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사

교리를 알면 성경이 보인다(8) 기독론과 삼위일체론

교리를 알면 성경이 보인다(8) 기독론과 삼위일체론

제3초기기독론위일체론(2)

4. 변증가들의 신학

2세기 후반에 활동한 변증가들(The Apologists, 140-180)은 전(前) 시대의 속사도 교부들과 3세기의 교부들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한 신학자들로서 기독교를 오해하거나 공격하는 외부인들 특히 영지주의자들에 대항하여 기독교 진리를 변증(辨證)한 이들이다.    

그들은 구약과 신약의 관련에서는 기독교의 역사적인 계속성을 변증하는 한편 기독교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증언자들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최종 계시라고 논하였다. 그러나 동방의 변증가들은 헬레니즘 사상의 배경에서 기독교 진리를 이해하고 변증하려고 하였으므로 이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도를 로고스(λόγος, logos) 사상으로 이해하고 변증하려고 한 점이다.

(1) 변증들과 그들의 문서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 100-165)은 세겜에서 출생하여 스토아학파, 소요학파, 피타고라스학파, 플라톤주의자로 전전(輾轉)하였고 마르키온(Marcion of Sinope, 85-160)에 대항했으며, 로마에서 일하다가 나중에 140년에서 165년까지 소아시아에서 활동하였다. 150년경 디오게네투스(Diogenetus)에게 보내는 편지는 저자와 수신자가 미상이다.

아리스테데스(Aristedes)는 133년 황제 하드리안(Hadrian)에게 기독교에 대한 변증서를 보냈다. 아테나고라스(Athenagoras)는 아테네 출신으로 176년경 ‘부활에 관하여’, ‘기독교인을 위한 탄원’을 써서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와 코모두스(Commodus)에게 보냈다.

타티안(Tatian)은 앗시리아 사람으로 l60년 로마로 와서 저스틴을 통해 기독교인이 되었단. 타티안이 쓴 ‘그리스인에게 부치는 말’은 적극적인 변증이라기보다는 이교(異敎)에 대한 공격이었다.  

오필루스(Theophilus)는 안디옥의 감독(176-186)을 지냈으며, 180,181년 그의 친구 아우톨리쿠스(Autolycus)에게 보내는 변증서를 썼다.

(2) 로고스 사상의 배경

변증가들의 신학에서 두드러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로고스(λόγος, Logos) 사상으로 설명하려고 한 점이다. 로고스 교리의 배경으로 말하면 다음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스토아철학은 로고스를 신(神)의 내재(內在) 원리로 본다. 내재하는 신적 세계의 이성(理性)은 범신론적(汎神論的)인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한다. ‘씨가 되는 말씀’은 만인에게 어느 정도 취입(吹入)되었다고 말한다. 즉 사람은 누구나 다 이성(理性)을 가졌다는 말이다. 내재(內在)하는 로고스와 발설(發說)된 로고스 사이에는 구별이 있다고 한다.

플라톤주의는 로고스를 초월의 신(神)과의 중개자(仲介者)로 보았다. 플라톤주의자들의 신관에 의하면 신(神)은 파악할 수 없는 행동하지 않는 순수한 영(靈)이다. 그렇다면 “이 영이 어떻게 물질을 가동(可動)하는가?”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로고스가 곧 중개자라고 한다.

• 유대교적인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필로(Philo)는 플라톤주의와 스토아주의를 유대교적 사상과 혼합하여 로고스는 하나님과 세계의 중개적  존재로서 계시의 원리라고 한다. 로고스는 하나님의 첫 아들이요 인간보다 높은 이성(理性)이요 우주창조의 원리(原理)라고 한다.

구약성경의 말씀(dabar, 로고스) 교리는 신약의 요한일서에서 볼 수 있는데 데오필루스만이 요한일서를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3) 변증가들의 로고스 기독론

변증가들은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로고스가 기독교 주변의 스토아 철학이나 플라톤주의 사상에서 익히 알려진 말이므로 로고스의 의미를 밝힘으로써 그리스도를 설명하려고 했다.  

