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해석의 역사
초대교회부터 종교개혁까지 성경해석의 역사

제1장 총론
1. 해석학 개념 정의
해석학(解釋學, hermeneutic)은 ‘번역하다’의 의미의 그리스어 ‘Ερμηνεία’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후에 어려운 시(詩)를 설명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다가 해석의 법칙을 연구하여 체계화하는 과학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해석학은 과학이다. 왜냐하면 해석학은 해석의 법칙을 체계화(體系化) 내지 조직화(組織化)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9:36의 ‘번역하다’(διερμηνευομένη, 설명하다)라는 그리스어 동사에서 접두사를 빼고 선두의 ‘에’ 숨표를 붙이니 ‘해석학’ 즉 ‘해석의 과학’(Science of Interpretation)이란 의미를 지닌 단어가 되었다. ‘해석자’로 불리는 ‘Hermeneu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神)의 사자(使者, messenger)요 웅변(雄辯)의 수호자(守護者)라는 ‘Hermes’에서 유래하였으며 신성(神聖)한 진리와 고전(古典)에 대한 해석(解釋)을 의미한다.
이런 어원적인 유래를 감안해 볼 때 ‘성경해석학’(Biblical hermeneutics, Biblical Interpretation)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학문적으로 해석(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어떤 기술적인 원리와 법칙을 이용해서 성경의 진리를 해석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해석학은 성경을 대상으로 성령(聖靈)의 도우심(照明)을 따라 본문의 뜻을 쉽게 풀어 이해시킴과 동시에 본문 이해를 바탕으로 삶에 적용케 하는 데 따른 여러 가지 원리와 실제적 방법들에 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종합한 학문이다.
성경해석학은 학문적으로는 주경신학(註經神學, Exegetical Theology)의 한 기초 분야지만 모든 신학이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에 사실은 모든 신학을 하기 위한 기본 준비로 필요한 것이다. 성경해석(Bible interpretation)이란 성경 해석학에서 다루는 내용으로서 용어의 정의로는 ‘성경 본문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이해하는 내용에 있어 성경 본문의 뜻을 정확하게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자가 읽고 이해한 본문을 자신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適用)시키기 위한 원리와 방법들까지 총괄하는 것이다.
2. 성경해석의 필요성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경의 비밀’이라는 교리에 의해 성경 해석권(解釋權)은 성직자가 독점하고 최종 성경해석 권은 교황에게 있는 것으로 교육하지만 개혁교회는 ‘성경의 명료성’이란 교리에 의해 신자면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고 해석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성경이 명백하다면 왜 성경을 해석할 필요가 있는가? 성경은 명백하지만 인간은 죄성(罪性) 때문에 명백한 성경 내용을 잘 알 수도 없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령의 조명(照明) 하에 성경을 해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명백한 성경의 풍부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피상적(皮相的)으로 보면 오해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니고데모가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오해했고 제자들이 ‘나사로가 잔다.’는 말씀을 오해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피상적으로 보지 말고 깊이 연구하여 해석할 필요가 있다.(시 119:18)
해석(解釋)이 어떤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성경해석’은 당연히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또 성경을 읽는 모든 사람은 성경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곧 성경을 읽는 자는 동시에 성경 해석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읽기 전에 올바른 성경해석 방법부터 아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법대로 성경을 해석하면서 그냥 무턱대고 성경을 읽기만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성경 읽기는 올바르고 건전한 성경해석 방법을 통하지 않고서 자신의 잣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므로 사실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성경의 본문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이 왜곡(歪曲)되기도 하며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보다는 인간의 생각이 더 많이 지배(支配)하게 되는 상황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단(異端)들을 봐도 한결같이 성경을 인용(引用)하는 것을 보면 그것은 똑같은 성경을 두고서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잘못된 신앙도 잘못된 성경해석이나 잘못된 성경해석에 입각한 잘못된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올바른 성경해석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성경해석이 필요한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언어적인 차이(Language gap)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언어에는 문화, 역사, 사상, 관습 등으로 인해 성경 기록 당시와 독자들 간에는 서로 다른 언어로 인하여 엄연한 한계가 있는 것이다.
둘째, 시간과 공간적 차이(Chronological and Regional gap)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과거의 문서인 성경과 우리 사이에는 과거와 현재라고 하는 시간적 차이가 있으며 성경의 배경이 된 팔레스타인과 근동지역 그리고 그리스 반도와 로마 등에 대해 생소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셋째, 의사소통의 차이(Communication gap)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성경 기록자와 독자 간에 지식, 경험, 문화, 상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본문의 의도를 바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해석이 절대적인 것이다.
넷째, 표현의 차이(Expressional gap)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성경은 많은 문학의 장르를 포함하고 있다. 내용과 표현법의 형태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해석학은 절대 필요한 것이다.
3. 성경해석의 역할과 목적
성경해석의 역할은 성경을 읽는 사람으로 성경 본래(本來)의 의미를 잘 깨닫도록 이끌어주는 안내자(案內者)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모르는 길을 처음 갈 때 도움을 받지 못하면 실패하거나 고생하면서 시간과 힘을 많이 낭비할 것이다. 그러나 길을 잘 아는 사람에게 미리 자세히 물어보고 또 지도(地圖)를 따라간다면 훨씬 쉽게 그리고 정확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처럼 성경해석은 이러한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해석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간적, 공간적 또 언어적, 문화적, 종교적 격차를 좁힐 수 있도록 안내함으로써 본문이 의미하는 바를 최대한 정확하게 드러내어 독자들로 하여금 말씀이 의미하는 바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 깨달은 것을 자신의 삶에 효과적으로 적용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인생의 삶 가운데 살아 역사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성경을 해석하는 것과 관련된 두 가지 전문적인 용어가 있다. 주해(註解, exegesis, 본문을 알기 쉽게 풀이함)란 말은 ‘본문(本文)으로부터 의미(意味)를 끄집어내는 것’을 의미하고 외삽(外揷, eisegesis)이라는 말은 ‘본문(本文) 안으로 의미(意味)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성경 주해(exegesis)를 해야지 자기 생각을 본문에 주입(注入)시키는 외삽(eisegesis)을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성경 본문으로부터 그 의미를 도출(導出)해 내야 한다.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성경 해석학은 외삽(外揷)을 제거하고 본문의 본뜻을 도출하는 것이 목표이다. 성경의 한 본문에는 오직 한 가지 의미만 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어떤 본문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의미로 깨닫도록 성경을 기록하시지 않았다. 성령께서는 질서(秩序)의 하나님이시며 진리의 하나님이시기에 스스로 모순(矛盾)을 일으키실 수 없다.
만일 성령께서 본문의 의미를 마음대로 변화시켜 버리신다면 우리는 그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진리의 표준이 없게 되므로 세상에 있는 많은 영(靈)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는지를 시험해 보라고 하신 말씀을 실천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한 본문을 가지고 많은 적용(適用)을 할 수는 있지만 분명히 해석은 한 본문에 하나만 있다.
성경해석의 중요한 규칙 가운데 하나는 성경 한 부분의 의미를 저자가 본래의 1차 독자에게 의도했던 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연구하려는 책 전체를 시간을 들여 여러 번 통독할 필요가 있다. 또 성경사전을 통해 배경 지식을 알 필요도 있다. 우리가 원래(原來) 저자의 상황과 의도를 잘 이해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그것을 기록하게 하셨는지를 잘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사람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배경 속에서 주신 계시를 보다 바르고 풍성하게 이해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가고 순종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함이다. 사실 신학(神學)을 공부하는 이유도 교회가 하나님을 바로 알아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고 경배하게 하는 데 있는 것이다.
4. 성경해석의 특수성
(1) 이해와 적용의 양면성(兩面性)
성경해석은 성경 본문의 뜻을 쉽게 풀어서 이해(理解)시키는 것이다. 학문적으로 표현하면 ‘성경해석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해석에 있어서 단순하게 뜻을 아는 것으로서 해석이 끝났다고 말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그것은 성경이 세상의 다른 책들과는 구별(區別)되는 신앙(信仰)을 위한 책이기 때문이다.
성경 역시 인간의 글자로 내용이 표현된 점은 다른 책과 다를 것이 없으나 그 안에 포함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지식이 아닌 계시(啓示)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은 이해 과정으로 그치지 않게 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適用)하도록 촉구(促求)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르게 이해했다면 나의 삶에 주님이 주시는 어떤 교훈(敎訓)이 있는지를 깨달아야만 하는 것이다.
(2) 성령의 인도(引導)
또 성경해석은 통상적인 해석학의 인간 지식으로만 해석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경에는 인간의 지식의 한계를 초월(超越) 한 많은 내용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인간(물질과 현상계 속에서 제한적으로 삶)은 하나님(보이지 않는 세계에 초월적으로 계심)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려면 해석에 관한 이론과 방법을 알고 동시에 성경의 원(原) 저자이신 성령의 도우심이 필수적이다. 이를 성령의 조명(照明, illumination)이라 하는데 성경 해석학에서 본다면 성령께서 주시는 독해력(讀解力, comprehension)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성경을 읽을 수는 있으나 해석을 할 수 없는 까닭은 그들이 일반적인 독해의 기술은 가질 수 있으나 성령께서 주시는 독해력은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성도가 아닌 자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므로 읽어도 그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성경의 초자연적 기적(奇蹟)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로 이성(理性)과 합리주의 정신에 의존하여 성경을 읽고 이해한 것은 진정한 성경해석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직통(直通) 계시 같은 신비적 현상에 의존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성령의 인도란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지혜와 인격을 건전하게 사용하여 말씀을 이해하되 그런 방법에 과오(過誤)가 없도록 기도하며 지혜가 부족하지 않도록 위로부터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경해석원리와 성령의 인도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대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것과 여러 가지 연구된 건전한 이론과 방법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 동시에 요구되는 것이다.
5. 성경해석에 관한 용어들
성경 해석학에서는 해석학(解釋學), 해석(解釋), 강해(講解), 주해(註解), 주경(註經), 주석(註釋), 석의(釋義) 등의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 용어들은 얼핏 보면 모두 비슷한 말 같아 많은 경우에 혼용(混用)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성경해석을 공부하기 전에 먼저 그 관련된 용어들의 개념을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성경해석 용어들의 상관관계는 주석(註釋)에서부터 석의(釋義) —> 주해(註解) —> 강해(講解) —> 해석(解釋) —> 해석학(解釋學)의 순서로 그 의미가 확대(擴大)되어 간다.
