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요점(16)
< 1부 > 개혁신앙의 원리들 < 2부 > 개혁신앙의 핵심교리들
1. 오직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삼는 원리 A. 성경론(계시론)
2. 하나님 중심의 원리 B. 신론(神論)
3. 오직 믿음으로의 원리 C. 인간론(人間論)
4. 신자의 삶 강조의 원리 D. 기독론(基督論)
E. 구원론(救援論)
F. 교회론(敎會論)
G. 종말론(終末論)
종말에 대한 논의는 개인의 종말에 관한 논의와 우주적으로 주어지는 전 인류와 만물의 직면할 최후의 모습에 관한 논의로 나누인다.
1. 개인적 종말
(1) 죽음
– 죽음의 필연성
인간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다고 성경은 가르친다.(히 9:27) 일상생활 속에서 살다보면 이 사실을 잊고 지내기 쉬우나 죽음을 피해갈 용사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음을 불신자들도 인정한다. 예외 없이 모든 인간들은 늙어가며 반드시 죽음을 겪게 된다.
– 죽음의 의미
성경이 말하는 죽음은 3가지다. 육체와 영혼이 분리 되는 육체적 죽음(전 12:7), 하나님과의 분리를 의미하는 영적 죽음(엡 2:1; 롬 7:24; 사 59:2), 영혼과 육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의 결과로서의 영원한 죽음이다.(계 1:18; 20:14; 21:8) 여기에서 말하는 개인적인 종말이란 첫 번째의 죽음인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며 그것이 존재의 끝은 아니다. 그 죽음은 단지 변화 된 또 다른 존재로서의 삶의 시작일 뿐이다. 죽음 후에 인간의 존재가 소멸된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른 것이다.
– 죄의 결과로서 주어진 죽음
죽음이 인간 존재의 본래적인 요소는 아니었다. 인간의 죽음은 아담의 범죄의 결과로 인류에게 온 것이다.(롬 5:12-21) 그러나 그렇다고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불멸의 존재였다고 볼 수도 없다. 인간은 피조물로서 본래적으로 영원하신 하나님과는 다른 차원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단지 인간은 아담이 범죄 하지 않았다면 생명나무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였다. 그러므로 인간은 조건적인 불멸성을 지니고 창조된 존재였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범죄 함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전락되고 말았다.
– 신자에게 있어서의 죽음의 의미
죄의 결과로서 죽음이 주어진 점을 고려해볼 때 죽음이란 인간에게 원치 않는 적이며(고전 15:26), 형벌의 한 요소이고, 하나님의 저주의 한 표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사건이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책과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났으므로 그것은 더 이상 저주의 죽음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신자들에게는 정복된 적(敵)일 뿐이다.(롬 5:17; 고전 15:45; 딤후 1:10)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가 죽음을 통해 주님께 이를 수 있음을 바라보며 기뻐했던 것이다.(빌 1:20-23) 그러므로 참 성도는 천국의 확신 속에(계 21:3,4) 죽음에 임해야 한다. 성도에게는 더 이상 어떠한 형벌이나 징계도 남아있지 않고 죽음 이후에는 더 이상 고통이나 아픔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2) 중간상태
죽음에 관한 논의 다음에 오는 주제는 중간상태이다. 즉 죽은 이후에 주의 재림과 부활의 때까지 인간의 상태는 어떠한 것인가에 관한 논의이다. 부활 때까지 인간의 존재는 단순히 멈춰서는 것인가? 무의식 상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중간적인 몸의 상태고 있다가 부활하게 되는 것인가? 중간상태에 대한 몇 가지의 견해들이 있다.
