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사

교리를 알면 성경이 보인다(3)

교리를 알면 성경이 보인다(3)

교리사의 의미와 과제

기독론의 양성교리를 확증한 칼케돈공의회(Council of Chalcedon, 451)

제1장 교리의미(3)

6. 교리사의 계속성  

교의(敎義)가 곧 신앙고백이라면 교리사(敎理史)가 우선적으로 취급해야 할 사실은 복음서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 즉 기독론(基督論, Christology)이 기독교 신앙과 신학의 중심이다. 삼위일체(三位一體) 교리에 대한 논의도 “예수는 참 하나님이신가?”라는 질문에서 시작이 되었으며 그에 대한 답변으로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는지를 교회 공의회가 밝힌 것이 삼위일체 교의(敎義)이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론(救援論, Soteriology)과 종말론(終末論, Eschatology)의 중심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를 가르치실 뿐 아니라 자기를 구원자로 받아들이고 신앙을 고백하도록 요청하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고 하신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은 신앙고백이라는 의미에서 기독교 교리사의 첫 신앙고백이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하는 신앙고백을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언제든지 누구 앞에서나 할 수 있어야 한다.

교의(敎義) 또는 신앙고백이 때로는 신약에 나타난 교리적인 과제에서 동떨어진 것은 아닌지 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기독교 신앙이 신앙고백을 형성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신앙고백은 신앙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어서 교의나 신앙고백을 비판적으로 대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신앙고백서의 기본 조항이 신약성경에서 온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또 신앙고백에 표현되지 않은 신앙은 그 어떤 것이라도 견고할 수 없다.              

그리고 신앙고백을 요구(要求)하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신앙고백도 교의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계몽신학과 그것을 계승하고 있는 자유주의신학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신앙고백도 교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앙고백이 신앙을 잘못 표현하거나 형식주의로 유도할 경향이 없지 않으나 교의 없는 신앙 혹은 신앙고백이 없는 신앙은 무엇을 믿는지 모르는 위험에 빠지게 마련이다.

교의의 발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서 생존하셨던 당시와 교의의 형성기를 비교할 때만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이후 여러 교회의 신앙고백을 비교해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교의의 발전은 곧 성경교리에 대한 이해의 발전이기 때문이다. 사도들의 제자에 해당하는 속사도 교부들이 말하는 교리 이해는 사도들의 신앙고백 즉 신약에 있는 사도들의 편지에서 볼 수 있는 교리에 비해 여러 면에서 미치지 못하는 것임을 발견한다.

그리고 2,3세기와 그 이후 신학자들은 신약의 교리를 이해하고 교의화(敎義化)에 오랜 시일 치열한 동안 논쟁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세기와 20세기에 와서 교리사의 계속성에 대하여 회의를 가지는 신학자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뒤빙겐 학파를 형성하게 한 장본인인 바우르(Perdinand Christian Baur, 1792-1860)가 그 대표이다.

그는 헤겔의 변증법적 역사철학을 교리사에 적용해 교리사 전체가 ‘가이스트’(Geist, 정신, 영)의 발전 과정이라고 했다. 즉 정반합(正反合, These, Andthese, Synthese)을 통해 ‘가이스트’가 자기완성에 이르며 동시에 자신의 참 존재를 계시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초창기에 교의가 움튼 순간을 시대마다 의식해야한다고 한다. 그러나 교리사는 시대마다 있었던 계시(啓示)에 대한 수직적 이해의 나열이 아니고 역사의 과정 속에서 교리에 대한 이해가 수평적으로 연결되면서 발전해 온 것이다.

또한 칼 바르트(KarI Baith, 1886-1968)와 바르트주의 자들은 교리사란  개개의 계시 사건이나 교리 형성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계시의 진리에 대해 서로 역사적 관련을 짓지 못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교의들은 결국 교의의 현현의 형식이라고 하며 도그마(Dogma)를 단수형과 복수형으로 구분하여 사용한다. 바르트가 말하는 복수형의 도그마는 교회가 결정한 구체적인 교의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단수형의 도그마는 그가 말하는 초역사적인 교의 즉 아직 역사 속에 구체화되지 않은 교의를 일컫는 말이다.      

마치 앞에서 우리말로 언급한 ‘교리’와 ‘교의’의 구분과 비슷한 구분이다. 즉 바르트가 말하는 도그마는 ‘교리’(doctrine)에 해당하고 복수의 도그마(Dogmen)은 ‘교의’(dogma)에 해당한다. 그러나 차이점은 도그마(Dogma)에 해당하는 우리의 ‘교리’는 단순히 성경이 말씀하는 교리라는 점이다. 로제는 바르트 특유의 구분은 교리사의 계속성을 간과한 이해라고 하며 교의의 발전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교리사의 계속성을 강조하면서 각 시대마다 특정한 교리가 더 많은 관심을 끌었거나 강조되었다고 단순화해서 말한다.6)

초대교회 때는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중심한 기독론이 논의되었으며 서방에서는 같은 시기에 ‘은혜교리’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중세에는 ‘성례론’이 관심의 대상이었으며, 종교개혁에서는 ‘구원론’이 관심의 중심이었고, 근세에 이르러서는 교회의 분열과 연합이라는 과제 때문에 ‘교회론’이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지적은 교회역사에 있었던 교리에 대한 관심을 단순화하는 것 같으나 그것은 시대적인 상황이나 요청과 교리 이해의 발전과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므로 아래에서 더 논하기로 한다.