• 변증가들은 로고스의 영원성에 관하여 말했다. 그들은 로고스를 ‘누스’(이성)와 동일(同一)하게 보았으며, 하나님은 결코 비(非) 로고스가 아니라고 한다. 신의 이성(理性)이요, 혹은 사상(思想)인 로고스는 하나님의 심중에 비(非) 물질적으로 거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생성되지 않은 지고(至高)의 원인(supreme cause)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로고스를 비(非) 인격적인 것으로 보았다.

• 변증가들은 시간 속으로 들어온 로고스를 말하면서 로고스는 우주를 창조하기 위해 ‘의지의 행위’(by an act of will)로 산출(産出, generated) 된 것이라고 했다. 로고스는 한 가닥 빛과 같이 그 원천(源泉)에서 나왔으나 원천에서 분리되지는 않고 그의 인격이 구별되기는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과 동일시된다고 한다. 그는 종속적(從屬的)인 존재이며 아버지에 비하면 피조물(被造物)이고 ‘아버지가 처음 낳으신 일’(the first begotten work of the Father)이다.

• 창조와 섭리에 관해 말하면서 스토아학파의 영향을 받아 로고스는 아버지의 대행이며 모든 옳은 이성(理性)의 원천이라고 한다. 타티안(Tatian)은 그리스도를 일반적 의미의 로고스와 구별하여 ‘노고스’라고 불렀다. 타티안에 따르면 로고스를 따라 사는 사람 즉 이성(理性)을 따라 사는 사람은 모두 다 ‘로고스’를 따라 사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그리스 철학이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라는 뜻에서 한 말이었다. 로고스는 특별히 이스라엘의 선지자와 선생들을 영감 했다고 하며 예언의 성취를 강조한다. 원효(元曉)를 가리켜 기독교 전래 이전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관점은 타티안의 관점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 변증가들은 성육(成肉)에 관해 말하면서 가현설과 양자론(養子論)에 반대하고 하나님과 사람(신성과 인성)의 참된 연합을 주장했으며 성육을 가리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표현한다. 로고스 전체(the whole Logos)가 그리스도 안에서만 시현(示顯)되었다고도 말한다. 그리스도는 진정한 인간의 혼(魂)과 몸(肉)를 입어 성장하고 생활했다고도 말한다.  

• 구원사역에 관해서는 유일신관과 도덕적생활을 요구하는 새 법칙(율법)과 특히 포상과 형벌을 가져오는 부활관에 근거하여 이해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능력이 있다고 하며, 그리스도는 인간의 우두머리로서 악마와의 싸움에서 얻은 승리를 자기 백성들에게 나누어준다고 한다. 세례를 통해 즉 믿음과 십자가를 통해 새로운 인간성이 살아난다고 한다. 구원에 대한 이런 공로주의 사상은 율법주의적인 유대교와 다른 이방 종교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구원 사상이다.

이같이 변증가들이 기독교를 변증한다는 목적은 좋았으나 허술한 데가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물이 새는 배를 띄운 셈이라고 평을 듣기도 한다. 자신들이 주변의 헬레니즘 문화와 사상에 젖어 있는 데다가 거기에 관심을 가지고 기독교 진리를 주변의 사장 개념으로 설명하다 보니까 오히려 속사도들보다 성경적 교훈에서 더 후퇴하게 된 것이다.

변증가들은 아들이 인격이심(personality)을 명백히 드러내지 못했다. 아들을 비인격적인 말로 표현함으로써 삼위일체 교리를 두고 양태론(樣態(論)을 말한 사벨리우스(Sabellius)에게 길을 튼 셈이다. 그리고 아들은 산출(産出, projection)에서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표현은 아들의 영원성을 분명히 표현하지 못한 것이므로 이런 표현이 또한 아들은 하나님이 아니고 피조물이라고 말하는 아리우스(Arius)를 배태(胚胎)하게 하였다.

그뿐 아니라 아들이 아버지와 동등(同等)한 신성(神性, co-equal deity)이라는 이해가 불분명하다. 즉 아들은 하나님보다 하위(下位)에 속한다고 하는데 이 역시 아리우스 배태에 일조했다. 이교(異敎)의 신화에 보면 우주적 중개자가 하나님보다 열등하다는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다. 그리스 사상에서도 첫 원리는 그것으로부터 유래한 것보다 우위에 있다고 한다.

