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성경해석에서의 이성과 계시의 역할

시작하는 말
신학에 있어 이성(理性)과 계시(啓示)의 역할 논쟁은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354-430)는 이성보다 신앙을 우위에 둠으로 그는 “알기 위해서 믿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반해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는 신앙과 이성의 영역을 구분하였고 이성은 종교적인 진리를 얻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봄으로써 신앙과 지식은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아퀴나스의 입장은 근대사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본 논술에서는 먼저 이성을 중심으로 한 근대정신을 비판하고 평가한 후 신학에서의 이성과 계시의 역할에 대해서 논함으로 바른신학을 위한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1. 근대정신 비판
근대정신(近代精神)이란 자연과학의 발달을 배경으로 합리주의적 비판정신에 입각하여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인 여러 전통과 인습의 속박을 타파하기 위한 합리적인 사상 즉 계몽주의(啓蒙主義, Enlightenment) 철학을 의미한다.
합리주의(合理主義, rationalism)는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이성(理性)으로 모든 진리를 증명하고자 하며 이성의 능력을 강조함으로 보편적이고 타당한 지식만을 진리(眞理)로 인정했다. 또 경험주의(經驗主義, empiricism)의 창시자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은 귀납법을 사용하여 관찰과 실험을 통해서 증명되어진 것만 진리로 인정하였다.
이러한 합리주의(또는 이성주의)와 경험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계몽주의의 사상은 이신론(理神論, deism)이라는 합리주의적 신학사상 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신론이란 계시를 부정하거나 그 역할을 현저히 후퇴시켜서 기독교의 신앙 내용을 오로지 이성적인 진리에 한정시킨 합리주의 신학의 종교관이다. 이신론자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은 창조 이후 더 이상 역사 하시지 않는다는 전제조건하에서 인간이 역사의 주체가 되고 있으며 인간이 모든 우주를 다 알 수 있고 심지어 하나님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이성이 진리를 발견하는 최고의 척도라고 주장하는 계몽주의사상이 교회로 흘러들면서 신(新) 신학(神學)이 탄생하게 되었다. 신(新) 신학은 이성과 계시의 조화를 깨뜨렸다. 즉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계시에 근거하고 있는 성경의 교리(敎理, doctrine)를 무가치한 것으로 비평하였다. 신(新) 신학자들은 오직 이성을 강조한 철학, 과학, 학식을 기초로 하여 초자연적인 요소를 무시했고 기적을 믿지 않았다. 초자연의 기적은 경험과 관찰을 중시하는 과학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것을 성경조차도 과학적으로 해석하고 이성적으로 설명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세계를 배제한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고 성경 계시를 부인함으로써 정통신학의 교리에 전면적인 비판을 가하였다.
이처럼 인간 이성 중심주의 자들이 이성을 절대시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된 인간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노력만 하면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또한 인간이 완전한 선(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선(善)에 이를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한 계시에 의해서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유한한 존재임을 알아야 했던 것이다.
인간은 타락 후 자유의지(自由意志)와 이성(理性)의 기능이 타락하여 선악(善惡)을 바르게 구별할 능력을 상실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사고(思考)와 판단(判斷)을 ‘하나님의 계시의 빛’ 즉 성경에 의해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초자연적인 하나님은 이성이나 추리(推理)나 논증에 의한 지식으로는 깨달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초월적인 하나님의 계시는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신학에서의 계시와 이성의 역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 신학에서의 계시와 이성의 역할
신학은 하나님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신학의 대상은 초월해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신학의 원리는 오직 계시이다. 그런데 신학 또한 학문이기 때문에 과학적 방법론 즉 이성의 합리화와 논리화에 의존해야 한다. 신학과정에서 계시를 인식하는 기관이 이성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계시와 이성의 역할을 살펴보자.
(1) 먼저 계시에 대해서 살펴보자.
계시(啓示, revelation)란 하나님이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하나님 자신과 자신의 뜻을 인간에게 나타내 보여주시는 것이다. 성경 계시는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통해 구원역사를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나타내신 것이다. 따라서 계시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능동성 그리고 주도권이 언제나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계시가 하나님의 권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참된 신앙은 언제나 이 계시에 순종을 요구한다.
(2) 다음은 이성에 대해 생각 해 보자.
그러면 신학에서의 이성의 역할은 무엇인가? 초월적인 계시는 유한한 인간에게 전달되어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성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이성의 도움으로 우리의 신앙을 객관적으로 또 지적으로 체계화한 것이 성경 교리이다. 그러므로 신학을 하는 데 있어 이성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계시를 인지하는 기관으로서 계시를 이해하고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이성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성은 계시된 내용을 그대로 전달해야지 그렇지 않고 인식(認識)을 위해 나름대로 계시를 해석하면 안 된다. 이렇게 할 경우 도구인 이성이 내용인 계시를 제한하게 되는 것이다. 이성은 계시를 인식하는 도구이지 계시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성이 계시를 해석할 때 그 기준은 철저히 성경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최고의 권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것으로 증명될 수가 없고 성경이 성경 그 자체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영선 목사는 성경해석에 있어서 계시적 사고를 하도록 주장한다. “계시적 사고(계시의존사색)는 계시된 내용을 일단 내용으로 감수해서, 이성의 방법으로 합리성을 추구하며 인식을 하고, 논리를 전개해 나가기는 하지만 그 내용을 이해해가는 데 상호 모순되거나 충돌해 보여도 내용을 가감하지 않으며, 성경이 가라는 데까지 가고 멈추라는 곳에서 멈추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이성적 차원에서 논리성에 상충이 생겨도 내용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 계시적 사고라면, 이성적 사고는 이성이 갖는 합리성을 위해서라면 내용을 가감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이상을 통해 볼 때 이성 중심의 신학의 문제는 신학의 원리를 계시가 아니라 이성으로 보는 것이다. 신학도 학문이니 이성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성의 한계를 무시하고 있다. 이성은 그 자체의 폐쇄성의 체계(closed system) 즉 합리성의 체계 때문에 인과(因果)의 법칙을 벗어난 경험할 수 없는 초월에 대해서는 판단 기준이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3) 참된 신학을 위한 길
첫째, 이성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참된 신학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이성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성은 학문의 방법으로 필요한 것이지 이성 자체가 신학의 원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를 인간 이성의 합리성을 뛰어넘어서라도 수용하는 개방성의 체계(open system) 즉 ‘계시의존적사고’(啓示依存的思考)가 절대로 필요하다.
둘째, 우리는 일관된 성경해석의 시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계시를 이성을 통해 해석하되 이성으로 계시를 제한하지 않고 성경을 기초로 계시를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시를 해석하는 방법이 성경에 나와 있다고 본다. 성경의 말씀은 신구약 성경이 다 연관성이 있어서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사 34 :16) 따라서 계시를 해석할 때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데 멈추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프란시스 쉐퍼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경은 스스로 성경이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성경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문자를 빌려 전달하는 절대적인 진리라고 말한다.”
셋째, 문자로 쓰여진 성경의 바른 해석을 위해서는 성경의 저자인 성령의 조명이 절대 필요하다.
하나님의 계시는 초(超) 이성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성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는 그 말씀을 진리로 인정하고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하며 성령님의 조명에 의존하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 글쓴 이 / 아브라함 구(프랑스 선교사) 참고 도서 : 김영재, 기독교교회사 (수원: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2002), 586. 박영선, 평신도를 위한 신학입문 (엠마오,1992), 56. 프란시스 쉐퍼, 이성에서의 도피, 김영재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6), 116.
“인간의 마음은 우상 제조공장이다.”
John Calvin
The Human heart is an idol factory.
John Calv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