– 영혼 수면설(soul-sleep)
인간의 영혼이 죽은 후 부활 때까지 무의식 상태로 잠든 상태로 보는 입장이다. 성경에서 죽음이라는 사건을 자주 ‘잠자는 것’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행 7:60; 행 13:36) 예수님도 나사로를 잠들었다고 표현했다. 또한 신학적으로는 인간의 본질을 여러 요소들로 구성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통일체로 본다. 따라서 죽음을 통해서 육체가 사라진 상태로는 인간(영혼을 포함한)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견해의 문제점은 성경은 또한 인간이 죽은 후 부활하기 전에도 인격적이고 의식적인 존재로서 활동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사로의 비유도 중간상태에 대해 설명하는 본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주님께서 이 문제에 대해서 오해를 불러일으키도록 하셨을 것 같지는 않다.(눅 16:19-31) 또한 십자가에서 강도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눅 23:43), 스데반이 순교하면서 말한 내용(행 7:59) 등은 인간이 죽음 후에 무의식적인 잠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 연옥설(Purgatory)
중간상태에 대한 또 다른 주장은 로마 가톨릭이 가르치는 연옥설이다. 인간이 은혜 안에서 회개의 완전함 속에서 죽은 자들은 죽음 즉시 천국에 가고 악인들은 지옥에 가지만 은혜의 상태에 있으면서도 아직 영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채로 죽은 자들은 연옥에 간다는 주장이다. 아직도 가벼운 죄들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그곳에서 잠정적인 형벌의 상태를 겪으면서 그 죄들을 정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상의 사람들의 미사, 기도 혹은 선행 등을 통해 그들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연옥교리는 외경에 근거하여 제시되었으며 특히 행위에 의한 구원을 말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며 성경적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죽은 후의 인간의 상태에 관해서 성경은 의인들이 죽은 후에 낙원에 이르게 된다는 가르침(눅 16:19-31, 23:43)과 사도 바울의 가르침들(고후 5:1-10; 빌 1:19-26)을 근거로 하여 신자들은 죽은 후에 축복의 상태로 들어간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곳은 분명히 현재의 상태보다 ‘훨씬 더 좋은’ 상태인 것이다.(빌 1:23) 그러므로 그 상태는 결코 무존재(無存在)나 무의식의 상태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성경은 중간상태에 대해 어떤 인간론적인 체계적 분석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떠한 분명한 그림을 그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부활 때에 인간은 영육 통일체로서 온전한 회복이 주어지며 그 전까지는 현재의 몸의 상태를 떠나 잠정적인 행복의 상태로 머물게 된다는 사실이다.
2. 우주적 종말
성경은 종말이 개인의 종말과 아울러 우주적인 종말로 주어질 것임을 가르친다. 후자는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발생되며 그때에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게 되고 최후의 심판으로 이어지게 된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주님의 재림은 성경의 여러 구절에 근거한다.(마 24:30; 25:19, 31; 요 14:3) 이 재림의 사건 가운데 성도의 영광스러운 부활이 주어지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재림사건 이전에는 모든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고(마 24:14; 막 13:10), 이스라엘의 회심(슥 12:10; 13:1; 고후 3:15,16; 롬 11:25-29)이 이루어지게 된다. 후자의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돌아오기 보다는 유대인들 중에서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들의 회심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성경은 적그리스도가 출현하며(살후 2:3-10; 요일 2:18), 전쟁, 기근, 지진, 대(大) 환란과 같은 표적과 기사가 있을 것이라고 가르친다.(마 24:29,30; 막 13:24,25; 눅 21:25,26) 주의 재림사건의 성격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주님의 재림은 단지 예수님의 가르침의 원리들이 사회 속에 구현 되는 정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주님이 실제적으로 인격적으로 다 시 오신다는 약속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행 1:11; 3:20,21; 마 24:44; 고전 15:23)
– 주의 재림사건은 육체적으로 온전한 부활체를 입으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을 말한다. 단순한 영적 재림이 아니라는 말이다.(행 1:11; 히 9:28; 계 1:7)
– 주님이 온전한 육체를 입고 재림하시므로 그것은 또한 가견적(visible) 재림이 된다.(히 9:28; 눅 21:27; 행 1:11; 골 3:4) 인간의 눈으로 확인이 가능 한 재림인 것이다.
– 또한 예측할 수 없이 돌발적으로 불시에 임하시는 재림이다. 몇 가 지의 전조들이 성경에서 언급되지만 재림의 사건자체는 불시에 발 생된다.(마 24:37-44; 25:1-12; 막 13:33-37) 그러므로 다미선교회와 같은 시한부 종말론의 주장은 비성경적인 가르침이 된다. 1992년 10월 28일에 성경이 말한 주님의 재림이 이뤄진다고 가르쳤던 그들의 주 장은 재림의 때는 아들도 천사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는 예수님 의 말씀과 상충되는 가르침이다.