7. 교의의 권위와 교리사 연구과제

< 기독론 이단들 >

  A :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否認)하는 아리안주의(Arianism)

  B : 예수 그리스도의 두 본성(本性)의 연합(聯合)을 부인하는 네스토리안주의(Nestorianism)

  C :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 대신 로고스(Logos)를 대치시킨 아폴리나리즘(Apollinarism)

  D :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구분을 부인(單性論)하는 유티키즘(Eutychianism)

교리사 연구의 과업은 당면한 문제로 생각되는 신앙고백의 조항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특정한 교리와 전체 교리의 통일성과 교리 발전의 계속성을 추적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의 것에만 매달려 현재의 과제(課題)를 망각하는 일이 없이 현재와 함께 과거를 존중하면서 과거의 발전의 계속성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문제와 과제의 중요성도 다루는 것이다.            

아리우스(Arius, 256-336)의 논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자에 대항하여 니케아신경(Symbolum Nicaenum, 325)을 변증하여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경(Symbolum Nicaeno-Constatinopolitanum, 381)을 낳기까지 계속된 정통신학자들의 투쟁이었으며 그 후에 일어난 기독론의 논쟁을 통하여 교회는 칼케돈신경(Definition of Chalcedon, 451)을 결실로 얻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거스틴(Augustinus, 354-430)이 펠라기우스(Pelagius, 360-420)와 벌인 논쟁은 ‘죄와 은혜교리’ 발전에 보탬이 되었으며, 종교개혁당시의 여러 신앙고백들도 역시 교리의 새로운 발견과 교리 이해의 발전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로마 가톨릭과의 현저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는 의미에서 풍성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리사의 과제는 어떤 교의(敎義)가 결정되고 신앙고백이 형성되게 한 역사적 배경과 상황을 설명할 뿐 아니라, 어떤 특정한 결정이 그 시대와 전체 교리의 역사를 위하여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밝힌다. 교리사의 과제는 또한 역사의 과정에서 기독교의 교의가 그리스화(Hellenization) 혹은 로마화(Romanization)가 되거나 독일화(獨逸化) 혹은 영국화(英國化)가 된 것은 아닌지를 살피며 또한 그러한 유형화(類型化)의 과정에서 교의가 그 순수성을 상실하지나 않았는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제베르크(Reinhold Seeberg, 1859-1935)는 말하기를 이러한 토착화(土着化)의 과정이 반드시 교의의 타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은 다만 어떤 위대한 시기에 기독교의 사상이 어느 특정한 민족의 문명 속으로 완전히 소화되어 들어가게 된 갓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또한 이러한 과정에는 위험성이 동반한다고 언급한다. 왜냐하면 각 민족이나 세대는 기독교를 단지 그들 자신의 특이한 이해로 해석할 뿐 아니라 그 내용을 보다 저급한 형태의 종교로 전락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이 교리사의 과업은 교의에 대한 비판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해석에 있으나 위와 같은 경우는 비판적인 방법으로 다루어 분석 비판할 수 있어야한다. 그리고 한국과 같은 선교교회에서는 서양교회가 전해 준 신앙고백이 어떠한 전통과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형성되었는지를 검토할 뿐 아니라 서양교회의 전통적인 신앙이 제대로 전수되었는지 또한 전수된 신앙이 한국 재래의 비기독교적 문화와 종교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해 왔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다른 말로 말하면 기독교 토착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 진리가 안팎으로 어떤 도전을 받고 있는지를 성찰하며 전통적인 교의를 존중하는 가운데 성경의 진리를 새롭게 발견하고 변증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교리사의 과업이다.(*) 글쓴 이 / 김영재 교수(서울대 종교학과, 영국 Clifton Theological College 수학, 독일 Wuppertal Kirchliche Hochschule 수학, 총신신대원 편목, 독일 Phi1ipps Universitat zu Marburg에서 신학박사, 독일 포이딩겐 독일인교회, 미국의 미네소타와 아틀란타의 한인교회 목회, 서울대 강사, 총신대 신학대학원의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역임, 저서: Der Protestantismus in Korea und die calvinistische Tradition, Peter D Lang, Frankfurt am Maln, 1981. 외 다수의 저서와 역서) 출처: 김영재 저 ‘기독교 교리사’ (서울, 합신대학원 출판부), 2009. < 다음에 계속 >  

 < 미주 >

6) Lohse, 같은 책,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