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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를 알면 성경이 보인다(6) 기독교 초기 사상적 배경

교리를 알면 성경이 보인다(6) 기독교 초기 사상적 배경

기독교 초기 기독교에 사상적 영향을 끼친 인물들, Philo of Alexandria (B.C.30-A.D.45경, 그리스적 유대철학, Lt.), Plotinus(203-270, 신플라톤주의, Mi.), Marcion of Sinope(85?-160?, 영지주의, Rt.) 

제2기독초기성장배경(3)

8. 그리스적 유대철학    

그리스적 유대철학(Greek Judaic Philosophy) 사상은 기독교 교리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사상은 ‘솔로몬의 지혜서’와 고대 유대인 철학자 필로(Philo of Alexandria, 30B.C.- A.D.45경)에게서 현저하게 나타난다. 이 사상에 의하면 신(新) 플라톤(Neoplatonism)처럼 속성이 없는 추상적 존재로 인식하며 신(神)과 물질(物質, ὕλη, matter)에는 현격한 거리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중간에 중개적(仲介的) 존재들 즉 천사, 마귀, 능력(能力, Δύναμις, powers)이 있고 로고스들(λογος, words) 또는 지혜(知慧, σοφία) 또는 로고스(word)가 있다고 한다. 로고스는 처음 난 말씀 즉 또 다른 신(λογος θεὸς)으로서 하나님처럼 탄생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 사람처럼 출생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로고스는 피조물과 그를 낳은 자와의 사이에서 중재하며 인간을 변호하는 대제사장이요 하늘의 떡이요 지식의 원천이요세상이 창조될 때 쓰인 도구라고 한다.

그런데 로고스를 인격으로 이해하거나 메시아와 관련시켜 보지는 않았다. 그리스적 유대철학 사상은 이원론적인 인간관을 말한다. 몸을 감옥으로 보고 수태(受胎)와 탄생(誕生) 자체를 죄라고 한다. 따라서 구원(救援)은 감각적인 몸의 욕정(慾情)을 벗는 것이며 그것은 율법의 성취를 통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열광적인 도취(陶醉)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9. 신플라톤주의 

주후 3세기에 플로티누스(Plotinus, 203-270)는 플라톤의 철학을 종교적인 구원론과 결합하여 재해석한 사람으로서 그의 사상은 어거스틴의 신학과 플라톤의 철학을 연결시킨 가교(架橋) 역할을 한 사상이며, 기독교 역사에서 여러 신학자들의 사고(思考)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상이다. 플로티누스는 주후 203년 이집트에서 태어나 알렉산드리아의 암모니우스 사카스(Ammonius Sakkas, 175-242)의 문하에서 배웠다.

40세가 되던 해에 로마로 가서 활동하였다. 그가 쓴 54편의 논문을 그의 제자 포르피리오스(Porpyrios, 234-305)가 9편씩 묶어 여섯 부분으로 분류하고 ‘엔네아데스’(Enneades)라는 제명으로 책을 편찬하였다. 플로티누스 철학의 독특한 점은 실재(實在)의 체계에 대한 사색적인 기술을 종교적 구원론과 결합시킨 점에 있다. 그는 세계를 기술할 뿐 아니라 세계의 원천과 세계 안에서 인간의 위치와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지를 설명한다.

플로티누스는 스토아학파(Stoicism), 에피큐로스학파(Epicureanism), 피타고라스학파(Pythagoreans), 아리스토텔레스학파(Aristotelianism)의 사상이 영혼의 참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여 거부한다. 그는 스토아학파와 에피큐로스학파가 유물론(唯物論)의 입장에서 물질적인 육체로부터 영혼의 원초적(原初的)인 독립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거부한다. 그리고 영혼을 육체의 조화(調和)라고 말한 피타고라스학파는 육체가 조화롭지 못한 경우에는 그것이 영혼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으므로 잘못 된 이해라고 한다. 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영혼은 육체의 한 형태이며 육체 없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육체의 일부가 그 형태를 잃으면 영혼도 그만큼 손상을 받게 된다고 하므로 그러한 견해를 따를 수 없다고 했다.

플로티누스는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플라톤이 사용한 신화와 비유에서 보여 주는 사상을 따르며 실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플라톤의 설명을 따른다. 플라톤은 조물주(Demiuige, 창조의 신)가 물질로 세계를  형성한다고 하는데 선재(先在)하는 영혼이 육체에 들어가면 육체 속에 죄수처럼 갇혀 있다고 한다. 영혼은 욱체에 갇힌 포로생활을 탈피하여 자신의 원천으로 회귀하기 위해 투쟁한다고 하며 선(善)의 이데아(Idea)는 태양에서 발산되는 빛줄기와 같다고 하고 진정한 실재는 물질세계가 아니라 정신세계에서 발견된다는 개념을 말한다.            

