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순교사화

기독교 순교사화(35) 영국의 종교개혁과 박해

Lord open the king of Englands eyes!” 1536년 10월 6일, ‘개혁의 샛별’이라 불리는  윌리엄 틴데일이 형장에서 마지막으로 외친 말이다.

11. 성경번역 죄로 순교 당한 윌리엄 틴데일

이제 우리는 월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1494-1536)의 이야기와 순교사를 살펴보자. 틴데일은 웨일즈(Wales) 국경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옥스퍼드 대학(University of Oxford)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 대학에서 그는 학문을 익히고 쌓고 성경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University of Cambridge)으로 옮겼고 다시 글로스터셔대학(University of  Gloucestershire)으로 갔다가 거기서 월시 경(Sir John Walsh)이라는 귀족의 가정교사로 일을 하며 자연스럽게 그 귀족의 식객(食客)들과 사귀게 되었다. 이 귀족의 식탁에는 항상 여러 수도원장과 귀족들과 다른 성직자들이 쉬어가곤 했으며 틴데일은 그들과 함께 학식 많은 사람들 특히 루터와 에라스무스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고 성경과 관련된 질문도 했다.

William Tyndale, 1494-1536

그런 가운데 로마 가톨릭교회 주교들이 회의    를 열어 그 귀족 집에 출입한 모든 신부들을 출두 하라고 했는데 그들 가운데 틴데일이 있었다.    틴데일은 그가 알지 못하는 어떤 모의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지만 가보기로 했다. 틴데    일은 가는 길에 누구 앞에서나 하나님 말씀에 대한 증인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예상했던 대로 로마 가톨릭교회 주교들은 그에게 험악한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틴데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소할 증거를 잡지는 못했다.

그런데 마침 틴데일의 옛 친구였던 문마우스(Dr. Monmouth)라는 사람이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틴데일은 그를 찾아가 그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얼마동안 묵묵히 틴데일의 말을 듣고 있던 문마우스 박사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성경에서 말하는 적그리스도가 바로 교황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그러나 말을 조심하십시오! 당신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목숨이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교황의 업무를 도왔었으나 포기하고 지금은 교황과의 모든 관계를 끊었습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틴데일은 우연히 신부들과 논쟁을 하게 되었는데 신부들이 너무나 심하게 틴데일을 몰아붙이자 틴데일은 흥분하여  다음과 같이 교황을 모독하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교황의 법을 따르느니 차라리 하나님의 율법이 없이 사는 게 더 낫겠소! 나는 교황과 그의 모든 법을 무시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내 생명을 더 연장해 주신다면 나는 청소년들에게 나보다 성경을 더 잘 알도록 가르치는 일에 힘쓰겠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신부들은 틴데일에게 더욱 심하게 굴면서 그를  이단자라고 공격했다. 이렇게 신부들이 계속 괴롭히자 틴데일은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런던으로 갔는데 틴데일을 잘 알고 있는 헨리 길드퍼드 경은 틴데일을 런던 주교(主敎) 턴스텔(Cuthberrt Tunstall)에게 추천을 했다. 그래서 틴데일은 거의 일 년 간 주교의 일을 도왔는데 그는 거기서 성직자들의 허영과 자만과 무지를 발견하고 크게 실망했다. 뿐만이 아니라 그 당시 틴데일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 성경에서 영어로 성경 번역하는 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런던의 주교 밑에서는 그 일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영국 내에는 그 일을 할 만한 안전한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런던을 떠나 독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독일에 사는 영국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기도 하고 성경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거기서도 틴데일은 사람들의 신앙이 맹목적이고 교회가 오류와 미신(迷信) 투성이가 된 것은 성경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예배가 회중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로 드려지기 때문에 복음의 진리가 죽은 언어의 무덤 속에 매장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로마 가톨릭교회 신부들은 성경에 대한 자신들의 무지가 폭로되는 것이 두려워 할 수만 있으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에 대한 질문을 하지 못하도록 차단했다. 그래도 성경에 대해 묻는 자가 있으면 그에게 면박을 주거나 대중 앞에서 창피를 주어 당황하게 만들었고 만일 어쩌다가 대답을 하는 때는 성경을 자기들 멋대로 자기들의 목적에 맞도록 왜곡해서 말했다.    55

이런 너무나 황당하고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본 틴데일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을 받아 영국의 모든 평신도들이 성경을 직접 읽고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어떤 난관과 핍박이 따라도 반드시 성경을 모국어인 영어로 번역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1527년경부터 헬라어 신약성경을 영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는 신약성경의 매 책마다 평신도들이 성경을 잘 이해하도록 짤막하게 서문을 썼다.

