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설교방법
– 성령은 방법을 무시하지 않는다. –
지금까지 우리는 개혁주의 신학에서 말하는 설교에 대한 이해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어 왔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실제적인 설교 작성에 관한 기술적 측면들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아무리 좋은 설교신학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설교문 작성과 전달을 통해 회중의 가슴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도달하지 않는다면 설교자의 수고는 헛된 일이 되고 만다. 네덜란드의 개혁주의 설교학자인 트림프(C. Trimp) 교수는 자신의 ‘설교학 강의’ 서문에서 “성령은 방법을 무시하지 않으며 또 방법의 부족으로 인해 성령의 역사가 방해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 가운데 설교문 작성의 중요 단계들을 서술해 갈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목적만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들 즉 그리스도의 대속을 위한 십자가 죽음, 부활 그리고 교회를 통한 복음 전파라는 수단과 방법까지 예정하셨다. 그러므로 성경 시대에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과 전도자들을 통해 구원 사역을 친히 행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21세기에도 친히 택하신 일꾼들을 통하여 인류의 구원 사역을 계속 진행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설교하기 위해 구체적인 설교문 작성의 단계들을 유념해야 한다.
(1) 설교를 위한 본문 선택
사실상 설교 준비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본문을 선택하는 일이다. 19세기 설교의 황태자라 불리던 찰스 스펄전조차 설교 본문을 선택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고백한다. 왜냐면 설교란 회중들이 현재 처한 상황에 적실한 본문을 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앞서 다루었던 청중 분석의 필요성을 다시금 절감하게 된다.
하지만 청중의 필요를 고려하되 청중들의 변덕스런 취향에 염두를 두어서는 안 된다. 개혁주의 설교는 청중들의 가려운 귀를 시원하게 하는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설교여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펄전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함으로써 회중의 필요를 고려하는 본문 선택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조언한다.
본문 선택의 어려움은 설교자 모두가 예외 없이 겪는 고통이다. 회중의 영적 성장을 고려하는 지혜로운 목회자라면 본문을 아무렇게나 선택할 설교자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의 선택은 그저 아무렇게나 성경 본문을 뒤적이다가 자기 눈에 드는 본문을 택하는 것이 아니다. 설교 준비를 위한 본문 선택에 왕도(王道)가 있다면, 설교자가 평소에 성경을 꾸준히 읽으며, 동시에 목자의 심정으로 성도들의 삶에 겸손히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2) 설교 본문 선택이 어려운 이유
꾸준히 성경을 읽거나 연구하지 않는 설교자들은 목회 현장에서 주일 설교를 위한 본문 선택의 어려움으로 그만 귀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금요일 저녁에서야 겨우 자포자기하듯(?) – 다른 본문을 택해야 할 별다른 뾰족한 묘수가 없으므로 – 하나의 본문을 택하여 급하게 설교문 작성에 씨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안타깝게도 이런 현상을 반복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평소에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지 않고 깊이 연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서 스펄전 역시 본문 선택의 어려움을 호소하였다고 언급하였다. 하지만 그의 호소는 성격상 일반적 경우와 다른 독특한 경우이다. 왜냐면 그는 설교 본문 선택에 있어서 ‘빈곤함에서 오는 괴로움이 아닌 풍부함에서 오는 곤혹스러움’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펄전이 본문 선택에 어려움을 겪었던 까닭은 무엇을 설교해야 할지 설교 본문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너무 많은 본문 가운데 어떤 본문으로 설교를 해야 좋을지 몰라서 선택해야 하는 어려움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판 안델(J. van Andel)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본문 선택의 어려움을 지적한다. “강단에 서야만 하기에 우리가 본문을 찾아서는 안 되고, 본문이 있기 때문에 강단으로 가야 한다. 계속 연구를 하는 사람은 본문이 적어서가 아니라 본문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설교자에게 있어서 본문 선택은 가장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또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왜냐면 본문 선택은 앞으로 진행될 설교문 작성 전체와 작성된 설교문의 전달 그리고 예배 전체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본문 선택으로 이미 설교의 목적과 적용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설교가 성경 본문에 기초를 두는 한 선택된 본문의 중심 주제는 설교의 주제를 형성하고 결국 설교의 적용까지 나아가 설교의 목적을 달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설교자는 설교를 위한 본문 선택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설교 준비에서부터 설교 전달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그리고 시종일관 기도하는 것이 설교자의 책임이요 의무이며 설교자의 믿음의 자세이다.
