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동성혼에 대한 성경적 관점

 

311911. 하나님이 계획하신 혼인제도의 목적

혼인(婚姻)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오늘날 널리 조롱당하고 있고 또 벗어나 있기 때문에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동성혼(同性婚, 동성 간의 혼인)에 쉽게 빠질 수 있는 그런 시대이다. 동성혼 옹호자들은 어떤 사람이든 서로 사랑하는 관계라면 그 사람들이 비록 동성(同性)이라 할 찌라도 법적으로 혼인(婚姻)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성혼이 하나님이 혼인(婚姻)에 대해 정의(定義) 한 말씀과는 전적으로 배치되고 적대적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동성혼은 혼인(婚姻) 생활에 대한 전능자의 설계(設計)에 뻔뻔스럽게 대항하는 짓이다. 그것은 또한 인류 사회가 역사를 통해 보편적으로 이어 온 혼인(婚姻)의 개념에 전적으로 역행(逆行)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혼인(婚姻)은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서로 다른 두 성(性)인 남성과 여성이 혼인(婚姻)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감정적으로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각각 서로 보완하고 완전해지도록 계획하셨다. 실제로 혼인(婚姻)의 연합은 육체적인 것 이상이다. 그리고 이 연합은 성적인 것과 분리될 수 없고 생식(生殖)도 남녀 성과 분리될 수 없다. 혼인(婚姻)은 하나님이 자녀 출산을 위해 주신 수단이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생식과 양육에 있어서 저마다의 역할을 감당하는 곳이다. 그리고 혼인(婚姻)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사회의 기초(基礎)이다.

그러나 동성혼은 혼인(婚姻)에 대한 이러한 관점들과 매우 다르다. 하나님이 남성과 여성의 결합으로 명하신 것에 반해 동성혼은 동일한 성(性)의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혼인(婚姻)을 통해 자녀를 출산하도록 하신 것에 반해 동성혼 옹호자들은 출산이란 혼인(婚姻)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양성(兩性)을 목적을 가진 의미 있는 것으로 설계하신 것에 반해 동성혼에서 행하는 섹스는 이 같은 창조주의 의도와 설계에 맞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동성애적 행위들에 대해 분노하신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받지 못할 자들의 목록에 동성애자도 포함시켰다.(고전 6:9) 하나님은 혼인(婚姻)의 창조원리와 가정의 고결성을 보호하시기 위해 동성애 행위를 금하셨다.(레 18:22, 20:13) 이 모든 것은 동성혼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칙에 적극적인 대항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같은 인간의 반역의 결말은 필연적으로 사회적인 재앙을 가져오게 되어 있다.

2. 혼인의 재정의에 따르는 위험성

혼인의 의미를 재정의(再定義) 하려는 동성혼은 하나님이 이 세상 역사의 시작에 인류에게 주셨던 선물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남녀의 결합이 아닌 두 사람의 결합이라는 동성혼이 사회 일반 규범으로 받아들여질 경우 우리는 하나님이 혼인(婚姻을 계획하신 목적과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혼인(婚姻) 제도를 궁극적으로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다.2)

그러므로 게이(Gay, 남성애자들) 운동가(LGBT)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동성혼이란 단지 기존의 혼인(婚姻)에다 종류가 다른 것을 하나 더 덧붙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직한 동성애자들은 전통적인 혼인(婚姻)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또한 정직한 레즈비언(Lesbian, 여성애자들)들과 게이들도 동성혼이 모든 사람이 지금 알고 있는 정통 혼인(婚姻을 파괴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동성애 문제의 본질적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은 결과적으로 혼인(婚姻의 재구성이 필수적이며 많은 새로운 문제들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단지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혼인(婚姻)하기 원한다는 이유로 동성애자들에게 혼인(婚姻) 관계라는 특권이 주어져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서로 사랑한다고 친형제나 친자매 간에도 또 더 발전하여 서로 사랑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혼인(婚姻)도 허락해야 하는가?

