경의 일부만 배포한(쪽 복음) 수는 5억 3,100만부에 달한다.
UBS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의역(意譯) 성경번역 법을 채택하고 있는데 UBS 운영비용을 대부분 담당하고 있는 미국 성서공회(ABS)가 Today’s English Bible(TEB)과 Contemporary English Bible(CEB)의 판권을 소유하고 있다. Living Bible in English(LB) 성경은 지금 전 세계에 배포되고 있는데 모두 의역의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1997년 한 해 동안 Living Bible(LB) 판매고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모두 4,000 만부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놀라운 것은 성경을 직역(直譯)하던 위클리프 성경번역위원회(Wycliffe Bible Translators)도 점점 의역(意譯) 편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점이다. 성경번역학교에서 그런 방법을 택하도록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같이 위클리프 성경번역위원회는 의역제도를 선호하고 의역으로 이루어진 Today’s English Bible(TEB)을 널리 배포 중이다.
위클리프 성경번역위원희의 영향은 대단하다. 2002년에는 무려 전 세계 70개국에서 1,500개 언어로 번역을 했다. 매년 택사스(Texas)에서 열리는 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를 통해서 성경번역에 종사하는 인재들을 교육하고 있으니 참으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또 WBT는 성경번역 교재도 집필한다. 예를 들면 John Beekman과 John Callow 같은 사람은 의역 법을 가르치는 교재를 출판하여 전 세계 모든 성경번역에 종사 하는 사람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애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목표는 효과 있는 의역 법을 추진하는 것이다.
영어 성경 중 NIV(New International Bible)와 Today’s English BIble, Good News for Modern Men, New Living BIble, Simple English Bible, Contemporary English Bible, The Message 등이 의역한 대표적인 성경들이다. 이같이 1960년대에 시작된 성경 의역법(意譯法)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행하는 성경번역 방법이 되었다.
4. 의역 성경 번역의 문제점
(1) 말씀보다 인간의 생각이 중심
성경을 의역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고 교리가 모호해 진다. 성경 의역법(意譯法)은 말씀보다도 인간의 생각을 중심으로 하는데 문제가 있다. 성경은 인간의 생각을 전하는 문학작품이 아니다. 신학을 연구하려면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어떤 단어가 사용되었는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의역법을 쓰면 그런 것을 알 도리가 없으니 교리가 흐려진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왜 사람들이 의역법을 선호하는가? 대답은 인간적인 친밀감이 있고 인간 이성(理性)에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2) 단어중심이 아니라 사상중심
성경번역가인 Kenneth Taylor나 Eugene Nida같은 사람은 말하기를 본문의 사상(思想)을 번역하고 그 사상을 오늘의 형편에 맞게 번역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사상 중심이며 성경의 단어(單語)는 사상을 전달하는 매체이므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단어 대 단어 번역’이 아니라 ‘사상 대 사상 번역’을 추구한다.
그러나 성경의 단어(單語)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들의 주장은 수긍 할 수 없다.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 정확한 이유를 알아야 바른 번역이 나온다. 이 점을 의역(意譯) 주의자들은 모르고 있다. 대개 의역판(意譯版) 성경을 보면 사상만을 전달하려고 하기 때문에 단어를 무시하는데 그러나 “사용된 단어를 무시하고 어떻게 바른 사상을 전달 받을 수 있는가?”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의역법(意譯法)을 택하는 사람들은 모두 성경의 원문(原文)에 충실 한다고 말은 하지만 성경의 단어 하나하나에 충실하지 않고 정확한 의미를 알 길이 없다. 원어성경에서 단어를 무시하면 필연코 성경의 의미를 변경(變更)하게 된다. 변경된 번역은 성경도 아니고 사람의 말에 불과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이는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3) 의미 전달이 제한 된 단순한 언어와 문체
또한 의역 번역을 하는 사람들은 번역 과정에서 줄곧 단순한 언어와 단순한 문체를 사용하려고 한다. 심지어 Lynn A. Silvernale이라는 인도선교사는 인도의 Bengal어로 성경을 번역하면서 하는 말이 “이 지방에는 모두 문맹자이고 글을 아는 사람은 20%도 안 되므로 우리는 성경번역에서 초등학교 4학년 정도의 단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있다.”(BY THE WORD PP. 25)라고 말하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의 말로 성경을 번역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의역법은 문제가 많다는 말이다. 성경에는 목사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있는데 어떻게 초등학교 4학년 수준으로 낮추어서 번역할 수 있는가? 이는 언어도단이다.