변증가들의 가르침을 따르자면 교회는 ‘우주적 중보’와 ‘신에게서 유래한 것’이라는 개념을 폐기해야만 했다. 이런 로고스 기독론은 이 이후에도 신학자들의 사상을 1세기 이상을 지배했다. 터툴리안, 클레멘트, 오리겐, 아리우스파의 이단들 및 단일신론(單一神論) 자들과 심지어는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373)까지도 이를 논했다. 그러다가 4세기 이후에야 비로소 이 잘못 된 로고스교리가 폐기되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니케아의 정의가 확정된 이후 정통적인 신학자들이 비로소 아들은 아버지보다 열등하다는 종속설(從屬說, suboidinatetheory)과 아들은 아버지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다는 유래설(流來說)에서 벗어났다.

(4) 단일신론(單一神論)

2세기부터 4세기 초까지 교회 안팎에서 에비온파, 영지주의 종교철학, 마르키온과 단일신론 등의 여러 잘못된 신학 사상들이 일어났다. 교회는 이런 주장에 대항하여 정통적인 교의(敎義)가 형성되었다. 그밖에 신앙의 표준(Rules of Paith)의 발전을 보게 되었으며, 성경의 정경(正經)이 확정되었다. 감독 제도가 발전 공고해졌고 교회에서 분리해 나간 몬타누스운동(Montanism)이 있었다. 로마 가톨릭은 몬타누스운동을 배격했다.

그밖에 교회가 외부적으로는 박해하에 있었으며 내부적으로는 갈등이 있었다.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단일신론((單一神論, monarchianism)이 대두되었다. 이를 군주신론(君主神論,) 혹은 독재론(獨裁論)이라고도 번역한다.

 나사렛 예수, 역사에 사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데 참으로 그런지 그렇다면 어떻게 그러한지 그리고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묻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 기독론이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同一)한 하나님이신지 영원부터 계신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은 어떤 관계인지,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구원하시는데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묻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 삼위일체론이다.

이 시대에 활동한 신학자들로 말하자면 소아시아에는 서방신학에 속하는 이레니우스와 그의 제자 히폴리투스(Hippolytus, 170-236)가 있었고, 북아프리카에는 서방신학을 대표하는 잘 알려진 터툴리안과 키프리안(Cyprian)이 활동했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변증가들을 이어 그리스신학을 대표하는 클레멘트와 오리겐이 활동했다.

서방신학과 그리스신학 즉 동방신학의 차이점을 들자면 서방신학은 윤리적이고 실천적인 면에 더 관심을 가지는 데 반하여 동방신학은 사변적(思辨的)이며 계시(啓示)와 이성(理性)의 조화를 추구하는 한편 윤리적이기보다는 지적(知的)인 것을 추구한다. 서방신학은 신앙을 주로 진리의 표준 혹은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는 교리 체계로 간주하는 반면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 신학자들은 계시의 계속을 주장한다. 그리스도는 초월해 계시는 신성(神性)의 최종적인 계시일 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서 각 시대의 사람들을 계몽하고 교육하는 로고스(Logos)라고 간주하며, 기독교는 신조(信條)일 뿐 아니라 완전한 철학이라고 말한다.  

삼위일체 신론(神論)은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일 때 고백할 수 있는 신론이다. 유대교 사상이나 그리스 철학과 기타의 사상에서 출발하여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거나 합리적인 논리를 따라 설명하려고 하면 단일신론적(單一神論的) 이해로 귀결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삼위일체에 대한 단일신론적 이해는 하나님의 존재를 논하거나 논증하려는 유신론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사상에서 늘 볼 수 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지 않는 17-18세기 계몽주의 이후 합리주의자들과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삼위일체 교리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고 문서로 취급하며,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므로 삼위일체 교리가 관심의 대상일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도대체 삼위일체 교리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었다.