이처럼 동성애 문제가 또한 폴리가미(polygamy, 한 아내 혹은 남편 이상을 가지는 것)와 폴리아모리(polyamory, 자기가 사랑하기 원하는 한 가족집단 내의 많은 사람들 간의 열려진 관계 :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개념으로 성관계를 일대 다수 혹은 다수 대 다수로 나누는 일종의 집단 혼-역자 주)에로의 발전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은 흥미로우면서도 크게 염려스러운 일이다.

만약 우리가 전통적인 혼인(婚姻)을 잃어버리고 무엇이든 개인이 선호하는 대로 되게 된다면 그 결과는 무시무시할 것이다. 이러한 결말들이 당장 들어나지는 않지만 점차적으로 그리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심지어는 동성혼을 반대하는 게이들도 있다. 그 이유는 이 같은 잠재적인 광범위한 부정적인 사회적 영향력 때문이다. 게이들의 주장대로 혼인(婚姻)을 재정의(再定義) 할 때 보여주는 잠재적 의미는 급진적 개인주의가 더욱 왕성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가정을 구성하는 것도 성적으로 허용되는 범위도 모두 개인주의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혼인(婚姻)이나 가정에 대한 전통적인 모든 규범들은 거의 사라질 것이다.

동성애는 일반적인 것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동성애는 일반적으로 더 폭력적이고 정상인의 생활에서 아주 쉽게 이탈해 버리기 때문에 동성혼은 부부사이의 정절과 정상적인 혼인(婚姻)관계를 침식시키는 경향이 있다. 모든 종류의 성적난교(性的亂攪)에 대해 관용적인 사회에서는 안정 된 정상적인 가정들이 위협을 받게 된다. 이 같은 급진적인 개인주의가 오늘날 하나님이 설계하신 혼인(婚姻)의 반대편에 서 있다. 우리는 지금 이에 대한 세속적인 첫 단계에서 이러한 현상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설계하신 혼인(婚姻)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합을 전제로 하고 있다. 혼인(婚姻)의 강력한 유익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큰 차이점을 가지고 설계되었다는 점과 따라서 이들 차이점들이 결혼 안에서 조화되어 서로가 상대방의 결점들을 보완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이다. 즉 서로 다른 남자와 여자는 함께할 때 각각일 때보다 더 큰 것을 창조한다.

비유로 바이올린과 활을 생각해 보라. 활은 말총으로 만들어져 끝에서 끝까지 쭉 뻗쳐 있는 나무 막대기이다. 바이올린과 활은 각각일 때는 존재한다는 것 말고는 스스로 더 이상의 것을 할 수 없다. 또 바이올린과 활이 함께 있다고 해서 음악이 만들어 지지도 않는다. 둘은 단지 서로를 비춰줄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서로 보완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차이점 안에서 함께하여 둘이 하나가 될 때 그들은 홀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환상적인 음악을 창조해낼 수 있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인류의 두 부분은 대단한 것이다. 혼인(婚姻)은 전체를 만들기 위해 서로 다른 두 남성과 여성을 하나가 되게 한다. 그리고 그 하나 됨에서 위대한 창조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동성(同性)의 연합은 인류를 위한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동성애를 주장하는 자들은 인간 성분의 필수적인 것 즉 하나님이 계획하신 남성과 여성을 통한 놀라운 창조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재생산의 문제만은 아니다. 남성과 여성간의 상호작용은 양자 모두에게 거대하고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 할 수 없는 유익을 준다. 왜냐하면 성(性)의 차이점들은 존재의 모든 부분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은 바꿀 수 없는 인간성이다. 남성과 여성은 정체성에 있어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완전하게 되기 위해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사랑과 언약(commitment)이 혼인(婚姻)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혼인(婚姻)은 두 성(性)의 차이를 필요로 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혼인(婚姻)이 인간의 필요에 따라 인간이 만들어 낸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설계라 점을 살펴보았다. 그러므로 혼인(婚姻) 관계를 재정의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재앙을 자초하는 일이다. 이 재앙의 근원이 혼인(婚姻)의 재정의이며 또한 동성혼 현상 속에서 개인주의적 속성은 아이들의 위치를 큰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3. 재앙의 중심에 서게 될 아이들의 위치