Berno Ramaker가 화란어로 번역한 Dutch Living Bible은 “13살 먹은 어린이들도 읽을 수 있게 하자!”고 하여 아주 쉬운 말로 번역했는데 결과 13살짜리 어린이가 모두 다 이해한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되어 많은 사람들은 “13살 먹은 어린애가 창세기에 나오는 어려운 말을 목사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모두 알아들었을까?”하고 의문을 제기 했더니 번역자가 하는 말이 “애들이 알기에 어려운 것은 모두 삭제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인가?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멋대로 잘라 버려도 된다는 허락을 했는가? 하나님은 그런 허락을 하신 적이 없다. 인간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마음대로 편집할 수 있는 자유와 권한이 있는가? 그런 권한이 인간에게는 없다.
(4) 원문의 가감(加減)과 변형(變形)
의역법은 단순한 단어와 단순한 문체를 사용하여 모두 이해하기 쉽도록 한다고 주장한다. 조간신문을 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조간신문을 누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보는가? 한번 보면 그만이다. 성경은 한 번 보고 버리는 조간신문이 아니다. 성경을 번역하는 자는 성경에서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加減)없이 들어야 하는데 의역하는 자는 모두 삭제하거나 가감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들을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성경은 사람이 제멋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택해주신 단어로 기록한 것이며 단어 하나하나에 뜻이 분명하다. 예를 들면 ‘아가페’(agape), ‘필로’(philo) 등을 보라.(요 21장) 베드로와 부활하신 주님의 대화를 보라 의역법을 배격해야하고 의역법으로 번역한 성경은 읽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의역한 성경은 마귀의 작란이다.
의역법을 사용하는 번역 방법은 불신자로 하여금 성경을 이해하도록 하는 목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신자에게 전도한다는 미명으로 그의 말씀을 번경해도 된다는 허락을 하신 적이 없다. 계시록 22:18,19 말씀을 읽어보라.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하나님 무서운 줄을 모른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잠 30:5,6)
성경을 의역하는 사람들은 교사(敎師)와 번역자(飜譯者)의 일을 혼동한다. 번역하는 사람은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해야 되고 교사는 그 번역문을 설명하면 된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번역하는 사람이 성경을 해석까지 하면서 자기의 생각을 번역에 포함시킬 권한이 없다. 해석은 가르치는 교사가 할 일이다. 주객이 전도될 수도 없고 월권행위를 해서도 안 된다. 번역자에게 그런 권한이 주어진 적이 없다.
(5) 의역 법은 전통적 교회용어를 피한다.
성경에서 칭의, 성화, 성도, 구속, 속죄, 장로, 집사, 목사 등의 단어가 누락된다. 이 단어들이 신학적으로 얼마나 중요한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런 단어들을 누락하면 신학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가령 가장 최근에 나온 ‘Contemporary English Version’(CEB)에 사용된 다음 문장을 보라. 다음 번역을 대조 해 보라.
- 계시록 22:21
KJV :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be with you all
CEB : I pray that the Lord Jesus will be kind to all of you
- 여기서 ‘은혜’(The grace)라는 말은 단지 ‘친절하다’는 말이 아니다.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런 단어를 삭제하고 ‘친절’(kind)이라는 말로 대체하는 것은 성경의 원(原) 의미를 잠식(蠶食)하는 것이다.
- 에베소서 2:8
KJV : For by grace have you been saved through faith
CEB : You were saved by faith in God’s kindness
- 이것은 성경원어의 의미를 아주 왜곡한 것이다. 첫째 완료시제인 ‘you have been saved’를 과거시제로 고친 것이며 ‘through the faith’를 ‘by the faith’로 고친점이 다르다. 믿음은 수단이다. CEB에서는 믿음은 수단이 아닌 행위자로 둔갑했다.
- 빌립보 1:1
KJV : bishops and deacons
CEB : all of the church officials and officers
- 이 번역은 교회에서 장로와 집사를 혼동하게 만든다.
- 빌립보 1:1
KJV : Saints in Christ
CEB : all of God’s people who belong to Christ Jesus
- 로마서 3:10
KJV : none righteous
CEB : none acceptable to God
- 번역자가 해석까지 해 놓았다.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 해석하여 번역한 것은 진정한 의미가 아니다.
- 로마서 3:24
KJV : being justified freely
CEB : he freely accepts us
- ‘justification’이란 의롭다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선언해 주신다는 의미인데 그 말이 없어졌다.
