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순교사화

기독교 순교사화(42) 영국의 종교개혁과 박해

Robert Glover(1522-1555) was an English Protestant martyr who was burnt at Coventry in September 1555. Glover was born at Manchester, Warwickshire, and educated at Eton College and King’s College, Cambridge.

9. 로버트 글로버의 순교  

코벤트리에서 약 2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만셋터라는 마을이 있다. 글로버(Glover) 가문은 200년 이상 만셋터에 큰 땅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이웃에 작은 땅들을 가지고 있었다. 존, 로버트, 월리엄 삼형제는 만셋터에 있는 영지에서 함께 살고 있었으며 개혁신앙 교리에 열심인 자들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맏형인 존이 로마가톨릭교회에 의해 희생자로 로마가톨릭의 올무에 걸려들었다.

잉글랜드에 메리 여왕이 즉위 한 직후 코벤트리 주교는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그 마을 사람이 그 소식을 듣고 그에게 알려 동생 월리엄과 함께 미리 도망가게 했다. 로마가톨릭 교인들이 들이닥쳐 온 집안을 샅샅이 뒤졌으나 찾지 못하자 형 대신 병으로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 있던 동생 로버트를 체포해 끌고 갔다. 그가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측은히 여겨 장관이 그냥 놓아주려 했지만 다른 군인들은 그를 체포해 주교 앞에 데려 가겠다고 고집했다. 로버트는 자기 아내에게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겨 놓았다.

로버트 글로버가 그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 :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안과 성령님의 따듯한 위로와 위안과 힘과 담대함이 우리의 유일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열렬하고 열심 있고 끓임 없는 믿음을 통해 당신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충만하기를 바라오. 아멘! 감옥에 와서 잠시 쉰 후 하나님의 크신 자비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눈물을 흘렸다오. 나는 혼잣말을 했다오. “오 주님! 제가 무엇이기에 내게 이 큰 자비를 베푸셔서 복음 때문에 고난 받는 성도들 사이에 끼어 주십니까?”

얼마 후 브라스브리지 씨와 피니아스 씨와 엔 홉킨스 씨가 내게 와 나에게 조건부로 포기하라고 설득했다오. 그러나 나는 “높은 분들이 내게 부탁하지 않았는데 내가 조건을 내건다면 나 스스로를 고소하는 셈입니다.”라고 대답했소. 그들이 나를 고소할 문제가 없다면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석방시키는 것이 당연할 것이오. 주교가 코벤트리로 온 다음 날 워렌 씨가 길드흘로 와서 나를 주교에게 데려가라고 간수장에게 명령했소.

나는 잔인하게 나를 죽이려 하는 워렌 씨의 수중에 놓여 있다오. 그가 왜 나를 죽이려는지 자신을 변명할 때 나는 “만일 당신 손으로 나를 죽인다면 내 피 값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당신은 당신 손으로 저지른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오.”라고 말했다오. 그러자 그는 내가 만일 자기의 신임만 받는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고 떠나갔소. 내가 덴톤 씨 집에서 주교 앞으로 끌려갔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나를 고소하기 시작했소. 즉 그는 나를 담당한 주교로 그 이상 높은 사람이 없으므로 내가 순종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소.

대법관이 곁에 서 내가 문학 석사라고 말하자 주교는 내가 로마가톨릭교회에 나오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을 물었소. 나는 오랫동안 그의 관할구역에 있지 않았으며 그런 문제에 대해 증인이 될 만한 시민도 없었던 만큼 나는 그를 반박하며 증거를 대라고 말할 수가 있었다오.

나는 그들의 교회(로마가톨릭교회)에서 500명의 생명을 구한다는 미사를 드리는 한 그 교회에 가지도 않았지만 가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소. 나는 그에게 성경에서 미사를 드린 일이나 그런 이름이 나와 있다면 보여 달라고 했소. 그러자 그는 자기가 가르치러 왔지 가르침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고 대답했소. 나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가르친다면 나는 그에게 배우는 것에 만족할 것이라고 말했소.

주  교 : 누가 말씀을 판단할 것인가?  

