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대해 알고 싶다
일반 성도들을 위한 조직신학 성경에 대해 알고 싶다

1. 하나님은 자신을 어떻게 우리에게 들어내시는가?
▸ 신학이 있는 답변 :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홀로 존재하셨던 분이셨다. 하나님은 홀로 존재하셨을 때도 외롭거나, 불만족스럽거나, 혹은 무언가가 필요한 분이 아니셨다. 하나님은 홀로 계셨던 그 자체로 무한하게 만족스러운 분이셨고 기쁨과 사랑으로 충만한 분이셨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토록 홀로 계시는 선택을 하시지 않고 세상과 인간을 창조할 계획을 세우셨다. 자기 자신을 세상과 인간에게 드러내시려 선택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는 개념을 계시(啓示, revelation)라고 한다. 하나님이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 존재인지를 계시를 통해 세상과 인간에게 드러내 보이신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두 가지 방식으로 드러내셨다.
첫째는 자연(自然, nature) 만물을 통해 드러내셨으며, 둘째는 성경(聖經, the Holy Bible)을 통해 드러내셨다.
웅장한 자연만물(自然萬物)을 바라보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 장엄함과 위대함, 광활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자연을 통해 그런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속성(屬性)을 자신이 창조한 자연 만물 곳곳에 흩뿌려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자연만물을 통한 그 계시는 남녀노소,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普遍的)이고 일반적(一般的)인 계시이다.
하지만 구원의 계시가 자연을 통해 뚜렷하게 발견되지는 않는다는 차원에서 제한적이다. 자연만물을 통한 하나님의 드러내심을 일반계시(一般啓示, general revelation)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하나님의 드러나심이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보다 더 선명(鮮明)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것이 바로 계시의 또 다른 방식인 특별계시(特別啓示, special revelation)로서의 성경(聖經)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자신의 이름, 자신의 성격과 성품, 자신의 사역, 자신의 구원계획, 실행, 완성의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셨다. 자연만물을 통해서는 하나님에 대해 희미하게 발견되던 것들이 성경을 통해서는 더욱 선명하고 정확하게 발견되게끔 우리에게 성경이라는 은혜의 선물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을 알아감에 있어 가장 정확하고 건전한 통로(通路)이다.
▸ 깨달음이 있는 성구 : 내가 네게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 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너를 위해 기록하여 네가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잠22:19-21)
▸ 적용이 있는 묵상 : 하나님을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성경에 집중해야 한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알고 누리는 것이 신자로서 가장 복된 것이다. 성경을 통해, 성경을 쫓아, 성경에 의존하여 하나님을 발견하고 묵상하는 태도를 ‘계시의존사색’(啓示依存思索)이라고 한다. 신자들이 가져야 할 평생의 복된 의무(義務)와 권리(權利)는 바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생각(思索)하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發見)하는 것이다. 성경에 계시 된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신자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복되고 즐거운 경험이다.
2. 성경은 인간들이 썼는데 왜 하나님의 말씀인가?
▸ 신학이 있는 답변 : 성경은 인간이 썼다. 성경을 쓴 인간을 ‘성경 저자’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은 마태라는 사람이 썼고, 누가복음은 누가라는 사람이 썼다. 여기서 당연한 궁금증이 하나 피어오른다. 마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마태복음을 썼다면 마태복음을 당연히 ‘마태의 말씀’이라고 해야지 왜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이라고 하는가의 문제이다. 이는 당연한 궁금증이다.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은 성경의 영감(靈感, inspiration)으로 푸는 것이 가장 신학적으로 건전하고 적실(適實)하다. ‘영감’이라는 표현은 성경의 저작 방식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표현 중 하나다. 영감은 문자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감화(感化) 감동(感動)을 뜻한다. 즉 성령 하나님께서 성경 저자들을 감화 감동하셔서 인간 저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기록되도록 성경 기록 기간 내내 성경 저자들을 보존하고 인도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간들이 썼으나 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이 같은 성경 영감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첫째, 기계적(機械的) 영감설이다. 기계적 영감설은 받아쓰기(dictation)식으로 이해하면 쉽다. 인간을 로봇(robot)과 같이 기계적으로 치부하여 하나님께서 불러 주시는 그대로 받아 적었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부분(部分) 영감설이다. 부분 영감설은 성경 전체가 영감 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핵심 메시지들만 부분적으로 영감 되었다고 이해한다.