(6) 의역법은 성경을 문화에 동화(同化) 시킨다.
의역법은 문화에 동화(同化)하는데서 비(非) 성경적이다. 성경을 문화에 동화시킬 수 없다. 문화가 성경을 따라가야 한다. 문화에 맞게 해석한다고 하면서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이나 야곱이 천사와 씨름한 것은 심리분석학적 측면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말고 문화에 맞게 동화해야 한다.”고 한다. 입으로는 성경에 충실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충실하지 못하다.
북인도에서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이 생각하기를 이 지방에 사는 사람은 양을 번제물로 드린 적이 없으니 양을 희생물로 드린다는 말을 모르지만 이 지방에서는 이방신에게 제사할 때 수탉을 사용하므로 요 한복음 1:29 말씀을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수탉이로다.”라고 번역했다고 한다. 이처럼 문화에 동화하는 자유주의자들의 퇴폐적 성경 번역 방법이다. 성경에서 ‘양’은 독특한 의미를 가진다. 도저히 ‘수탉’이 ‘양’을 대신할 수 없다.
눈이 안 오니 눈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성경을 번역하면서 이사야 1:18을 “너의 죄가 주홍 같아도 코코넛 속처럼 희어 지리라.”라고 했다고 한다. 코코넛 속도 희고 눈도 희지만 양자는 다르다. 눈은 우리를 정결케 해주는 뜻이 있지만 코코넛이나 솜뭉치는 그렇지 못하다. 여기에서 예를 든 것처럼 한 단어를 고치면 의미에 있어 그 여파가 대단함을 본다.
의역법을 하는 사람들은 그 당시 살던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기록된 것으로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이런 사고방식이 지배적이다. 이 말은 진리가 아니다. 독자가 아는 말로 씌어 진 것이 아니다. 성경 저자들이 사용한 말들이 모두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알아듣는 말이 아니다. 어떤 말은 알아듣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가령 ‘파루시아 에이레네’(parousia, eirene) 같은 말은 보통 사람들은 각각 “왕이 행차 하신다.” “무지개의 아름다운 색깔” 등으로 알아듣지만 성경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인다. 전자는 ‘주의 재림’ 후자는 ‘평화, 화평, 평안, 평강’의 의미로 쓰인다.
성경을 연구하지 하지 않고 이런 말들을 성경을 처음 읽는 자들이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러므로 성경을 기록할 당시 성경 기록자들이 사용하는 모든 단어나 문장을 모든 사람이 알아들었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잘못이다. 성경 기록자 자신도 베드로전서 1:10,11에 보면 자신이 하는 말을 이해 못했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 하니라.”(벧전 1:10,11)
또 사도 베드로는 사도 바울이 하는 말 중에 심히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 있다고 했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6)
예수님의 비유를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말도 틀린 말이다. 예수님의 비유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믿는 자에게는 계시를 알려주고 불신자에게는 진리를 감추는 것이다.(마 13:10-13) 그러므로 모든 성경은 성경이 기록 될 당시의 원래 독자가 모두 알아들었다는 말은 거짓이다. 성경의 모든 언어가 그 당시 모든 사람이 알아듣던 말이 아니다.
모세의 율법을 보라. 그의 성막을 보라. 제사장 제도를 보라. 제사법을 보라.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시내 산에서 계시로 주신 것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대부분의 계시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알고 있던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늘의 모형이다.(히 9:23 참조) 율법의 세미한 부분 제사장 제도와 성막과 제사법 등이 이스라엘 문화에 동화되어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 문화가 이 계시된 말씀에 입각하여 조성된 것이다. 혼동하지 말자.
5. 성경을 문화에 동화시킬 수 있는가?
요즘 시대가 바꾸어졌으니 성경도 시대에 맞게 변개하자 는 주장은 비성경적이다. 하나님이 그런 허락을 하신 적이 없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 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알아두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소요리문답 제56문을 보라.
성경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을 기록할 때 모든 내용을 모든 사람이 이해한 것이 아니다. 그들도 교회에 대한 일이나 구원, 속죄. 칭의 성화 세례 성찬식 등에 대한 지식은 우리와 같았다. 우리가 배워서 아는 것처럼 저들도 성경공부를 통해서 배웠다. 특히 알아야 할 것은 심지어 보통 쓰는 말도 성경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됨을 저들이 알아야한다. 가령 앞서 언급한바 있는 ‘파루시아’(Parousia), ‘에이레네’(eirene)와 같은 단어를 생각한다. 이런 말들은 보통 쓸 때와 성경에서 사용될 때 각각 의미가 달라진다.
