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론

성찬을 통해 일어난 기적

8년 전 여러 이유로 인해 우리교회(Boston Square Church)는 여섯 가정만 남게 되었다. 어떤 교회든 한 가정을 잃게 되면 전 교인이 영향을 받지만 특별히 우리교회 같은 사이즈에서는 한 가정이 떠난다는 것은 곧 주일학교 선생님이나 주방 봉사자나 음향기기를 다루는 분 또는 카운실(CRC 교단 교회운영 체제) 멤버로 섬기던 분이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유리교회 미래의 존폐(存廢)에 의구심마저 들게 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교회 카운실은 “다른 방도가 없을까?” 논의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성도들은 매 주일 예배 후 지혜와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하기 위해 모였다. 기도와 대화를 시작한 지 일 년이 되었을 때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이 주어졌음을 깨달았다. 교회가 중대 변화를 하든지 아니면 문을 닫던지 두 길 중 한 길을 택해야만 했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함께 기도하고 이야기하고 걱정하며 애통해하는 중에 비전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두 개의 기둥 곧 ‘열정적인 커뮤니티’와 ‘영적인 변화’를 간구하기로 결정했다.

‘열정적인 커뮤니티’는 이미 우리가 잘하고 있었다. 우리는 친절하고 그리스도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헌신하는 환영하는 교회이다. ‘영적인 변화’에 있어서는 그다지 강하지 못했다. 우리는 교회건강 설문조사를 했었는데 이 부분은 우리교회 은사 중 거의 바닥에 가까운 순위가 나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분을 강화하기 원했다. 그리고 이 변화로 인해 우리가 선교 즉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게 될 것이라고 우리가 아주 넓게 정의한 그 선교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의 이 목표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우리가 서로 이야기하면 할수록 매주 성만찬(聖晩餐)을 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성만찬은 다른 것이 할 수 없는 두 개의 기둥을 함께 가능하게 했다. 성만찬은 커뮤니티(교회)를 세운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서 선언하듯 “성령을 통해 (중략) 우리가 더욱 그리스도의 복된 몸에 연합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을지라도 우리는 주님의 살 중의 살이며 주님의 뼈 중의 뼈가 됩니다.”(제76문)

성만찬은 또 영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이렇게 가르친다. “분명하게 나에게 주어진 (중략) 주님의 떡과 잔을 (중략)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몸과 흘리신 피로 내가 영생을 살도록 내 영혼을 새롭게 하시며 양육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제75문) 목사로서 우리는 경험으로 이것을 알았다. 우리 둘은 모두 매주 마다 채플 시간에 성만찬을 하는 프린스턴신학교에 다녔다. 우리는 캠퍼스의 다른 어떤 활동보다도 매주 드리는 성만찬 예배가 더욱 영적으로 영혼을 조명했고 한 공동체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의 토대가 되었다.    

마침내 우리는 특별한 교회 회의를 소집했다. 선택사항은 “교회 문을 닫느냐? 또는 매주 성만찬이 포함된 비전을 승인하느냐?”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들은 매주 성만찬을 하기로 했다. 아무도 앞으로의 일을 예상하지 못했고 우리는 곧바로 많은 도전에 직면했다. 그러나 성만찬을 매주하는 것은 새로운 긴박한 문제들을 야기했다. 일부 성도들은 매주 성만찬을 하면 성만찬의 의미가 퇴색(退色) 될 것을 우려했다. 어떤 성도들은 우리 예배가 너무 길어질 것을 걱정했다. 그리고 만약 믿지 않는 사람이 교회를 방문했을 때 우리와 함께 성만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면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끼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성만찬은 어떻게 할까? 그리고 논리적인 문제들도 있었다. 우리가 원래 하던 대로 자리에 앉아서 드릴까 아니면 테이블 쪽으로 우리가 나올까? 개인용 컵으로 할까 아니면 일반 컵에 빵을 적실까? 빵을 미리 썰어둘까 아니면 덩어리에서 뜯을까? 만약 우리가 앞으로 나온다면 한 줄로 나왔다 들어갈까 아니면 함께 원을 그리면서 할까? 우리는 당회에서 이런 신학적이고 실천적인 질문들을 놓고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고 그에 따른 여러 방법들을 시험해 보았다.