플로티누스는 이러한 플라톤의 기본 사상을 취하였다. 특히 영혼만이 진정한 실체(實體)라는 플라톤의 핵심 사상을 강조하고 새롭게 재구성하였다. 플로티누스는 하나인 신(神)을 인식한다. 불변(不變)하는 것만이 존재 가능하며 따라서 이 불변의 실재는 물질세계와 구별되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참된 실재(實在)가 신(神)이며 신(神)은 세계 내의 모든 사물을 초월하므로 신(神)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기술할 수 없다고 함으로써 초절적(超絶的)인 신(神)을 말한다.

‘신은 하나’라는 말은 ‘신은 존재한다.’, ‘신은 세계를 초월한다.’, ‘신은 어떠한 이중성이나 가능성 혹은 물질적인 제한을 가지지 않고 단순하다.’, ‘신은 모든 차별을 초월한다.’는 말과 같다고 한다. 신(神)이 하나라면 그는 창조(創造)할 수 없으니 창조는 한 행위이며 활동은 변화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물은 필연(必然)에 의해 빛이 태양에서 방출(放出)되듯이 신에게서 유출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최초의 방출물(放出物)은 정신(精神)이며 빛이 태양에서 방출되어 나오면서 그 강도가 점차 감소되듯이 신으로부터 유출(流出)되는 존재도 점차 완전성의 정도가 감소를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정신에서 —> 세계의 영혼 —> 세계의 영혼에서 —> 인간의 영혼이 유출되고 그 아래 물질세계가 펼쳐진다고 한다.

플로티누스는 악의 원천(原泉)도 유출설로 설명한다. 신(神)은 자신을 완전하게 묘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유일하고 가능한 방식으로 다시 말하면 유출 속에서 완전성의 모든 가능한 정도를 표출함으로써 그것을 대신 한다고 한다. 그래서 ‘누스’(理性)뿐 아니라 최하위 존재인 물질을 가져야만 한다고 하며 거기에는 도덕적인 악, 죄, 고통이 있고 정욕들이 계속되는 갈등, 죽음과 슬픔이 있다고 한다.

플로티누스는 악(惡)을 실체로 보지 않고 완전성의 위계질서에 한 위치를 점유(占有)하는 것으로 다시 말하면 악(惡)은 이미지에 대한 아름다움을 더해 주는 초상화의 어두운 암영(暗影) 부분과 같은 것으로 본다. 그러나 플로티누스의 신론은 신의 초월을 말하면서도 사물의 존재를 유출설로 설명하기 때문에 범신론(汎神論)을 탈피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여하튼 플로티누스가 악의 원천을 말할 때 이원론을 지양한다는 점에서 어거스틴은 마니교의 이원론을 극복하고 기독교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얻었다.                

10. 영지주의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는 주후 70년에서 250년경까지 널리 퍼졌던 신지적(神知的) 운동(theosophical movement)이다. 아마 기독교 이전에 이미 있었던 운동으로 추정한다. 영지주의는 하나의 사상 체계라기보다는 분위기 또는 신비주의(神秘主義) 운동이라고 평한다. 그래서 역시 이론보다는 실제적인 면에서 따르는 자들에게 매력이 있었다.

신약성경에도 그리스어 ‘그노시스’(γνῶσις)라는 말이 더러 사용되는데(롬 11:13, 고전 15:34, 딤전 2:4), 거짓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하라’는 디모데전서 6:20은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을 두고 한 말로 생각된다. 그 밖에도 골로새서에 영지주의를 의식하여 교훈하는 말씀의 흔적이 있다고 한다.

영지주의는 지역별로 차이가 있는데 시리아, 알렉산드리아, 소아시아 영지주의로 구분한다. 영지주의의 주도적인 인물들로는 바실리데스(Basilides, 117–138), 사토르닐누스(Satornilus), 발렌티누스(Valentinus,  100-160/180)를 들 수 있다. 헤라클리온(Heraklion), 프톨레미우스(Ptolemius), 테오도투스(Theodotus)로 이루어진 이탈리아 학파가 있고, 악시오니쿠스(Axionicus)와 바르데사네스(Bardesanes) 등 바렌티누스의 제자들인 동방학파가 있다. 그밖에 오피테스(Ophites), 페라테스(Perates), 셋 파(Sethians), 영지주의자 저스틴(Justin), 나세네스(Naassenes), 마르키온(Marcion), 카르포크라테스(Carpocrates)등이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영지주의자라고 자칭하였다.