세상의 문화는 하나님을 떠나서 인간의 생각대로 만들어졌다. 거기에 성경을 맞출 수 없다. 성경에 문화를 맞추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요 17:14,16) 그러므로 성경의 어떤 부분은 어린애도 알 수 있고 어떤 부분은 상당히 유식한 사람도 힘들다. 헬라어를 공부하는 학생은 요한복음을 잘 해석해도 바울 서신이나 누가복음은 어렵다. 문체(文體, style)와 단어(單語, vocabulary)가 다르고 깊은 신학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간소화하지 않은 것을 인간이 마음대로 간소화할 수 없다. 간단히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하나님이 간소화하지 않는 것을 인간이 간소화하는가? 누가 그런 권한을 주었는가?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운가?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가?
(1) Good News for Modern Man
또한 요즘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매상고를 높이고 있는 소위 TEV(Today’s English) 일명 ‘Good News for Modern Man’이라는 성경 판을 보도록 하자. 이 성경이 얼마나 기독교의 교리를 오도(誤導)하는가를 성경 구절들을 예로 들어 보고자 한다. 이 성경의 특징은 대부분 ‘그리스도의 피’(haima tou Christou)에서 ‘haima’(피)를 번역도 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생략했다는 점이다.
TEV(Today’s English Version)은 가장 성경 원래의 의미를 왜곡하여 번역한 성경으로 절대로 사용해서 안 되는 성경이다. 1966년에 나온 이 성경은 모든 성경 중에서 가장 성경의 정확한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도록 교묘하게 번역한 번역판으로 금지시켜야 할 성경이지만 놀라운 것은 무서운 속도로 이 성경이 세계에 보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71년 현재 미국 성서공회에서 발행하는 ‘Record’라는 잡지의 보도에 의하면 일 년에 3,00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이 성경이 천주교에서도 아무 문제없이 수용한 문자 그대로 ‘에큐메니칼적’이라는 점과 또 한 가지는 ‘매우 읽기가 쉽다’는 이유에서이다.
물론 이 성경은 세계적인 연합성서협회(United Bible Societies)의 재정 지원을 받는 미국 성서공회(American Bible Society)에서 펴내고 있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그리고 그 어느 버전보다 가장 많은 부수가 보급되어가는 것이 바로 ‘Good News for Modern Man’(TEB, 현대인을 위한 좋은 소식)이라는 성경인데 이는 성경 번역의 원칙에서 ‘단어 대 단어’ 번역이 아닌 순전히 사상만을 전하는 의역한 성경으로 번역(飜譯, translation) 보다는 차라리 개작(改作, paraphrase)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개작(改作) 해서 읽어서는 안 된다.
첫째, 하나님이 성경을 개작해도 좋다는 그런 권한과 자유를 우리 피조물인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다.
둘째, 하나님의 특별계시(성경)는 원본에 단어 하나에 이르기까지 완전 영감으로 정확무오하게 취사선택 후 말씀하여 기록하게 하셨는데 개작’(改作)을 해서 사상만 전달 받으면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알 수 없게 되므로 성경이 성경의 역할을 못한다.
그런데 통탄스럽게도 오늘 날 이런 성경은 그 수가 허다하다. 가령 ‘Living Bible’도 그런 모양이고 ‘Bible in Today’s English’라는 성경도 그렇고 ‘English Bible’이라는 것도 그렇고 ‘Contemporary Bible’은 더 악명 높은 영어 성경이다. 그러면 ‘Good News for Modern Man’(TEV)가 성도들에게 왜 해로운가를 보도록 하자.
무엇보다도 의역의 성경 번역 철학을 택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단어 대 단어’(word-to-word) 번역이 아니라 ‘사상 대 사상’(thought-to-thought) 번역이기 때문에 성경원어의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 때문인데 다음에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 요한복음 1:1
TEV : Before the world was created, the Word already existed; he was with God.
KJV :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 여기서 문제는 TEV에는 ‘Before the world was created’라는 말을 첨가했는데 왜 원문에 없는 이 말을 왜 첨가했을까? 하나님은 시작한 때가 없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분인데 하나님을 세상이 창조되기 전 어느 시점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성경을 오도함이 분명하다. 고로 이런 성경은 사용하면 안 된다.