앤드류 블랙우드(Andrew W. Blackwood) 역시 설교에 있어서 기도를 강조한다. 그는 모든 설교자가 자신의 방법으로 메시지를 준비해야 하고, 때때로 그의 목적과 재료들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코 예외 없는 하나의 규칙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진행하고, 기도로 끝을 마치라.”는 것이다.
13. 설교와 성령님의 사역
– 성령님은 ‘말씀과 함께’(cum verbo) ‘말씀을 통해’(per verbum) 일하신다. –
설교자가 설교문을 작성하기 위한 첫걸음은 본문 선택에서 시작된다. 본문 없이 설교할 수는 없는 것일까? 설교자가 본문을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필자는 최소한 두 가지 이유로 설교자가 반드시 본문 선택을 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1) 설교는 성경에 근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 본문 없이 설교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독교 설교의 독특성을 상실한 것이다. 기독교 설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본문을 해설하고 성경의 가르침과 교훈을 성도들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바람 부는 날 연을 만들어 하늘 높이 날려 본 경험이 있는가? 갖가지 모양의 연들이 하늘 높이 날고 멋지게 춤을 추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경험이다. 갑자기 연날리기 추억을 이야기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연이란 자고로 연을 날리는 주인의 손에 연결된 줄에 매여 있을 때만 창공을 차고 높이 오를 수 있다. 때로 연줄이 서로 얽혀 공중에서 연싸움이 벌어질 때 줄이 끊어진 연은 제아무리 멋지고 든든한 태극형 연이라 할지라도 힘없이 휘청거리다가 여지없이 이내 바닥에 고꾸라지고 마는 법이다.
설교도 마찬가지다. 설교가 본문에서 떠나게 되면 하나님 말씀의 봉사라는 고유한 정체성을 상실한 채 더 이상 하나님 말씀의 설교일 수 없다. 교회 역사 가운데 등장한 16세기 재세례파(再浸禮派, Anabaptist) 혹은 신령주의자(神靈主義者)들의 오류는 다름 아닌 기록된 성경을 무시한 처사였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말씀 없이’(sine verbo)로 지칭된다. 그들은 오로지 성령과의 직통(直通), 성령의 내적 조명을 통한 새로운 계시만을 열렬히 강조하면서 문자는 죽은 것이라고 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무시했다. 그러므로 설교는 언제나 ‘구원에 이르는 지혜’(딤후 3:15)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성경 본문에 기초해야만 한다.
(2) 설교는 성경을 해석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설교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 본문을 해설하고 그 교훈을 성도들의 삶에 적용할 때 성경의 저자 되신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회중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또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그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구원의 은혜들을 베푸시기 때문이다. 여기에 설교의 신비가 담겨 있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할 때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그 설교를 사용하시어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 성령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과 함께’(cum verbo) 일하시고 또한 ‘말씀을 통해’(per verbum) 일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교자의 임무이자 의무는 반드시 성경 본문을 강해(講解)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리하면 성령께서 설교자의 수고를 사용하시어 친히 그 기뻐하신 뜻을 따라 ‘신비롭게’ 구원의 은혜를 나누어주신다.
화란 개혁주의 설교학자 트림프(C. Trimp)는 본문 선택을 위한 세 가지 방식 즉 ‘페리코프’(pericope), ‘연속적 성경읽기’(lectio continua), 그리고 ‘자유로운 본문 선택’을 소개한다.