시리아의 영지주의자들(Syrian Gnostic)에게는 동방적인 이원론(二元論)에 금욕적(禁慾的)인 요소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영지주의자들(Alexandrian Gnostic)은 플라톤적 신(神) 개념을 가졌으며 애온(aeons, 천상의 존재들)의 체계를 역설하는 것이 특징이다. 소아시아의 영지주의(Asia Minor Gnostic)는 탈선되고 과장된 바울주의라고 하는데 마르키온(Marcion of Sinope, 85?-160?)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영지주의의 특징으로는 먼저 이교적(異敎的) 혼합주의(混合主義, syncretism)를 들 수 있다. 영지주의에 나타난 여러 요소를 분석하면 우주(宇宙)의 여러 신화(神話), 그리스와 동방의 이교적 철학 사상, 기독교 교리 등이 혼합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하면 바빌로니아, 시리아, 소아시아, 페르시아와 인도 등의 여러 종교들과 유대교의 필로(Philo),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의 혼합이었다.

이런 신비주의적이며 혼합주의적인 영지주의는 다만 그리스도를 구속자(救贖者)라고 강조한 점에서 기독교적이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배타적인 고대철학과 종교의 귀족적 계급(hierarchy) 사상 역시 영지주의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영자주의자들은 진리를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 인간을 ‘아피스토이’, ‘프슈키코이’, ‘프뉴마티코이’ 세 계급으로 구별했다.

‘아피스토이’는 하층부를 이루는 다수의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진리를 이해할 희망이 전혀 없는 동물적인 인간을 지칭하고, ‘프슈키코이’는 동물적 인간이기는 하나 신앙을 가질 수 있는 자를 지칭하며, ‘프뉴마티코이’는 믿는 자가 아니고 지식을 갖는 자 즉 진리를 터득할 수 있는 자, 신앙이 아닌 사색(思索)을 통해 진리를 깨닫는 자를 지칭했다.

영지주의는 창조(創造)와 구원(救援) 이 두 가지 문제에 주로 많은 관심을 쏟았다. 즉 창조에 관하여는 무한한 절대적 초월적(超越的) 존재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물질계(物質界)에 접촉하러 올 수 있었으며, 물질계의 창조자가 될 수 있었느냐하는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구원에 관하여는 악(惡)의 존재와 악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을 구원이라 했는데 물질을 근본적으로 죄악시하고 구속이란 금욕과 계몽을 통해 물질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라고 했다.

영지주의는 또 이원론적(二元論的)인 세계관을 말한다. 그것은 조로아스터교(拜火敎, Zoroastrianism or Mazdaism)의 영향 아래 형성된 시리아 사상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빛과 어두움, 정신과 물질을 대립적으로 본다. 즉 물질세계는 악의 원리에 의하여 지배되며, 선하신 신에 의하여 지배되는 정신의 세계 즉 완전한 세계인 ‘플레로마’(πλήρωμα, to fill up, to complete)와 대립으로 본다.

영지주의는 인간의 영혼을 섬광(閃光, spark) 또는 ‘플레로마의 씨’(seeds of Pleroma)라고 하여 인간의 영혼(靈魂)은 영혼의 무덤인 육체(肉體)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지주의는 하나님이 창조자(創造者)라는 것을 부인하고 인간의 영(靈)과 육(肉)이 합하여 하나의 인격체(人格體, unity)를 이룬다는 사실과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며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의 실재성을 부인한다.

영지주의자들은 기독론을 말하면서 구속론(救贖論) 보다는 우주 진화론(cosmo-eony)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플레로마’는 신(神, god) 또는 빛의 세계라고도 하는데 일련의 ‘애온들’(aeons) 즉 천상의 존재들로  되어 있다고 한다. ‘데미우르게’(Demiurge)는 비교적 낮은 신(god)으로 구약의 신(神)이 바로 이 ‘데미우르게’라고 한다. 영지주의자들은 구약의 신과 신약의 신을 구별하여 유대인의 신 즉 구약의 신은 신약의 참 신보다 열등하다고 한다.

그리스도는 상위(上位)의 ‘애온’으로서 그의 지상 과업은 인간을 구속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예컨대 나세네스(Naassenes)의 노래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보내주십시오! 오 아버지여, 나는 하계(下界)로 내려가겠나이다. 모든 애온들 가운데로 두루 돌아다니며 인간들에게 모든 신비를 나타내리이다.” 그리고 성육(成肉)에 대한 설명으로는 그리스도께서는 환상적(幻想的) 육체에 거하셨다고 하여 가현설(假現說, Docetism)을 말하며 이중적 품성(稟性, personality)을 주장하였다. 그의 죽으심은 명백한 것이었다고도 하고 더러는 불필요하다거나 또는 하나의 속임수였다고도 한다.

