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

나사렛 포고령 The Nazareth Decree

 

로마 황제 글라디오의 나사렛 포고령(50AD)
로마 황제 글라디오의 나사렛 포고령(50AD)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신 부활사건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주님이 부활하신지 얼마 안 되어 로마 황제가 팔레스타인에 반포한 ‘나사렛 포고령’(The Nazareth Decree)은 예수님의 부활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문헌으로 알려져 있다. 올 해도 감격하여 부활절을 맞는 성도들에게 이 ‘나사렛 포고령’(The Nazareth Decree)을 소개 하고자 한다.

현재 프랑스 파리(Paris)에 있는 루브르(Louvre) 박물관의 Cabinet de Medailles라는 방에 소장되어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방문객을 맞는 이 ‘나사렛 포고령’ 문헌은 독일의 고고학자 Froehner가 1878년에 이스라엘 어느 골동품상에서 구입하여 간직하다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1930년 역사학자 Michel Rostovtzeff의 손에 넘겨졌고, 1932년 처음으로 고서학자 Abbe Cumont에 의해 그 내용이 세상에 알려 지게 되었다.
‘나사렛 포고령’(The Nazareth Decree)은 주후 50년경 나사렛에 내려진 로마 황제의 칙령이다. 사방 1피트 정도 크기의 흰 대리석(위 사진)에 헬라어로 기록된 포고령의 내용 중 일부는 이렇다.

가이사 황제의 칙령: 예수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들어 있는 무덤은 절대로 파손하거나 훼파하지 못 할지니라. 그리스도인의 무덤을 고의적으로 훼파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이것은 일종의 묘지법이지만 나사렛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님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로마 황제 글라디오(Emperor Claudius, from 41 to 54)가 내린 포고령이다.

당시 로마의 역사가 수토니우스(Suetonius)의 글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직후 주님의 부활소식이 로마 사람들에게도 전해 졌다고 한다. 그래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이 이 나사렛 예수의 부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많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성에서 부활한 주님을 전했다고 한다. 그의 글을 보면 ‘Chrestos’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아마도 ‘Christus’라는 말의 오자 일 것이다. ‘그리스도’를 로마의 라틴어로는 ‘Christus’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ιχθυs’라고 한다.

당시 로마의 황제 글라디오(Claudius)는 신하들을 불러 영문을 물었고, 황제도 주님의 부활을 알게 되었으며, 이때 로마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고 설교하는 전도자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 갔는데 제자들이 부활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응수했다. 그래 이로 인한 소동이 제국의 수도 로마에서 일어나려하자, 나사렛 예수의 부활 소문을 주시하던 글라디오 황제는 소요 사태로 번질 것을 우려하여 양편 모두를 로마에서 추방해 버렸다.

사도행전 18장에 아굴라 내외가 로마에 살다가 로마에서 추방당하여 고린도로 옮겨왔다는 내용이 바로 이 사건을 말한다. 그리고 글라디오 황제 자신이 전도자들의 말대로 부활한 나사렛 예수가 다시 재림할 것을 두려워하여 후속조치로 이런 ‘나사렛 포고령’을 내렸던 것이다.
프랑스 파리(Paris) 루브르(Leuvre) 박물관에 보관되어있는 이 ‘나사렛 포고령’의 꼭 같은 모조품(replica)이 관광객들을 위해 이스라엘 서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가이사랴(Caesarea) 항구의 원형경기장(옛날 바울이 벨릭스 총독에게 재판을 받던 곳) 입구에 있다. 가이사랴는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항소하기 위해서 로마로 압송될 때 거쳐 갔던 항구도시이다.(행 27장)

필자가 1990년 뉴욕 개혁신학교 학생들과 같이 수학여행 차 성지순례를 가서 가이사랴와 욥바를 찾은 것이 2월 하순이었는데, 주님이 산상보훈을 가르치셨던 팔복 산에는 빨강색 백합화가 만발하여 장관이었고(성경에 나오는 백합화라고 번역 된 꽃이 실제로는 빨강색 야생화이다.), 가이사랴 앞바다 지중해의 파고가 2미터가 넘는 험한 날씨였지만, 성서고고학 책에서만 읽어 보던 그 유명한 ‘나사렛포고령’의 모조품을 직접 볼 수가 있어서 필자는 물론 필자의 성서 고고학 강의 시간에 강의를 통해서 이 포고령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던 사랑하는 졸업반 신학생들은 모두 새로운 감회에 젖은 적이 있다.

이는 마치 1620년 영국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 서남부 지금의 Wales의 남단 Plymouth항구를 떠나 중간에 화란에 잠시 기착하여 배를 수리한 후 Mayflower호를 타고 Massachusetts주 Cape Cod 의 최북단인 Provincetown에 도착했으나 며칠 후 본토로 상륙하여 지금의 Boston 근교 Plymouth Rock에 정착한 후 타고 온 Mayflower호는 버리고 대신 그 자리에 배의 모조품을 남겨놓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배에는 관광객을 위해서 17세기 당시의 복장을 입고 17세기 당시의 순 영국식 영어로 선내를 안내하는 안내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분명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런 역사적 고고학의 문헌을 통하지 않아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면 이처럼 ‘니시렛 포고령’과 같은 땅의 돌들이 소리를 지른다. 주님은 성경대로 십자가에 돌아 가셨고, 성경대로 장사 된지 삼일 후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부활신앙은 기독교의 생명이다. 부활의 주님에게 영광과 찬송과 존귀와 권능을 세세토록 돌리며 부활의 소망 가운데 더욱 더 주의 일에 힘쓰는 성도가 되자.(*) 글쓴 이 / 고 김명도 목사, 참고 서적: E.M. Blaiklock. The Emperor Claudius and His Achievements. Leyden, Holland :E,J. Brill, 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