(1) 주석, 석의
주해(註解)는 다시 세분하면 주석(註釋)과 석의(釋義)로 나눠진다. 주석과 석의라는 용어는 서로 많이 혼용되지만 실제로 의미상에 차이를 구별할 수 있다. 주석이 일반적으로 석의라는 말보다 좁은 의미로 쓰인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주석(註釋)이란 영어로는 ‘Explanation’이라고 하며 무엇에 대하여 설명한다는 뜻이다. 곧 주석은 어느 일정 본문 내에서 단락 내지는 어느 일부 구절들을 택하여 뜻풀이하는 과정이다. 즉 본문 전체가 아닌 한 구절씩을 어귀의 뜻풀이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 전체를 해석하는 석의 보다 좁은 의미가 주해이다.
석의(釋義)는 ‘Commentary’인데 주석을 통해 구절들의 뜻풀이를 모아서 본문 전체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석의는 주해와 비슷한 개념으로서 두 가지 용어는 흔히 동의어로 사용이 된다.
따라서 강해(講解)가 말씀을 적용하는 측면이라면 석의나 주해는 성경 본문 최초의 의미를 알아내려는 작업으로 이해하면 된다. 주해와 주석과 석의 관계를 요약하면 주해는 강해에 대조되는 큰 개념으로 볼 수 있고 주해의 세부내용은 다시 어귀 해석의 주석과 본문 해석의 석의라는 개념으로 구분한다고 보면 된다.
(2) 주해
성경 주해(註解)는 주경(註經)이라고도 하며 영어로 ‘Exegesis’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길을 안내하다, 설명하다, 나타내다’의 뜻을 가진 헬라어 ‘엑세게오마이’(ἐξηγέομαι, 완전히 밖으로 나오다)에서 비롯되었다. 이 말이 ‘From’(~으로부터) 뜻의 전치사와 ‘인도하다’라는 뜻의 동사가 합성하여 ‘∼로부터 인도함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만일 성경 해석자가 해석에 자기 사상(思想)을 개입시키면 주해(註解)가 아닌 외삽(外揷)이 된다.
외삽(外揷)은 ‘Eisegesis’라고 하는데 사람 생각을 가지고 성경 본문 속으로(Into)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성경주해는 말뜻에서 보듯이 ‘Into’가 아닌 ‘From’의 정신으로 해야 한다. 즉 주해의 원리는 경험, 가치관, 철학, 신조, 교리 등 자신의 잣대를 가지고 성경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 오직 성경에서 비춰져 나오는 빛을 겸허하게 받겠다는 정신으로 성경을 대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3) 강해
강해(講解)란 영어로 ‘Exposition’인데 뜻풀이에 그치지 않고 실제의 삶에 적용하도록 설득시키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즉 강해 설교(Expository Message)를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주해가 본문의 최초 의미를 드러내는 데 주력하고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역사적 이해(Historical Particularity)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강해는 본문의 최초 의미를 파악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그 본문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를 찾아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곧 강해는 본문과 나와의 관련성(Contemporary Relevance)을 발견하고 현재 나에게 어떤 교훈이 있는지를 찾아내어 적용하는 실제적 이해를 다루는 것이다.
주해와 강해의 관계를 본다면 결국 주해도 해석이고 강해도 해석이라는 뜻이나 주해는 단순히 본문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자 하는 협의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고 강해는 주해를 바탕으로 실제로 적용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광의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주해가 성경 말씀을 가능하면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입장으로 해석하는 것이라면 강해는 역사를 초월하여 모든 성도의 현재의 삶의 문제와 관련지어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해를 위해서는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연구가 수반되지 않을 수 없으며 강해는 그러한 주해를 바탕으로 삶의 증거들과 연관(聯關)을 지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해석은 이론적(理論的)이라고 할 수 있는 주해와 실제적(實際的)이라고 할 수 있는 강해를 모두 포함하여야 완벽한 해석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평형을 잃게 되며 건전한 해석을 기대하기 힘들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주해 쪽으로 기울게 되면 본문의 뜻을 아는 데 그치고 실천(實踐)이 약한 ‘지적(知的) 그리스도인만’ 양산할 것이며, 강해 쪽으로 기울게 되면 본문의 의도를 알지 못한 채 자신의 감정에 따라 신앙의 기복이 심한 ‘감정적(感情的) 그리스도인’이 많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건전한 해석은 주해와 강해를 조화시켜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다.
(4) 해석학, 해석
성경 해석학(Hermeneutics, Biblical Interpretation)은 성경을 해석하는 학문으로서 가장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앞에서 말했듯이 해석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해석(Interpretation)은 광의적으로 해석에 관한 모든 것들을 말하므로 다시 주해와 강해로 구분을 한다.
주해(註解)가 본문의 뜻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면 강해(講解)는 본문을 적용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들을 나누는 것은 앞서 성경해석의 목적이 구분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해석의 개념은 학문적으로 정의할 때와 일반적인 의미에서 다르게 사용된다. 학문적인 정의로는 위에서 말한 대로 해석이란 주해와 강해를 포함한 포괄적인 개념이 지만 일반적인 해석의 개념은 적용(Application)에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단순히 뜻을 아는 것을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즉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주해를 가리키는 협의적 개념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흔하다.
제2장 성경해석 역사
역사(歷史)의 기술(記述)과 이해는 단순히 과거 역사 자체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책임 있는 행동 양식과 규범과 기준을 제시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유대인들은 ‘유대인 대학살’과 같은 불행한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용서는 하지만 망각(忘却)은 하지 말라!”는 위대한 말을 남겼다.
변혁(變革)의 시기마다 교회사(敎會史)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던 성경해석의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와 조망(眺望)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신앙과 삶의 규범으로 삼는 교회가 이 세상 가운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교훈해 준다. 성경해석의 역사를 조망함으로써 ‘하나님 앞’과 ‘역사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책임 있는 신자(교회)로서 우리의 삶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으며 급변하는 시대 속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그것을 선포(宣布)하며 실행(實行)해야 할 교회의 사역자들에게 의미 있는 규범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을 우리 스스로 힘만으로 읽고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망상(妄想)이다. 성경에 대한 모든 해석은 우리 이전에 이루어진 것을 기초로 하고 있다. 19세기 미국에서 한 작은 집단의 사람들이 교회의 역사적 가르침을 전면 부정하고 그들끼리 성경을 처음으로 공부하기로 작정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기록한 ‘성경연구’라는 잡지를 발행했다. 이렇게 하여 ‘여호와 증인’이라는 종파가 생긴 것이다. 이같이 역사적 교회의 가르침으로부터 분리된 성경연구나 해석은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었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올바른 성경해석을 위한 과거 교회의 고투(苦鬪)를 얕잡아 본다면 그것은 대단한 교만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1. 구약시대 성경해석
(1) 랍비들의 성경해석
① 힐렐의 성경해석
마카비시대(Maccabean age, BC166-143)로부터 헤롯 시대 말기(BC168- AD10)에 힐렐(Hillel, BC110-AD10)파와 샴마이(Shammai, 50BCE–30CE)파라는 두 랍비 집단 사이의 성경해석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각 시대 랍비들은 두 집단 가운데 어느 한쪽을 추종했다. 힐렐파는 주변 상황의 유동적 요소들을 강조했고 샴마이파는 규정들을 엄격하게 해석했다.
- 문자적 해석방법(literal interpretation)
문자적(文字的) 해석방법은 다른 해석방법의 기초 역할을 했다. 샴마이파는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든지 길에 행할 때든지 누웠을 때든지 일어날 때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7)의 말씀에 대해 ‘누웠을 때든지 일어날 때든지’라고 되어 있으므로 율법을 암송할 때 저녁에는 기댄 자세로 암송하고 아침에는 선 자세로 암송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문자적으로 성경을 해석했다. 그러나 힐렐의 해석법칙은 다음과 같다.
- ‘경중의 법칙’(the rule of light and heavy) :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움직이는 일반 논리의 적용을 뜻한다.(민 12:14, 히 10:28,29)
- ‘동등의 법칙’(the rule of equivalence) : 두 주제가 동등한 표현으로 함께 사용될 경우 두 주제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다. 안식일과 유월절 양 희생을 정한 시간에 들여야 한다는 내용이 있을 경우는 매일 희생이 안식일에 드려야 한다면 유월절 양 희생도 안식일에 드려야 한다는 뜻이다.
- ‘특별에서 일반으로 연장하는 법칙’(extension from the special to the general) : 안식일에 필요한 음식을 위해 일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음식은 다른 축제일 때도 준비할 수 있다는 논리에 근거한 법칙이다. 두 구절의 해석을 제3의 구절을 사용해서 설명하는 법칙이 있다. 일반적인 것에서 특별한 경우로 추론하는 법칙이 있다. 자명한 추론을 적용하는 법칙 즉 문맥에서 명백한 것을 그대로 적용하는 법칙이 있다.
- 미드라쉬 해석방법(Midrashic interpretation)
이는 랍비 힐렐이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기본법칙은 여러 본문에 나오는 사상, 용어, 구절을 비교하는 것이며 일반 원칙을 특별한 경우에 적용시키는 것이며 해석에서 있어서 문맥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미드라쉬란 ‘단순한 문자적 의미보다 더 깊이 성경의 정신까지 뚫고 들어가서 본문을 모든 각도에서 살피고 그리하여 본문에서 명백하지 않은 의미를 추출 해내는 주석’을 말한다.
그러나 미드라쉬 해석방법은 성경 본문에서 출발하여 성경 안에 감추어진 뜻을 설명하는 목적을 갖고 있었지만 건전한 면으로 흐르기보다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 문맥과는 관계없이 본문, 구절, 용어에 뜻을 부여하게 되었으며 같은 용어나 구절이면 그것들이 다른 사상을 갖고 있을지라도 같이 혼용(混用)하게 되었다. 즉 사소한 문법적 문제에 해석적인 의미를 부가(附加)했다.
