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를 알면 성경이 보인다(4) 기독교 초기 사상적 배경
교리를 알면 성경이 보인다(4)
기독교 초기 사상적 배경
기독교의 뿌리인 유대교와 기독교의 결정적 차이는 기독교는 하나님이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메시아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로 성취되었다고 믿는 데 반해 유대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자칭하는 신성모독 자로 취급하는 점이다.
제2장 기독교 초기와 성장기 사상 배경(1)
1. 기독교와 시대적 배경
기독교가 형성되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기독교 교리(敎理)가 주변의 종교와 사상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고 생각하는 학지들이 주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지식은 기독교의 유일성과 전통적인 교의(敎義)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또한 필요하고 유익하다. 그 이유는 성경에 근거하는 기독교 교리의 유일성(唯一性)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지기가 사는 시대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살므로 사물을 그 시대의 언어와 세계관으로 이해하고 의사소통을 하기 마련이다. 신학자도 예외가 아니다. 신학자들 역시 그들이 사는 시대정신의 영향을 받아 성경의 진리를 그 시대의 사상적 배경에서 이해하고 표현했다. 속(續) 사도나 초기의 교부(敎父)들만 하더라도 기독교 진리 즉 성경의 진리에 대해 그들의 이해는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의 진리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교리사(敎理史)를 쓰는 이들이 흔히 기독교가 생성되어 성장한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기독교의 요람(搖籃)이라고 하면서 기독교가 생성되는 데 영향을 준 종교와 사상으로 유대교를 비롯하여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종교, 그리스-로마 철학, 그리스-유대 철학, 신플라톤주의 혹은 영지주의 등을 든다. 그러나 유대교를 다른 종교나 사상들과 동등하게 주변 사상으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유대교는 배타적인 민족 종교인데다가 기독교를 배태한 종교이므로 다른 종교나 사상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우리는 기독교를 그 배경 사상과 관계를 두고 접근할 때 기독교 생성기의 경우와 성장기의 경우에 차이가 있음을 인식한다. 유대교는 기독교 생성기(生成期)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그 밖의 종교와 사상들은 기독교 성장기(成長期)와 더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2. 유대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은 모두가 유대인들이었으므로 유대교(Judaism) 신앙 안에서 살았다. 기독교와 유대교가 제가끔 구약의 여호와(야웨) 하나님을 창조주시요,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참 하나님으로 믿으며 구약의 경전과 이스라엘 역사를 자신들의 것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기독교는 예배 형식에서도 유대교의 회당(Synagogue) 예배의 영향을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성전과 회당을 찾아 예배하고 율법을 강론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나중에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새 종교를 따르기 위해 유대교 공동체와 결별하고 그 신앙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서로 논의하며 논쟁을 하는 등 주저와 갈등을 경험했다. 이를테면 유대교적인 민족종교의 고정관념을 벗어나서 기독교는 만민을 위한 종교라고 인식하는 것이 제자들에게 처음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행 10:17-22,44 이하, 11:11-18) 유대인들이 지키는 안식일과 할례와 여러 절기를 극복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갈 4:10, 골 2:16) 기독교 신학의 기초를 세우는 데 크게 공헌한 바울 사도는 유대교에 그 누구보다도 열성적이고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개종 이후 선교 초기에 가는 곳마다 유대인의 회당을 복음 전파의 거점(據點)으로 삼은 사실도 기독교와 유대교가 서로 밀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과 행적을 증언하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전한 사도들은 유대교적인 종교와 세계관으로 산 사람들이다. 그들은 학자도 사상가도 아닌 평범한 직업인들이었으므로 그리스 나 로마 세계의 종교나 사상을 접할 기회도 없었고 그런 자질과 준비를 갖춘 위인들도 아니었다. 바울이 예외적인 인물이긴 했으나 그도 유대교에 열렬한 신자였으므로 다른 사도들과 별로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사도들은 복음서와 편지에서 나사렛 예수가 곧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임마누엘 하나님이시요, 메시아 즉 그리스도라 선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교훈이 구약의 성취라고 증언한다. 그럼으로써 기독교가 비록 유대교와 더불어 구약과 구약의 역사를 공통의 유산으로 공유(共有)하되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유대교와 차이를 드러낸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결정적인 차이는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메시아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고 믿는 데 반하여 유대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자칭하는 신성모독 자로 취급하는 점이다. 기독교는 메시아를 이사야가 말한 고난의 종으로 알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우리 죄인을 구속하기 위한 죽으심으로 알아 십자가를 자랑하지만 유대교는 도리어 그것을 그들 신앙의 거침이 되는 치욕(恥辱)으로 생각한다.