⓵ 페리코프
문자적으로 말하면 하나의 책 전체에서 ‘도려낸 한 부분’(a part of cutting-out)으로 페리코프 조직은 매 주일에 일 년 동안 설교할 본문을 미리 정해 놓은 것이다. 이 같은 ‘페리코프’ 사용의 대표적인 장단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페리코프의 장점은 설교자의 본문 선택의 독자적(獨自的) 임의성(任意性)을 배제하고 기독교 교리 전체를 해마다 설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점으로서 미리 정해진 ‘페리코프’는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해야 하는(행 20:27) 설교자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 걸림돌이 되며, 동시에 회중이나 세상에서 발생하는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시의적절한 기독교적 응답을 가로막기도 한다.
⓶ 연속적 성경 읽기
회중과 설교자의 성경 지식의 증대를 위해서는 아주 유용하지만 때때로 ‘피곤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라고 트림프는 평가한다. 왜냐면 이런 방식의 본문 선택에 따른 설교는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의 말처럼 마치 가족에게 저녁 식사로 처음 몇 달 동안 빵만 주다가 그 후 몇 달 동안은 채소만 주고, 다시 몇 달 동안 고기만 제공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⓷ 자유로운 본문 선택
트림프는 ‘자유로운 본문 선택’을 가장 좋은 것으로 옹호하는데 페리코프의 단점을 단번에 일소하고 설교자의 직무를 온전히 수행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즉 설교자가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해야 하며, 오늘날 회중들 현재의 삶을 십분 고려한 본문 선택에 따른 설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본문 선택’이 모든 위험에서 면제된 것은 아니다. 설교자의 ‘자유’가 갖는 일방성과 편파적 독단성을 주의해야 한다.
이런 위험을 보완하기 위해 개혁교회는 기독교 교리 전체를 포괄하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나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을 매 주일 오후 예배 시 설교하되 매년 반복한다. 특별히 한국의 장로교회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쌍벽을 이루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경륜 전체를 가르치고 설교할 수 있다. 게다가 설교자는 교회력을 고려한 설교, 혹은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한 시리즈 설교를 통해 ‘자유로운 본문 선택’이 갖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14. 설교는 ‘산탄’이 아니라 ‘총알’이다.
(1) 한 본문에 하나의 주제만 설교하라.
설교가 기초해야 할 본문은 기본적으로 사고(思考)의 한 단위를 지녀야 한다. 훌륭한 설교는 언제나 한 번의 설교에 하나의 주제(主題)만을 취급하기 때문이다. 비록 설교가 3대지 설교라 할지라도 하나의 초점을 지닌 하나의 주제만을 다루어야 한다. 결코 ‘한 지붕 세 가족’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옛말처럼 우물을 파더라도 한 우물을 파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맨손으로 잡는 일은 쉽지 않다. 아니 헛수고만 할 뿐이다. 어릴 때 태양이 뜨겁게 쬐는 날 볼록렌즈를 들고 종이를 새까맣게 태워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아무리 태양이 뜨거워도 그리고 아무리 커다란 볼록렌즈가 있어도 하나로 초점(焦點)을 맞추지 않으면 종이는 결코 타는 법이 없다.
해돈 로빈슨이 정확하게 표현했듯이 설교는 ‘산탄’(霰彈)이 아니라 ‘총알’처럼 ‘총알’이 정확히 표적에 맞아야 한다. 따라서 하나의 설교에서 하나의 주제를 취급하기 위해 설교자는 단일 사고단위가 되는 본문을 설교 본문으로 선택해야 한다. 주제가 여러 개 포함된 너무 긴 본문은 청중들의 혼동만 초래할 뿐이다. 혹은 그와 정반대로 선택된 본문이 너무 짧아 단일 사고단위를 구성하지 못하면 초점 없는 혹은 한쪽으로 기우는 편협하고도 불완전한 설교에 그치고 말 것이다.