② 샴마이의 성경해석
샴마이는 초(超) 문자적 해석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신명기 21:18 이하에는 완악한 아들을 돌로 쳐 죽이는 처형법이 기록되어 있다. 샴마이는 거기서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란 구절이 있으니 그 부모는 아들을 잡을 손이 있는 사람들임이 분명하므로 부모 중 한 사람이라도 손에 이상이 있으면 그 아들은 완악한 아들로 정죄 될 수 없다고 했다. 부모 중 하나라도 지체 장애자거나 시각이나 청각 장애자면 그 아들을 완악한 아들로 정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문에 ‘끌어내어’ 라는 말은 부모가 지체 부자유자가 아니라는 뜻이며 ‘말하기를’이란 부모가 말을 할 수 있으며, ‘우리의 이 자식’이란 말은 부모가 시각 장애자가 아니며, ‘우리말을 순종치 아니하고’란 말은 부모가 청각 장애자가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 쿰란공동체 성경해석 : 페세르적 해석방법(Pesher interpretation)
‘페쉐르’(רשׁפ)는 아람어에서 나온 말로써 ‘해결’ 또는 ‘해석’이라는 의미이다. 쿰란파의 성경해석을 흔히 ‘페쉐르’라고 한다. 페쉐르 해석을 한 쿰란파는 자신들이 종말적 완성 이전 ‘메시아적 전통시대’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선택된 공동체라고 생각하고 메시아시대 즉 올 시대의 도래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자신들의 과제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구약의 일부 예언들을 그들의 상황에 적용적으로 해석하되 자기들에게만 적용되는 예언들로 해석하였다. 그 전형적인 표현이 ‘페솨로 알’(pesharo al)인데 이것은 “이는 이것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쿰란파가 페쉐르적 해석을 한 목적은 다음과 같다.
- 의의 교사를 그 적들로부터 변호하고
- 그의 추종자들을 그들의 적들로부터 변호하고
- 추종자들의 신앙과 인내를 강화하며
- 그들에게 배교(背敎)의 위험을 경고하고
- 유대 광야에서 학습과 순종을 통해 야웨의 길을 예비하고
- 그들의 공동체에 미래에 대하여 교육하는 데 있었다.
페쉐르 방법은 사도 바울이 구약을 인용할 때 활용하는 방법이다. 바울은 구약의 내용을 신약에 인용할 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정점으로 이룩된 구속 성취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바울은 신약의 맥락에서 구약을 해석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역사적 예수가 성경에서 예언된 그리스도임을 증거 하기 위해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행 17:3)고 했다. 여기에 ‘이것은 저것이다’의 페쉐르 해석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쿰란 공동체의 해석방법을 그대로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의 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해 그 방법을 활용한 것이다.
(3) 필로의 성경해석 : 풍유적 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 of Alexandria, 20B.C.-50A.D.)에 의해 시작 된 알렉산드리아학파의 성경해석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헬라철학의 개념을 성경해석에 적용하여 성경은 ‘히포노이아’(hyponoia)라고 불리는 보다 깊은 진리 또는 영적 의미를 지닌다고 보았다. 영적인 의미는 단어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에 풍유적 해석법으로 발견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풍유적인 성경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의 선구자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필로(Philo of Alexandria)였다. 예수님과 바울과 동시대에 살았던 필로는 플라톤의 철학 방법을 이용하여 성경 언어의 이면에 숨은 영적인 의미를 찾았고 성경의 문자적인 의미보다는 풍유적 의미가 더 진실하고 참된 의미라고 했다. 필로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헬라문화와 유대문화가 서로 적대(敵對)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헬라 철학자들은 구약성경을 조롱하고 비판했으며 랍비들은 문자숭배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성경을 어떻게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중 구약성경을 풍유적으로 풀면 헬라문화에 젖은 자들이 거부감 없이 성경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필로는 생각했다. 그렇다고 필로의 풍유적 해석이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배제한 것이 아니다. 그는 두 차원의 의미 즉 ‘표면적 의미’는 ‘이면적 의미’라는 실체에 대한 그림자로 ‘표면적 의미’에서 ‘풍유적 의미’로 전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로는 감각 세계가 이데아 세계의 그림자라고 본 플라톤의 사상에 따라 표면적 의미 배후의 이면적 의미의 실체를 추구하고자 했다.
풍유적 방법을 증진 시키는 센터의 역할을 해 온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기독교 교리문답학교의 책임자였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는 박해로 유배되기까지 필로처럼 성경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가르쳤다. 영(靈)과 육(肉)을 가진 인간처럼 성경도 문자적 의미 이면에 숨겨진 혼(영)적 의미뿐만 아니라 육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는 여기서 숨겨진 영적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 그는 가르쳤다.
2. 신약시대 성경해석
(1) 예수님의 성경해석(구약)
⓵ 예수님의 성경해석은 기독교 구약해석의 패러다임이 된다.
예수님의 성경해석은 기독교 구약해석의 패러다임이 되고 기독교의 성경해석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한다. 기독교인들은 구약성경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다루어야 하는지를 그리스도에게 배웠으며 그리스도의 구약해석은 기독교의 구약주석의 패러다임이 되었다.
② 예수님은 독자적인 권위로 성경을 해석하셨다.
- 예수님은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셨다. 일점일획의 의심도 하지 않으셨다. 이 점은 예수님이 당시 서기관들과 성경의 권위에 대해 의견을 같이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17-20에서 율법의 영원한 가치를 강조했고 성경 내용을 바리새인들이 남용하는 것을 책망하셨다.
- 예수님은 계시의 정신에 따라 성경을 해석하셨다.
예수님은 구약역사를 실제의 역사로 인정하고 구약을 사용하셨는데 구약역사를 인용하실 때 그 사건을 통해서 중요한 기독교 진리를 증명하거나 설명하셨다. ‘이혼 논쟁’에서 예수님은 율법 계시의 정신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이혼을 강하게 금지하셨다. 당시 전통으로는 이혼이 흔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해석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 예수님은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성경을 해석한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의 전통으로 성경을 대신할 때 이들의 방법을 책망하셨다.(막 7:6-13, 마 15:1-9)
‘안식일 논쟁’에 있어서도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심으로써 그의 인생에 안식을 주셨다. 병 고침을 통해서 안식을 주신 예수님은 안식일에 대해 자구적인 해석을 했던 바리새인들의 해석에 질책하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성경을 불법적이고 부당하게 사용한다는 이유로 비난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구약을 정확하게 인용하셨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세 있는 것을 생각했다.(마 7:28,29)
- 예수님은 ‘신적 권위’로 해석하셨다.
예수님은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시면서 조상이 말한 것보다 자신의 말씀이 더 권위가 있다고 하셨다. 사도들도 예수님의 해석을 따라서 기독론적으로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회당의 원칙에 의해 해석되던 당시의 유대주의적인 해석 분위기에 일종의 해석학적 원칙(원천)을 제공했다. 메시아로 받아들이든지, 저주받은 죄인으로 받아들이든지 신적 권위로 독자적인 해석을 하셨고 이런 해석은 당시 사람들에게 찬양을 받기도 했지만 거부당하기도 했다. 예수님에 대해서 해석의 원칙을 제공 한다는 입장과 성경을 뒤바꾼다고 생각하는 입장이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예수의 등장은 해석학적 원천이다.”(P. Stuhlmache)
③ 예수님은 자신을 구약 예언의 문자적 성취로 보셨다.
- 종말론적 성취
예수님은 자신을 구약의 종말론적 성취로 보고 구속론적-폐셰르적 해석방법을 사용하셨다. “이 글이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는 말씀은 ‘This is That’으로서 폐셰르적 해석방법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과 임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 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예수님은 자신이야말로 구약에서 예언하던 예언이 종말론적으로 성취된 대상이라고 강조하셨다. 예수님이 ‘너희 귀에 응했다’고 하셨을 때도 이 해석은 페셰르적이다.(눅 4:18)
- 예수님은 모형론적 해석방법으로 구약을 해석하셨다.
예수님은 요나 이야기를 하시면서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가 임한다고 하셨다. 광야의 뱀에게 나음을 입은 것처럼 장대에 달려 죄인들을 용서해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종말론적인 해석과 모형론적인 해석은 사도들에게 계승되었다. 예수님은 요나 이야기를 하면서 모형론적으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설명하셨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 12:40-44)
- 예수님은 일반적인 뜻을 사용하여 진리를 설명하셨다.
예수님은 구약의 역사적 기록의 풍유적 뜻이나 신비적 뜻을 찾아 진리를 설명하기보다 일반적인 뜻을 사용하여 진리를 설명하셨다. 창세기 4:8의 가인과 아벨 사건을 이용하셔서 누가복음 11:51에서 심판에 대한 교훈을 하셨다.
(2) 신약 기자들의 성경해석(구약)
⓵ 사도들의 구약 인용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사도들도 구약을 하나님의 영감 된 말씀으로 받았다.(딤후 3:16, 벧후 1:21) 사도들은 구약이 역사적 사건으로 정확함을 인정했다.(행 7:9-50, 13:16-22) 사도들은 구약을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논쟁이 있을 때나 질문이 있을 때 그리고 그들이 가르칠 때 구약의 권위에 호소했다. 이처럼 구약에 높은 권위를 부여한 사도들이 구약을 의식적으로 잘못 해석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
- 사도들은 구약을 직접(그대로) 인용했다.
- 사도들은 구약의 어순을 수정하여 인용하곤 했다. 사도들은 구약의 본문의 언어와 다른 언어로 신약을 기술했기 때문에 구약을 문자 그대로 인용한다고 말한 곳 이외의 부분에서는 수정하여 인용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었다.(행 2:17-21)
- 사도들은 그 당시 인정된 방법에 따라 문자적으로 구약을 해석했다. 역사는 역사로 시는 시로 상징은 상징으로 해석했다. 이처럼 신약 자체는 문법적-역사적 성경해석 방법에 기초가 되었다.
② 종말론적 성취
사도들은 종말론적 성취의 시대에 산다고 생각하여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 관점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다고 생각했다. 구약의 인물들과 사건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보이기 시작하였고 구약의 메시지는 완결된 것이 아니라 열려져 있으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가운데 이미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③ 그리스도 중심적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 약속의 성취로 보았다.
