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연구(11) 유기와 하나님의 주권(1)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연구(11) 유기와 하나님의 주권(1)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롬 11:22)

앞서 성부 하나님의 주권(主權)과 구원을 논하면서 성부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택하시고 이들이 자기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예정(豫定)하셨음을 보여주는 성경 구절 일곱 개를 살펴보았다.    

지적인 독자라면 당연히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 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하나님은 불(不) 택자들을 지나치시고 이들이 자기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시며, 마지막에 이들을 불 못에 던지시는데 이들이 하나님의 길을 거부했고 그분이 보내신 구주를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의 절반일 뿐이다. 육신의 생각에 아주 거스리는 나머지 절반은 무시하거나 거부를 한다. 하나님의 주권에서 이 부분은 엄청나게 중요하므로 대충 흩고 넘어갈 부분이 아니다. 이 부분을 자세히 논의할 필요를 느낀다. 우리가 알듯이 우리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이 – 자신이 칼빈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마저도 – ‘유기(예정된 영벌)교리’를 무시하고 거부하기 때문이며 ‘유기교리’야말로 가장 격한 논쟁을 불러 일으킬만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리낌 없이 인정하듯이 하나님의 주권 교리에서 ‘유기교리’는 매우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부분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유기교리’를 거부하는 것 아니다. 문제는 성경이 하나님이 취하신 행동의 모든 이유와 근거를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 데까지만 성경을 믿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들이 자신의 제한된 지적 능력이라는 작은 저울로 측정 가능한 것만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이제 살펴보려는 핵심이 이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이 영벌(永罰)에 이르도록 미리 작정하셨는가?” 두 가지는 확실하다.

  • 많은 사람이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을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 각 사람은 자기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고 뿌린 대로 거두며, 결과적으로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다.(롬 8:3, KJV, 영벌은 공의롭다)

(1) 하나님은 불택자가 자기 길을 선택하도록 작정 

이제 이것을 증명해 보겠다. 앞장에서 구원에 이르도록 선택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선택된 사람들이 있다면 성경이 이것을 말하지는 않지만 선택되지 못한 사람들도 틀림없이 있다. 이것은 필연적(必然的) 추론(推論)이다.

선택(選擇)한다는 말은 선택되는 대상이 있으면 선택되지 못하는 대상도 있다는 뜻이다. 사실 모든 선택은 이 같은 거부를 전제한다. 제외(除外, 내버려두기)가 없으면 진정한 선택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구원에 이르도록 택하신 사람들이 있다.(살후 2:13 참조) 그러므로 구원에 이르도록  선택되지 못한 사람들도 틀림없이 있다.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자들이 있다.(요 6:37 참조)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시지 않은 자들도 틀림없이 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 있다.(계 21:27 참조) 그러므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도 틀림없이 있다. 이것은 필연적인 추론이기에 이제 이것을 자세히 증명해 보겠다.          

우리가 알듯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자들과 그러지 않을 자들을 이미 창세 전에 확실하게 아셨다. 하나님은 누가 그리스도를 거부할지 알면서도 이들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들이 필연적으로 영벌에 이르도록 이들을 창조하신 게 아닌가? 아니다. 하나님은 누가 그리스도를 거부할지 미리 아셨으나 이들이 영벌에 이르도록 작정하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이것은 쟁점(爭點)이 되는 진짜 문제를 피해 간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분명한 이유가 있고 개개인을 창조하신 구체적인 목적이 있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의 영원한 운명에서 보면 하나님은 한 영혼이 영원을 천국에서 보내거나 불 못에서 보내도록 목적하셨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창조하실 때 그가 구주를 멸시하고 거부할 것을 미리 아시면서도 그를 창조하셨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영원히 잃어버린 자가 되도록 계획하고 작정하신 게 분명하다.

다시 말하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하나님이 이 선물을 일부에게만 주시기로 목적하셨다면 이것은 이 선물을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주지 않기로 목적하셨다는 뜻이기도 하다. 믿음이 없으면 구원도 없다.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그러므로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지 않기로 하신 자들이 있다면 이들이 영벌에 이르도록 하나님이 작정하셨기 때문인 게 틀림없다.

우리는 이런 결론을 피할 길이 없다. 그뿐 아니라 역사도 이러한 결론을 확증해 준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절대다수 인간에게는 은혜의 외적 방편조차 없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고 하나님의 뜻이 담긴 기록된 계시도 없었다.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은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자신을 특별히 계시하셨다.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행 14:16)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 이스라엘만을 알았나니”(암 3:2)

결과적으로 다른 모든 민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고 따라서 믿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 10:17 참고)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도 그분이 자신들을 받아들이게 하는 방법도 알지 못했다.

만약 하나님이 이들의 구원을 원하셨다면 구원의 방편(方便)을 이들에게 주시지 않았겠는가? 이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전부를 이들에게 주시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가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공의(公義)와 자비가 모순되지 않게 하시면서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은혜의 방편을 허락하시지 않고 그들을 큰 어둠과 불신앙에 가둬두실 수 있다.(선조들의 죄, 그 이전 세대들의 죄 때문에) 

그렇다면 일부나 다수를 은혜 자체로부터 은혜와 연관된 영생으로부터 차단하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양립(兩立)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즉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하여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다. – 편집자) 어쨌든 그분은 주님이시며 수단이 지향하는 목적과 목적을 지향하는 수단을 주권적으로 공급하시는 분이다.    

