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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를 알면 성경이 보인다(14) 중세교회 기독론 논쟁

교리를 알면 성경이 보인다(14) 중세교회 기독론 논쟁

중세 기독론의 특징 중 하나는 로마 가톨릭 스콜라 신학의 영향을 받은 신비주의적 기독론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가 로마 가톨릭에서 성녀라고까지 부르는 마그데부르크의 멕히트힐트라는 수녀이다. This image could have imperfections as it’s either historical or reportage. Mechthild of Magdeburg, Magdeburg archdiocese to 1207 – 1282 in the monastery Helfta today in Eisleben, one of the greatest mystics of Central Europe

초대교회 시대(AD 30년-590년)의 기독론(基督論, Christology)은 나사렛 예수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지,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이시라면 하나님 아버지와는 어떤 관계인지 하는 관심에서 삼위일체를 논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두고 그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어떻게 그의 인격을 이루는 것인지 주로 존재론적(存在論的)으로 그리스도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런데 중세(中世, 591년-1516년)에 이르러서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사변(思辨)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어떤 기능을 하시는지 이해하려고 했다. 중세에 접어들어서도 서방교회나 동방교회가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381년)’와 ‘칼케돈신조(451년)’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서방교회 신학자들은 기독교 교리를 구원론(救援論) 중심으로 이해하는 데 반하여 동방교회에서는 삼위일체(三位一體) 교리에 더 오랫동안 관심을 두고 논의하였다.          

3. 서방교회의 기독론

724년 라이헤나우 수도원(Monastic Island of Reichenau)을 창설한 피르민(Pirmin, ?~755경)이 편집한 책 ‘스카랍수스’(Scarapsus)에는 게르만인(Germanic peoples)에게 선교하면서 예수를 무슨 말로 전했는지 이렇게 수록되어 있다.

“천사가 타락한 이후 하나님이 타락한 천사를 대신할 사람을 지으셔서 하늘나라에 두셨으나 사람도 우둔하게 나쁜 짓을 하여 타락하였으므로 하나님은 자비로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아들은 겸손히 낮아지심으로 사망의 원인자인 마귀를 이기시고 고난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다.”

피르민의 그리스도 이해의 실마리는 그리스도께서 시험을 받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담을 유혹한 바로 그 마귀가 예수를 위시하여 사람들 개개인을 유혹한다. 비록 예수께서는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하시나 마귀는 가룟 유다를 유혹하여 예수를 배반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필연성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자의(自意)로 고난당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신적인 말씀과 그리스도의 영혼과 육체의 관계에 관해서는 미숙하게 말한다. 말씀 즉 하나님의 신성(神性)은 고난을 받을 수 없으므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 곁에 있었다고 하면서 동시에 사흘 동안 말씀은 마귀와 지옥을 정복하시기 위해 장사 된 육체와 함께 무덤에 가시고 영혼과 함께 지옥에 계셨다고 한다. 신성 없이 인성만으로는 세상을 구속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그런 사변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오직 그리스도를 본받고 따르는 자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과 서약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행하라는 계명과 금하는 명령을 지키는 것이 신자의 의무라고 서약한 걸 기억하는 자라고 한다.

라바누스 마루스(Hrabanus Marus, 780-856)는 그리스도를 가리켜 우리를 본향으로 인도하실 세계의 왕이요 심판자라고 한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Bemardde Clairvaux, 1090-1153), 피터 다미안(Peter Damian, 988-1072) 등 많은 신학자가 그리스도를 왕이시요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님이시라고 강조했다.  

중세 스콜라신학(Scholasticism)은 안셀무스(Anselm of Canterbury, 1033/4-1109)를 비롯하여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25- 1274)에 이르기까지 스콜라적인 방법으로 교회의 전통(傳統)과 이성(理性)의 일치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고 이를 추구했다. 그들은 철학적 논리와 방법론을 신학에 적용함으로써 기독교 신학을 풍성하게 하고 나름대로 깊이 있게 사색하는 데 공헌했다.