주  제영지주기독교
1. 하나님설명이 불가능한 완전한 선재, 비인격적인 에이온(aeon)창조주, 아버지, 구속 주,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
2. 예수 그리스도참 하나님의 독생자 누스(Nous)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하나님
3. 인 간몸의 악에 갇힌 신성의 불꽃(영혼)영과 육을 지닌 인격체
4. 구 원지식(영지)에 의한 물질로부터의 해방죄 사함 받아 의로워짐
5. 만 물유출창조
6. 교리와 신앙의 기초이원론 철학성경
7. 부 활없음있음

< 영지주의와 기독교의 비교 >

영지주의의 성경관은 물론 교부들의 성경관과 다르다. 마르키온의 경우 그는 구약은 종교적 가치가 거의 없다고 보며 영지주의의 체계를 위해 성경을 풍유적(諷諭的)으로 해석한다. 성경과 관련하여 비밀의 전통을 주장하였으며 많은 위경(僞經)을 썼다.      

대표적 영지주의자들로 발렌티누스(Valentinus), 바실리데스, (Basilides), 마르키온(Marcion of Sinope)을 들 수 있다. 발렌티누스는 알렉산드리아 사람으로 처음에는 거기서 가르치다가 2세기 중엽에는 로마에서 활동하였다. 지성인이며 시인으로서 교회 안에 머물렀으나 많은 애온들로 구성된 천상에 관하여 말했다. ‘진리의 복음’(Gospel of Truth)을 썼으며 많은 제자들을 두었다.

바실리데스는 안디옥 출신으로 117-138년 알렉산드리아에서 가르쳤다. 여러 충의 무려 365개 층의 천당(天堂)에 천사들이 각각 있다고 가르쳤다. 사투르니누스(Saturninus)는 안디옥에서 활동했으며 금욕을 강조했다. 바르데사네스(Bardesanes)는 주후 200년경 인물로 시인이요 성가(聖歌) 작사자로 활동했다.

마르키온은 주후 l45-l65년의 기간에 로마에서 가르쳤다. 마르키온은 신약의 정경성에 대해 제일 먼저 언급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신약의 일부 즉 누가복음과 10개의 바울 서신을 정경(正經, canon)이라고 했다. 사변적이기보다는 실제적 이어서 형이상학적인 것보다는 구원론에 더 관심을 두었다. 십자가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는 가장 기독교적인 영지주의자였다.

그러나 그도 역시 기독교를 철학으로 보며 누가 말했든지 옳은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것이라고 한다. 또한 추상적(抽象的) 유일신(唯一神)을 말한다. 멀리 있는 하나님은 역시 ‘구약의 하나님’이라 하고 아들은 유일하지만 종속적(從屬的, subordinate)이며 수적(數的)으로 ‘다른 이’라고 하고, ‘하나님과 다른 주님’이라고 부른다. 또한 마르키온은 성령을 제삼위의 신이라고 말하고 예배의 대상이 되신다고 한다. 이를 위해 세례 의식의 말씀을 인용한다.        

그러나 로고스와의 관계를 어떻게 보았는지는 불분명하다. 오틀리(Ottley)에 따르면 마르키온은 예수의 선재성(先在性, preexistence)은 인정하나 그의 신성(神性)은 과소평가하며 영원하신 아들이심을 부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나신 분’이시지 ‘피조물’은 아니라고 한다.

영지주의는 교회를 자극하여 교회로 하여금 자체의 보편성(catholicity)을 주장하게 하였으며 성경의 정경화(正經化)를 촉진시켰다. 또한 기독교를 근본적으로 하나의 교리적 체계로 볼 수 있다는 영지주의의 논의에 대하여 교회는 교리가 실제로 어떤 것이라는 것을 답변하게 되었으며 교회의 통일을 위한 신앙의 표준(標準, regula fidei)을 설정하게 되었고 여기서 신조(信條)의 탄생을 보게 되었다.(*) 글쓴 이 / 김영재 교수(서울대 종교학과, 영국 Clifton Theological College 수학, 독일 Wuppertal Kirchliche Hochschule 수학, 총신신대원 편목, 독일 Phi1ipps Universitat zu Marburg에서 신학박사, 독일 포이딩겐 독일인교회, 미국의 미네소타와 아틀란타의 한인교회 목회, 서울대 강사, 총신대 신학대학원의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역임, 저서: Der Protestantismus in Korea und die calvinistische Tradition, Peter D Lang, Frankfurt am Maln, 1981. 외 다수의 저서와 역서) 출처: 김영재 저 ‘기독교 교리사’ (서울, 합신대학원 출판부), 2009.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