유대교의 특징 중 하나는 메시아의 오심을 절실히 기대하고 소망한 종말신앙인데 메시아가 고난 가운데 있는 민족을 구원한다고 하며 그는 능력 있는 초인적인 왕으로서 400년간 살면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로 여겼다. 메시아를 ‘사람 중의 사람’(a man of men)이나 ‘인자’(人子, son of man)로 서술하였으며 단지 하나님의 위대한 율법 선생(scribe)으로도 묘사하였다. 메시아 왕국을 갈망하는 데서 그리고 아무도 스스로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죄의식이 깊어졌고 아담의 범죄 이후 죄악이 인류에게 임하였다고 강조했다.(에스라 4서 3:26, 4:30, 7:118 이하 8:35 등) 따라서 유대사회는 개인적인 비관주의가 만연하였다.
기독교가 세계화되면서 다시 말하면 유대교 출신 아닌 이방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기독교의 진리 즉 복음에 대한 해석이 문제로 대두된다. 복음의 증언자와 전수(傳受) 받은 자 간의 세대 차이만이 아닌 문화적인 배경의 차이 때문에 많은 문제가 야기되었다. 이방인이었던 신자들이 그들이 살아온 세계의 일상 언어와 사상적인 배경에서 복음을 이해하고 또한 동류의 사람들에게 그들이 알아듣는 말로 복음을 전수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복음 이해를 두고 헬레니즘화도 진행되고 토착화도 진행되었다.
교리사의 과제는 사도들의 복음과 신학자들의 복음 이해를 구별하며 잘못 헬레니즘화가 되었거나 토착화된 것을 발견하고 성경에서 사도들이 증언하는 복음을 옳게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유대교에서 개종한 사도들을 위시하여 다양한 문화에서 개종한 속사도 교부들이 관심을 둔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문제는 당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학에서 늘 논의해 왔으며 또한 잘 분별해야하는 중요한 신학적인 과제이다. 그러나 유대교는 신약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구약 종교의 연속으로만 인식한다. 유대교는 구약과 신약의 중간시대의 문서를 귀중하게 여기지만 기독교는 그것을 외경으로 취급한다.
유대교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율법적 관계에서 성립된다고 본다.(토빗 4:6, 2:14, 12:9, 14:9, 13:2) 따라서 유대교 장로의 유전(遺傳, halakah)과 유대교의 종교적인 규례 및 세칙을 존중하였으며(막 7:3), 많은 계명이 있으므로 또한 그 만큼 많은 상급이 있다는 상급 사상도 갖게 되었다. 또 특정한 율법을 강조하였으며 선행에 가치를 두었다.(토빗, 마 6:16 참조, 시락 3:28; 솔로몬의 시편 3:9,4) 이러한 유대교는 기독교의 산실(産室)이요, 기독교를 배태(胚胎)한 종교지만 기독교를 제일먼저 핍박했다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3.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종교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종교는 아주 다채로웠다. 아우구스투스(Augustus Caesar, Gaius Octavius BC 63-AD 14) 시대부터 종교의 중흥이 이룩되었다. 로마제국의 세계동포주의(cosmopolitanism)는 여러 잡신(雜神)에 문호를 개방하여 여러 가지 무가치한 사상들과 제의종교(祭儀宗敎, cult)들이 혼합된 것이었다. 동방의 신들 즉 오시리스(Osiris), 이시스(Isis), 시빌리(Cybele), 미드라스(Mithras) 등 생소하고 신비적인 제의종교(cult)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고대의 신비주의(神秘主義)가 구원의 방편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도 미드라스 제의종교는 로마군들을 통해 급속히 파급되어 2세기 말에 와서는 기독교와 마찰을 일으킬 정도였다. 미드라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에 널리 분포된 종교로서 주전 67년에는 로마에까지 이르렀다. 후에 로마 황제 코모두스(Commodus, 180-192)는 이를 황제 숭배교로 만들었다. 로마군의 일선에서 이 종교의 기념비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 종교가 병사들 간에 널리 유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드라스를 태양의 동맹이며 어둠을 물리치는 빛의 전사인 신(神)으로 믿었다. ‘새 생명으로의 갱생(중생)’ 혹은 ‘하늘에서 사는 법’ 등의 교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신비종교가 참된 종교라는 인상을 주었다.