그 후 같은 방법으로 틴데일은 모세오경을 번역했고 아울러 평신도들을 위한 여러 가지 신앙의 글들도 썼다. 이렇게 번역 된 성경과 그의 글들은 독일에서 출판되어 영국으로 건너갔고 그 모든 것들은 거룩한 제단에 타오르는 불길처럼 암흑에 쌓여 있던 영국에 진리의 빛을 던져 주었다. 그 후 틴데일은 다시 네덜란드로 옮겨갔으며 주로 안트워프에서 살면서 신약성경에 이어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번역하는 일에 심혈을 기우렸다. 드디어 그는 거기서 모세오경의 번역을 끝내고 그것을 독일 함부르크로 가지고 가서 인쇄하여 영국으로 보내려고 했다.    

William Tyndale’s English translation of the New Testament, bottom, was published in 1536. The Tyndale Pentateuch, top, was published in 1534.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가 타고 독일로 가던 배가 항해 중 파선되어 그가 그간 번역한 성경원고와 그의 전 재산을 거의 다 잃어 버렸다. 그러나 틴데일은 낙심하여 그가 하던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독일 함부르크로 간 그는 다시 시작했다. 1529년 에머슨 양의 집에서 커버데일과 동거했다. 신약성경 완역판이 처음 나왔을 때 틴데일은 혹시 실수한 부분이 있을까 하여 신학자들에게 의뢰하여 교정을 보았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의 고위 성직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 외에 일반 성도들이 소유한다는 사실에 분개하였고 틴데일이 하는 일은 이단적이며 그가 번역한 성경은 오류와 온갖 왜곡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런 성경을 거부하고 틴데일이 하는 일을 못 하도록 막는 것이 믿음 있는 자의 의무라고 사람들을 선동했다. 그들은 질투의 현미경으로 틴데일이 번역한 성경을 들여다보고 어쩌다가 철자 하나가 빠지거나 오자가 발견 되면 틴데일이 고의적으로 성경의 원본을 왜곡한 악마적인 것이라고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공격했다.

 그럼에도 틴데일이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그의 일을 계속 해 나가자 로마 가톨릭의 고위 성직자들은 자기들 힘만으로는 그가 하는 일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번에는 영국 국왕에게 온갖 거짓말로 틴데일을 모함했다. 그들은 왕이 자기들의 말을 들을 때까지 끈질기게 틴데일을 물고 늘어졌다. 드디어 이들의 말에 속아 넘어간 영국 국왕은 틴데일의 성경번역이 이단적이이기 때문에 금지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의 고위 성직자들은 틴데일의 성경번역을 중단 시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들은 틴데일을 죽여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들은 또 다시 그를 죽여 버리기 위해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따라서 그들은 술책을 써서 거짓 증인을 고용했다. 돈에 팔려 거짓 증인으로 고용 된 자는 헨리 필립(Henry Philips)이라는 자였는데 틴데일을 도울 것처럼 접근하여 번역 출판 된 영어 성경의 비밀 배포 루트를 알아내어 로마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에게 밀고했다.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틴데일은 독일에서 출판 된 영어 서경을 영국으로 비밀이 반입하려다가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로마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과 당국의 관원들에 모두 다 압수 되고 틴데일은 번역 성경 배포를 금지시킨 왕의 명령을 어긴 죄로 체포되어 안트워프에서 18마일 가량 떨어진 필퍼드 성으로 호송되어 투옥 되었다. 그가 투옥 된지 일 년 반이 경과한 뒤 아우그스부르크에서 열린 종교회의에서  내린 황제의 명에 의해 화형을 당하게 되었다.

형장으로 끌려 온 틴데일은 사형대에 쇠사슬로 묶였다. 그를 불태워 죽일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 때 틴데일은 사형대에 묶인 채 큰 소리로 그리고 간절한 음성으로 이렇게 외쳤다. “주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Lord open the king of Englands eyes!) 그의 이 같은 마지막 부르짖음이 끝나자 사형 집행인들이 달려들어 그의 목을 잡아 눌렀다. 목이 졸린 그는 곧 숨을 거두었고 그의 시체는 훨훨 타는 불더미에 던져지고 불에 타 재가 되었다.

후문에 의하면 틴데일은 일 년 반 동안 감옥생활을 할 때 자기를 지키던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여 간수와 그의 딸과 그 외 여러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한 번이라도 그와 접촉했던 사람들은 다 하나 같이 “만약 그를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가 누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겠느냐! 그는 진짜 그리스도인 이었다!”라고 했으며 틴데일을 직접 심문하고 관리했던 감옥의 고위 책임자는 이렇게 증언했다고 한다. “그는 정말 학식 있고 선량하며 경건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다.”(*) 출처 / 기독교순교사화(존 폭스 원저, 머리 킹 편저, 생명의말씀사)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