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단상
2018년 성탄절 단상 성육신을 깨닫는 것이 중요

성탄절은 성자(聖子) 하나님이 인성(人性)을 취하시어 이 세상에 구속사적(救贖史的)으로 임하신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이 일년 중 정확히 어느 날에 태어나셨는지 알지 못한다.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쳐주는 것만 100%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성탄절을 보내면서 우리 주님께서 바로 이 날 태어나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 날에 주님의 성탄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
로마시대 태양신을 기념하던 이교적(異敎的) 절기에 태양이 신(神)이 아니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이시고 영적인 의미로 진정한 태양이 되심을 증거 하면서 교회가 지키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의 크리스마스(Christ-mas)의 기원(紀元)이 되었다.
크리스마스(Christ-mas)라는 말은 그리스도께 예배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크리스마스는 이교(異敎) 국가였던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토착화(土着化) 되는 과정에서 생긴 절기이다. 이전에 태양신에게 제사를 드리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난 후에는 더 이상 태양신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敬拜)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성탄절 크리스마스가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개혁 때부터 개신교도들 특히 청교도(淸敎徒)들은 이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로마 가톨릭교회의 미신적(迷信的)인 관습을 일소(一宵)하는 의미에서 성탄절을 교회 절기로 지키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날에 어떤 적극적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청교도들의 이런 태도를 존중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 날 우리 주님의 탄생 사실 자체를 기념하는 일을 비판하거나 제거해야 한다고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주께서 언제 탄생하셨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 주님이 12월 25이나 24일 저녁에 태어나셨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히 하면서 우리 주님의 성육신(成肉身)을 깊이 있게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意味)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르게 생각되는 성탄절이란 ‘바로 이 날’ 우리 주께서 탄생하셨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성육신의 사실’을 생각하며 기념하는 것이다. 즉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주님의 성육신(成肉身)의 참된 의미를 바르게 생각하며 기념하는 데 있는 것이다.
우리의 죄(罪)가 너무나 심각하였기에 주님께서 성육신하여 대리속죄(代理贖罪)의 죽음으로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을 정도이며 이같이 심각한 죄 문제 때문에 주께서 성육신하셨다는 복음의 본질적인 사실을 주의 깊게 생각하게 된다. 이런 성육신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성탄절이라면 참으로 무의미한 날이다.
또한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런 기회에 자연스럽게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 날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이 될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 진정한 의미를 모른 체 의미 없이 이 절기를 보내는 데에 익숙해졌지만 이 기회를 통해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성탄절 즈음에 믿지 않는 이웃과 친구들을 교회당으로 초대하여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서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또한 어떻게 이 기회를 사용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탄절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절기로 의미 있게 지키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 성도로서 그리스도의 오심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성탄의 참된 의미를 전하는 기회로 삼는다.
-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참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하여 보여줄 기회가 되게 한다.
우리가 또 다시 맞이하는 2018년 이 성탄의 절기에 성육신(成肉身) 하신 성자(聖子)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 죄를 대속(代贖)하시려 독생자를 아낌없이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하면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의 빛을 온 세상에 비추는 성탄절이 되기를 소원한다.(*) 글쓴 이 / 이승구 교수(합동신학원대학교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