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설교(1) 하나님의 절대주권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 지어다. 아멘!(롬 11:36)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들은 하나님의 절대주권(絶對主權, The Absolute Sovereignty of God)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찰스 핫지(Charles Hodge, 1797-1878)는 ‘하나님의 주권은 하나님의 완전성에서 생기는 특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1)하나님의 의지(The Will of God)의 자유, 2)의지 적용의 자유, 3)의지 적용의 결과 성취의 자유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가 때로는 의로 때로는 자비나 사랑이나 진노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피조 세계의 모든 영역과 모든 관계에서 자신의 통치권을 유감없이 행사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주권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意志)와 주권적 능력(能力)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는 인간의 구원을 포함한 모든 피조세계를 계획하시고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은 계획하신 것을 친히 집행(성취)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Ⅰ.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심에 있어 주권적
(1)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시편 139:14에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神妙莫測, 신통하고 오묘하여 감히 헤아릴 수가 없음)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일반인들은 이 세상에 펼쳐진 자연과 생활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자연을 스스로 존재하는 자신들의 생활의 한 터전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래서 자연을 보고 자연을 존재케 하신 분을 생각하지 않고 자연 그 자체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낄 뿐입니다. 마치 자신이 자연을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일반인들은 하나님이 자연을 존재케 하시고 보존 하시고 통치하시는 것을 정확하게 모르고 있습니다. 사계절의 변화와 땅에 있는 모든 자원과 형태와 색깔과 가치에 대해서 원인자(原因者)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욥기 11:7에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4:11에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창 1:1) 그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시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19:1-6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연계시를 통해 일반인들이 핑계치 못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20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神性)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지니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창세기 1:1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자연(nature)을 통해서만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연 생성(生成) 이전에 존재하고 계셨다는 것을 자연 창조와 함께 공포한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자연을 창조하시므로 자신의 존재를 인간에게 나타내게 된 것입니다. 출애굽기 3:14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선포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설명이나 증명이 필요 없습니다. 인간은 다만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시편 14:1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범죄 한 인간 때문에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은 하나님을 반사하는 거울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 때문에 반사체의 기능은 불구가 되어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성경을 주어서 이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이 책(성경)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두워진 인간의 마음을 성령님을 통하여 조명하시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은 자연과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자연은 우리를 바로 가르쳐 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은 죄로 인하여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을 우리에게 주어서 죄로 인하여 파괴된 자연을 바로 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성경이라는 안경을 쓰고 자연을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자연을 깨닫고 해석하는 기능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은 죄인의 구원에 대한 특별계시의 기능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인간 구원에 관한 지식은 자연이 우리에게 줄 수 없습니다. 이것을 자연계시(自然啓示, 一般啓示)의 불충분성이라고 합니다. 인간 구원 문제가 생기기 전에 자연이 창조되었기 때문에 자연은 죄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성경이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구원 얻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 외에 또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색과 자연을 관계하는 과학의 원리와 문화와 예술과 정치와 경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 생활의 지침서 역할을 하는데 있습니다. 이 원리는 구약과 신약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원리입니다.
(3)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창세기 3:15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메시아가 도래할 것을 계시하셨습니다. 창세기 3:21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고 했습니다. 가죽옷을 통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대신하여 바친 한 수양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계시하셨습니다. 창세기 22:13,14에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形象)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최대로 표현되었습니다. 빌립보서 2:6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 15에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는 빌립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 14:8-11)
그러므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의 계시의 절정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Ⅱ. 하나님은 자신의 의지를 행사하심이 주권적
(1) 만물통치가 하나님 주권에 있습니다.
잠언 21:1에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2) 그리스도의 고난도 하나님 주권에 있습니다.
누가복음 22:42에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고 했습니다.
(3) 죄인의 선택(選擇)과 유기(遺棄)도 하나님 주권에 있습니다.
로마서 9:15,16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4) 죄인의 중생(重生)도 하나님 주권에 있습니다.
야고보서 1:18에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23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5) 성도의 고난도 하나님 주권에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17에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4:19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6) 인간의 생사(生死)가 하나님 주권에 있습니다.
