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교회의 침체기 시대에 어떻게 목회할 것인가?

한국교회를 염려하는 많은 분들이 한국교회에 만연한 도덕적 부패와 교리적 독선을 지적한다. 그래서 그 해법으로 일각에서는 도덕적 개선에 노력을 기울이고 다른 일각에서는 사회의 다원적 가치를 수렴하고 적응하는 전도와 목양 방법들을 추구한다.  

교인 50여명 미만의 교회들이 이런 현실을 느끼며 겪고 있는 답답한 형편을 보면 그 심각성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 중 상당수의 교회는 현재 목회자가 은퇴하면 폐쇄될지 모른다는 우려로 미래가 비관적이다. 그래서 교회개척은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지고 어느 노회는 교회개척을 말리는(?) 일도 있다고 한다. 분명 이 같은 침체시대에 교회개척이나 작은 교회의 유지는 심히 어려운 일이다.

어떤 교회는 교회 내규를 민주적인 방법으로 전환하여 교회의 인사, 재정, 사업에 관한 의사결정을 교인 다수의 뜻에 따르도록 하는 교회 운영체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심지어 장로교인데도 장로교 정치와 헌법상의 원리와 상관없이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또 예배와 목양의 주요 내용조차 좀 더 회중 친화적(?)으로 전환하여 설교와 성경공부를 심리적 상담적 접근 방법을 따르며 밴드(Band)와 복음송 찬양으로 성도들에게 감성적 접근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변화가 오늘 한국교회의 미래를 열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신 뜻에 합당하게 역할을 해야 미래가 있다. 물론 그 미래가 수적인 성장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주님께서 정하실 일이요 아실 일이다. 다만 교회의 본래적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는 침체를 겪지 않는다. 규모가 작아도 본질에 따라 행하면 교회에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무엇이 교회를 그렇게 만들까? 즉 교회의 본래 사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칼빈의 말대로 오직 하늘의 신령한 복음만을 전파하고 가르침으로써 성도들의 영적 기갈과 굶주림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주님이 목사를 세우심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게”(엡 4:13)하는 것이므로 목사는 부지런히 교인들을 가르쳐야 한다. 즉 교회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물론 지치고 피곤한 생활에 찌든 교인들을 다시 학교 같은 수업 부담으로 몰아가라는 말이 아니다. 그들을 말씀의 양식으로 흡족하게 먹이라는 것이다. 성경본문에 충실하게 설교하고, 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기본교리를 가르치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강력하게 전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답이냐고 되묻지 말아야 한다. 본래 교회는 이것을 위하여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교인들을 자주 만날 수 없다면 주일예배 설교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주일 오전이나 오후에 가능한 성경공부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을 가르쳐야 한다. 이것은 어렵지 않다. 매주 정한 분량을 읽고 약간의 문장풀이를 하고 관련된 성경구절을 찾아 읽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인간의 부패와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말하기만 해도 충분하다.

그러면 점차 성도들의 설교의 이해도가 높아지고, 교회는 말씀의 반석 위에서며, 교인들이 각자의 생활 영역에서 말씀의 다스림을 받는 변화들을 겪게 된다. 그리고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경험하게 된다. 교회에 주신 은혜의 방편인 말씀과 성례를 통하여 교회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 교인들은 교회를 사랑하게 되며 결국 교회는 작아도 활력을 잃지 않는다. 이런 말은 하나마나 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교회를 순방해보면 대부분의 교회가 이렇게 하지 않고 있다. 주님은 목양을 위임하시면서 목사의 연약함과 세상의 완악함을 아시고 이처럼 단순하며 간명한 목회원리를 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행하지 않으면 무엇을 통해 교회의 활력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은혜의 방편을 따라 말씀 선포, 성례, 심방 그리고 권징을 행하며 기도로 은혜를 구하는 단순한 원칙에 충실한 목양만이 침체기를 당한 오늘의 교회가 집중해야할 일이라고 믿는다.(*) 글쓴이 / 김병훈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출처 / ‘합신은 말한다’ 통권 189호 (주) 편집상 원문을 요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