하나님 존재를 증명하는 유신론적 논증을 시도한 것이 인상적이다. 안셀무스는 본체론적 논증을 시도하였으며 토마스 아퀴나스는 본체론적 논증을 거부하고 대신에 우주론적이며 목적론적인 논증을 제시했다. 그런데 유신론적 논증이 이미 믿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신앙이 맹목적이 아님을 확인하는 데에는 도움을 주지만 믿지 않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믿게 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따라서 그들은 신론(神論) 이외의 다른 주제를 다루는 데도 역시 유신론적인 접근으로 일관한 것을 볼 수 있다.

캔터베리의 안셀무스는 기독론을 두고 “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는가?”(Cur Deus homo, 1097)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제기하고는 그리스도의 성육(成肉)에 관해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답을 추구한다. 그는 “나는 알기 위해 믿는다.”라는 스콜라신학의 원리를 기독론에도 적용한다.

피르민이 그리스도께서 자의(自意)로 고난을 받으셨다고 말하는 데 반하여 안셀무스는 그리스도의 성육(成肉)은 필연적이었다고 강조한다. 안셀무스의 ‘성육교리’는 교회가 말해 온 그리스도를 통한 보편적 구원교리에 근거하고 있기는 하나 그리스도의 성육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으로 믿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신학적 문제로 보고 믿음을 위해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피르민은 인간이 타락하여 사탄이 인간에 대한 자기 권리를 주장한다고 가르치는 데 반하여 안셀무스는 인간이 타락하여 사탄의 세력 아래 있다고 이해하기보다는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께 빚을 진 것이라고 이해한다. 인간이 범한 죄가 너무 커서 그만큼 진 빚이 많으므로 이를 탕감해 주려면 그리스도의 성육은 반드시 있어야 했다고 말한다. 절대로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 자신이 인간이 되셔서 사람이 진 빚을 남김없이 탕감하는 것을 요구하신다고 한다.

안셀무스는 또 일반적으로 성육은 하나님이 자신을 겸손히 낮추시는 것이라고 하나 신성(神性)은 고난을 받을 수 없으므로 하나님 속성상 낮아진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 성육을 신성의 낮아지심이라기보다 인성의 높아지심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합리적인 설명을 하려다 보니까 철학적인 명제를 앞세우고 거기에 맞게 논리를 전개한다.

안셀무스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성육을 위한 충분한 근거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사랑)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그는 긍정과 부정의 변증법적인 논리를 전개하면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고갈된 것처럼 보인다고 절규하며 하나님의 자비가 고갈된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하나님의 의(義)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피터 아벨라르(Peter Abelard, 1079-1142)와 클레르보의 베르나르(St. Bernard of Clairvaux, 1090-1153)는 그리스도 이해를 두고 서로 상반(相反) 된 견해를 말했다. 아벨라르는 ‘인간으로서 그리스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전제에서 하나님이 사람 되심에 의문을 제기한다. 하나님은 본래 육(肉)으로나 인간으로 묘사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벨라르는 구원이 필요하다거나 혹은 구원을 가져다준다는 의미에서 예수 고난의 ‘필연성’에 의문을 표한다. 그리고는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마귀의 세력에서 해방하시기 위해 성육했다고 생각하는 안셀무스의 견해에 이의(異議)를 제기한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는 반면에 삼위일체 교리에 근거해서 그리스도를 이해한다. 정통적인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와 그를 통한 구원을 위한 모든 것의 전제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인의 신앙뿐 아니라 삶을 위한 초석이다. 왜냐면 삼위일체의 각 위는 그리스도의 제자와 특별한 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온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신다고 한다.

베르나르는 삼위일체 교리를 그리스도의 양성(兩性) 교리에 적용한다. 온 삼위일체가 사랑하며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을 연결하는 사랑과 같다고 할 수 있는 분이지만 그럼에도 구원의 사랑은 사람으로 성육하신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임했다고 한다. 베르나르는 말씀과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인격이 하나라고 강조하며 신인(神人)의 인격에 관해 언급할 때 신인의 진정한 인성(人性)에 관해 말한다.  