- 빌립보서 2:6
TEV : He always had the nature of God, but he did not think that by force he should try to become equal with God.
KJV : Who, being in the form of God, thought it not robbery to be equal with God.
-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주님은 바로 하나님 그분인데(KJV) TEB 에서는 몰몬교의 주장처럼 예수님을 단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하나님과 비슷한 분이라는 오해를 갖도록 모호하게 말하고 있다.
- 사도행전 20:28
TEB : So keep watch over yourselves and over all the flock which the Holy Spirit has placed in your care. Be shepherds of the church of God, which he made own through the sacrificial death of his Son.
KJV : Take heed therefore unto yourselves, and to all the flock, over the which the Holy Ghost hath made you overseers, to feed the church of God, which he hath purchased with his own blood.
-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교회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사신 귀한 성도들을 말함인데 TEB는 이 점을 간과하여 ‘그의 희생으로’라는 말로 대체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삭제해 버렸으니 이는 졸역이고 사용해서는 안 된다. TEV에는 예수님의 ‘피’라는 원문의 단어(haima)를 모두 고의적으로 삭제했다. 이는 개혁주의 성도로서 용서 할 수 없는 죄이다. 특히 묵과할 수 없는 것은 누가복음 1:27이다.
- 누가복음 1:27
TEB : He had a message for a girl promised in marriage to a man named Joseph, who was a descendant of King David. The girl’s name was Mary.
KJB : To a virgin espoused to a man whose name was Joseph.
-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알리는 중요한 말씀이다. 핵심은 그냥 ‘소녀’가 아니라 ‘동정녀, 처녀’와 혼약했다는 말인데 그 말을 TEB는 삭제해 버리고 엉뚱한 ‘girl’이라는 단어로 대체했다. 마치 구약 이사야 7:14 절에서 ‘처녀’라는 말(원어에서 비툴라)란 말을 그냥 ‘young woman’으로 번역한 사례 같은 경우이다. 그 성경구절에서 ‘처녀’라는 원문의 단어는 그저 보통의 젊은 여자가 아니다 ‘동정녀, 처녀’라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여기 TEB 에서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교리를 모호하게 만드는 실수를 범했으므로 읽어서는 안다.
그러면 이 ‘Good News for Modern Man’(TEV)를 번역한 Dr. Robert Bratcher 라는 사람의 신학은 어떠한가? 우리가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의 신학을 아는 것은 그 번역된 성경의 성격을 아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 Bratcher는 미국 성서공회에 전속되어 있는 수석 성경 번역관이다. 그는 1970년 10월 15일 South Carolina 주 North Augusta라는 도시에 있는 제일침례교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일문일답했다고 Donald T. Clark가 쓴 ‘Bible Version Manual’(Millersburg : Bible Truth Institute, 1975년 간행)라는 책의 98,99면에서 발표하고 있는데 그의 대담은 걸작 중 걸작이다.
기자 : TEV 성경을 번역하면서 로마서 5:9절과 14절 또 그 밖에 여러 곳에서 ‘blood of Jesus Christ’라는 말을 왜 삭제했는가?
대답 : 그것은 번역상의 문제이다.
기자 :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가?
대답 : 그런 질문엔 대답 안한다.
기자 :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 중심인가 아니면 인간중심인가?
대답 : 그런 것 묻지 말고 성경번역에 관한 것만 이야기 하자.
기자 :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같은가?
대답 : 예수는 하나님과 같은 인격을 가진 분이 아니다.
기자 : 오늘 죽으면 당신은 천당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답 : 나는 그런 질문에 대답 안한다.
이런 사람이 성경을 번역하다니 천인공노할 노릇이다. 요즘에 나오는 성경번역을 모두 바른 검증 없이 믿을 수 있을까? 이런 사람이 번역한 ‘Good News for Modern Man’ 즉 ‘Today’s English Version’ 성경을 교회에서 목사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교인들에게 권한다면 그는 모든 교인들에게 독약을 먹이는 사람이다.
6. 필자가 추천하는 영어 성경
영어로 발행되는 성경 종류는 지금 줄 잡아 120가지나 된다. 그 중 KJV(King James Version), ASV(American Standard Version), NASV(New American Standard Bible) 등은 필자가 추천할 수 있는 좋은 번역의 영어성경이다. 요즘 ESV(English Standard Version) 영어성경이 나왔는데 적극 추천하는 일명 ‘Reformation Bible’이라고도 한다.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혹독하게 이 성경을 비난한다. 이유는 도무지 에큐메니칼운동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번역했다는 점과 또 어려운 성경 용어들을 쉬운 현대어로 풀이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지만 오히려 그런 비난들은 축복의 찬사로 들리며 그 성경의 진가를 높여 줄 뿐이다.