셋째, 앞서 살펴본 기계적 영감설과 부분 영감설의 잘못된 부분을 교정(矯正)하는 유기적(有機的) 영감설(organic inspiration)이다. 유기적 영감설은 기계적 영감설과는 다르게 인간을 기계적 로봇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들의 자유로운 기록 활동을 방해함 없이 저자들의 성격이나 교육 수준, 살아온 문화적 종교적 배경들을 제거하지 않은 채 성령 하나님께서 인간 저자들의 사상, 언어, 문체를 보존하고 인도하셨다고 본다. 또 부분적으로만 영감된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tota Scriptura)가 성령 하나님과 인간 저자 사이의 유기성(有機性)에 근거해 영감 되었다고 본다. 성경은 인간들이 썼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의 말씀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건전하고도 적실한 대답은 유기적 영감설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가장 바르다고 평가할 수 있다.
▸ 깨달음이 있는 성구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0,21)
▸ 적용이 있는 묵상 : 성경은 영감 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신적 권위’(神的權威, Divine Authority)를 가지고 있다. 신적 권위는 본성적으로 언제나 최우선 권위를 가진다. 그러므로 우리 삶을 인도하고 지탱하는 가장 큰 권위 역시 성경이다. 우리가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 반드시 멈춰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 성경은 오류가 없는 책인가?
▸ 신학이 있는 답변 : 성경의 권위는 현대 사회에서 여러 면으로 공격받고 있다. 사람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으려고 할 뿐만 아니라 성경이 실제로 많은 오류(誤謬)를 담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과연 성경은 정말 오류가 없는 책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크게 두 가지 방향성을 담지(擔持)한 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성경의 진실성(眞實性, veracity)과 관련된 것이고, 둘째는 성경의 무오성(無誤性, inerrancy)과 관련된 것이다.
첫째, 성경은 진실(眞實)하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성경은 성령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책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거짓이 없으신’(딛 1:2) 분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거짓이 없는 분이 인간 저자들을 감화 감동해 쓴 성경은 그 자체로 거짓이 없는 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성경은 성경 자체의 진실성에 대해 다양한 표현으로 증거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純潔)’(시 12:6)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純全)’(잠 30:5)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순결하고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오류’와 ‘거짓’이라는 표현과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다.
둘째, 성경은 무오(無誤)하다. 즉 오류(誤謬)가 없다. 성경 자체가 이를 다음과 같이 증거 하고 있다.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시 119:96) 시편 기자는 주의 계명인 성경이 완전한 것 중에도 가장 완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21세기를 주름잡는 최첨단의 과학적 증명 방법들을 활용하여 성경 속에서 과학적 오류를 찾아낸다 해도 최신식 문화인류학의 발흥으로 성경 속 역사적 사실의 오류가 발견된다 해도 그런 발견 및 증명들이 성경 무오성의 뿌리 자체를 흔들리게 만들 수 없다. 왜냐면 과학의 발달로 인해 이전의 그런 과학적 증명들은 쉽게 그 가설들이 무너질 수 있으며 기존의 역사 인류학적 방식들 역시 시대가 바뀜에 따라 그 연구 방법론의 정당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경 저자들을 영감 하신 하나님의 완전성과 진실성을 믿고 성경의 순결성과 무오성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이 신자들이 가져야 할 더 바른 자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을 재림(再臨)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감추어졌던 진리들이 밝히 드러날 것이고 그때 성경 전체의 진리성(眞理性)과 진실성(眞實性)이 세계만방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들 모두는 이러한 인식론적(認識論的) 지평(地平)이 폭발적으로 넓어지는 날을 고대해야 한다.
▸ 깨달음이 있는 성구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9)
▸ 적용이 있는 묵상 : 사실 성경의 무오성 교리는 논리적 추론, 과학적 증명, 역사적 증명의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믿는 ‘신앙고백’ 위에 서 있다.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영감 하셔서 쓰인 성경 안에 어떠한 오류도 없다고 믿는 것은 하나님의 진실성을 믿는 신자들이 신앙으로 고백하는 참으로 복 되고 거룩한 고백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늘 이런 고백을 담대히 할 수 있는 믿음을 선물로 받기 위해 주께 은혜를 갈구(渴求)해야 한다.
4. 구약은 무엇이고 신약은 무엇인가?
▸ 신학이 있는 답변 : 성경은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約束, Promise)이다. 약속은 언약(言約, covenant)이란 표현과 상호 교차적(交叉的)으로 쓸 수 있다. 즉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이 기록되어있는 책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무슨 약속을 하신 것일까? 그 약속은 ‘메시아’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救援者, 메시아)로서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복된 소리 즉 복음(福音, the Gospel)에 대한 약속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라는 약속은 이미 이 세상이 창조된 이후로 이스라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지속적(持續的)으로 전해졌다. 많은 선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의 신분으로 장차 오실 것이라고 증거 했으며 그 증거들은 성경 도처(到處)에 가득 차 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들을 구약(舊約, Old Testament)이라고 한다. 문자적으로는 ‘옛 약속’이라는 뜻이다. 구약은 총 39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에스라, 느혜미야, 에스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 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이다. 이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으며 크게 율법서, 역사서, 시가서, 선지서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신약(新約, the New Testament)은 구약에서부터 줄기차게 예언(豫言)이 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 기록된 언약 말씀이다. 신약은 문자적 의미 그대로 ‘새 약속’이라는 뜻이다.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으며 총 27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일이삼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이다. 신약은 크게 복음서, 역사서, 서신서, 예언서로 구성되어 있다.
