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를 알면 성경이 보인다(5) 기독교 초기 사상적 배경
교리를 알면 성경이 보인다(5)

제2장 기독교 초기와 성장기 사상 배경(2)
5. 플라톤 철학
플라톤(Plato, 427-347 B.C.)은 소크라테스(Socrates, 469-399 B.C.)의 사상을 전적으로 계승 발전시켰다. 그는 아테네의 명문 출신으로서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의 제자 크라틸루스(Cratylus)에게서 철학을 배우고 20세에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어 8년간 가르침을 받았다.
주전 387년에 아테네 근교에 있는 자기 장원(莊園)에 학원을 세워 아카데미아(Academia)라고 명명하고 20년 동안 이 학원의 지도자로서 활동했다. 이 학원은 주후 529년까지 약 900년간 유럽 최대의 학원으로 존속했다. 플라톤은 20편이 넘는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플라톤은 자신의 사상을 애써 체계화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이미 말한 것도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수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저작에는 그의 사상의 발전 과정이 그대로 나타난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와 같이 참다운 인식(認識)은 개념적 인식이라 하고 이 개념적 인식은 변증법(辨證法, Dialektik)을 통해 얻게 된다고 한다. 플라톤은 이 변증법을 사용하여 절대적 실재인 이데아(idea)를 인식하려고 한다. 개념적 인식의 대상이 되는 것을 에이도스(eidos, 形相) 또는 이데아(idea)라고 부르고 그것은 어떤 사물로 하여금 그 사물이 되게 하는 본질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하는 ‘아름다움’ 자체라는 것이다.
플라톤은 생성하고 소멸하는 다양한 감각적 세계에 대해 항상 불변하는 초감각적 세계를 생각하고 이것을 ‘이데아의 세계’라고 칭한다. 이 이데아의 세계에는 많은 이데아가 존재하지만 그 가운데서 선(善)의 이데아를 최고의 것으로 생각하고 모든 다른 이데아는 이 선(善)의 이데아를 목적으로 하며 그것에 종속된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의 주요 관심사는 도덕철학과 정치철학이었지만 과학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체계(體系)는 변화와 불완전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목적과 질서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데모크리투스(Democritus)는 만물의 생성을 원자들의 우연적인 결합으로 설명했으나 플라톤은 이러한 설명을 거부한다. 예를 들면 행성의 궤도는 일련의 엄밀한 기하학적 간격에 따라 배열되며 그 간격을 잘 계산하면 조화로운 비율이 나타난다고 한다.
플라톤은 세계를 묘사함에서 피타고라스학파의 수학에서 많은 부분을 사용했으나 만물이 수(數)라고 하는 대신 사물은 수를 분유(分有, 나누어 가짐)하며 따라서 사물들에 대한 수학적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사물들의 이러한 수학적 성격이 플라톤에게 의미하는 바는 사물의 배후에는 우연적이며 기계적인 메커니즘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사유(事由, 원인)와 목적도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만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정신이기 때문에 우주에는 지성(知性)의 작용이 틀림없이 존재한다고 한다. 세계가 인간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그렇게 설명한다.
플라톤은 생성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어떤 동인(動因)을 통해 생성된다고 말한다. 그가 의미하는 동인은 영지주의의 조물주(造物主, Demiurge)를 두고 말하는 것인데 이 조물주는 무로부터 창조가 아니고 혼돈의 형식 속에 선재하는 어떤 것을 질서 있게 배열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플라톤은 유물론자(唯物論者)와는 달리 물질이란 보다 근본적인 어떤 것의 현상(現象)일 뿐이라고 말한다. 만물은 정신에 의해 질서를 이루며 우주는 용기(容器) 안에 있는 세계영혼의 활동이라는 주장을 반복한다.
