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주님을 섬기던 많은 여인들이 슬피 울며 주님을 따르고 있었다. 그때 주님은 그 여인들을 돌아보시며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셨다. 무슨 뜻인가? 무엇보다도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뜻이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의 최고봉은 기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자식에 대한 최고의 사랑은 어머니 기도였다. 그러므로 가장 불행한 자식은 어머니의 기도 없이 자란 아이들이다.
어거스틴(Augustinus, 354-430)은 주후 354년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교도였지만 어머니 모니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모니카는 23세에 어거스틴을 낳아 기도로 키웠다. 그런데 이런 어거스틴이 12살 때 고향을 떠나 유혹이 많은 북아프리카 최대 항구도시인 카르타고로 유학을 가서 방탕한 생활에 빠졌다. 머리는 비상했으나 생활은 엉망이었다. 수많은 여자와 동거하고 18세 때 사생아까지 낳았다. 신앙도 다 버리고 마니교라는 이교에 깊이 빠졌다.
모니카의 심장은 터져나가는 것 같았다. 모니카가 날마다 교회당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고 있는데 교회 감독이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다. “눈물의 기도로 키운 자식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 기도해라!” 그때부터 이 말은 모니카의 평생 좌우명이 되었다.
어거스틴은 카르타고에서 공부를 마치고 로마로 가서 수사학(修辭學) 교수가 되었다. 밀라노 시의 대변인이 되어 황제 앞에서 시정을 브리핑을 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그는 마니교와 점성술 그리고 신플라톤 철학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가 승리하는 날이 왔다. 386년 32세 때 어느 날 자기 집 정원 무화과나무 아래서 ‘톨레 레게 톨레 레게’(Tolle lege, Tolle lege, 책을 들어 읽으라)라는 소리가 어거스틴의 귀에 들렸다. 급히 방에 들어가 먼지에 쌓인 성경을 펼쳐 읽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
순간 어거스틴은 망치로 얻어맞은 듯 그 자리에 꼬꾸라졌고 새 사람이 되었고 2000년 교회사에 사도 바울 이후 가장 위대한 신학자가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첫째, 자녀들의 믿음을 위해 울며 기도해야 한다.
우리들 자녀는 결코 공부, 진학, 취업, 출세가 먼저가 아니라 믿음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왜 그런가? 믿음이 우리 자녀들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신앙에 대한 책임은 교회나 교회학교 교사에게 있는 게 아니다. 교회에 앞서 부모에게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부모는 자녀들의 믿음을 위해 울며 기도해야 한다.
웨슬리의 어머니 수잔나는 19남매를 낳아 6명을 잃고 13명을 철저히 믿음으로 키웠는데 집이 너무 가난하고 좁아 식탁에 앉아 앞치마를 뒤집어쓰고 기도했다. 엄마가 앞치마만 뒤집어쓰면 아이들은 조용하거나 밖에 나가 놀았다. 그녀의 기도가 자녀들을 위대한 인물로 만들었다. 웨슬리 이 외의 다른 자녀들은 변호사, 의원, 장관이 되었다. 가난했던 수잔나는 자녀들을 기도로 키운 것이다.
둘째,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울며 기도해야 한다.
부모의 눈물의 기도는 절실하고 순수한 기도를 가리킨다. 자녀의 장래를 위해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기철 목사는 일제 때 신사참배를 반대한다고 투옥되어 7년간 모진 고문과 고초를 당하며 옥살이 하다가 평양 감옥에서 1944년 4월 21일 49세를 일기로 순교했다. 그 때 주 목사님을 옥바라지한 장로님이 있었다. 일본 순사들의 온갖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주 목사님의 임종예배를 드리고 주 목사님의 자녀를 돌본 산 순교자라 불리는 유계준 장로님이다.
유 장로님은 새벽마다 8남매 자녀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다. 자녀들의 출세를 위해 기도한 게 아니라 그때는 한국에 교육자와 의사가 필요했기에 자녀들이 훌륭한 의사와 교육자가 되게 해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그때는 다른 사람들이 이런 장로님을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장남은 서울대 총장, 둘째는 서울복음병원 원장, 셋째는 부산대 의대 학장, 넷째는 부산 소아과병원 원장, 다섯째는 재미 의사, 여섯째는 소아과의사, 일곱째는 재미 약사, 막내는 재미 내과의사가 되었다. 모두 유 장로님이 기도대로 되었다.
지금은 부모 된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 더 나아가 교회의 젊은이들을 위해 눈물 뿌리며 기도 할 때이다. 세상은 최후의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고 노아 홍수 심판 이래 인류의 죄악은 하늘까지 닿은 시대에 우리 자녀들의 미래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초음속 여객기만큼이나 빨라진 시대의 변화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시는 주님은 오늘의 우리에게 확실한 답을 주셨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