“내가 예수 이름을 부를 때면 나는 영광과 거룩함을 나타내 보이시는 온유하시고 마음이 겸손하시며, 선하시고, 순결하시고, 순하시며, 자비로우신 한 사람을 눈앞에 떠올린다. 동시에 당신의 모범을 통해 나를 치유하시며, 도우심을 통하여 나를 강건하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본다. 이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과 함께 떠오른다. 그리스도의 인간이심은 성례(聖禮)에서처럼 그의 탄생의 신비에서 고난의 비밀을 보이신다.”

아벨라르는 그리스도께서 고통스러운 죽음이 아닌 더 간단한 방법으로 그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물으면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필연성’에 대하여 논한다. 그에 반하여 베르나르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필연성’은 우리 문제 때문이며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있는 우리의 절박함 때문에 필연적이라고 말한다.

아벨라르는 피 흘리며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신 상징이라고 하는데 베르나르는 그 말에 덧붙여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베르나르는 아벨라르와 달리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 즉 예수의 고난은 마귀에 대한 승리라고 설명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뛰어내리라는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스스로 취하셨으므로 그리스도의 수난은 ‘적극적인 수난’이라는 역설적인 개념으로 이해한다. 베르나르는 또 ‘고난’과 ‘자비’라는 말로 그리스도 고난의 의미를 사변하여 그리스도께서 자비를 배우기 위해 고난받으시기를 원하셨다고도 말한다. 그러면서 십자가는 고난을 극복한 자비(사랑)의 승리라고 한다.        

아벨라르는 안셀무스의 보상설을 받아들였으나 베르나르는 거기에 의문을 표한다. 안셀무스에 따르면 “주께서는 지극히 공의로우시므로 자비하십니다.”라는 말이 궁극적 진리이지만 최후의 심판 날에 공의와 자비의 역설(paradox)은 해결될 것이다. 왜냐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만 해결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베르나르는 의와 자비가 하나님 안에서 상충(相衝)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라고 보며 의(義)를 자비와 겸손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한다. 이 점에서 베르나르는 말틴 루터가 고민 끝에 깨달은 하나님의 의의 개념을 이미 말하고 있다.

중세의 많은 신학자가 ‘하나님의 예정’(豫定)과 ‘인간의 자유’(自由)와 더불어 하나님의 ‘공의’(公義)와 ‘자비’(慈悲, 사랑)도 역설로 보고 논의했다. 베르나르는 신학적 인식이란 신앙고백적 통찰에서 성립한다고 한다. 즉 그리스도의 성육은 나를 위하여 나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고난도 나를 위한 것이라고 이해할 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고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럴 때 신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빚진 자로 고백한다는 것이다. 베르나르는 경건과 신학을 하나로 묶고 기독론과 예수 신비 사상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는 경건을 신학의 과제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13세기 초에 이르러 스콜라 신학은 전성기에 접어들었다. 도미니코 교단과 프란체스코 교단의 신학자들이 신학적 논의를 주도했다. 점차로 복잡해지는 기독론과 다양한 그리스도 신앙의 긴장 속에서 스콜라 신학의 그리스도 이해는 무르익어 갔다. 이 시기부터 신비주의(神秘主義)에 스콜라 신학이 동반하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스콜라 신학자들 대다수가 신비주의 사상을 가졌는가 하면 중세의 대다수 신비주의자가 스콜라 신학의 교육을 받았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Fiancis of Assisi, 1182-1226)는 다미안에 있는 오래된 그리스도의 화상 앞에서 소명 받았는데 그때 화상의 명암이 움직이는 듯이 보였다고 한다. 1224년 프란체스코가 알베르노(Alvemo)의 황야에 외로이 있을 때 스랍이 십자가 위에 있는 신비스런 광경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화상(畫像)을 보고 성녀로 알려진 바르트부르크의 엘리자베스는 웃다가는 울고 울다가는 웃곤 했다고 한다. 그리스도를 볼 때는 기뻐서 웃었으나 그리스도께서 떠나려는 듯이 얼굴을 돌이키실 때는 울었다고 한다.    