세계 안에 악(惡)이 존재하는 것은 조물주의 활동에 방해 요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물주에 의해 나타난 세계영혼은 용기 내에서 활기를 주는 활동이며 마치 우리에게 실체처럼 생각되거나 혹은 물질을 산출하는데 이 물질들은 실제로 단순히 기하학적 도형들의 배열에 의해 이루어진 성질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면서 악(惡)과 시간(時間)은 불완전과 변화의 산물이라고 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시간(時間)은 현상이 만들어진 후에야 나타난다. 불완전하고 변화하는 사물들이 존재하기 전에는 시간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그때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영원하다. 시간의 의미는 바로 변화이며 따라서 변화가 없는 곳에는 시간도 없다. 형상들은 초시간적인데 반해 그것들의 다양한 모사(模寫)들은 끊임없이 용기 속으로 들어가고 밖으로 나온다. 이러한 출입이 변화의 과정이며 시간의 원인이라고 한다.
6. 아리스토텔레스철학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384-322 B.C.)는 플라톤의 제자이면서 스승을 비판하고 스승과는 확연히 다른 철학의 견해를 말함으로써 플라톤과 나란히 유럽의 사상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7세에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 입학하여 학생으로 또 회원으로 20년의 세월을 거기에서 보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식논리학을 창안했다. 그의 논리학은 사유(思惟)에 대한 연구로서 단어들은 그 사유에 대한 기호(記號)들이다. 즉 그것은 사물의 본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반영하는 사유를 분석함으로써 진리에 도달하려는 시도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논리학은 실재에 관한 인간의 사유를 분석하기위한 도구이다. 사유는 실재를 항상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언어와 실재 간의 보다 적절한 관계의 정립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논리학의 기능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것을 논증하거나 증명하기 전에 추론 과정을 위한 명석한 출발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논의하고 있는 주제를 구체화해야 하며 문제의 구체적인 종류를 파악해야 하고 그 구체적 사물과 관련된 속성과 원인들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범주(範疇, categories) 이론을 발전시켰다. 예를 들어 ‘인간’이란 단어를 생각할 때 그 단어와 관련된 술어를 10가지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실체(實體), 양(量), 크기), 질(質, 말할 줄 안다), 관계(關係, 이중적 이다), 장소(場所, 학교에서), 시간(時間, 언제), 상태(狀態, 서 있다), 소유(所有, 옷을 입고), 능동(能動, 봉사하다), 피동(被動, 봉사 받는다)이 관련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範疇)들이나 분류들을 정신의 인공적 피조물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들이 정신의 외부에 그리고 사물들 내부에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사물들은 그것들의 본성에 따라 다양한 범주들에 귀속되며 범주들은 유(類)나 종(種)의 한 구성원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실재’(實在)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생각에 사유(思惟)는 존재 방식과 관련되므로 논리학과 형이상학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유는 항상 구체적인 개체 즉 하나의 실체(實體)에 관한 것이다. 사물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한 방식으로 존재하며 하나의 이유를 갖는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귀납(歸納)에 의해 여러 전제들을 인식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지식의 이러한 측면을 가설과 실험의 당위적 결론으로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그는 연역(演繹)과 논증적 추리에 강조점을 두었다. 그리고 그는 삼단논법(三段論法)을 통해 최초로 연역 추리의 기본 요소들을 분석하고 체계화하였다.
삼단논법은 전제(前提)들과 결론(結論) 간의 논리적인 관계를 결정하기 위한 도구이지만 그 목적은 과학적인 논증을 위한 도구를 제공하려는 것이었다. 그러한 이유에서 그는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관계 즉 우리의 인식 방법과 사물들의 존재 및 행동양식 간의 관계를 거듭 강조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기독교 초기의 그리스 교부들에게서 다소 언급되었으나 오랜 세기 동안 플라톤의 사상을 선호한 교부들과 신학자들에게는 망각되었다가 12세기에 이르러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아랍 세계를 통해 영입되었으며, 그의 논리학과 범주 이론은 신학과 학문을 위한 새로운 방법론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많이 의존한 대표적인 학자이다. 아퀴나스는 자연신학의 정립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의존하고 있으며, 잘 알려진 신의 존재에 대한 5가지 논증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의 개념과 최초의 ‘가동(可動)되지 않은(the unmoved) 원동’(原動, Mover)의 개념에 근거를 두고 있다.