2-3세기에 있었던 단일신론은 로고스 기독론과 철학적 기독론에 반대하여 일어난 사상으로 터툴리안이 처음으로 명명한 것이다. 단일신론은 하나님의 단일성(單一性)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신성(the Godhead, Gottheit) 안에서 삼위(三位) 즉 세 분의 인격(人格)이 구별됨이 없다고 하는 주장이다. 주장하는 내용을 따라 동적(動的, dynamic) 단일신론과 양태론적(樣態論的, modalistic) 단일신론이라 이름하고 구분하는데 동적 단일신론은 양자론(養子論)에 가깝고 양태론적 단일신론은 가현설(假現說)과 유사하다. 양태론적 단일신론을 줄여서 양태론(樣態論, modalism)이라고도 한다.

  ① 동적 단일신론

동적 단일신론(dynamic monarchianism)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인데 그를 하나님 아버지가 양자(養子)로 삼으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하는 양자론(養子論)의 견해를 가지고 하나님의 삼위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 를 말하는 대표적 인물은 데오도투스(Theodotus)와 사모사타의 바울이다.

데오도투스는 피혁상(皮革商)을 하다가 185년경 비잔티움에서 로마로와서 추종자들을 얻었다. 비잔티움(Byzantium)은 콘스탄티누스(Constantine the Great, 272-337) 황제가 천도(遷都)한 이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라했는데 현재의 이스탄불(Istanbul)이다. 195년 로마의 감독 빅토르(Victor, 186-198)는 데오도투스에게 수찬(受餐) 정지의 징계를 내리는 한편 그의 가르침을 하나님을 부인하는 배교자(背敎者)의 교리라고 하며 정죄하였다.

금전 중개상을 하는 데오도투스의 아들이 교회를 세우려 했으나 교회의 분파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로마의 감독들이 이를 막았다. 그 이후 250년경에는 아르테몬(Artemon)이 이들 그룹의 대표자가 되었으며 로마에서 고립된 채로 운동을 계속하였다.  

데오도투스는 플라톤주의자라기보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로서 성경을 풍유화(諷喩化)하는 것을 반대하고 문자주의와 사본(寫本) 비평을 선호했다.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신명기 18:15, 이사야 53장, 요한복음 8:40, 사도행전 2:22, 디모데전서 2:5 등의 말씀을 인용하며, 소아시아의 알로기(Alogi)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께서 인간이심에 역점을 두었다. 예수는 단지 인간일 뿐 동정녀(童貞女)에게서 탄생하셨고, 특별히 거룩하시며,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을 받으셨다고 한다. 부활 후 하나님의 양자(養子)가 되었으며, 초인간적인 권위를 부여받으셨다고 한다. 성령을 하나님의 아들과 동일(同一)하다고 보았다.

사모사타의 바울(Paul of Samosata, 200-275)은 262년부터 272년까지 안디옥의 감독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너무 고조시키는 것에 대한 반발로 그리스도의 구성(構成) 인격을 인간(人間)이라고 주장하고 로고스가 그 안에 특별히 거하였다고 한다. 즉 로고스가 본질(本質)이 아닌 한 형질(形質)로서 거하였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접합(接合)이 일어났으며 이 접합은 아주 밀접한 것이라고 한다. 예수는 완전한 생애를 마치고 부활한 후 높이 들려 올리었으며(빌 2:5-11)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찬송의 대상은 아니라고 한다.

삼위일체에 대해 사모사타의 바울은 말하기를 로고스는 하나님의 한 형질(形質)로서 하나님의 이성(理性)이라고 하며, ‘호모우시오스’(ὁμοούσιος, homoousios) 즉 동본질(同本質)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사모사타의 바울과 함께 268년 안디옥회의에서 정죄(定罪)되었다. ‘호모우시오스’는 나중에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삼위가 한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는데 그때 그 말이 268년 안다옥 회의에서 정죄된 말이라고 하여 반대가 많았다. 아타나시우스는 이 말이 정죄 받은 이유는 그것이 다른 두 위(位, pason)의 근원으로서 ‘우시아’(本質)를 의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으며 힐러리(Hilery)는 사모사타의 바울이 로고스의 비(非) 인격성을 말하면서 ‘우시아’를 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② 양태론적 단일신론

양태론적(樣態論的) 단일신론(modalistic monarchianism)은 동적 단일신론과는 반대로 하나님의 단일성(單一性)을 강조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가현설에 가까운 이론이다. 이 부류에 속하는 대표적인 사람은 프락세아스(Praxeas)와 노에투스(Noetus)와 사벨리우스(Sabellius)였다.

