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다시 맞는 부활주일을 어떻게 기념해야 하는가?

오늘 한국교회를 볼 때 이 복잡한 현실 가운데서 상당히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비정상적이고 연약하고 영적으로 병들어 있다고 느끼게 된다. 만일 우리가 금년 부활주일 이후에도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그것은 한국교회가 정말 영적으로 깊이 병들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번 부활주일을 계기로 삼아 우리의 영적침체의 심각성을 깨닫고 온전한 믿음의 상태로 돌이켜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주일은 우리의 죄로 인한 우리의 영적 죽음 때문에 주님이 우리의 자리에 대신 서시어 우리 죄에 대한 형벌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간혹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았다고 하는 말을 듣게 된다.  엘리사가 기도하여 죽었던 아이를 다시 살게 한 일이 있었고(왕하 4:35),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나사로(요 11:44)와 나인성 과부아들(눅 7:11-17) 그리고 백부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일이 있었다.(막 5:21-40)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이런 성격의 부활사건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으나 조금 더 이 세상을 살다가 다시 다 죽었다. 또 이들의 부활은 다른 사람에게 크게 영향을 준 것도 별로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 보여 주었을 뿐이다.

이와는 달리 예수님의 부활은 다시는 영원히 죽지 않는 그런 부활이다. 또한 그의 부활은 종말적 사건이고, 그의 십자가 구속에 참여한 자들을 의롭다하기 위한 부활이며, 그들을 영적으로 다시 살리셔서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산 자로 살도록 하는 부활이고, 종국적으로 그의 재림 때에 주님의 부활체와 같은 부활체를 입게 하시는 부활인 것이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기로 하자.

1. 예수의 부활은 개인적 부활일 뿐 아니라 공적인 부활이다. 

물론 예수님의 부활은 참으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대속(代贖)하기 위해 죽으신 개인적이고 인격적 부활이다. 다른 분이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바로 그 분의 부활이었다. 또한 그는 영으로만 살아난 것이 아니라 살과 뼈가 있는 몸으로 부활하셨다. 그러나 동시에 주님의 개인적 부활은 그 안에 있는 우리들의 현재의 영의 부활과 미래의 우리들의 몸의 부활을 보증하는 것이며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부활은 주님 안에 있는 자들의 영적 부활과 몸의 부활을 보증하는 공적인 부활도 되는 것이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종말론적 사건이다.   

구약에 종말에 일어나리라고 한 일이 예수님의 다른 사건과 같이 그의 부활도 예언 된 그대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 사건처럼 부활 사건도 종말론적 사건이다. 구약의 관점에서 종말에 일어나리라 한 일이 이 세상 역사 가운데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이 종말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 이 세상의 끝이 이른 것이 아니었다. 예수께서 가져오신 일들의 성격과 같이 부활도 그 안에서 종말이 이미 임하였으나 이 세상 끝은 아직 이르지 않은 그런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니’(already but not yet)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신약적인 의미의 종말 사건이다.

 3. 이 종말론적인 부활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는 지금 여기서 이미 영혼의 부활을 경험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영혼을 하나님께 대해 산 자로서 판단하고(롬 6:11),  영혼이 산 자답게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참으로 믿는 것이며 그것을 참으로 기념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며 기념한다고 하면서 마치 영혼이 계속 죽어 있고 병이든 사람처럼 하나님의 뜻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그런 삶을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영혼이 산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 민감하게 살아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살게 하신 그 뜻을 수행하며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게 된다. 이것이 부활주일을 참으로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에서 강조해야 것은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생명운동’에 동참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문제가 많고 어려움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영혼이 살아서 참된 생명에 동참하게 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세상 속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하나의 강력한 방식인 것이다. 또 이것이야 말로 그 부활 생명이 내 안에 있음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  

4. 주님 재림 때 우리 몸의 최종적 부활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다. 

주님의 부활의 진정한 의미 중 하나는 부활에 대한 우리의 소망이다. 그래서 장차 예수님의 재림 때 이루어질 우리들의 몸의 부활에 대한 확신과 그에 근거한 삶의 태도가 분명히 나타나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부활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것을 중언하는 것이 된다. 그것이 지금 여기에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있게 할 뿐만 아니라 미래 부활의 소망 가운데서 살아가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활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부활절 달걀(easter egg)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부활절 달걀을 전해도 좋고 부활절 카드를 보내도 좋고 부활의 메시지 편지를 써서 전달해도 좋다. 그러나 부활생명을 전하는 우리의 부활생명이 가득 찬 삶과 사랑이 함께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들이 다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이 세상이 그런 부활생명을 전달받을 수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일은 단지 매해 부활주일에만 기념되거나 세상에 전달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진정한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매 주일을 부활 주일로, 성령 강림절로, 감사주일로 지키며 기념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의미가 날마다 우리의 삶에서 드러나야만 한다.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의 빛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전체가 그리고 매일 매순간의 삶이 부활하신 주님과 같은 부활 생명의 약동(躍動)으로 나타나야만 할 것이다.(*) 글쓴 이 / 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이 글은 편집에 맞춰 요약 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