야고보서 4:15에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이라고 했습니다.
(7) 범사(凡事)가 하나님 주권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10:29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Ⅲ.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을 행사(집행) 하심이 주권적
(1) 인간을 구원하심이 하나님 주권적입니다.
출애굽기 3:10-12에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 구원을 위해 모세를 소명하실 때 모세의 동의를 얻거나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앞에 10가지 재앙을 내릴 때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주권적이었습니다. 마침내 바로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앞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굴복한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포함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찬송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오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출 15:2)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행로 중 르비딤에서 아말렉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모세로 하여금 기도의 손을 들게 하시고 아론과 훌은 그 기도의 손을 돕도록 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명을 받고 출전했습니다. 물론 그 전쟁의 결과는 하나님의 뜻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 주권적 행사를 표현할 때 ‘여호와 닛시’라고 하였습니다.(출 17:15,16)
여호수아 군대(백성)가 요단강 도하 작전에도 성공했습니다. 하나님은 여리고성 함락 작전을 계획하셨습니다. 이 작전 계획을 여호수아에게 계시하시니 여호수아는 이 작전을 실행에 옮길 뿐이었습니다. 마침내 “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수 6:20)고 했습니다. 결코 여리고 성은 검으로 정복된 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의 활동으로 무너졌습니다. 다니엘을 사자의 이빨에서 구원했습니다.(단 6:22)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평소보다 칠 배나 뜨거운 풀무 불에서 구원되었습니다.(단 3:27)
(2)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14:9,10에 “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주라 명하고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 베어!”라고 명했습니다. 하나님은 세례 요한의 육신을 헤롯의 손에서 구원하시지 않았습니다. 그의 목이 헤롯의 잔인무도한 권력 앞에 잘려 버림을 당했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행 7:54-60) 사도 야고보는 헤롯의 칼에 죽임 당했습니다.(행 12:2)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의 역사로 감옥에서 구출되었습니다.(행 12:6-11) 하나님은 병들어 죽게 된 히스기야 왕의 수명을 15년이나 연장시키셨습니다.(왕하 20:6) 하나님이 므두셀라는 그 시대 사람들 중에 969세나 되도록 제일 오래 살게 하셨는가 하면(창 5:27) 에녹은 그 반도 못 살고 산 채로 하나님께로 데려가셨습니다.(창 5:24) 이렇게 하나님은 인생들 수명(壽命)의 장단(長短)을 자신의 주권에 두셨습니다.
(3) 인간의 재물을 얻게 하심도 하나님 주권적입니다.
신명기 8:18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는 빈부(貧富)가 공존합니다. 어떤 이는 가난하고 어떤 이는 부합니다. 하나님이 카네기와 록펠러 같은 사람에게는 재물 얻을 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 삽비라, 가룟 유다 같은 자는 있는 것까지 몰수를 당했습니다. 욥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간증하기를 “주신 자도 여호와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욥 1:21)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학자 워필드(B. B. Warfield)는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상을 표현할 때에 “이 모든 사실에서 칼빈주의 자는 모든 현상 배후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며, 모든 현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역사하는 하나님의 손을 보며, 기도하는 태도로 자기 전 생애를 삼으며, 구원 문제에 있어서 자아 의존의 전부를 배제하고 하나님의 은혜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자연인(自然人)은 자연(自然) 그 자체를 감탄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연을 만드신 하나님을 감탄하고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자연을 감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창 1:10,12,18,21,25,31) 하나님은 자신의 의지대로 계획하시고 그 계획하신 것을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적용하시고 그 의지를 자신의 능력으로 성취시키심이 절대 주권적입니다. 민수기 23:19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食言)치 않으시고 인자(人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6:1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32:37에 “보라! 내가 노와 분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내어 이곳으로 다시 인도하여 안전히 거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전지전능하십니다. 마태복음 3:9에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자신에 대해 정직하십니다. 디모데후서 2:13에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6:18에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1:17에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주권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흉내 내면 그 또한 죽는 것입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