구약과 신약은 대립 되거나 상충(相衝)되지 않는다. 구약과 신약의 관계는 반드시 유기성(有機性), 통합성(統合性), 통일성(統一性)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유기성, 통합성, 통일성의 정점(頂點)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한다. 구약과 신약은 서로 언어가 다르고, 문화 배경이 다르며, 내용을 담는 형식이 다르고, 강조점이 다르다. 그러나 궁극적인 지향점과 그 지향점을 구축하는 핵심 내용은 동일(同一)하다. 그 동일한 핵심 내용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구약의 렌즈를 통해 신약을 보든지 신약의 렌즈를 통해 구약을 보든지 그 정점에 계시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발견되어야 할 당위성(當爲性)이 바로 여기에 있다.
▸ 깨달음이 있는 성구 :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1,2)
▸ 적용이 있는 묵상 : 우리는 구약만을 강조하거나 반대로 신약만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구약은 신약으로 증거 되어야 하며, 신약은 구약으로 증거 되어야 한다. 이를 성경의 자증성(自證性, self-attesting nature)이라고 한다. 신구약 서로 간의 증거 본문을 충실하게 제시한 관주성경은 이런 측면에서 신자들의 통일성 있는 성경 읽기에 매우 유용하다.
5. 성경은 왜 필요한가?
▸ 신학이 있는 답변 : 한때 “무인도에 갇혔을 때 꼭 필요한 아이템 세 가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대부분은 칼, 라이터, 구급 약품 등을 선택했다. 질문에는 이 외에도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는데 왜 사람들은 칼, 라이터, 구급 약품을 선택했을까? 그것은 이 아이템들이 생명을 보존하는데 가장 필요한 필수적 물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한 가지 진리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 목숨을 보존하는 데 관심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성경이 필요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우리가 영생(永生)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을 명료하게 가르쳐주고 있는 하나님 말씀이다. 성경은 영생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복음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앞서 살펴보았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신구약 성경 전체의 핵심(核心) 내용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즉 복음의 말씀이 왜 기록되었는지 알 수 없고 성경 말씀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 아버지께 갈 자가 없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영생의 삶을 약속의 유업으로 받기 위해서는 성경에 계시 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반드시 필요하다. 영생의 삶을 소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신자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서도 성경은 필수(必須)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을 인용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하였느니라.”(마 4:4)
신자들은 육적인 떡으로만 살 수 없다. 반드시 영적 떡인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건전한 방식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우리는 영적인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고 풍성하고 기름진 것으로 영적인 체력을 튼튼히 기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성경 말씀은 취사선택(取捨選擇)이 아니라 필요충분(必要充分) 요건(要件)이다.
▸ 깨달음이 있는 성구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시 1:1,2)
▸ 적용이 있는 묵상 : 현대 사회는 구원(救援)의 의미를 다양하게 왜곡(歪曲)한다. 나의 감정(感情)이 기쁨을 느끼거나 평안(平安)을 느끼는 것이 곧 구원이라는 식으로 주관적인 해석을 하거나, 빈부격차가 모두 다 철폐되는 그 순간이 구원이라는 식으로 사회 복음적으로 구원을 재정립하거나 아니면 인간의 정념(情念)이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식의 동양철학적인 구원을 재조명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이다.(요 14:6) 이러한 복된 소식은 성경에 계시 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 그 믿음대로 살아갈 때 비로소 향유(享有)할 수 있다.
6. 성경만으로 충분한가?
▸ 신학이 있는 답변 :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성경이 모든 시시콜콜한 것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지 않으므로 성경은 현대적 이슈(issue)들에 대해 충분한 대답을 줄 수 없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구원의 가르침을 꼭 성경이 아니더라도 그 밖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는 생각 역시 현대 사회에 팽배(澎湃)해 있다. 이는 성경의 ‘충분성(充分性)’에 대한 공격으로 성경 외에 또 다른 무엇인가가 더 필요하다는 논리적 흐름으로 귀결된다. 예를 들면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 즉 환경호르몬, 핵전쟁, 직장 이직, 인구절벽, 인공지능, 트랜스젠더, 신재생 에너지 등에 대해 성경은 아무런 대답을 주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성경의 충분성에 대한 논의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다.