④ 유대주의 해석법 이용
사도들은 유대주의적인 성경해석(랍비, 필로, 쿰란)을 기독론적이고 종말론적인 해석을 하는 데 적용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해석이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유대주의적인 해석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 미드라쉬적해석(Light to heavy)
qal wahomer(light to heavy) : 사도들은 당시의 유대주의 해석법을 이용했다. 사도행전 1:20에서 베드로는 시편 69:65, 109:8을 인용해 가룟 유다의 죽음을 해석했다. 베드로는 일반적인 악인에게 적용되는 것을 더 큰 악인이라고 여긴 가룟 유다에게 적용했는데 이것은 ‘미드라쉬적해석’이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2:25-28에서 ‘유비의 방법-미드라쉬적해석’을 하여 시편 16:8-11, 110:1을 예수님의 부활에다 적용했다.
gezerah shawah(analogy) :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하였으니”(행 2:25-28)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하니라.”(행 2:34-36)
- 폐쉐르적 해석
“또한 사무엘 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행 3:24)
⑤ 역사적 모형론
모형(模型, type)이란 하나님께서 신약의 실체(實體, antitype)들에 상응(相應)하도록 미리 세우신 구약의 인물, 제도, 사건들을 가리킨다. 울콤브(K. J. Woollcombe)는 모형론은 ‘계시의 역사적 틀 안에서 사건들과 인물들과 사물들 사이에 연결’이라고 정의(定意)한 반면 알레고리칼 해석은 ‘내러티브의 일차적이고 분명한 의미 아래 놓인 부차적이고 숨겨진 의미를 찾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모형론적 해석은 신약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위를 예표하고 있는 모형들이 구약의 인물, 제도, 사건들 속에 나타난다고 보고 이를 찾아내려는 해석이다. 예수 안에서 일어난 위대한 구속사를 유대인에게 알려 주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구약의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경험하고 알려진 것을 설명하여 구약에서 밝혀지지 않는 내용을 신약에서 밝혀진 내용으로 연관지어 설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에 대해서 이미 알려진 일로 바라보았다. 구약 사건, 제도, 인물이 신약의 사건, 제도, 인물이 상응한다. 예언(豫言)처럼 보이기 때문에 모형론을 예언적으로 보기도 했다. 모형론은 과거의 사건을 분명히 인정한다. 구약의 사건이나 인물을 그대로 설명하고 그다음 더 큰 일을 경험한 사람들이 설명하거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루어질 일을 설명하는 것이다.
모형론은 과거를 지향하기도 하고 미래를 지향하기도 하는데 과거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랍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일을 예로 들어서 설명한다.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렀다.”에서 과거의 출애굽을 말하지만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경험한 사도들에게는 그리스도의 탄생 기사 구속 사건으로 본다. 과거를 돌아보며 과거 지향적 해석을 한다. 앞으로 있을 일을 설명하면서 과거에 있었던 일과 사건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같이 모형론은 과거를 보기도 하고 미래를 보기도 한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알려진 모형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 그 위대하고 큰 나라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가 보고 경험한 ‘보석과 생명수’를 사용해서(알려진 ‘기지’의 세계로 설명할 때) 모형론적 해석이라도 한다. 예수님이 성전을 자기 몸으로 말씀하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원자적(原字的) 해석에 갇혀있고 자기들 경험의 세계 때문이었다.
사도들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다가 주님의 부활 이후에 비로소 구약의 모형이 성취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모형론을 알레고리칼 해석과 구분하기 위해서는 상응하는 사건과 인물이 있느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솔로몬보다 더 큰 이, 성전보다 더 큰 이, 아브라함보다 더 큰 이, 솔로몬이나 성전, 아브라함에 대해 깊이 연구한 다음 더 큰 이 예수님을 설명하면 예수님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⑥ 알레고리칼 해석
겉으로 드러난 분명한 의미 아래 숨겨진 의미를 찾는 것이 알레고리칼 해석이다. 바울은 ‘곡식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는 교훈을 통해서 소에게 한 말을 기독교 사역자들에게 적용했다.
3. 교부시대(100-590년) 성경해석
(1) 유대주의와 이단에 대한 방어
기독교인들은 구약을 성경으로 가진 유대인들과 싸우면서 문자적 해석의 한계를 느꼈다. 예컨대 ‘처녀가 잉태하여…’라는 말씀에서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로 ‘알마’를 처녀가 아니라 ‘젊은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기독교의 해석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말시온(Marcion of Sinope, 85-160)이 등장하여 성경해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말시온은 기독교가 바울적인 종교가 되어야 진정한 종교라고 생각했다. 그는 또 구약과 유대인들이 생각한 메시아는 세상적이며 예수가 말한 메시아는 구약이 생각한 메시아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기독교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예수를 구약의 성취’로 봐서는 안 된다며 예수를 구약의 성취로 보는 것은 유대교적인 왜곡이라고 말시온은 보았다.
그는 또 구약의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으로서 분노와 진노의 하나님이며 신약의 하나님은 선한 하나님이므로 사도 바울적으로 기독교를 세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이상에 이르지 못하므로 구약을 제거하고자 했다. 이런 시대 분위기에서 교부들은 유대주의와 이단(異端)과 싸우면서 전통적 해석과 알레고리칼 해석을 하게 되었다.
(2) 전통적 성경해석
교회를 키워나가야 하고 이단을 막아야 하는 문제가 대두되자 교부들은 전통적 해석을 강조하게 되었다. 사도들은 구약에 정통했고 신약에서 구약을 인용하여 메시아를 설명했고 예수님 자신도 구약으로 자신의 메시아 되심을 강조하셨으므로 교부들은 사도들의 전통적 해석을 취했다. 그래서 이레니우스(Iraeneus)는 ‘신앙규범’(the rule of faith)이라는 사도들의 가르침이 성경을 해석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레니우스는 “사도들의 가르침은 진실한 지식이며 온 세계에 있어서 교회의 옛 질서는 진실이다. 또 감독의 계승에 따른 그리스도의 몸의 형성도 참되다. 사도들은 각지에 있는 교회를 감독에 위임하였다. 그리고 그 교회는 어떤 한 문서에 의함이 아니라 더하지도 않고 감하지도 않은 신앙의 규율로 철저히 지켜져서 우리들에게까지 도달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안에서만 오류 없이 성경을 읽을 수 있으며 성경의 정당하고도 근실한 해석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레니우스는 ‘권위 있는 해석’이라는 개념을 도입 성경의 진정한 의미는 ‘사도적 권위’가 보존되어 있는 교회에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결국 성경 본문 자체에 대한 주의 깊은 해석보다도 초대교회 지도자들의 해석으로부터 권위 있는 ‘의미의 틀’을 찾으려 하는 전통을 출발시켰다. 이 전통은 종교개혁 이후 트렌트공의회(Concilium Tridentinum, 1545-1563)가 교회의 불(不) 오류성(誤謬性)을 단언했을 때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시기에 콘스탄틴 황제가 개종하여(312년) 교회 지도체제의 사도적 계승이 권위를 갖게 되었다. 교회의 분열이 로마를 흔들기 시작하고 안정을 위협하자 세속 권력이 정통교리를 정립할 것을 요구했다.
주후 312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의 개종과 함께 정치가 교회의 성경해석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 정통 주류(主流)와 이단 지류(支流) 사이에 교리적인 논쟁은 교황의 정치적인 안정을 위협했다. 콘스탄틴은 교회에 압력을 가해 교리상의 차이점을 해결하고 표준화된 교리를 정립하도록 했다. 그러나 정통을 지키려고 성경에 단순히 호소하는 것은 교리적인 교착 상태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비(非) 정통 집단들 역시 자신이 견해를 성경을 통해서 뒷받침했으며 종종 설득력 있게 이 일을 행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정통 신학자들 자신들도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방식에 관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 학파의 갈등은 성경에 호소하는 정신을 손상시켰다.
기독교회는 성경의 의미를 완전하게 결정지을 만한 일종의 권위가 필요했다. 교회는 사도적 계승 속에서 이에 대한 대답을 발견했다. 콘스탄틴 하에서 정통교회 지도자들은 사도들의 계승자인 자신들만이 성경의 참된 해석자들이며 그 이유는 오직 자신들만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원리를 이행하기 위해 교회 지도자들은 일련의 교회 회의를 소집해서 공식적인 교리를 규정했다. 올바른 기독교 신앙체계를 규명하여 교리적인 결정 사항들은 교회 전통에 커다란 권위를 부여하게 되었다. 전통의 권위는 성경의 권위 이상으로 올라갔다. 교리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인 선언들이 교회가 옳다고 생각했던 성경의 해석들을 결정하게 되었으며 성경이 교회의 선언들을 결정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시기 초에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354-430)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해석자는 원래의 저자가 이야기하려고 의도했던 것을 찾아내야 한다고 했다. 이 원리는 성경의 가르침이 분명할 경우는 잘 적용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는 분명치 않은 본문들의 올바른 의미를 발견하는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 해석자는 믿음의 법칙(rule of faith) – 성경에서 보다 더 분명한 구절이 주제에 관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우려야 한다.
- 교회의 권위나 본문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해석을 참고해야 한다.
- 만약 모순된 견해들이 이상의 두 기준과 충돌될 경우 해석자는 문맥을 참고함으로써 어느 견해가 가장 좋은가를 살펴야 한다. 이는 보다 평이한 본문과 교회 전통이 불분명한 구절들의 문맥보다 우선한다는 의미이다.
이리하여 수용된 교회 전통이 성경의 궁극적인 해석자가 된 것이다. 여기서 전통적인 해석은 곧 사도들의 가르침(analogia fidei)이요 권위 있는 교회의 해석을 의미한다.
(3) 알레고리칼 해석
⓵ 바나바 서신과 저스틴(Justin Martyr)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교부시대에는 이단과 싸우면서 알레고리칼 해석을 강조하게 되었다. 바나바 서신을 보자. “이제는 스스로 조심하십시오. 어떤 사람처럼 (중략) 언약이 저의 것이며 또 우리의 것이라 하는 자가 되지 마시오. 언약은 우리의 것입니다.”(바나바 서신 4:6이하) 바나바 서신에서는 구약은 처음부터 유대인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구약의 역사를 모형론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지나치게 알레고리칼하게 해석한 예가 된다. 바나바 서신에서는 아브라함의 318명의 부하를 예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했다.(300+1+8=십자가+예수 그리스도) 이는 구약에서 예수를 찾다가 극단적으로 해석하게 된 경우다.
저스틴(Justin Martyr, 100-165)이 유대인 트리포와 나눈 대화에서 그의 알레고리칼 해석의 일면을 볼 수 있다. 저스틴은 이방 철학을 통해서 진리를 찾고자 하다가 130년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그는 에베소에서 가르치면서 유대인과 논쟁을 했다. 그는 얍복 강에서 야곱이 천사와 싸우는 장면을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가 사단을 이기는 이야기로 해석하며 야곱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임을 변증했다.
② 오리겐과 알렉산드리아 학파
터툴리안(Tertullian, 150-225)이 서방신학의 선구자였다면 오리겐(Origen, 185-254)은 동방신학의 전통을 세워놓은 인물이었다. 오리겐은 클레멘트(Alexandrian Clement, 150-215)에 의해 시작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꽃이었다. 오리겐의 스승인 클레멘트는 철학을 신학을 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게 다루었지만 오리겐은 철학은 신학을 위한 준비 과목이라고 했다. 오리겐은 최초로 성경을 학적으로 주석(註釋)했고 거의 모든 성경을 주석한 성경신학자였다.