프락세아스(Praxeas)는 에베소에서 장로가 되었다. 195년경에 로마에 와서 가르치다가 카르타고로 건너가 활동하면서 추종자들을 얻었다. 터툴리안이 그를 반대하는 글 ‘프락세아스에 대한 비판’(Adversus Piaxeam)을 썼다. 터툴리안에 따르면 프락세아스는 예수 그리스도는 탄생하시고 고난당하신 아버지요,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라고 선포하였다. 따라서 아버지와 아들은 동일한 인격(person)이라고 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성경 구절로 이사야 45:5, 요한복음 10:30, 14:9,10을 인용했다.

노에투스(Noetus)는 서머나에서 가르친 것으로 보이는데 그의 제자 에피그노스(Epignce)는 200년경 활동무대를 로마로 옮겨 더 주목을 끌었다. 노에투스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양태론을 말했다. 그는 하나님의 단일성에서 출발하여 세상에 나시고 고난받으시고 죽으신 이가 바로 성부 하나님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노에투스는 단순한 성부 고난설(苦難說, passianism)을 주장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구별은 형식적이고 이름뿐이라고 말한 반면 프락세아스는 복합적인 성부 고난설을 말하여 아버지는 영이시고 아들은 육이라고 했다. 이들의 주장이 가현설과 유사하다.

사벨리우스(Sabellius)는 아마도 북 아프리카의 펜타폴리스(Pentapolis)의 감독이었거나 아니면 장로였는데 215년경 로마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철학적이며 우주론적 이론에 관심을 가진 솔직하고 일관성 있는 양태론자였다. 성부, 성자, 성령은 한 하나님이 ‘구약’(성부)과 ‘신약’(성자)과 ‘교회’(성령) 시대의 세 시기를 통해 계시하신 이름들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단자(單子, monad)로서 하나님의 존재 내에서는 구별이 없으며, 세계와의 관계에서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 즉 세 가지 이름과 양식(樣式)으로 구별된다고 한다. ‘태양’과 ‘빛’과 ‘열’을 풍유로 사용하여 로고스를 통해 세상이 창조되었다면 장차는 로고스가 다시금 흡수되고 하나님은 하나일 뿐이라고 한다.    54

사벨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인성(人性) 을 완전히 무시하였으므로 성육(incarnation)의 개념은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교회는 그가 사용하던 ‘프로소폰’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했으나 후에 삼위를 구별하는 ‘위격’(또는 인격, Person)의 뜻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호모우시오스’라는 말은나중에 아타나시우스가 사용했을 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모사타의 바울과 함께 사벨리우스가 쓰던 말이라고 하여 논란이 있었다.

성부 고난설을 말하는 양태론은 동방뿐 아니라 서방에서도 지지자들을 얻었다. 로마의 감독들, 빅토르(Victor) 체피리누스(Zephyrinus), 칼리스투스(Callistus) 등과 함께 많은 지역교회가 그런 사상에 물들었다. 이들  양태론자들을 반대했던 히폴리투스(Hyppolitus)는 도리어 이신론(二神論,  Ditheism)을 말한다고 견책을 받았다. 칼리스투스는 사벨리우스를 반대했으나 그가 중재하기 위해 말한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은 프락세아스와 노에투스의 성부 고난설과 별다름이 없었다. 그도 양태론자가 된 셈이었다.(*) 글쓴 이 / 김영재 교수(서울대 종교학과, 영국 Clifton Theological College 수학, 독일 Wuppertal Kirchliche Hochschule 수학, 총신신대원 편목, 독일 Phi1ipps Universitat zu Marburg에서 신학박사, 독일 포이딩겐 독일인교회, 미국의 미네소타와 아틀란타의 한인교회 목회, 서울대 강사, 총신대 신학대학원의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역임, 저서: Der Protestantismus in Korea und die calvinistische Tradition, Peter D Lang, Frankfurt am Maln, 1981. 외 다수의 저서와 역서) 출처: 김영재 저 ‘기독교 교리사’ (서울, 합신대학원 출판부), 2009.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