마침내 우리는 가장 잘 적절해 보이는 패턴으로 결정했다. 대부분의 주일 사람들은 성만찬을 위해서 앞으로 나오고 예배당 앞쪽에 차려진 테이블을 통해 진행된다. 거기에 목사나 장로가 각 사람들에게 한 덩어리에서 조금씩 빵을 떼어 나눠주고 사람들은 그 빵을 컵에 담긴 포도즙이나 와인에 담근다.(우리는 또한 글루텐에 민감한 사람들을 위해 글루텐이 없는 빵과 별도의 컵을 놓은 작은 테이블을 마련해 놓았다.) 장로 중 한 명은 앞으로 나올 수 없는 사람이나 자리에 앉아 있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다.

세례 받은 아이들은 어린이 예배가 끝나고 부모들의 결정 하에 성만찬을 하도록 환영한다.(참고, 개혁교회는 유아세례 자라도 입교문답을 하기까지 성찬에 참여시키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들의 성만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짧은 강의를 만들었다. 그리고 누구라도 어른 아이 중에 앞으로 나아와 축복을 받는 그 요소들에 대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을 격려했다.

매주 성만찬을 나누면서 절기에 따라 성만찬 전례문을 바꿀 수 있다. 예를 들면 강림절에는 우리 미래를 미리 맛보는 차원의 성만찬에 집중한다. 사순절에는 보다 참회에 집중하며 평소에는 우리의 믿음이 풍성해지는 것에 강조점을 둔다. 절기를 위해 매주 같은 전례문을 반복하는 것은 다양한 주제들이 우리 영혼에 뿌리를 내리도록 했다.

다른 교회 변화는 절대 쉽지 않다. 투표 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신앙고백을 하지 않은 어린이들을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결정한 후 몇 명이 더 떠났다. 우리는 전체 예산의 25%를 줄여야 했고 적어도 3년 동안은 때마다 나가는 규모가 큰 지출로 인해 운영비용만 충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전혀 딴 교회가 되었다. 현재 멤버의 거의 절반이 변화하기로 투표한 후에 들어왔다. 우리는 이 도시의 기준에 비하면 여전히 작고 예산은 빈약하다. 그러나 우리교회 안에 새로운 생명이 있고 활력이 있다. 오래된 멤버들은 변화에 관대했고 일부 매주 성만찬을 하는 것에 대해 확신하지 못 했던 성도들은 지금 이것이 없는 교회에 다니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매주 우리가 행하는 성만찬이 신비한 방법으로  우리를 주 안에서 하나 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또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교육 효과가 삶으로 나타나는 것을 본다. 하나님의 사랑을 매주 빵과 포도즙이라는 만질 수 있는 경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그리고 서로를 연결시키고 있으며 세상 사역을 위해 우리를 양육하고 있다. 성도들은 지금 그들의 믿음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자라는지 이야기한다. 매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사는 우리의 성찬이 점점 더 예배와 영적인 삶과 우리 실제 대화의 주제가 되고 있다.  

이전에 우리가 끼리끼리 좋아했던 것에 비해 지금은 공동체 의식과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의 짐을 나누는 인식이 더욱 깊어졌다. 성도들이 매주 성찬상에 나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유대감은 깊어지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게 되다.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을 매주 찢어지는 빵과 마시는 포도즙으로 경험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서로를 섬기고 희생적으로 베풀도록 박차를 가하게 만든다.

매주 드리는 성만찬은 또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더욱 현실적이고 실질적으로 만들어 준다. 우리의 믿음은 말씀이상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말씀으로만이 아니라 떡과 포도주로 받음에 따라 믿음은 물리적인 실재인 것이다.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테이블의 은혜를 찾는 경험을 공유하는 것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 어느 때 보다 성도들이 매일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본다. 이웃과 낯선 이들에게 다가가고 관대하게 베풀며 자신들의 집을 다른 사람들에게 개방한다.

우리는 더욱 ‘보내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 도시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에 참여하는 성도들과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사람들을 선교사로 학생으로 그리고 선생님으로 전 세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장단기 여행을 보내고 있다. 우리교회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새로운 삶은 단지 우리가 매주 성만찬을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령님께서 우리교회에서 일하시는 중심에 있어왔다. “이것으로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은 성만찬 테이블에 새겨 넣는 것 이상이다. 이것은 공동체가 영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토대이다.(*) 글쓴 이  / By Elizabeth and Jay Vander Haagen(Elizabeth와 Jay Vander는 미시간 주 Grand Rapids에 있는 CRC 소속 Boston Square Church에서 공동으로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들이다.)

출처  https://docs.wixstatic.com/ugd/23a9cd_50a87cbf299548e3b7820ac2c1dcb165.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