오리겐의 성경해석은 알렉산드리아 신학 전통에 서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성경해석은 유대인들의 세 가지 해석 방법 중 하나이다. 이 해석 방법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헬라 철학의 개념을 성경해석에 적용하여 성경은 ‘히포노이아’(hyponoia)라고 불리는 보다 깊은 진리 또는 영적 의미를 지닌다고 보았다. 영적인 의미는 단어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에 풍유적 해석법으로 발견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리겐은 히브리어에 능통했으며 유대인들의 수중에 있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원본을 수집했다. 오리겐은 성경 원문(原文)을 중요하게 다루면서도 성경의 참된 의미는 문자적 해석을 통해서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리겐은 인간이 몸, 혼, 영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성경도 삼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성경의 삼중적 의미는 ‘문자적 의미’(본문의 사건, literal or physical meaning), ‘도덕적 의미’(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해 숨겨진 원리들, moral meaning), ‘영적 의미’(교리적 진리, spiritual meaning)가 있는데 그중 가장 깊은 의미는 영적 의미라고 했다.
그러나 오리겐은 한 본문의 의미를 항상 문자적, 도덕적, 영적인 3분법적 의미로 정확하게 나누어서 조직적인 방법으로 진행하지 않았고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그는 복음서 본문에 대해서 문자적 율법적 해석을 엄격히 지키기 위해 스스로 성(性) 장애자가 되었다. 그는 성경의 기적을 먼저 그 기적의 역사적 실재성을 중요하게 다루고 나서 그 사건의 의미에 담긴 우화적 해석으로 넘어갔다.
한편 어느 경우에는 본문의 문자적 의미를 아주 무시해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성경의 모든 본문은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모든 본문이 문자적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오리겐은 자신이 유대인들처럼 레위기 본문을 주석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하나님께서 이 법을 주셨다고 주장하기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레위기의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이 틀림없지만 모든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유대인들과 말시온주의자들의 오류라고 보았다.
오리겐의 해석이 본문을 갖고 노는 듯한 인상을 주자 오리겐은 하나님은 원래의 성경 저자를 영감하셔서 풍유적인 의미를 그의 저작 속으로 통합하도록 하셨다고 주장했다. 그러기에 오리겐이 성경의 최고의 의미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의 보다 깊은 영적인 진리를 말한다. 그것은 이미 성경에 암시(暗示)되어 있는 것이지 해석자가 고안한 그 무엇이 아니라고 했다.
오리겐의 풍유적(諷諭的) 성경해석은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스럽게 단순한 의미를 무시하는 성경해석이다. 오리겐은 성경 자체보다도 성경이 말하는 그 이상의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데 있어서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리겐의 풍유적 해석은 다른 초대교회 지도자들 가운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③ 어거스틴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354-430)의 알레고리칼 해석의 근거는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 3:6)이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죽이는 것이요 풍유적이나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살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예를 들어 그는 환도 뼈 안에 축복받은 사람과 위골(違骨) 된 사람이 있다고 해석하고 믿는 자는 축복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다리를 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깊은 사상에서 나온 알레고리적 해석을 했기 때문에 큰 흐름을 보면 그의 해석에서 따뜻하고 영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어거스틴이 성경해석을 하는 이유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하고 믿음, 소망, 사랑 세 가지 덕을 증진 시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성경 없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면 성경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믿음, 소망, 사랑 세 가지 덕을 증진 시키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이며 하나님을 향유 하고 믿음, 소망, 사랑의 덕을 증진 시키는 데 언어 지식과 일반교육 등 애굽에서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학문을 가져다가 차용(借用)해서 성경을 해석하면 신앙의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다.
(4) 문자적 해석
① 안디옥학파의 성경해석
오리겐의 풍유적 해석 방법에 반대한 사람들은 주후 4세기 시리아에 있는 두 번째 기독교 교리문답 학교를 세웠다. 알레고리 대신 이 학교는 성경에 대한 역사적-문법적 이해를 가르쳤다. 즉 본문은 문법과 단어들에 의해 전달되는 하나의 평이(平易)하고 단순한 의미를 갖는다고 가르쳤다. 이 학교 선생들은 데오도르(Theodore of Mopsuestia, 350-428)와 데오도레트(Theodoret, 393-460)가 있다.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347-407)의 설교는 이 방법이 설교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지적(知的) 분위기가 클레멘트와 오리겐의 접근법을 구체화했듯이 안디옥학파(Antiochene school)는 그들의 지적인 동료들인 안디옥에 있는 유대 공동체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어떤 점에서 데오도레트는 그의 스승인 데오도르를 비판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그가 기독교적이라기보다 유대적이기 때문이었다. 안디옥학파 사람들에게 있어 성경의 보다 깊은 의미를 발견하는 열쇠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소위 데오리아(theoria, 통찰력)이었다. 이것은 본문의 문자적인 역사적 사실들과 이 사실들이 지시하고 있는 영적인 실체 모두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다시 말해 안디옥학파는 숨겨진 영적인 의미를 선호하여 문자적인 의미를 경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의미는 직접적으로 영적인 의미와 상통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알레고리를 철저히 배격함으로 안디옥 학자들은 교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몇몇 해석들과 이별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 학파의 최고 해석자인 데오도르는 진짜 메시아적인 성경의 구약본문과 원래적으로 역사적인 성격을 지닌 구약본문 사이를 구분했다.
데오도르는 아가서에 대한 전통적인 풍유적 해석 즉 아가서는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이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헌신을 상징화하고 있다는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아가서를 솔로몬이 자신과 한 이집트 공주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쓴 사랑의 시(時)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형론을 충분히 활용했기 때문에 융통성 없는 문자주의가 아니었다.
이같이 데오도르와 안디옥에 있는 학파는 풍유적인 방법론을 철저하게 배격(排擊)했으며 성경의 역사적인 의미를 알렉산드리아의 경쟁자들보다 더욱 진지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여전히 알레고리의 영향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풍유적 해석의 접경에 서 있는 일종의 모형론을 사용했다.
② 제롬의 문자적 해석
제롬(Jerome, 347-420)은 초기에는 오리겐의 풍유적 해석의 영향을 받았으나 후기에는 안디옥학파의 문자적-역사적 해석에 영향을 받았다. 379년 제롬은 칼키스 사막을 떠나 다시 안디옥으로 가서 382년까지 거의 3년 동안 성경연구를 하면서 지냈다. 제롬은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참석하여 니사의 그레고리와 신학자 이코니움의 암필로키우스(Amphilochius, 339-394)에게서 그리스어 실력을 쌓았고 오리겐의 주석에 대해 점점 더 감탄하게 되었다. 오리겐의 ‘구약성경’ 설교들 가운데 14편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또 콘스탄티노플에서는 교회사가 유세비우스의 ‘연대기’(Chronicon)를 번역하기 시작하여 378년에 마쳤다.
로마 가톨릭의 교황 다마수스 1세(Damasus I, 366-384 재위)의 비서가 되어 로마로 간 후(382-385) 로마에서 성경연구를 계속하며 금욕생활을 권장했다. 이 무렵 오리겐의 ‘아가서’ 설교 2편을 번역했다. 그는 오리겐의 책을 연구하고 번역하면서 오리겐의 풍유적인 성경해석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제롬은 인생의 후기에는 문자적 성경해석 방법을 택했다. 제롬이 안디옥에서 배운 히브리어로 성경을 연구하고 안디옥학파의 영향을 직접 받으면서 문자적 성경해석의 우위성을 확신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안디옥학파의 성경해석은 제롬을 통해서 다음 세대에 계승되었다. 제롬의 처음 주해(註解)는 풍유적 해석이었다. 그런데 안디옥에서 라오디게아의 아폴리나리어스(Apollinaris of Laodicea, 310-390)의 가르침을 받아 문자적-역사적 방법 아래 서게 되었다. 원전연구와 안디옥학파의 영향을 받아 유대교의 성경해석에 대한 지식이 늘어감에 따라 그는 초기에 자신이 극찬한 풍유적 해석에서 벗어나 성경의 내용과 역사적 사실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제롬은 성경의 깊은 의미는 ‘문자(文字)’ 위에 세워졌으며 ‘문자의 의미’에 모순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성경 안에 기록된 모든 것은 실제로 발생했으며 동시에 역사적 의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 의미는 히브리어로 표현된 진리인 히브리 백성에게 보여주신 진리(Hebraica veritas)에 기초한다. 해석자는 자신의 지각을 넘어서는 영적 이해를 구비 해야 하는데 영적 이해는 육신의 지각(知覺)과 모순되지 않는다. 제롬이 ‘벌게이트(Vulgate) 성경’을 번역하는데 거의 주도적 역할을 한 것도 안디옥학파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어거스틴처럼 데오돌은 제롬이 희랍어 70인 역에서 이탈함을 유감스럽게 여겼다.
4세기와 5세기의 신학적 논쟁들-네스토리우스 논쟁(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관계에 관한 논쟁)에서 일부 안디옥학자들은 정통주의를 벗어났다고 비판을 받았다. 구체적으로 테오드로가 553년 콘스탄티노플회의에서 기독론 이단으로 정죄 받아 문자적 해석을 시도했던 아니옥학파는 영향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이후 알렉산드리아학파의 풍유적 성경해석이 어거스틴을 통해 중세로 이어졌고 그 기간은 종교개혁이 일어나기까지 천 년이나 되었다.
이같이 교부시대는 유대주의와 이단의 영향으로 전통적 해석과 알레고리칼 해석을 주로 했다. 반면에 안디옥학파의 문자적 성경해석은 중세의 전통으로 넘어오지 못했다. 크게 보면 교부시대는 역사적 모형론을 넘어서 알레고리칼 성경해석을 했다. 모형론적으로 구약을 간직했으면 좋았으나 당시의 긴박한 상황에서는 알리고리칼 해석이 도움이 되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알레고리칼 해석은 그 이유를 갖고 있었다. 반면 유대교의 문자주의와 구약을 경시하는 말시온을 거부하기에는 유익했고 기독교의 진리 체계에서 나온 해석을 했지만 문자와 영이 관련성이 없을 때는 해석이 주관성에 빠져서 통제되지 않았다.
4. 중세시대(590-1500년) 성경해석
중세시대는 476년 로마제국의 멸망 때부터 15세기 종교개혁시대까지 천년 기간을 말한다. 중세에는 소수의 해석자들을 제외하고는 본문에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경해석이 빈곤했다.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중세 성경연구에 대한 표준서는 17세기 말에 쓴 사이몬(Richard Simon)의 ‘Histories critiques’(1678, 1693)가 고작일 정도였다.