동성혼에서 진짜 값을 지불해야 할 사람들은 아이들이다. 학술적으로 볼 때 동성혼에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동성혼 옹호자들은 혼인(婚姻)이란 아기나 후손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엄마나 아빠가 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동성혼 옹호자들은 결국 자신들이 성인으로서 함께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동성(同性) 커플이 형성되는 것은 아이들 때문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만족하나 후손은 늘어나지 않는 이것이 문제이다. 물론 아이를 원하는 동성 커플도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들은 스스로 자식을 생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원하면 제 3자로부터 제공받은 정자나 난자가 사용되어 인공적인 방법으로 임신을 하게 된다. 왜 그들이 원하는데도 동성인 사람들끼리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가? 아이를 갖는 것은 혼인(婚姻)한 사람들만의 축복이며 특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 입장에서 볼 때 본질적으로 자손과는 관계없는 동성혼의 환경 속에서 자라는 것이 공정한가? 그런 환경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겠는가? 이미 법정에서는 동성애자들과 정자나 난자를 제공한 사람들 사이에 누가 진짜 부모인가 확인하기 원하는 끔찍한 법적 전쟁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더 나아가 아이들은 자신의 진짜 아버지와 어머니를 알 필요가 있다. 입양된 아이들은 종종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찾는다. 그들이 자신의 생물학적 진짜 부모를 알기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성애자 배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결코 자신의 생물학적 부모를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은 결코 아버지와 어머니 쌍방이 그들을 돌보는 것을 누릴 수 없다. 수많은 연구는 아이들이 균형적으로 자라고 더 좋은 양육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게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쌍방 모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아버지 없이 자라는 소년들은 매우 호전적이 된다. 또 전통적인 혼인(婚姻)의 바깥쪽에서 양육된 아이들은 사회과학자들이 평가하는 모든 부정적인 결과에 있어 본질적으로 더 큰 위험에 놓여 있다.

예를 들어 이 아이들은 더 쉽게 학교에서 실패하고, 물리적 정신적 문제들에 더 고통을 받으며, 아이들의 비난의 희생자가 되거나 더 쉽게 비행 청소년이 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확언컨대 동성애적 라이프스타일이 어린이에 대한 비정상적인 성관계를 부추기게 될 것이다. 기억하자. 동성혼은 아이들에게 안전한 장소를 제공해 주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에 의해 각인된 성적 자유만을 갖게 해 줄 뿐이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혼인(婚姻)이야말로 아이들이 보호받고 양육되며 사랑받고 사회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한 정확한 정체성과 관점을 가지고 자라게 되는 장소이다. 만약 동성혼이 법적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이런 모든 것이 폭 넓게 변화될 것이다. 아이들은 그들의 생물학적 과거와의 사슬이 끊어질(delink) 것이며 나아가 아이의 친족 그룹과의 희미한 연결선마저도 단절될 것이다. 혈연관계나 성(gender)의 정체성 그리고 친족 간의 연결은 모두 그 강조점이 사라져버려 아이들에게 그의 정체성에 그리고 그의 사회 속에서의 위치에 손상을 입힐 것이다.

가장 염려스러운 상황은 인류가 생육하고 번성하지 못하고 동성혼에서의 당대 아이 양육으로 끝나버릴 것이라는 것이다. 재정의 된 혼인(婚姻)은 더 이상 세대나 가계(家系)와 관계없는 것이 되어 버릴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아이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 할 수도 함께 묶을 수도 없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두려워 할 결말은 동성혼의 결과로 종래는 인류가 멸종(滅種)에 놓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다.

