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이 되어
신성과 인성의 연합(요 1:1-18)
예수님은 바쁜 전도 일정 중에 잠시 가나안을 벗어나 제자들과 조용한 시간을 가진 일이 있습니다. 그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십니다. 첫 번째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드냐는 것이고, 두 번째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때 시몬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라고 고백함으로 주님께 큰 칭찬을 받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주님의 이 질문은 개인적으로는 삶과 죽음의 갈래를 결정하는 것이고, 이 질문에 올바른 신앙을 가르치는 교회는 건전한 신앙을 가진 교회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이단들
기독교 역사를 훑어보면 예수님에 대하여 올바른 신앙이 정립되기까지 많은 논란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단들이 발생하였습니다.
첫째, 실례를 들면 A.D. 107년경에 에비온파는 하나님은 유일하시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다 결국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인데,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이 두 분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이긴 하지만 하나님은 아니라고 신성을 부인한 것입니다. 물론 이런 주장은 잘못된 이단의 주장입니다.
둘째, 어떤 경우는 예수님 안에 신성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인성을 부인한 경우도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너무 신격화한 나머지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이시지 사람은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성경에도 나타나 있는 노스틱 이단이 그런 경우입니다. 이들은 헬라 철학에서 말하는 이원론 사상을 끌려들려 세상은 물질과 정신으로 구성되었는데, 모든 물질은 악하다고 전제하고 예수님이 입으신 육신까지도 물질이기 때문에 악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과 같이 거룩하신 분에게 악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들은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저들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신성을 가지신 그리스도가 그에게 임하여 같이 활동을 하다가 그가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순간 신성을 가지신 그리스도는 떠나가고 인간 예수만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런 주장을 한 이들을 기독교 역사에서는 노스틱 이단이라고 합니다.
셋째, 완전히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A.D. 320년경 아리우스라는 사람은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면서도 완전한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과 유사한 성격을 가졌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성을 부인하였었는데 결국 그도 이단자로 정죄되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이단적인 주장들은 옛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있습니다. 현대의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합니다. 아프리카 흑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평생을 바친 20세기의 성자 슈바이처는 인도주의자로서는 매우 훌륭한 분이지만 신학 사상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유주의자입니다. 또 오늘날 세계에서 큰 이적을 일으키는 것처럼 떠드는 신비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신성은 인정하지만 그의 인성은 부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A.D. 451년에 칼셀톤 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교통정리를 하였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는 한 품위가 있고, 그 안에 인성과 신성의 두 성품이 공존하며, 그 인성과 신성은 각각 완전하고 그리고 원만하게, 유기적으로 연합되어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를 갖고 있으며, 그렇다고 제 3의 성품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참사람이면서 동시에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성품과 사람의 성품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또 다른 성품을 만들어 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완전한 사람이면서 완전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하여 성경을 중심으로 좀 더 자세하게 풀이해 드리겠습니다.
2.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신성에 대하여 많은 말씀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등으로 표현하였고, 신약에서는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분이고, 그분이 하나님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이 말씀을 보면 더 설명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예수님 자신도 말씀하셨으나 그의 제자들의 고백만을 들어보겠습니다.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던 제자들은 물위로 걸어오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으로 착각을 하였으나 예수님이신 것을 알고 베드로는 자신도 물위로 걸어가도록 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잠시는 걸어갔으나 곧 물에 빠지고 맙니다. 이때 주님은 그를 붙잡고 배로 올라가니 풍랑이 잔잔해 집니다. 이 사실을 보던 제자들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마 14:33)고 고백을 합니다. 3년간 그를 경험한 제자들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와 같은 인간의 육신은 입으셨지만 그의 신성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상에 계실 때 바람을 잔잔케 하기도 하고, 바다 위를 걷기도 하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합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서 제자들은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었고 이것을 고백하고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믿는 것이 역사적인 기독교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확실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다른 종교에서 발견할 수 없는 기독교의 신비입니다. 우선 성경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셨던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나타나는 사건이 생겼는데, 그것이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입니다. 사람의 몸으로 오신 그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아기를 거치고,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자라나셨습니다. 그리고 공생애 시, 복음을 전하실 때는 때로는 목마르시고, 시장하시고, 피곤하여 주무시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들과 똑 같이 사랑과 긍휼, 진노와 염려, 놀람과 슬퍼하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십니다. 그가 하나님만이라면 죽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죽으셨습니다. 이런 모든 사건들이 그가 완전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밝혀 둘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우리 사람들과 똑 같은 인성을 가졌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는 인간들이 가지고 태어나는 원죄도 없었고, 자신이 죄를 범한 본죄도 없습니다. 그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은 유전적인 인간의 부패가 그에게 오염되지 못하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신성은 계속적인 죄의 오염에서 그를 지키시면서 부패를 방지해 주었고, 죄를 범치 않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그에게서 죄의식이나 사죄의 바램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의 제자들도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었다.”(벧전 2:22)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완전한 사람이시지만 원죄도 본죄도 없는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왜 그에게 신성과 인성이 필요한가?
먼저 인성의 필요 즉 왜 그는 사람이어야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우리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 육신을 입은 사람들이 육신 때문에 당하는 시험을 똑 같이 경험하시고 그런 시험 중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가 마귀에게 시험을 받고 그가 그 시험을 이기신 것은 그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의 승리였습니다.
둘째는 우리들 육신을 입고 죄를 범한 인간들이 스스로 죄의 대가를 받고 형벌을 받아야 할 것을 대신 당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우리 육신과 같은 육신을 입지 않고는 육신을 입은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을 수 없습니다. 그의 죽으심도 우리가 죽어야 할 것을 우리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그는 우리 대신 형벌을 받고, 우리 대신 죽으시기 위해 우리와 똑 같은 육신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 다음, 신성의 필요 곧 왜 하나님이어야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4) 이 말씀은 약간 이해하기가 어려우나 자세히 들으시기 바랍니다.
첫째,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 살기를 바라지만 완전히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루시는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룰 수 없는 율법의 완전한 순종을 이루시기 위하여 신성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그의 신성은 순종 불가능한 율법의 요구를 완성해 주시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된 일입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이 말씀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그의 인성 때문이고 그의 부활은 그의 신성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에게 십자가는 있으나 부활과 승천이 없었다면 우리의 구속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우리의 죄로 인한 죽음이 있고, 우리의 의를 위한 부활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된 것입니다. 믿습니까?
맺는 말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신성과 인성 곧 하나님과 사람의 성품이 모두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이 두 가지 상반된 성품이 있다는 사실을 확고하게 믿는 것이 역사적 기독교의 정통 신앙입니다. 이것을 확고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두 성품 곧 신성과 인성은 예수님 안에서 인성이 약해지거나, 신성이 제약을 받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두 성품이 합하여 하나의 다른 성품을 만들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고, 완전한 하나님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 있는 연합의 신비입니다. 이것도 확실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인성과 신성을 가짐으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만일 그분이 두 가지 성품을 공유하지 못하였다면 그는 중보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만이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입니다. 지금 많은 이단들은 자신이 하나님이고, 자신이 예수이고, 자신이 재림 주라고 합니다. 그러나 현혹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성품과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중보자입니다. 이런 신앙을 굳게 하여 흔들림이 없는 확고부동한 신앙의 길로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교자 / 김대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