한편 비평학자들이 중세를 암흑기라고 하지만 중세에도 창조적 시기로 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8-9세기 카롤루스 왕조(Carolingian dynasty) 부흥시대의 학자들과 11-12세기의 성 빅토르사원(Abbaye de Saint-Victor)을 중심으로 한 빅토르학파 학자들은 문자적 해석을 하고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원어 연구를 강조한 것 등은 성경학연구에 기여(寄與)했다.
중세의 대표적인 성경해석에는 1)전통적해석, 2)알레고리칼해석, 3)문자적해석 세 가지 해석 유형(類型)이 있었다.
(1) 전통적 성경해석
⓵ 카테나(catena)
중세의 해석자들은 수 세기에 걸쳐 전해 내려온 교부들의 견해들에 크게 의존했다. 이 성경해석 방법의 주된 자료들이 문서화 된 ‘카테나’(catena)이다. 카테나는 교부들의 주석들로부터 편집된 해석들이다. 중세 이전의 카테나들은 다양한 주석가들을 인용했지만 중세의 카테나들은 어거스틴과 제롬처럼 교회가 받아들인 학자들의 교리만 크게 다루었다. 카테나를 사용하는 성경해석자들은 자신들의 해석을 교회의 교리상의 규범들에 일치시키려는 경향을 보였다. 이 시기의 성경 주해는 전통과 거의 동의어가 되었고 좋은 성경 주석가(註釋家)는 그가 전해 받은 것을 신실하게 전수하는 학자였다.(R. E. McNally)
② 글로사 오르디나리아(Glossa Ordinaria)
‘카테나’는 ‘글로사 오르디나리아’(Glossa Ordinaria)라는 책으로 이어졌다. ‘글로사 오르디나리아’는 주석(註釋)이 달린 성경인데 중세의 표준이 되는 성경주석 집이었다. 이처럼 중세에는 성경만을 갖고 있지 않았다. 성경 본문 아래 주해(註解)가 있고 본문과 주해 여백에도 주해가 있었다. 베네딕트(St. Benedict, ?-547)는 “성경은 교부의 주석과 함께 읽어야 하며 교부의 주석을 최후의 해석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을 성경해석의 원칙으로 가르쳤다. 빅토르(Hugh of Saint Victor, 1096-1141)는 “먼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배우고 그 후에 성경으로 가서 찾으라.”고 했다.
(2) 알레고리칼 성경해석
① 렉티오 디비나(Lectio Divina)
‘렉티오 디비나’(Lectio Divina)는 읽기, 묵상하기, 기도하기, 명상하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읽기(Lectio)
성경을 읽기 전에 먼저 침묵(沈默)이 전제된다. 침묵은 성경 안에 있는 하나님의 주파수를 맞추는 단계이다. 먼저 매우 조용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조용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첫 단계는 조용히 앉아서 들어야 한다. 신문을 속독하듯이 읽는 것이 아니라 침묵과 경외심으로 읽어야 한다. 그래서 ‘경외심으로 읽기’라고 한다. 성경을 읽는 것이야말로 ‘렉치오 디비나’의 가장 기초가 되는 부분이다.
성경을 단순히 문자적 집합체로 여기지 않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계시(啓示)요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現存)으로 듣는다. 따라서 ‘렉치오 디비나’를 위해 성경을 읽을 때는 성경공부 하는 자세로 임해서는 안 된다. 주석서(註釋書)를 뒤적이고 성경 자구(字句)의 의미 파악에 힘을 쏟아서는 안 된다. 오직 온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한마디로 말해 내 존재(存在) 전체로 말씀을 읽어야 한다. 읽는다는 것은 또한 듣는 것을 의미한다. 듣는다는 것은 곧 기도이다.
- 묵상하기(Meditatio)
성경을 몇 차례 천천히 정독(精讀)한 후에는 그 말씀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본다. 말씀을 읽는 것이 기도 자료의 수집 단계라는 성격이 강하고 묵상(默想) 다음에 이어지는 기도나 관상(觀想)은 하나님 차원의 움직임이 더욱 강해지면서 우리는 좀 더 수동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반면에 묵상이란 우리의 지성(知性)이나 감성(感性) 등 비교적 인간적 노력을 많이 사용하는 점에서 ‘방법’이라고 한다.
이 단계에서는 우리의 이성(理性)과 감성(感性) 등 본성적으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자질을 많이 활용하면서 비교적 우리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기도한다. 성경 말씀의 의미에 대해서 성경에 나오는 이들의 성격이나 행동 양식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해 보며 성경이 말하는 바를 알아들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또 기도이기 때문에 비록 지성(知性)을 사용해 성경 말씀의 의미 등을 추론해 본다고 하더라도 단순한 사고(思考) 작용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기도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마음을 모아 밝게 깨어 있는 가운데 성령께서 보여 주시고 느끼게 해 주시는 것을 포착(捕捉)하는 것이다.
- 기도하기(Oratio)
하나님과 대화(對話)로서의 기도는 우리를 품에 안으시기 위한 하나님의 초청이다. 봉헌(奉獻)은 내 삶 가운데 하나님이 원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을 발견하는 것이다. 기도를 올려드린 다음 내가 읽기와 묵상을 통해서 고통스러운 것들을 치유(治癒) 받거나 나의 삶의 일부분을 하나님께 드리게 된다. 여기서 기도와 명상(冥想)은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어 기도와 명상을 함께 묶기도 한다. 이 같은 기도 단계를 통해 성령님에 의해 우리 존재는 변화(變化)를 경험(經驗)하게 된다. 영적인 기쁨과 위안을 통해 믿음, 소망, 사랑의 덕(德)이 자라고 율법이 아닌 사랑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바라보고 참된 참회(懺悔)를 경험하게 된다. 나아가 올바른 길로 인도를 받게 된다.
- 명상하기(Contemplatio)
명상(冥想)은 기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는 성령님께 더 큰 신뢰와 의탁으로 나아가게 되며 그런 가운데 성령께서 계획과 뜻에 따라 우리 존재를 변화시켜 나가신다.
② 성경해석의 사중(四重) 의미
중세기에는 성경해석의 모든 방법론 중에 알레고리칼 성경해석이 가장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실제로 성경에 대한 오리겐의 3중적 의미와 대조적으로 많은 중세 학자들은 모든 성경 본문은 4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 문자적 의미 : 구약 – 과거, 하나님과 선조들이 행한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며(과거),
- 알레고리칼(Allegorical) 의미 : 신약 – 현재,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믿음이 어디에 숨겨 있는지를 보여 주며,
- 도덕적(Tropological) 의미 : 현재, 우리의 일상생활의 법칙들을 우리에게 부여하며,
- 영적(신비적, Anagogical) 의미 : 미래, 우리의 다툼이 어디서 끝나는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예 ; 출애굽 이야기에 대한 4중 의미 | ||
미래 | 종말론적 해석 | 완전한 해방 |
현재 | 삶에 적용 | 죄 해방 지금도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죄에서 해방된다. |
신약 | 신학적 해석 | 그리스도의 구원사역,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나님이 베풀어 준 해방의 의미 |
과거 | ‘출애굽’ 사건 – 문자적 |
③ 칠중(七重) 의미
알셀롬(Angelom of Luxeuil, ?-855)은 성경해석의 일반적인 삼중(三重) 의미뿐 아니라 열왕기서 등에서는 다음과 같이 칠중(七重) 의미로 나누었다.
- 제1차 의미 : 역사적 의미이다. 평범하면서 직접적인 가르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삼상 15:22)를 들 수 있다.
- 제2차 의미 : 문자적 의미가 없는 알레고리칼 의미이다. 노년의 다윗에게 데려간 여인은 지혜를 상징한다.
- 제3차 의미 : 1,2차 의미의 결합 된 의미이다. 문자적으로 진리이면서 동시에 알레고리칼 의미를 지닌 것을 말한다. 밧세바 스토리가 그 예이다. 2차, 3차 의미는 안셀롬이 제롬과 어거스틴의 접근 방식을 조화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 제롬은 아비삭을 상징으로, 어거스틴은 밧세바를 실제 역사적 인물로 보기 때문이다.
- 제4차 의미 :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을 의미한다.
- 제5차 의미 : 비유적 의미이다.
- 제6차 의미 :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대한 가르침을 의미한다.
- 제7차 의미 : 도덕적 가르침을 의미한다.
④ 도덕적 적용에 우선권
성경해석 후 도덕적인 적용을 하다 보니 청중의 상황에 따라 자유 자제로 성경을 해석하게 되었다. 교황 그레고리(Gregorius PP. I, 540-604)의 해석을 보자. “나는 혼자 있을 때는 성경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나의 형제들과 함께 있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형제들이 있을 때 내게 이런 이해를 주신 것은 형제들을 위해 주신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내가 가르치는 것을 배우게 하셨기에 나의 지식이 늘어가는 만큼 나의 교만은 반비례합니다. 사실상 여러분처럼 나도 내가 말하는 것을 그때 비로소 처음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곱의 얍복강 이야기에 대한 그레고리의 해석을 보자. “야곱은 그의 환도 뼈 신경이 상처를 받아 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하면 우리의 육적인 욕망이 시들어지는 것입니다. 야곱의 두 다리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추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육적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데 성공할 때마다 우리의 세상을 향한 사랑은 줄고 우리는 그때 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레고리의 ‘얍복강 이야기’에 나타난 것처럼 문자적 해석을 한다고 하지만 문자적 해석은 최소화하고 영적 의미를 강조하면 과다(過多)한 적용(適用)이 나오게 된다. 그레고리는 동일(同一)한 책의 뒤에서는 덕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인내와 힘을 다루면서 싸우는 천사와 다투어지지 않는 정도로 훈련한 야곱을 본받으라고 주문했다.
⑤ 교회의 교리나 제도를 합리화
중세 로마가톨릭 학자들은 구약성경의 사건들이 신약성경의 그것들을 예표 하는 것으로 이해했고 아울러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나 제도를 합리화시키기에 합당한 근거가 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3) 문자적 성경해석
① 빅토르학파
문자적-역사적 성경해석이 12세기 빅토르(Hugo von St. Viktor, 1097-1141) 학파를 중심으로 강조되었고 중세 스콜라스티시즘(Scholasticism)의 대가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25-1274)에 의해서 부각(浮刻)되었다.
주후 1110년경 안셀롬(Anselm, 1033-1109)의 제자인 윌리엄(Master William of Champeaux, 1070-1121)이 학교에서 나와 세느강변에 작은 예배당을 짓고 기도와 고독의 삶을 살기로 작정했다. 학생들이 그를 따라오자 이 빅토르사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후에 빅토르학파의 기초가 되었다. 학교와 수도원 분위기가 잘 결합 된 곳에서 휴즈(Hugh)나 앤드류(Andrew of St. Victor) 같은 이들은 ‘주해’와 함께 성경을 읽는 것을 경고하면서 전통적인 수도원의 연구 자세인 ‘천천히, 넓고, 깊게’를 강조했다.