요한 보나벤투라(Sanctus Bonaventura, 1221–1274)는 자신의 저작에서 그리스도의 이해에 관하여 말하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를 신비로운 포도나무요 영적인 생명 나무로 서술한다.

독일의 대표적인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von Hochheim, 1260-1327, 그림)의 신학 사상은 도미니코 교단의 스콜라 신학과 유대-아랍의 종교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에크하르트는 성육을 단회적인 역시적 사건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탄생의 영원한 진행이 인간 영혼의 중생에서 실현된다고 생각한다. 에크하르트는 설교에서 “사람이 되어라, 아들이 되어라.”고 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인성,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된 인성이 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수 있는 아들이 되라고 한다.

중세 기독론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아’(imitatio Chiisti)는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중요한 한 측면이다.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삶의 형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믿을 때 그리스도의 형상과 생의 본질을 그만큼 더 이해하면서 그 본질에 다가간다고 한다.

‘고난의 신학’ 역시 중세 그리스도 이해의 중요한 측면이다. 예수께서 구유에 나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그때까지 이어지는 전 생애를 고난의 신학의 관점에서 본다. 마그데부르크의 멕히트힐트(Mechthild of Magdeburg, 1207-1282/1294)는 ‘사랑하는 영혼의 수난’이라는 그녀의 글에서 예수의 수난 이야기를 세세한 부분까지 서술한다. 예를 들면 “영혼은 결박되고, 구타를 당하며, 뺨을 맞고, 옷이 벗겨지며, 멸시를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라고 서술한다.

중세 기독론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말씀’(하나님)이 영혼의 중재 아래 육(肉)을 취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중세의 그리스도 신앙은 그리스도의 영혼이 ‘신적인 말씀’과 ‘인적인 육체’를 하나로 묶는 지체로 보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혼’이라는 말이 중세에 널리 사용되었고, 14세기 이후 “그리스도의 영혼이여 나를 거룩하게 하소서!”라는 기도도 널리 유포되었다.    

1344년 마가레타 에브너(Margaretha Ebner, 1291-1351)는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모든 악을 이길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거룩한 고난으로부터 힘을 구하고 우리가 진리 안에 살고 진리가 우리 안에 살기 위해서 이 기도를 50번씩 반복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영혼’을 부르면서 드리는 기도는 종교개혁 이후 17세기를 거쳐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개신교 신자들에게도 널리 유포되었고 독일 찬송가에도 그런 노래가 수록되었다.

그리스도의 영혼이여 나를 거룩하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죽은 몸으로 나를 먹이시고
그리스도의 피를 나로 하여금 마시게 하시며
옆구리에서 흐르는 물로 나를 씻기시고
쓰라린 고난과 죽음이 나를 강건하게 하소서.
오 사랑하는 주 예수여, 나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주의 거룩한 상처에 나를 숨기시고
다시는 주께로부터 떠나지 않게 하소서.
악한 원수 앞에서 나를 보호하시며
내가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에 나를 부르소서.
내가 주께로 갖 택함을 받은 모든 이들과 더불어
영원히 주를 높이며 찬양하게 하소서!

(*) 글쓴 이 / 김영재 교수(서울대 종교학과, 영국 Clifton Theological College 수학, 독일 Wuppertal Kirchliche Hochschule 수학, 총신신대원 편목, 독일 Phi1ipps Universitat zu Marburg에서 신학박사, 독일 포이딩겐 독일인교회, 미국의 미네소타와 아틀란타의 한인교회 목회, 서울대 강사, 총신대 신학대학원의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역임, 저서: Der Protestantismus in Korea und die calvinistische Tradition, Peter D Lang, Frankfurt am Maln, 1981. 외 다수의 저서와 역서) 출처: 김영재 저 ‘기독교 교리사’ (서울, 합신대학원 출판부), 2009.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