– 영광스러운 재림이다. 주님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천사장의 나팔 소 리와 수많은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재림하시기 때문이다.(살후 1:7; 히 9:28; 계 19:11-16)
– 또한 들을 수 있게 재림하신다.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호령과 함께 오시기 때문이다.(살전 4:16)
(2) 죽은 자의 부활과 천년왕국
주님의 재림 시에 죽은 자들은 부활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이와 맞물려있는 사건이 천년왕국에 관한 주제이다. 개혁신학의 천년왕국설 입장은 아래에서 두 번째 언급되는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을 제외하고
대체적으로 3가지의 입장들을 수용한다.
– 역사적 전 천년설
천년 왕국 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고 보는 견해다. 주님의 재림 후에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지상에서 왕 노릇하게 된다고 보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 후에 제2의 부활이 오며 최후의 심판이 따르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 견해의 특징은 천년왕국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는 점과 두 번의 재림과 두 번의 부활을 말한다는 점이다.
–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
역사적 전(前) 천년설과 같이 ‘천년’을 문자적으로 받되 세대주의의 신학적 구조를 가지고 말한다. 즉 교회와 이스라엘이라는 2중적 행정원리 아래서 이스라엘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교회는 ‘괄호시대’로서 단지 중간에 개입하는 정도로 이해한다. 구약에서 제시된 하나님 나라에 관한 예언들은 신약시대의 교회에 적용되지 않고 천년왕국에 적용되는 것으로 가르친다.
그러나 개혁신학은 구약에서 예언된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에서 나타난 그의 삶과 사역으로 인하여 신약의 교회에서부터 이미 적용되고 시작되고 있다고 본다. 물론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성취는 종말에 성취될 것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을 종말에까지 연기시켜야할 이유는 없다.
– 후 천년설
천년왕국이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주어진다고 보는 입장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 명령을 단순한 명령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후에 이뤄질 약속으로 간주한다.(마 28:19,20) 그래서 세계의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어 온 세상이 기독교화 될 날이 주님의 재림 전에 성취될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죄의 세력이 최소한으로 축소되는 시대가 오게 되는데 그 때가 바로 천년왕국 시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이 점점 선한 세상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주장은 성경이 말하는 세상의 종말에 대한 묘사와는 다르다. 마태복음 13장의 가라지 비유 마태복음 24:37-39의 ‘노아의 때’와 같다는 지적 등에서 확인되는 종말은 악인과 불신앙이 계속 만연되고 있는 모습이다. 더욱이 후(後) 천년설이 세속적 낙관주의와 결탁하게 되면 인간의 노력으로 이 세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 자유주의적 사회복음주의와 같은 세속주의에 오류에 떨어질 위험성이 있다.
– 무 천년설
이 입장에 대한 오해는 천년왕국을 부인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무(無) 천년설은 천년왕국이 없다고 보는 입장이 아니다. 단지 그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구속의 전 과정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입장이다. 요한계시록에 묘사되는 사건들은 앞으로 발생될 사건들만을 의미하지 않고 현재에 발생되고 있는 사실들도 가리키고 있다고 본다. 계시록 20:2에서 언급되는 ‘사탄이 천년 동안 결박 된다’는 내용은 이미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사탄의 권세가 깨뜨려지고 성취된 것이라고 본다. 주의 보좌는 이미 하늘에 세워졌고(계 20:4), 천년왕국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성도들은 이미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나 그의 나라의 통치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 20:4,5은 육체적 부활을 말하고 있으며, 그 문맥 자체만을 볼 때에는 그것을 단순히 영적 부활로 간주하기는 어렵다는 점이 지적된다.
(3) 최후의 심판과 최후 상태
죽음 후에는 최후의 심판이 있고 불신자와 신자는 영원한 형벌과 영원한 축복의 상태로 갈라지게 된다. 오늘날 지옥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거부하려는 신학자들도 있으나 성경은 천국의 실제성과 마찬가지로 지옥의 실제성에 대해서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신자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새 하늘과 새 땅’(계 21:1)의 실제성에 대한 확신은 신앙생활에 힘과 동력을 제공해주는 것이 사실이며 동시에 ‘꺼지지 않는 불’에서 죽지도 못하는 상태로 묘사되는(막 9:43,48) 지옥의 실제성도 죽어가는 영혼들에 대한 전도의 사명을 더욱 촉진시켜주는 성경적 진리임에 틀림없다.(*) 글쓴 이 / 김광열 교수(총신대 신대원 조직신학)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