위그모어에 있는 영국의 대수도원장 빅토르의 앤드류가 쓴 성경 주석들(12세기)은 이 학파 성경해석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자신의 동시대인들과 달리 앤드류는 그의 해석에서 영적인 주석과 신학적인 질문들을 제외시켰다. 대신 그는 때때로 유대인들의 해석에 근거해서 한 본문의 역사적 혹은 문자적 의미를 밝히는 일에 전념했다. 당시의 보다 큰 역사적 배경에 비춰 보면 소수파의 인물이지만 앤드류는 우리에게 몇몇 중세 학자들이 문자적인 의미가 일차적 관심이었던 제롬과 같은 보다 앞선 시기의 주석가들의 전통을 견지해 나간 것을 상기시켜 준다.
② 스콜라스티시즘(Scholasticism)
문자적인 해석의 보다 영향력 있는 주창자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은 스콜라주의(Scholasticism)라 불리는 성경해석의 움직임이었다. 스콜라주의는 유럽에서 있었던 르네상스(Renaissance, 文藝復興) 이전의 지적(知的) 각성 운동으로 처음에는 수도원의 학교에서 시작되어 후에는 대학들로 퍼져 나갔다. 이 운동의 주요관심은 기독교의 신앙(信仰)과 인간의 이성(理性)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는 데 있었다. 이 두 가지 요소들이 스콜라주의가 싹을 내고 퍼져 나가도록 하는 비옥한 모판의 역할을 했다.
첫째, 유럽은 여러 세기 동안 비교적 정치적 안정과 평화를 구가했기 때문에 학자들은 집중해서 자신들의 질문을 추구해 나갈 수 있었다.
둘째, 기독교 이전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발견은 학문적 연구의 도구들을 제공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일차적인 도구였다. 안셀름, 피터, 아벨라드 같은 스콜라주의자들은 이 지성운동(知性運動)의 방법론으로 논리적 분석과 삼단논법(三段論法)을 사용해 다양한 신학적 주제들에 대한 위대한 저서들을 저술했다.
스콜라주의에 대한 해박한 대변인은 기독교 사상가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였다. 그의 역작 ‘신학대전’(Summa Theologica)은 3세기에 걸친 밀도 있는 학문적 논의의 지적(知的) 결실들을 종합해 놓은 저작이다. 이 저작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합리적이고도 체계적인 설명을 부여했으며 궁극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 신학에 대한 규범적인 요약이 되었다. 그의 동시대인들 중 어느 누구보다도 아퀴나스는 성경의 문자적 의미의 중요성을 주창(主唱)했다.
그에게 있어서 문자적 의미는 다른 의미들(풍유적, 영적 의미)에 대한 토대를 이룬다. 실제로 그는 성경의 문자적 의미가 믿음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그는 알레고리칼 해석에 오랫동안 속박되어 있던 신학을 그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중세기는 교회 내에서 풍유적인 성경해석 방법의 우위가 서서히 그 종말을 고하는 시기였다. 성경해석에 있어 이성(理性)의 사용에 대한 스콜라주의의 강조는 알레고리의 주관성을 회의적(懷疑的)인 것으로 부각시켰으며 이 해석의 타당성에 대한 확신의 뿌리를 흔들어 놓았다. 신학에 대한 철학적인 도구들의 적용은 성경해석을 보다 이성적(理性的)이고 객관적(客觀的) 토대 위에 닻을 내리려는 경향이었다.
< 중세시대 성경해석의 단점 >
- 중세에는 성경 원어(原語) 연구를 소홀히 했다.
- 성경을 지나치게 알레고리칼(Allegorical)하게 해석하고 극단적 사중(四重) 의미를 강조하기도 했다.
알레고리칼 성경해석은 임의적인 것을 본문 안으로 읽어 넣어 해석하기에 본문을 제대로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본문을 한 시대의 필요에 부합되도록 하려는 해석자의 의도에 맞추어 해석하는 것은 본문의 왜곡과 곡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성경 본문의 문자적 의미와 역사적 의미의 연구 없이 영적 의미 숨은 의미만을 찾게 됨으로 중세교회는 자주 자의적으로 성경을 곡해했다. 그리고 본문이 사중(四重) 의미로 발전하는 것은 귀한 발견이지만 로마가톨릭 교리를 세우기 위해 마구잡이로 무조건 4개의 의미를 끄집어내다 보니 문제가 되었다.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은 이런 성경해석을 강하게 비판했다.
- 교회의 전통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중세교회는 교회의 전통적 해석을 성경해석의 지침으로 삼은 것은 잘못이다. 교회의 신앙규범(regula fidei)이 성경해석 지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성경이 교회 신앙규범을 해석하는 지침이 되어야 한다.
- 적용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중세는 적용을 강조했지만 ‘과거’ 즉 성경 본문의 문자적 해석을 소홀히 다루었다.
< 중세시대 성경해석의 장점 >
- 성경을 경외심으로 읽고 내면과 삶에 적용하도록 하는 ‘렉티오 디비나’(lectio divina)는 지금도 좋은 영향을 주는 성경해석 전통이다.
- 긍정적인 사중(四重) 의미는 유익하다. 문자적 해석을 충실히 하면서 사중(四重) 의미를 강조하면 ‘다중의미’가 살아난다. 1차적인 문자적 해석을 줄이지 않고 신약, 현재, 미래의 해석이 지나치게 강조되기 보다 문자적 의미가 견고하게 된 다음 신약적인 의미, 도덕적 의미, 천상적 의미를 살리면 해석의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5. 종교개혁시대 성경해석
(1) 개혁자들의 해석원리
① 오직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통적 성경해석은 성경을 로마 가톨릭 교리의 시녀(侍女)로 만들었다. ‘4중 의미’는 지나치게 도덕적, 천상적 의미를 강조하여 교리를 교회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에 반대하여 개혁자들은 ‘Sola Scriptura!’를 기치로 내걸었고 로마 가톨릭의 교리와 교회까지도 성경의 판단(判斷)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교개혁은 성경해석에도 대변혁을 가져 왔다. 이 변혁이 있기 전 불을 지핀 역사적 상황이 있었다. 중세시대 후기 무렵에 스콜라주의자들의 경직(硬直)된 전통주의와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 같은 기독교 인문주의(人文主義, Humanism)자들의 소위 새로운 학문 사이의 갈등(葛藤)이 있었다.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은 스콜라주의 신학의 까다롭고 현란(眩亂)한 논리를 조롱했는데 그 신학은 배고픈 영혼에 아무런 영적인 양식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당시의 많은 신학의 저자(著者)들은 공공연히 초대교회가 가졌던 단순한 믿음과 헌신을 갈망했다. 더욱이 성경을 원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공부하고자 하는 새로운 각성은 학자들에게 성경을 새롭게 볼 수 기회를 제공했다.
1516년 에라스무스는 부록으로 라틴어 번역본의 최초의 헬라어 신약성경을 발행했다. 초기 사본들에 대한 점증(漸增)하는 이런 관심은 라틴어 벌게이트(Vulgata) 성경에 있는 많은 번역상의 오류들을 드러냈고 이 성경이 교회 교리를 뒷받침하면서 누렸던 절대 권위를 손상시켰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그들의 권위를 부분적으로 벌게이트 성경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이 성경의 권위에 대한 의구심(疑懼心)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권위에도 의심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했다.
② 문법적-역사적 해석
이 시대 성경해석의 특징은 성경의 권위에 대한 존중(尊重)과 문법적-역사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교회 전통 속에서 풀려나와 해석의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즉 성경은 그 가운데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성경 자체의 존재론적인 의미를 회복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성경의 권위가 어떤 권위(교회나 전통의 권위)보다도 우선하게 되었다. 특별히 성경은 단순한 ‘역사적 문서’가 아니라 ‘선포와 설교를 위한 본문’으로 제시되었다. 그리고 성경의 중심 되는 주제는 그리스로서 모든 성경은 이 관점에 따라 해석되었다.
종교개혁의 기치는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이어졌다. 뿐만이 아니라 안디옥학파의 성경해석 방법인 성경본문에 대한 문법적-역사적 해석 방법이 전통과 교회의 권위에 철저히 기초한 성경의 알레고리적 해석을 대치하게 되고 여기에 해석자의 해석적 책무가 무겁게 부가되었다. 왜냐면 성경이 성경 되기 위해서는 해석자가 교회의 무분별하고 부적절한 전통과 권위에 예속되지 않고 건전한 비평적 시각을 견지하며 보다 적절하고 책임 있는 해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개혁자들은 전통과 제도적 교회의 타락한 권위에 반발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성경영감)을 회복하였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결정된 성경의 본질을 발견하게 되었다. 특별히 개혁자들은 사도적인 교회의 기독론과 복음적인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힘썼다.
(2) 루터(Martin Luther)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16세기 성경해석에 있어 다음과 같이 대변혁을 주도했다.
첫째, 루터는 ‘오직 성경’만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적(神的) 권위를 갖고 있다고 했다.
루터는 오랫동안 확립되어 온 원리 즉 교회 전통 그리고 성직에 있는 교회 지도자들은 성경과 동일한 무게의 교리상의 권위를 갖고 있다는 기존의 원리와 결별(訣別)했다. 그러므로 그는 종교개혁의 기초 전제인 ‘오직 성경’으로의 원리를 세워놓았다. 루터는 성경 자체가 성경의 가장 좋은 해석자라는 원리를 천명했다. 결과적으로 독자들은 더 이상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교부들의 주석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둘째, 루터는 알레고리칼 성경해석 방법론을 배격했다.
그 이유는 이 방법론은 헛된 추론(推論)에 이르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성경은 하나의 단순한 의미 즉 역사적 의미만 있다고 했다. 이 역사적 의미는 성경의 역사적 문맥에 비추어 평범한 문법의 법칙들을 적용함으로써 발견된다. 루터는 ‘그리스도 중심’의 창을 통해 성경을 읽었으며 전체 성경은 그리스도에 관해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기에 알레고리를 배격하는 반면에 루터는 신약의 전형적인 특징인 모형론적 성경해석을 채택했다.
