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순교사화

기독교 순교사화(16) 가톨릭의 핍박이 시작되다

기독교 순교사화(16)
가톨릭의 핍박이 시작되다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토다페에서 화형(火刑)을 당하는 개신교인들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토다페에서 화형(火刑)을 당하는 개신교인들

 

5. 널리 퍼진 신교도들에 대한 핍박 사건

(1) 죽어서 화형 당한 아이기디오 박사

아이기디오(Aegidio) 박사는 알카라 대학시절 누구보다도 성경공부에 열심이었다. 그런데 모교의 신학 교수가 죽자 그는 그 자리에 임용되었고 교수로서 뛰어난 그의 실력으로 인해 그의 명성은 단시일에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그러나 아이기디오 박사의 신앙을 미워하는 자들이 종교재판관에게 그에 대한 좋지 않은 평을 하자 재판관은 그에게 소환장을 보냈고 그가 나타나자 그를 체포하여 감옥에 넣었다.

세빌에 있는 대성당에 속한 사람들 일부와 도르토이(Dortois) 교구에 속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아이기디오의 이론을 인정하고 그것이 진정한 신앙과 일치한다고 생각하여 그를 위해 왕에게 탄원했다. 왕은 로마 가톨릭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신앙의 편견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왕은 재판소에 그의 석방을 명령했다. 재판관은 몹시 못 마땅했지만 왕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어 그를 석방했다. 이렇게 삭방 된 그는 발라도리드 교회에 출석하며 개혁신앙의 전파를 위해 평생 힘쓰다가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죽은 후에 일어났다. 아이기디오 박사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왕의 지지를 받는 그를 어찌하지 못하다가 그가 죽자 종교 재판관들은 그의 유해를 파내어 시체를 놓고 재판을 했다. 재판관은 죽은 시체에 사형 판결을 내렸고 형 집행 방법은 화형(火刑)을 하도록 명했다. 그래서 아이기디오 박사는 그가 평소 굳게 믿고 전파하던 개혁신앙으로 인해 죽어서 화형(火刑)을 당했다.

(2) 콘스탄틴 박사 핍박 사건

콘스탄틴(Constantine) 박사는 아이기디오 박사와 아주 친밀한 사이였고 보기 드문 재능과 깊은 학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능변은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고 그의 건전한 교리는 모든 사람에게 유능한 설교자라는 칭송을 듣게 했다. 그는 아이기디오 박사의 가르침을 받고 개혁신앙이 성경적이라는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성경에 합당한 교리만을 설교했고 때때로 로마 가톨릭교회에 잘못 된 교리가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종을 울렸다.

이런 콘스탄틴 박사를 로마 가톨릭교회가 곱게 볼 리가 없었고 참다 못한 그들은 콘탄틴 박사를 모함하여 함정에 빠뜨린 후 제거해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신학교를 세운 스코바르타가 콘스탄틴 박사를 그 신학교의 강사로 임명했다. 콘스탄틴 박사는 흔쾌히 강의를 맡아 구약의 잠언, 전도서, 아가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콘스탄틴 박사가 잠언, 전도서, 아가서 강의를 마치고 욥기 강의를 다시 시작하려고 할 때 어느 날 갑자기 재판관은 그를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체포되어 조사를 받으러 종교재판소로 끌려갔지만 그는 그들의 간계를 알아차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대답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를 기소할 충분한 증거를 잡을 수가 없었다. 초조해진 그들이 어떻게 그를 기소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을 때 다음과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콘스탄틴 박사는 마르틴이라는 한 여인에게 그의 책을 여러 권 맡겨 놓고 있었다. 그 책들은 박사에게는 귀중한 것이었지만 재판관의 눈에는 의심을 받을 만한 것들이었다. 박사와 가까이 지낸다는 이유로 그 부인이 체포되어 간단한 과정을 거쳐 그녀의 재산이 몰수되었다. 이렇게 하여 콘스탄틴 박사의 책과 저서들을 손에 넣게 된 재판관들은 그를 기소할 만한 증거를 찾게 되었다. 그가 재 심문을 받기 위해 불려왔을 때 그들은 서류 중 하나를 내밀면서 그것이 누구 글씨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사건의 전말을 눈치 채고 자기 글임을 시인하고 이렇게 말했다. “그 글과 다른 내 저서에서 복음의 진리를 벗어난 것은 절대 없습니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전 인류에게 전하신 순수한 복음이 들어 있지요.” 그러나 그를 잡아 죽이기로 작정한 재판관들에게는 그런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그래 감옥에 가쳐 2년 째 되던 해애 몸이 극도로 쇠약해 졌고 중병을 앓던 그는 결국 감옥에서 죽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재판관들은 또 다시 그의 시체를 재판정에 끌어내어 재판을 했고 공개적으로 불태우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의 시체는 즉시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광장 가운데서 불태워졌다.