첫째,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내용은 성경만으로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는 측면이다. 성경은 구원의 작정, 방식, 방법, 길, 핵심 내용 등을 정확하고 충분하게 계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원을 위해서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보거나 성경 외에 또 다른 무언가를 덧붙일 필요가 전혀 없다. 성경은 구원의 방식에 대해 명료하고 충분하게 다음과 같이 알려주고 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이것 외에 또 다른 방법은 필요하지 않다. 예수를 믿으라는 성경의 가르침만으로도 구원은 충분하다.
둘째, 구원 외의 내용에 대해서도 성경은 충분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물론 성경은 다채로운 현시대의 논의들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을 주지는 않는다. 왜냐면 성경은 과거에 쓰인 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경은 우리에게 현대 논의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성경원리(Biblical Principle)를 폭넓게 제시해 준다. 예를 들면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중략)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23,31)라는 말씀은 현대의 각종 논의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판단해야 할지 성경 원리를 제시해 주고 있다. 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 충분할 정도로 바른 평가 기준과 원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성경은 충분하다.
▸ 깨달음이 있는 성구 :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 적용이 있는 묵상 : 신자들조차도 기록된 성경 말씀 외에 다른 것들을 갈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꿈, 환상, 예언 기도, 방언 등과 같은 은사(恩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은사들도 언제나 성경의 조명(照明) 아래 판단 받아야 한다. 성경 외에 또 다른 그 무엇도 성경 계시에 준하는 권위로 세워질 수 없다. 또 기록 된 계시인 성경 말씀에 덧붙여 무엇인가를 첨가하는 것도 옳지 않다. 신자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 말씀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경에 계시 된 진리들을 모두 다 온전히 깨닫는 것만 해도 평생에 다 할 수 없는 작업이다.
7.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 신학이 있는 답변 : 성경읽기 세미나는 늘 인기가 있다. 인기 강사일수록 독특하고 통찰력 있는 성경읽기 방법을 제시하고 많은 사람이 그 방법을 쫓아 성경읽기를 즐겨한다. 독특하고 통찰력 있는 성경 읽기 방법도 일견 중요할 수 있지만 사실 성경을 읽을 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성령 하나님의 조명(照明, illumination)이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다.(요 16:13) ‘진리의 영’이 하시는 일은 그리스도가 하신 일들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일’이다.(요 14:26)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곧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 그것이 곧 성경 말씀이다. 왜냐하면 태초에 말씀(Logos)이 계셨는데 그 말씀이 성자 하나님이셨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내려오셨기 때문이다.(요 1:1,14)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내용을 제대로 깨닫기 위해서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의 밝게 비추어 주심 즉 ‘조명’이 필요하다.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의 ‘작정하심’(계획하심)과 성자 하나님의 ‘실행하심’을 ‘완성’하시고 성자 하나님의 완성을 우리 삶 속에서 효과 있고 결실(結實)하도록 ‘적용’(適用, application)하는 사역을 하신다. 앞서 다룬 것처럼 인간인 성경 저자가 쓴 책이 하나님의 말씀인 이유는 성령 하나님의 영감 때문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영감 하셔서 쓰신 책이 성경이기 때문에 성경 내용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 하나님의 조명하심과 우리 개인의 삶 속에 적용하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성경을 읽고 조용히 묵상(默想)하는 시간을 갖는 것을 Q.T.(Quiet Time)라고 하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성령의 조명하심 없이 읽은 것을 자기 마음대로 생각한다고 해서 올바른 성경 묵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야말로 성령 하나님의 적용 사역이 간절히 필요한 시간이다. 성령 하나님의 ‘조명사역’과 ‘적용사역’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우리를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제어(制御)하는 가늠자의 역할을 건실히 감당할 수 있게 한다.
▸ 깨달음이 있는 성구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 적용이 있는 묵상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성경을 자기 멋대로 읽고 해석하는 사람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에 열광하는 대중들도 문제다. 새로운 성경해석이 옳은 것이 아니라 바른 성경해석이 옳은 것이다. 바른 성경해석은 인간 스스로 할 수 없다. 죄의 영향으로 인해 모든 사람의 눈과 귀가 왜곡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해석할 때 성령 하나님의 ‘조명하심’과 ‘적용하심’은 필수적이다. 죄 때문에 가려진 인간의 눈을 밝히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기 때문이다.(*) 글쓴 이 / 박재은 박사(총신대학교(B.A.), 총신신대원 M.Div, 미국 Calvm Theological Seminary Th.M. 및 Ph.D.(조직신학 박사) 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출처 / ‘성도를 위한 조직신학, 질문하는 성도 대답하는 신학자,(서울, 디다스코, 2018년 10월 18일 발행) pp.1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