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왜 기도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왜 기도해야 합니까?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아이가 말을 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합니다.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는 아이에게 ‘엄마!’ ‘엄마!’ 말해보라고 오히려 아이 앞에서 부모가 재롱을 떱니다. 그러다 말문이 터져 ‘엄마!’하면 부모들은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이후로 아이는 자라면서 말에 익숙해지고 말에 의미를 담아서 때로는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고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주님과의 대화 즉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거듭났을 때 처음에는 어떻게 말을 하는지 모르는 갓난아이처럼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더듬거립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남이 하는 기도를 듣고 흉내를 내기도 하고 미사여구(美辭麗句)로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믿음이 더 자라면 어떻게 기도하는지 알게 되고 “주여!”하고 기도의 문이 열립니다. 그러면 갓난아이가 처음으로 ‘엄마!’하면 부모들이 손뼉을 치며 기뻐하고 대견해 하는 것처럼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우리 주님도 그렇게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사실 ‘엄마!’라는 말은 부모들이 들을 때 대단한 말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대단치도 않은 ‘엄마!’라는 그 말 한마디에 모든 부모는 그렇게 기뻐하는 것입니까?
첫째는 아이가 자기들을 자기 부모로 인정(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는 더할 수 없이 흐뭇한 것입니다.
둘째는 이제부터는 아이와 부모 사이에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 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성도들의 기도를 기뻐하시는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하고 부르면 “오냐! 내가 네 아버지다!”하시며 하나님은 너무나 흐뭇해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하나님(주님)과의 교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로서 서로 자기생각과 의사를 표현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감정을 교환하고 기쁨과 행복을 함께 나눕니다. 주님은 우리와 더불어 바로 이러한 삶을 계획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을 듣고 싶어 하시고 우리의 필요함을 직접 들으시고 공급해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안에는 벙어리 자녀들이 많습니다. 거듭났다고 하면서도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또한 기도가 익숙지 않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벙어리처럼 지냅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답답해하실까요? 그래서 기도는 주님과의 대화요 하나님과의 교제의 필수적 수단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 곳에서 제발 기도 좀하라고 사정(?)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그리스도인이 기도하지 않으면서 즉 하나님과의 대화가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거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일 년 내내 기도다운 기도 한 번해 보지 않고 주님을 믿는 다는 기적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영혼의 호흡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숨도 안 쉬고 사는 사람과 같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숨을 안 쉬고 어떻게 삽니까? 계속 숨을 안 쉬고 지내는 사람이 산 사람입니까? 죽은 사람입니까?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사실 죽은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자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주님의 것을 받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만일 자녀가 달라고 하지도 않는데 모든 것을 척척 사주는 부모가 있으면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나중에는 당연한 줄 알고 부모의 희생이나 수고에 대해 감사할 줄을 모르게 됩니다.
여러분!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와 과잉관심은 자녀에 대해 무관심 만큼이나 해로운 것입니다. 그러면 자녀는 부모의 수고와 희생을 전혀 알지 못하고 나중에는 조금도 감사할 줄 모르게 됩니다. 또한 그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하면 주시고 구하지 않으면 구할 때까지 기다리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에 대한 판단력을 갖게 하십니다.
마태복음 7:9-11에 무엇이라고 말씀했습니까? “너희 중에 누가 자기 아들이 빵을 구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구하는데 뱀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읽고 “아버지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으로 주시려고 한다.” 그렇게만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해를 입지 않기를 원합니다. 심지어 흉악한 강도라도 자신의 자녀가 해를 입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좋은 것으로 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만일 자녀가 독(毒)을 달라고 하면 그것을 자녀에게 줄 부모가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제일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원하시고 또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해로운 것은 우리가 기도해도 주시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께 가장 좋은 것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내용에 따라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고 거절하시는 것도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기도의 응답입니다.
또 이러한 사실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구하는 자 즉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에게만 이렇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하지 않으면 예외적인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나 계획이 아닌 한 구하지도 않는 데 은혜를 주시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내가 너희의 필요한 것을 다 준비 해 놓았지만 그러나 너희가 내게 구하기 전에는 주지 않겠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구하는 것을 주시기도 하시고 거절하기도 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몸의 병이 낫기를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 했지만 하나님께 거절당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너무나 완벽하면 교만해 질까보아 그렇다는 것을 깨닫고 나중에는 오히려 하나님이 자기의 간구를 들어주시지 않은 것을 감사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과 지혜도 결국 기도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의 결론은 숨을 쉬는 것이 아무리 귀찮고 힘들어도 살려면 숨을 쉬어야 되는 것처럼 아무리 힘들고 귀찮아도 기도하지 않으면 죽은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또 예수의 이름으로만 기도하는 것은 그 만이 중보자와 구원의 길이 되시며 그의 공로가 아니면 아무도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가 기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내 소원을 푸는 요술방망이처럼 생각는 것은 아주 잘못 된 것입니다.
또 대화 없이는 다른 사람과 교제가 불가능한 것처럼 기도하지 않고는 주님과의 교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과 거절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과 버려야 할 악한 일을 분별하는 지혜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경과 처지에도 우리는 절대로 기도를 멈추거나 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제 기도하십시오!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기도를 통해 주님과의 대화와 교제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은 식어지고 성장이 중단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벙어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한 주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의 현장 곳곳에서 일어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글쓴 이 / 정은표 목사(본지 발행인, 설교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