루터는 올바른 성경해석 역시 주관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했다. 루터가 말하는 바는 성령의 조명(照明)이 그리스도인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성경해석에 적용하는 과정을 인도하신다는 점이다. 성령의 조명은 성경의 독자들로 하여금 주어진 본문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보았다. 이 같은 루터의 성경해석 원리들은 다음과 같다.
- 심적인 원리 : 믿음과 성령의 조명(照明)은 해석자의 개인적이고 영적인 필수 요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이성(理性)만으로 성경을 비판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되며 기도와 명상 가운데 성실하게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 권위적 원리 : 성경의 권위는 신학적인 면에 있어서 최종적인 것이기에 교회의 권위를 넘어선다. 그것의 교훈은 교회의 권위들-교회의 인물들이나 자료들-에 의해 승인(承認)되거나 종속(從屬)될 수 없다.
- 문자적 원리 : 이는 성경해석에 있어 가장 선행(先行)되는 원리이다. 성경의 문자적 의미만이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 있어서 완전한 본질이된다. 그런 까닭에 루터는 문자적 해석을 위해 우화적 해석을 배격하고 대신 원어의 의미 연구와 본문의 역사적, 문법적 연구에 치중했다. 특히 그는 알레고리칼 해석을 ‘먼지’, ‘쓰레기’, ‘오래되어 헤어진 누더기’라며 매춘 행위나 의미 없는 놀이에 비유했다.
- 충족의 원리 : 신실하고 유능한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진정한 의미를 스스로 이해할 수 있으며 로마 가톨릭교회에 의해 제시된 성경해석을 위한 공식적 지침은 필요하지 않다.
- 기독론적 원리 : 문자적 해석은 성경해석의 마지막이 아니다. 모든 성경해석의 기능은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다.
- 율법과 복음의 원리 : 성경해석자는 성경 속에 있는 율법과 복음을 신중하게 구별해야 한다.
루터는 ‘Total Scriptura’를 강조하면서 “‘전체 성경’이 ‘개별 성경’을 해석한다.”고 했다. 그리고 루터는 ‘Sola Scriptura’를 강조했지만 내용적으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성경을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려고 했다. 루터는 그리스도 중심으로 성경해석을 했기 때문에 야고보서가 기독교적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성경에 대한 루터의 이런 면은 비평주의가 성경을 여러 등급으로 나누는 데 영향을 주었고 실제로 루터파는 성경을 여러 등급으로 나누었으며 비평주의가 루터파로 가장 먼저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루터는 구약은 율법(Law)이고 신약은 복음(Gospel)이라고 생각했다. 또 루터는 성경해석 원리 중에서 기독론적 원리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성경 본문의 자연적 해석과 문자적 해석의 결과를 왜곡시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츠빙글리(Ulrich Zwingli)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개인 구원의 확실성을 강조한 루터와 달리 구원의 확실성에서 흘러나오는 기독교인의 삶에 강조점을 두었다. 그래서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는 성령(聖靈)을 강조했다. 성경의 외적 계시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에 의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성경해석에는 성령의 역사 이외의 다른 어떤 구속이나 억압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지 몇 가지 해석학적 원리를 제안했다.
- 모든 성경 구절은 하나의 명백한 의미만을 지닌다.
- 알레고리칼 성경해석은 무효이며 단지 구약에서만 가능하다.
-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一貫)하다. 만일 성경이 의심되는 경우는 하나님의 영광에 도움이 되는 해석을 취해야 한다.
(4) 부처(Martin Butser)
부처(Martin Butser, 1491-1551)는 처음에는 츠빙글리의 견해를 따랐으나 복음서주석과 로마서주석을 쓰면서 방향을 전환했다. 그는 구약과 신약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다는 주장을 부인했으며 기독론과 대속(代贖)의 교리를 구약에서 읽어냈다. 부처의 이 같은 성경해석은 재세례파(再洗禮派, Anabaptist)의 입지를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5) 존 칼빈(John Calvin)
① ‘오직 성경으로’
루터와 아퀴나스처럼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알레고리를 배격했다. 성경의 문법적-역사적인 해석을 선호했다. 칼빈 역시 성경을 교회의 유일한 최고의 권위 즉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권위라고 확언했다. 칼빈은 성경해석에 있어 주관적인 요소 즉 성령의 내적증거라는 주관적인 요소를 받아들였다. 칼빈에 따르면 성령의 내증(內證)은 해석의 과정을 조명(照明)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해석자의 마음에 그가 행한 해석이 올바른 해석이라고 확증(確證)하는 역할을 한다.
또 루터와 달리 칼빈은 형식적-내용적으로 모두 ‘Sola Scriptura’를 강조했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기준이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키지 않으면 2차적인 것으로 보았지만 칼빈은 구약은 신약을 향해 점진적(漸進的)으로 계시(啓示)된다고 보았다. 그 시대의 사상과 문화의 발전에 따라서 조금은 저급하게 조금은 인간적이고 유아기적으로 ‘점진적 계시’라는 측면에서 성경을 해석했다.
② 문자적 해석
칼빈은 헬라어 사본(寫本)의 오류를 지적할 정도로 헬라어 지식이 뛰어났다. 순수한 본문을 재구성하기 위해 본문비평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신약 기자가 구약성경을 해석했을 때에도 칼빈은 신약 기자의 해석대로 해석하지 않고 구약 본문의 문맥대로 해석했다. 그러나 칼빈에게는 성령이 성경 전체의 저자(著者)였다. 따라서 저급한 사상이 성경에 나타나면 성령께서 당시의 저급한 역사나 문화의 상황에 맞추어 그렇게 하신 것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계시는 하나님의 큰 흐름을 이루며 서로 연결되어 전진(前進)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계시(啓示)에 대한 이 같은 철학을 근거로 문자적 해석을 할 수 있었다.
③ 올바른 율법 이해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세의 올바른 해석자로 생각했다. 모세 율법에 새로운 것을 더한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율법해석을 제거한 것뿐이라고 보았다. 율법은 결코 폐기(廢棄)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완전히 유효(有效)하다고 보았다.
④ 하나의 언약
칼빈은 성경에는 ‘오직 하나의 언약’ 밖에 없다고 보았다. 언약은 하나이지만 단지 그 언약의 집행(執行)에 있어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았다. 즉 다음과 같이 메시아 예언의 역사적 단일성(單一性)을 주장했다.
- 구약의 유대인들도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처럼 영생의 소망이 있었다.
- 이들의 언약은 그들이 행한 행위(行爲)가 아니라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恩惠)와 자비(慈悲)하심에 근거하였다.
- 구약의 성도들 역시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소유하고 알고 있었다.
⑤ 성령님의 조명
성경해석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내적인 증거를 따라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칼빈의 성경해석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 성경해석의 명료성(明瞭性)과 간결성(簡潔性)을 중요시했다.
- 저자의 정확한 의도(意圖)를 끊임없이 찾으려 했다.
- 성경을 역사적 문맥(文脈)에 의존하여 이해하려 했다.
- 원래적(原來的)이고 문법적인 의미가 진정한 의미라고 보았다.
- 문예적(文藝的) 문맥(文脈, Literary Context)도 중시했다.
- 여자적(如字的) 성경의 언어 안에 담겨져 있는 의미도 추구했다. 칼빈은 “계명과 금지 조항들은 언제나 단어들에 표현된 것 이상을 담고 있다.” 고 했다.
- 비유적 표현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므로 칼빈의 문자적 해석은 경직된 문자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 구약과 신약과의 관계를 연관 지어 보았다. 구약과 신약을 통일시키는 것은 하나의 ‘은혜언약’으로 보았다. 즉 구약은 옛 시대의 ‘은혜언약’의 형태요 신약은 새 시대에 나타난 ‘은혜언약’의 형태로 보고 신약과 구약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것은 바로 ‘언약’이라고 보았다.
- 루터와 달리 칼빈은 율법의 제3의 용법을 인정했다. 율법은 정죄와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하는 기능뿐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하나님의 종은 율법에 대한 묵상을 통해 순종의 삶으로 나아가고, 율법 안에서 강건케 되며, 위험한 죄악의 길에서 돌이킬 수 있게 해 준다.”고 했다.
-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차이점들에 대한 인정은 기존의 신구약 통일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차이점들은 본질에 관련되어 있다기보다는 시여(施與)의 방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신구약의 대조 점은 이런 것들이다. 지상의 유익-천상의 유익, 그림자-실체, 문자-영, 종-자유, 이스라엘- 열방 등이다. 이것은 형식상의 차이일 뿐 내용은 하나라고 보았다.
- 구약 속의 그리스도에 대해 이해하기 – 구약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숨겨진 자나 부재(不在)한 자로 소유했는데 여기서 부재하다는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능력이나 은혜가 부재한 것이 아니라 아직 육체 가운데 나타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부재하셨다는 뜻이라고 했다.
- 성경 전체의 문맥 속에서 이해하기 – 칼빈은 개개의 구절을 성경의 전반적인 취지 내에서 이해하려고 전력했다.
- 하나님 중심 구약해석 – 칼빈은 그리스도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으로 구약을 해석했다. 즉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으로 구약을 해석했다. 그 때문에 점진적 계 시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풍성함을 아는 데 목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구약 이해의 안목으로 다음을 제시했다.
첫째, 영원한 로고스(말씀) – 그리스도는 구약에도 여러 형태로 계셨다. 여호와의 사자, 불꽃 속의 사자, 구름 기둥과 불기둥 등이다. 고로 구약 성도들도 그리스도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둘째, 약속과 성취의 도식 – 구약은 약속(約束) 신약은 성취(成就)로 보았다. 즉 하나의 큰 구원사건이 구약에서 출발 신약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구약과 신약을 하나의 구원사건으로 보았다.
셋째, 모형론 – 이것도 구약과 신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방편이었다. 통일성 속에서 구약에 계셨던 그리스도는 모형(模型)으로서 구약에도 계셨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칼빈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 해석학의 중요한 요소들의 기초를 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 종교개혁이 성경해석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 >
- 종교개혁자들이 교회의 성경해석 전통에 구애됨 없이 본문 그 자체의 뜻을 가장 중시하며 단순하게 문법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했다.
-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을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해방시켜 성경이 교회에서 비판적 역할을 감당하도록 했다.
- 외경(外經)과 정경(正經)이 동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 성경의 원래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원어 연구를 장려했다.
- 개혁파 신학자들이 성경해석에서 ‘오직 성경으로’를 외친 것은 어떤 권위도 성경의 권위를 넘을 수 없다는 것으로 주장한 것이다. 이 점은 개혁주의 전통에 서 있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신앙의 유산이다.(*) (원) 글쓴 이 / 김영익 교수(역사신학, 전 총신교수) 편집 / 정은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