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신약성경의 예배

예배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기독교의 예배는 형식은 다르지만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사람(유대인)이 드렸던 제사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구약의 예배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성도를 받으시고 성도가 하나님께 소속되어 있다는 언약(言約)의 표시였다.  

신약시대의 기독교도 이 정신을 답습하면서 언약의 표현인 예배가 언제나 하나님을 중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 한다.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으로부터 성도에게 오는 요소와 성도로부터 하나님께 가는 요소로 구성된다. 이런 예배의 두 요소를 가장 간명하게 알려주는 것이 사도행전 2:42이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 쓰니라.”

초기 기독교의 예배 현장을 보여주는 이 구절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선두에 세운다. 예배에서 가르침이 첫째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사도들의 가르침이란 (구약)성경을 해설하여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설교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후에 사도행전에 여러 차례 나오는 사도들의 설교는 이에 대한 좋은 예를 보여준다.(베드로의 설교 행 15:7-11, 바울의 설교 행 20:18-35)    

이것은 예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성도에게 오는 요소(要素)이다. 반면에이 구절은 맨 끝에 기도를 언급한다. 기도는 예배에서 성도로부터 하나님께 가는 요소이다. 기도는 성도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하나님께 아뢰면서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헤롯과 빌라도의 박해에 직면한 교회가 하나님께 소리 높여 드린 기도는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 여겨진다.(행 4:24-30)

이 구절에서 특이한 것은 예배와 관련 교제와 떡을 뗌을 말한다는 것이다. 떡을 뗌은 성찬을 의미하는 것이 맞다. 성찬은 수직적으로는 지체인 성도들이 몸이신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것을 표현하며(고전 10:16), 수평적으로는 지체인 성도들이 서로 참여하는 것을 표현한다.(고전 10:17) 

성도의 교제(코이노니 아)는 성도 사이에 나누는 것(행 2:44) 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호의를 베푸는 것(행 2:47)을 말한다. 교제는 성도를 향한 교회 내향성과 세상을 향한 교회 외향성을 가진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성찬은 예배의 영적 강화이며 교제는 예배의 사회적 확장이다. 여기에 더해진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이다.(행 2:47)          

초기 기독교는 처음부터 예배 시 찬송의 중요성을 잘 인식했다. 그래서 찬송의 제사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찬송을 가리켜 입술의 열매라고 불렀다.(히 13:15) 또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엡 5:19, 골 3:16, 참조, 고전 14:26)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는 데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신약의 찬송에서 곡조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멀지만 확실히 중요한 것은 찬송의 가사였다. 대표적인 찬송의 가사로 ‘그리스도 찬양 시’ 같은 것을 들 수 있는데(빌 2:6-11) 이것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는 너무나도 정교하고 심오한 신앙고백을 담고 있다.

정리하면 신약의 예배에서 가르침(설교)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도에게 오는 요소이며 기도와 찬송은 성도로부터 하나님께 올라가는 요소이다.  하나님은 설교를 통해 성도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신다. 성도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합치하며 찬송을 통해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한다. 그리고 설교든 기도든 찬송이든 성경이 가르쳐주는 모범을 따라 형식에는 짜임새를 갖추고 내용에는 올바름을 갖추어야 한다.

이 같은 성경이 가르치는 신약의 예배와 오늘날의 예배를 비교해 볼 때 오늘날의 예배에는 수없는 문제점이 발견된다. 가장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는 예배의 중심점(中心點)이 하나님에게서 회중(會衆)에 게로 이동한 것이다. 회중 중심의 예배는 필연적으로 성도가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현장으로 전락한다.    

그러다보면 예배는 자연스럽게 쇼(show)가 된다. 여기에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눈 요기(妖氣)가 많아지고 장기(長技)를 뽐내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설교는 설교자가 자기를 자랑하는 시간이 되어버리고, 기도는 기도 자가 불만을 성토하거나 인간적이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통로가 되고, 찬송은 성도의 정신적 심적 스트레스(stress)를 풀며 자아도취를 위한 자기만족의 수단이 된다. 다시 말해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 중심의 예배와는 거리가 멀고 전혀 관계가 없는 예배로 변질(變質)되어 버렸다.

정말로 기독교가 예배를 가장 중요한 신앙의 요소로 여긴다면 예배가 하나님께로부터 인간에게 오는 요소와 인간으로부터 하나님께로 가는 요소가 위계질서(位階秩序)와 균형(均衡)이 잡혀야함은 물론이고 예배의 이 두 방향성에서 중심은 어떤 예배이든 언제나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

설교자가 자기의 설교에 성취감을 느끼고, 기도 자가 공간에 울려 퍼지는 제 목소리에 속이 시원해지고, 회중이 자기가 부르는 노래 속에 함몰(陷沒)되는 순간 그것은 이미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경적인 기독교의 예배가 아니라 단지 타 종교의 예배에서 볼 수 있는 인간 놀음에 불과하게 된다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글쓴 이 / 조병수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신학, 전 총장, 총신대학교 신학과 B.A.,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M.Div., 독일 Westfälische-Wilhelms-Universität in Munster Dr.theol.) 학위논문, Mehr als ein Prophet : Eine Studie Zum Bild Johannes des Taufers, Dr.theol. di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