모든 피조물은 황소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면서 황소를 제물로 드려야 하늘에 오르게 되며 거기서 축복된 영생불사(永生不死)를 누린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먼저 세례와 꿀로 정결함을 받고 높은 수준의 도덕적 실행자이며 ‘아버지’라 불리는 사제들이 헌납하는 떡과 물과 포도주를 취함으로써 신비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의식이 기독교의 성례와 유사한 점에 대해 그것은 아마도 상호간의 영향과 또한 원시적인 제의종교들이 갖는 공통성에 기인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교부 터툴리안(Teitullian, l60-220)은 이에 대해 “마귀가 기독교의 성례에 고의적으로 영감을 주었다.”고 했다. 4세기에 이르러 마침내 기독교에 의해 거세(去勢)되었다.
프리기아(Phrygia Kingdom)의 신화(神話)에 나타나는 신들의 어머니인 시빌리(Cybele)와 그의 젊은 정부이자 농사의 신 아티스(Attis) 등의 제의에서도 신에게 바친 음식을 나누었는데 이를 준비하기 위해 먼저 금욕과 고행과 정결의 의식을 행했다. 제의(祭儀)에서는 비의적(秘儀的) 행위가 제사의 절정을 이루었고 이런 제의에서는 황소와 양을 잡아 피를 흘리고 제사를 드리는 자가 그 아래서 일종의 세례를 받음으로써 영원한 중생을 경험한다고 했다. 이러한 의식을 통해 사람들은 신(神)과 합일(合一)에 이르는 은밀한 경험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 밖에도 동방에서 유래한 것으로 황제를 신(神)으로 숭배하는 사상이 있었는가 하면 가장오래 된 형태의 제의(祭儀) 종교들이 되살아나 유행하게 되었다. 영혼불멸을 믿는 신앙과 장차 심판을 받아 형벌을 받거나 복된 삶을 누린다는 믿음도 보편적이었다.
4. 그리스 로마 철학
서양철학 사상은 교부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플라톤(Plato, BC 427-?) 철학은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가 말한 이데아(idea)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창조사상이 전혀 담겨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하늘나라와 현세를 설명하는 데 이용되었으며, 영혼 불멸의 사상은 부활 신앙과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죽음 후의 세계를 설명하는 데 이용되었다. 플라톤의 회상(回想)의 사상은 영혼의 선재설(先在說)을 전제하는 것이지만 오리겐(Orisen, ?-254) 같은 이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플라톤의 이데아의 사상은 무신론에 대한 변증으로 이용되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의 철학은 플라톤주의나 신플라톤주의와는 달리 기독교 세계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었는데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12세기경 아랍 세계로부터 의술과 함께 전해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 등 중세 신학자들의 신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 밖에 스토아철학과 신플라톤주의 사상은 신학자들의 사상적 배경에 영향을 주었다.
철학 사상에는 기독교 교리를 이해하는 데 다소 도움을 주는 면도 없지 않았으나 대체로 잘못 이해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많았다. 특히 필로의 그리스_유대 철학이나 유대교의 에비온주의 혹은 영지주의 등의 사상은 기독교 교리를 왜곡하는 사상이었다.(*) 글쓴 이 / 김영재 교수(서울대 종교학과, 영국 Clifton Theological College 수학, 독일 Wuppertal Kirchliche Hochschule 수학, 총신신대원 편목, 독일 Phi1ipps Universitat zu Marburg에서 신학박사, 독일 포이딩겐 독일인교회, 미국의 미네소타와 아틀란타의 한인교회 목회, 서울대 강사, 총신대 신학대학원의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역임, 저서: Der Protestantismus in Korea und die calvinistische Tradition, Peter D Lang, Frankfurt am Maln, 1981. 외 다수의 저서와 역서) 출처: 김영재 저 ‘기독교 교리사’ (서울, 합신대학원 출판부), 2009.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