글로버 :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그의 교리를 성경말씀을 찾아봄으로써 판단하기 원하셨으며 바울도 그랬습니다. 나는 당신이 그들보다 더 특권이 많거나 탁월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당신이 만약 주교이기 때문에 당신을 믿어야 한다면 어째서 래티머 주교나 리들리 주교나 후퍼 주교 등을 믿은 사람들이 잘못이라고 말합니까?

주  교 : 그들은 이단자들이기 때문이다.

글로버 : 그렇다면 당신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잘못일 수가 있지 않습니까? 나는 대법관님께서 자기의 권위로 나를 누르려는 대신 학식 높은 토론으로 나를 설득해 주기 바랍니다.

그는 내가 교회를 이탈했다고 말하면서 에드워드 왕 때에는 나의 교회가 어디였느냐고 물었소. 나는 그가 엘리야시대에 그들의 교회는 어디였으며, 그리스도께서 땅에 계실 때 그 교회의 의미는 어떠했는지 보여 주기를 바랐소.

주  교 : 엘리야의 불평은 다윗의 집에서 떨어져 나간 지파에 대한 것뿐이었다. 그는 그들을 이단이라고 불렀다.

글로버 : 당신은 분명히 다른 10지파가 같은 시기에 어떤 선지자를 보았는지 분명히 알고 계시지요.

주교는 이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 동안 그 도시의 박사 중 한 분이신 로저스 씨가 그 내용에 대답할 듯이 그에게로 왔소. 그러나 대법관은 나를 일반 감옥 외에 다른 곳 즉 탑에 보내라고 명령했고 자기 교구를 방문한 후에 그런 무리는 다 없애버리겠다고 말했다오. 로저스 씨는 그가 그날 밤 스스로 만족하기를 바랐소. 그러나 그들은 나에 대해 또 다른 명령을 내렸소.

나는 대법관에게 말했소. “주교께서 좋으신 곳이라면 나는 만족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있었던 일반 감옥으로 돌아갔소. 군인들과 대신들이 우리를 제프코트로 호송하도록 명했고 대법관의 부하들도 같은 목적으로 코템트리를 떠나 우리는 금요일 11시경 말을 타라는 명령을 받았소. 우리가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도록 하기 위해 그 날은 장날이었소. 그래서 사람들이 마음으로 우리를 대적하게 하고 진정으로 성경말씀을 풀이한 책들을 거둬들이고 취소시키는 내용의 서한을 발송했다오.

나는 그 날 밤 감옥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정죄될 때까지 있었소. 그 곳은 토굴 옆이었는데 아주 춥고 불 빛 하나 없는 작은 방이었소. 거기서 나는 침대 대신 짚 한 뭉치를 받았고 의자도 없었고 쉴 만한 곳은 하나도 없었다오. 그러자 그들은 내가 누울 만한 침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소. 그러나 내가 몹시 앓고 있었지만 나를 도와주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밤이나 낮이나 아무도 곁에 있지 않았소.

종이, 펜, 잉크, 책도 허용되지 않았고 다만 내가 사적으로 가지고 온 라틴어 성경과 기도서뿐이라오. 이틀 만에 대법관과 평의원 탬세이 씨가 내 감방으로 왔소. 대법관은 내게 로마가톨릭의 주교와 교회를 인정할 것을 권유했소. 나는 만약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다스리는 교회라면 거절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오. 그는 나와 변론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가 버렸소. 그리고 나는 주교가 올 때까지 아무도 못 만난 채 8일을 보냈다오.

그 동안 나는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주신 자비로운 하나님의 약속을 묵상하며 줄곧 기도하고 있었다오. 나는 매일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몸이 치료되며 마음이 평안하고 하나님으로부터의 위로가 임함을  내속에서 발견하고 있다오. 그리고 때로는 마치 앞으로 올 새 생명을 조금 맛보고 살짝 들여다보는 것 같구려.  