4. 동성혼이 가져올 결말

동성애를 포함한 재정의 된 결혼의 의학적인 결말은 잠재적으로 전 인류의 파괴이다. 알코올 중독이 인류에게 파괴적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사회는 알코올 중독과 싸우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는 동일하게 동성애적 행동들과도 싸울 의무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동성애가 만들어내는 파괴는 직접적으로 개인에게나 전체 사회에게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전 인류에게 더 악하기 때문이다.

동성애에 관한 연구들은 동성애자(同性愛者)들을 이성애자(異性愛者)들과 비교해 볼 때 25년에서 30년가량 수명이 짧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중요한 이유는 게이들 스스로의 높은 자살률과 정신질환 뿐 아니라 간 계통의 질병, 전염성 간염, 에이즈, 직장암 등에 노출시키는 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같이 시민들의 삶에 건강의 위험들이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은 이웃사랑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으로서 동성혼은 우리 사회를 더욱 하나님의 심판 아래 두게 할 것이라는 점이다. 동성혼에 대해서는 어떤 축복도 없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에 저주를 가져다준다. 건강 문제뿐 아니라 가족과 전체적으로 함께 유지되는 사회의 구조를 약화시키는 면에서 그러하다.

5. 크리스천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제정하신 혼인을 지키기 원하는 크리스천들은 현재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음의 내용을 마음에 담아 두자

(1)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혼인과 가정에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세상에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혼인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랑의 예표이며 반영이다.(엡5;21-33) 그리스도인의 혼인과 가정은 어두운 세상에 희망의 횃불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에게 그 기쁨의 이유를 물게 해야 한다.(벧전 3:15) 사회에서 소금이 되는 것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방법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둠 속에서 분투하는 동성애자들에게는 복음으로써 소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구원하시지 못할 노예 된 자들은 아무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강력이시며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고전 6:9-11)

(2)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 선호하는 사상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혼 설계를 방어하는 것임을 강조하라.

하나님이 혼인 제도를 제정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해야한다. 하나님의 권리는 항상 인간의 권리보다 우선한다. 하나님은 창조자로서 그의 계획을 명확하게 말씀하셨고 그의 말씀은 우리에게 문제에 대한 권위 있는 대답을 주신다. 그리고 우리의 캐나다 권리 자유헌장(Canadian Charter of Rights and Freedoms : 캐나다 헌법을 통상적으로 일컫는 표현-역자주) 전문에서 “캐나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식하는 원리 위에 세워졌다.”고 명백히 말하고 있지 않은가!

(3) 가능한 오늘날 타락한 성적풍조들에 반대하고 모든 정통 혼인과 순결을 지키기 위한 법안의 발의를 지지한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에게 동의하지 않는 타인들의 권리도 존중하고, 우리의 대적에게도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동료 시민들을 실추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성적 죄악과 싸우는 사람들에 대해 동정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들이다.

(4) 만약 당신이 게이들의 결혼을 장려하고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그리스도인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강경하게 항의 하고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그들이 알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일부의 사람들이 오늘날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고 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들이 입히는 손해는 막심한 것이다. 그들의 거짓 된 비성경적인 증언들은 제지 되어야 한다.

(5) 그리스도인들도 정부가 올바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치일선에 서 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사회 공익을 위하고 악을 제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이다.(롬 13:4) 책임 있는 국회의원에게 편지를 쓰라. 우리는 정치적 영향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거나 우리가 동의하는 영역 내에서 문제 해결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동성혼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으로 같은 마음과 뜻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단체를 조직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우리는 정치적 과정들과 나라의 의제들과 우리의 목소리가 더 강력하게 들리도록 하는 데 있어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글쓴 이 / By C. Van Dam trans. by Seok-Jun Yun C. Van Dam 박사는 온타리오 주 해밀턴에 있는 캐나다 개혁교회의 신학교의 교장이며, 구약학 교수이다. 본 글은 클라리온 Volume 54. No.3(January 28, 2005)에 실렸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