오늘날 성경에는 단일 사고(思考) 단위를 보여주는 표(○)가 표시되어 일반적으로 설교자의 본문 선택을 도와주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단일 사고 단위를 보여주는 본문이 언제나 반드시 하나의 설교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본문 주해를 통해 얻은 석의(釋義) 주제가 있는가 하면 석의 주제와 연관되어 청중들에게 적용된 설교주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즉 단일 사고(思考) 단위를 보여주는 ‘이야기’(narrative) 본문에서 설교자가 목회적 관점을 가지고 어느 곳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두 개 혹은 세 개의 설교문 작성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5장 1-11은 어부 베드로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사건을 소개한다. 설교자는 이 본문에서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린 장면에 초점을 맞추어 설교할 수 있다.
혹은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던 베드로가 그물이 찢어지고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은 뒤 “주여 나를 떠나소서!”라고 고백했던 장면에 초점을 맞추어 또 다른 설교를 할 수도 있다. 많은 고기를 잡은 것에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자신에게서 떠나기를 요청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마지막으로 베드로가 기적적인 고기잡이를 경험한 후 해변에 ‘고기잡이배를 버려두고 따르니라’에 초점을 맞추어 주님을 따른다는 의미에 대해 설교할 수도 있다.
(2) 선택한 본문을 충분히 연구한 후 해석하라.
설교를 위한 본문 선택이 이루어졌으면 그다음 본문 연구가 뒤따른다. 본문 연구는 본문 읽기와 본문의 주해, 그리고 주제와 대지를 선정하는 작업을 포함한다.
⓵ 본문 읽기
본문 읽기는 무엇보다도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동시에 선택된 본문의 문맥을 살피기 위해 앞뒤에 기록된 본문들도 함께 살펴야 한다. 특히 본문 읽기는 본문의 내용 파악 및 주제를 얻기 위한 기초 과정이자 필수 과정이므로 본문 읽기에 시간을 아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본문이 최소한 입에 붙도록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때때로 설교자가 성경 본문을 낭독할 때에 부드럽게 진행되지 못한 경우를 보는데 이것은 설교를 위한 본문 읽기가 소홀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본문 낭독의 버벅거림은 청중들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하고, 때때로 설교자의 준비 부족으로 비쳐 설교 청취에 악영향을 미친다.
⓶ 원어로 성경 읽기
본문 읽기는 무엇보다도 원어 성경을 일차적으로 읽어야 한다. 설교자가 원어 성경을 반드시 읽어야 할 까닭은 본문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달라스신학교 신약학 교수인 해롤드 회너(Harold W. Hoehner) 박사는 원어 성경 읽기를 컬러 TV 시청에 비유한다. “Color TV는 흑백 TV로는 보여줄 수 없는 생생하고 정확한 영상을 비추어준다.” 물론 성경 원어인 히브리어, 헬라어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 설교자가 원어 성경을 통해 연구하는 일은 비록 낯설고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려도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번역 성경이 말해주지 않는 것도 발견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린다.
예를 들어 창세기 37:19의 요셉의 형제들이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라는 구절에서 ‘꿈꾸는 자’는 분명코 중립적 의미가 아닌 요셉을 향한 형들의 비아냥과 조소가 섞인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즉 ‘꿈의 ‘대왕’(בַּעַל, 바알)이 오는도다.”
원어로 읽을 때 얻는 또 하나의 유익은 한글 번역 성경에 드러나 있지 않은 원어의 구체적 단어들(예를 들어, γαρ ‘왜냐하면’)을 확인할 수 있기에 훨씬 더 명확하게 본문을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본문 읽기는 설교자 자신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외국어 번역본(영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화란어 등)을 참조하여 읽는다. 각각의 번역본은 나름대로 번역원리를 가진 특징적 번역이므로 비교, 참조해서 읽고 연구하면 본문의 의미 파악에 매우 유익하다.(*)
글쓴이 / 박태현 교수(총신대학교 설교학), 건국대학교(B.Sc.), 고려신학대학원(M.Div.equi.), St. John’s College(Nottingham, MAMM), Theologische Universiteit te Apeldoorn(Drs.Thd.), Theologische Universiteit te Apeldoorn(D.Theol.)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