내가 감금 된 이후 주교가 처음 리치필드에 왔을 때 나는 내 감방 옆에 있는 외딴 방으로 불려가 주교 앞에 서게 되었소. 그 앞에 나갔을 때 그의 휘하 장교들과 교구 목사와 하인과 한 늙은 신부 이외에는 아무도 안 보였소. 나는 한편 놀랍게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 그의 자비로우신 도움과 협조를 구했다오. 그는 내게 감옥 생활이 어떠냐고 물었소. 그리고 그는 내게 로마가톨릭교회의 회원이 되라고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소.

그는 그의 교회가 아주 오랫동안 계속되었다고 말했소. “당신의 교회로서 최근까지 에드워드 왕 때 이외에는 알려진 곳이 없군요.”라고 그가 말했소. 그래서 나는 “그 교회의 회원임을 공언합니다. 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초석이시며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기반으로 세워졌지요. 그래서 세인트 폴로부터 에베소 교회까지 연합되어 있지요. 그리고 이 교회는 태초부터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오. “그것이 비록 세상 앞에는 영광스럽게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 십자가와 고난 밑에서 정죄 받고 무시되고 핍박을 받아왔답니다.” 주교는 그들이 그런 교회라고 우겼소.

나는 그가 내게 특별한 책임을 지우고 나서 나에게 성경말씀과 훌륭한 가르침을 줄 것을 바란다고 했다오. 다오그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소. 나는 공개적으로 대답하겠다고 요청하면서 한구석애서 대답할 것을 거절했소. 그는 나에게 거기서 대답해야 한다고 말했고 나는 다시 감옥으로 갈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소. 감옥에서 내가 그에게 대답할 때까지 음식도 마실 것도 주지 않겠다고 했소. 그러자 나는 내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며 굳게 서서 하나님의 가장 거룩한 말씀을 의지하기를 빌었소.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었소.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안에 몇 가지 성사를 세우셨는가?” 나는 당당히 대답했소. “세례 성사와 마지막 만찬에 세워 놓으신 성사가 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고해성사를 인정하느냐?”고 물었소. 나는 “아니오!”라고 대답했소. 그러자 주교는 “영성체에 그리스도의 몸이 임재하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소. 나는 그들의 미사는 “제사도 성사도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소. “왜냐하면 당신들은 참된 성사를 없애 버렸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다시 회복할 때 내가 판단한 바를 말하겠습니다.”라고 나는 대답했소.

이상은 하나님의 진실한 순교자가 직접 써서 남긴 간증으로 그가 감옥에서 주교와 대법관과 논쟁한 내용에 관한 것이다. 그가 정죄 받기 위해 끌려갈 때까지 그는 아마도 공개 된 종교재판정에서 주교에 의해 빈번히 심문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틀림없이 거기에 대한 기록도 남겨 놓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런던으로부터 온 화형 영장 때문에 시간이 없어 그렇게 하지 못했으므로 그의 마지막 심문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사건은 그의 친구 어거스틴 버너가 기록했다. 주교에 의해 정죄된 후 글로버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 밤에 영적인 궁핍함을 느끼며 순교자의 쓰디쓴 십자가를 기꺼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는 대신 달갑지 않은 무거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는 주님께서 자기에게서 주님의 은혜를 거두어 가실 것을 두려워했으며 어거스틴에게 자기의 영적인 빈약함을 염려하면서 그가 밤낮으로 얼마나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안도감이 없다고 말했다. 어거스틴은 주님께서 그를 기뻐하시기를 바라면서 그의 고통의 이유가 정당하고 거룩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에게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의 때에 구원을 가지고 그를 찾아오실 그리스도께 매여 달리라고 권고했다. 그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밤을 성도의 힘이 되시지만 그것을 체험적으로 깨달지 못한 채 주님의 기쁨을 위해 기도하면서 꼬박 세웠다. 드디어 그가 순교 당하는 날이 되었다. 사형대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을 때 그는 갑자기 하나님의 사랑과 임재하심으로 아주 충만케 되어 그의 두 손을 꽉 잡고 친구에게 외쳤다. “어거스틴! 그가 오셨다! 그가 오셨어!”(*) 출처 / 기독교순교사화(존 폭스 원저, 머리 킹 편저, 생명의 말씀사)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