7. 스토아철학

스토아철학(Stoicism)은 플라톤주의 계열에 속하는 사상으로 로마 시대의 지식층 대다수가 선호한 사상이다. 키티움의 제노(Zeno of Citium, ?-264 B.C.)가 이 스토아철학의 창시자이다. 브루타스(Brutas), 까토(Cato), 키케로(Cicero), 세네카(Seneca), 에픽테투스(Epictetus),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등 유수한 사람들이 이 학파를 이루었다. 고대 이교(異敎) 윤리 중에는 가장 고상한 전형이다.
스토아철학은 특이한 유물론(唯物論, materialism)을 말한다. 즉 정신과 물질로 이루어진 이 세계는 두 원리의 결과라고 가르쳤다. 정신은 원동자(原動者)이고 물질은 피동자(被動者)이다. 그런데 이 두 원리는 한 궁극적인 실재의 서로 다른 면이고 이 궁극적인 실재는 물질적이고 육체적이며 순수한 정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스토아철학은 세계는 곧 신(神)의 몸이라고 하여 범신론(汎神論)을 말한다.
또 신(神)과 세계와의 관계는 마치 영혼과 육체와의 관계와 같다고 한다. 하나님은 위대한 세계 혼(魂)이며 물질의 운동을 통해 물질을 덥게 하고 생기를 주는 불이며, 물질을 이끌어 나가는 지성이며 법칙이요, 로고스라고 한다. 스토아 철학은 또한 유신론(有神論, theism)을 말하고 있으니 범신론과 유신론을 결합시킨 절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신(神)은 자비한 섭리(攝理)요 만물의 선한 왕이며 참된 아버지이다. 그는 완전하고 자비로우며 인류를 사랑한다고 한다. 상선벌악(賞善罰惡) 사상이 농후하다. 스토아철학은 ‘지고(至高)의 선’(善, summum bonum)은 덕(德, virtue)이라고 하며 “덕을 위하여 덕을 행하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죄(罪) 혹은 죄의 근원은 무지(無知)요 이성(理性)의 결핍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감각적인 것은 죄악(罪惡)에 속한 것이며 죄는 인류의 보편적인 상태라고 말한다.
스토아철학은 또한 세계동포주의를 말한다. 하나님의 보편적 부성(父性)의 개념을 분명히 드러낸다. 아라투스(Aatus)는 말하기를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권속이다.”라고 했고 클레안투스(Cleanthus)는 “우리는 또한 그(神)의 소생이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류는 상호 협조해야 한다고 한다. 신(神)은 영(靈, πνεύμα)으로서 우주와 누스(νους) 또는 로고스(λόγος) 및 세계를 지탱하는 힘(force, 동양철학의 기-氣)를 발산한다고 하며, 이 신(神)은 플라톤의 속성 없는 존재(Being)처럼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자연법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아버지’라고 한다.
스토아철학은 진리에 관한 지식을 통해 사람은 선하게 된다고 하며 선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이 나쁘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런 지식은 이데아의 세계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다고 하는 회상(回想, recollection)을 통해 즉 형이상학적인 사색을 통해 그리고 신(神)의 도움을 통해 얻게 된다고 한다.
모든 사람은 이 세계의 위대한 공화국의 구성원이며 행복한 삶은 로고스(logos, λόγος)가 우리 안에서 충만할 때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로고스 또는 우리 안에 있는 신(神)과 우리의 육체 사이에는 알력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육체로부터 해방을 받는 것이 곧 인간이 바라는 가장 높은 목표이며 도피의 길은 언제나 열려 있으므로 그것을 넘어서면 위대하고 영원한 평화가 있다고 한다. (*) 글쓴 이 / 김영재 교수(서울대 종교학과, 영국 Clifton Theological College 수학, 독일 Wuppertal Kirchliche Hochschule 수학, 총신신대원 편목, 독일 Phi1ipps Universitat zu Marburg에서 신학박사, 독일 포이딩겐 독일인교회, 미국의 미네소타와 아틀란타의 한인교회 목회, 서울대 강사, 총신대 신학대학원의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역임, 저서: Der Protestantismus in Korea und die calvinistische Tradition, Peter D Lang, Frankfurt am Maln, 1981. 외 다수의 저서와 역서) 출처: 김영재 저 ‘기독교 교리사’ (서울, 합신대학원 출판부), 2009.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