필자도 어느 분으로부터 선사받아 지금 참고하고 있는 중인데 큰 도움이 된다. 또 미국 창조과학회(Institute of Creation Research)에서 나온 ‘Defenders’s Bible’도 상당히 도움이 되는 좋은 성경이고 요즘 ‘King James Version’(1611)만 진짜이고 나머지는 ‘사탄의 성경’이라고 매도하는 그릇된 무리도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견해이고 물론 KJV이 단어 대 단어로 직역(直譯, Formal Equivalency) 철학으로 번역한 점은 인정하지만 KJV가 완벽하다고는 주장할 수는 없다.
번역판 성경은 어느 성경도 완전할 수가 없다. KJV에는 약 50개의 단어가 현대의 의미와 다른 점도 문제가 된다. 그러나 KJV로 자라면서 KJV에 익숙하여 성경구절을 외운 사람들은 좀처럼 다른 성경으로 바꾸려 들지 않고 애착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가 NASV와 루터(Martin Luther)의 성경을 사랑하여 집착하는 것과 같다.
KJV는 1611년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Ⅳ세(Scotland James VI)가 잉글랜드와 나라를 통합 한 후 잉글랜드 왕 제임스 Ⅰ세(England James I)로 영국의 왕이 되어 당시 가장 높이 평가 하는 1560년 제네바(Geneva)에서 발행 된 ‘Geneva Bible’(Scotland는 이 성경으로 인하여 종교개혁에 성공함)에 시기가 나서 그 보다 더 좋은 성경을 만들자고 하여 학자들을 초청하여 출판 한 것이 1611년 빛을 본 KJV 영어성경이다.
결론
요즘 개혁주의 진영에서는 바싹 긴장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언제 주님이 홀연히 오실지 모르니 말이다. 어디를 가도 무슨 책을 보아도 전부 성경을 떠났고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위크리프 성경번역위원회(Wycliffe Bible Translators)마저도 이전에는 직역(直譯)을 위주로 해왔지만 지금은 모두 성경을 파괴하는 의역(意譯)만 하려하고 있는데 이는 이제 더 이상 기독교의 정통을 사수 하는 성경번역 기관은 이 세상에 없다는 증거로 땅을 치며 통곡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서점을 나가 요즘은 모두 이런 종류의 성경 일색이다. 따라서 말씀이 바로 전해지지 않으니 교리가 무너지고, 교리가 무너지니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못하고 사회 윤리 도덕이 무너지고, 이단들이나 사이비 종파가 우후죽순처럼 창궐하고, 결국 기독교가 결단난다. 물론 그 전에 주님이 재림하시지만 지금은 가장 어려운 때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거듭난 성도들은 울며 기도해야 한다. 지금은 이 땅에 아무도 믿을 자 없다. 그리스도를 바로 알아야 한다. 지금은 교리공부와 교리설교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 교리설교를 하는 교회가 우리 주변에 과연 몇 교회나 되는가? 부흥회는 교리를 설명해야 하는데 비성경적인 신비주의나 기복신앙과 오락성 만담이나 희극 일색이다. 이런 가운데 교인들이 어떻게 믿는 도리를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지어다.”(히 4:14)
영국의 종교개혁자인 틴데일(William Tyndale, 1494-1536)은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 영어로 성경을 번역했는데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책임질 것을 안다. 세상에 있는 어떤 쾌락이나 명예나 부귀를 다 준다 해도 성경의 한 구절도 양심에 어긋나게 변개(變改)하여 번역한 적이 없으며 오늘도 변개하지 않으리라.”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한 사실을 아는가? 65성경 의역은 하나님이 금하신다. 말세의 사람들이 성경의 의미를 모호하게 하려는 사탄의 계교이다. 단연 배격해야 한다. 직역한 성경을 읽자. 영어 성경은 ESV(English Standard Bible)가 좋다. 이 성경은 근래에 나온 직역 성경으로 일명 ‘Reformation Bible’이라고 불리는데 개혁주의를 지지하는 성도들이 애용하는 성경이다. 한글 성경은 ‘톰슨 성경’이나 ‘엠마오 성경’ 등을 권할 수 있다.(*) 글쓴 이 / 김명도 박사(1935-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