(3) 니콜라스 버턴의 순교

버턴(Nicholas Burton)은 런던의 상인으로 스페인과 교역을 하고 있었다. 그가 카디츠에 있을 때 종교재판소 사람 하나가 그를 찾아 왔다. 어떤 물건을 런던으로 보내고 싶은 것처럼 가장하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떠났는데 다음날 재판소의 한 관리가 군인들과 함께 와서 그를 붙잡다가 감옥에 가뒀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그가 조사를 받을 때 재판소 소장은 로마 가톨릭의 교리를 비방하는 말을 했거나 그런 암시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게 한 적이 없다고 대답하며 우리가 어느 나라에 있든지 그 나라의 종교는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런 대답이 그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뚜렷한 이유도 말하지 않고 그를 고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는 것이 없는 그로서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재판관들은 그를 자기들에게 협조하지 않는 완고한 자라고 정죄 한 후 끌어다가 오토다페에서 불에 태워 죽였다. 그러나 버턴이 이렇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할 때 그만 그렇게 죽은 것이 아니라 스페인에 있던 여러 명의 영국인이 종교재판에 의해 억울하게 처형
을 당했다. 특히 존 베이(John Baker), 월리엄 버게이트(William Burgate), 월리엄 더게스(William Durgess)가 화형 당했고 월리엄 후커(William Hooker)는 돌에 맞아죽었다. 그들은 모두 왜 자기들이 그렇게 죽어야 하는지 이유조차 알지 못하고 죽었다.

(4) 특이 했던 월리엄 가드너

월리엄 가드너(William Gardener)는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고 적당한 나이에 뛰어난 상인 파켓 밑에서 장사를 배우며 지냈다. 얼마 후 26세에 그는 리스본으로 보내졌다. 거기서 그는 포르투갈어를 열심히 배웠다. 그런 가운데 열심 있는 신교도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러던 중 포르투갈 왕의 왕자와 스페인 왕의 공주의 혼인이 결정되자 혼인식 날 신랑과 신부와 전 궁내 대신들이 모두 대성당으로 갔다. 거기에는 여러 계급의 귀족들이 참석했는데 월리엄 가드너도 이 혼인식에 초대를 받아 혼인식이 다 끝날 때까지 남아 있었다. 그는 그날의 혼인식이 너무나 미신적이고 우상숭배 같은 광경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포르투갈에 개혁을 일으킬 결심을 했다. 그는 그가 하던 모든 일을 다 정리하고 자기가 쓰던 물건들은 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 후 그는 어느 주일날 성당으로 갔다. 그리고 손에는 신약 성경을 꼭 쥐고 강단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왕과 궁내 대신들이 나타났고 추기경이 미사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영성체의 빵을 경배하는 의식을 할 때 가드너는 추기경 쪽으로 벌떡 일어나 나가 그가 가지고 있던 영성체의 빵을 빼앗아 발로 밟아 버렸다. 전 회중이 날 벼락 맞은 것 같이 놀랐고 한 사람이 자기 단검을 뽑아 가드너의 어깨를 찔렀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채포되었다.

결박되어 왕 앞에 끌려나온 그가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 한 왕은 그에게 물었다. “너를 사주한 자가 누구냐?” 그러자 가드너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양심뿐이다. 나는 살아 있는 어떤 사람을 위해서도 내가 한 것과 같은 모험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창조주께 죽도록 충성해야 할 은혜를 입고 있다. 그것이 내 행동의 이유이다.” 가드너의 이 같은 대답에 화가 치민 포르투갈 왕은 리스본에 있는 영국인은 모두 다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왕의 명령은 즉시 시행 되었고 그 결과 죄 없는 많은 영국인들이 혹시 이 사건에 대해서 알고 있나 해서 체포 되었고 심한 고문을 당했다. 물론 가드너 역시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고문을 당했다.

왕이 아무것도 찾아 내지 못하자 가드너에게는 사형 선고가 내려지고 그를 불태울 큰 불길이 교수대 근처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가드너는 도르래에 매달려 교수대 위로 끌어 올려졌다. 그리고 다시 교수대 불 곁으로 옮겨졌는데 그러나 불길이 닿지 않는 높이로 그를 공중에 매달아 놓았다. 이제 불길이 그를 태워 버리든지 흑은 서서히 그를 구워 버리든지 할 것이다. 사형 집행인은 사형수가 가장 고통스럽게 죽어가도록 매달린 높이를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도록 조절을 했다.

가드너는 바비큐처럼 구워졌고 결국은 그 시신이 다 타고 말았다. 그런데 이 때 전혀 예상치 못한 이상한 일어났다. 어떻게 날아갔는지 형장에서 항구 쪽으로 불똥이 날아가 포르투갈 왕이 전쟁을 위해 준비해 놓았던 많은 전선(戰船)을 불태워 버렸다. 그러자 겁에 질린 왕은 가드너 사건으로 붙잡혀 있던 모든 영국인을 즉시 석방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영국인들은 다 삭방 되었다.(*) 출처 / 기독교순교사화(존 폭스 원저, 머리 킹 편저, 생명의말씀사)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