이 시대에 이 나라에도 -복음화되지 않은 수많은 이교도를 제외하더라도- 사방에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들이 즐비한 데도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하심을 모른 채 죽는 영혼이 많은 게 분명하지 않은가! 사실 구원의 메시지가 가까이 있는데도 그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많은 아이가 그리스도인은 위선자며 목사들은 속 좁고 편협하다고 가르치는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다. 또 어떤 아이들은 복음주의 기독교를 치명적인 이단으로 여기고 성경을 매우 위험한 책으로 여기는 교파에서 자라고 어떤 아이들은 현대기독교 이단에서 자라나 복음화되지 않은 이교도와 다를 바 없이 그리스도의 진정한 복음을 알지 못한다.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게 옳지 않겠는가? 만일 하나님이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셨다면 얼마든지 베푸시지 않았겠는가? 시간 속에서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시지 않는 게 하나님의 뜻이었다면 이것은 틀림없이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뜻이었다. 하나님 자신이 그러하시듯이 하나님의 뜻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기 때문이다.

잊지 말라! 하나님은 자신이 영원 전에 결정하신 일만 시간 속에서 하신다. 또는 고전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섭리(攝理)는 그분의 작정의 현현(顯顯)일 뿐이다. 하나님의 뜻이 그분의 모든 행위와 일의 유일한 원인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고 믿지 않는 상태로 내버려 두시는 것이 하나님의 결정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영원한 결정이었으며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창세 전에 버리셨다고 우리가 결론을 내려도 안전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를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장차 일어날 모든 일을 영원 전(前) 자신 뜻에서 나온 가장 지혜롭고 거룩한 계획을 통해 불변하게 작정해 놓으셨다.”

사려 깊고 신중한 학자요 저술가였던 F. W. 그란트(Grant, 1834-1902)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장차 일어날 모든 일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 작정해 놓으셨다는 것은 완전히 신적(神的)으로 참되다.” 이러한 진술들이 참이라면 영벌(永罰) 교리도 참이지 않겠는가! 인간의 삶에 매일 일어나는 한 가지가 무엇인가? 매일 사람이 죽어 이 세상을 떠나 소망 없는 영원으로 고통과 재앙의 영원으로 옮겨간다.

우리가 말했듯이 하나님이 장차 일어날 모든 일을 미리 작정해 놓으셨다면 수많은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채 이생을 떠나 불 못에서 영원히 고통당하는 것은 그분 계획 일부가 틀림없다. 이것을 일반적 원리로 인정한다면 구체적 적용은 필연적이지 않은가? 이러한 사고 논리에 답해 독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이것은 모두 단순화시킨 추론일 뿐이다. 분명히 논리적이나 추론으로 얻은 결론일 뿐이다.”

좋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이 중대한 주제에 관해 아주 분명하고 확실히 가르치는 성경 구절을 살펴보겠다. 이 구절들은 오해하기에는 너무 명확하고 회피하기에는 너무 강하다. 놀라운 사실은 지금까지 많은 선한 사람이 부정할 수 없는 결론들을 부정했다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과 싸운 지가 오랫동안이라. 기브온 주민 히위 족속 외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고 이스라엘 자손이 싸워서 다 점령하였으니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이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을 진멸하여 바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을 멸하려 하심이었더라.”(수 11:18-20)

무엇이 이보다 분명하겠는가?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고 이들을 완전히 멸하고 이들로 ‘은혜 입지 못하게’ 하셨다. 이들은 악하고 부도덕하며 우상을 숭배했다. 그렇더라도 이들이 다른 족속들보다 존 패턴(John G. Paton, 1824-1907, 뉴헤브리디스 제도의 선교사)의 선교를 통해 구원받은 식인종(食人種)들보다 나빴는가? 확신컨대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명하여 가나안 족속들에게 자신의 율법과 참 하나님께 대한 제사를 가르치게 하지 않으셨는가?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님은 이들이 멸망에 이르도록 영원 전에 계획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해 지으셨으니 정녕 악한 날을 위하여 지으신 악인까지라.”(잠 16:4, 한글 킹제임스) 본서의 모든 독자는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셨음을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만물을 지으셨다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더라도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우리의 행복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지으셨다고 거듭 확인해 준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계 4:11)       

그러나 잠언 16:4은 여기서 훨씬 더 나아간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악한 날을 위해 악인을 지으셨으며, 이것이 하나님이 이들을 지으신 목적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한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그렇다면 왜 그런가? 로마서 9:17은 이렇게 말씀한다.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악인을 지으신 목적이 있다. 가장 거친 배반자와 가장 강한 원수를 정복하는 일이 자신에게는 얼마나 쉬운지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시기 위해서다. “그때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 하리라.”(마 7:23)

앞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성경에서 ‘알다’와 ‘미리 아심’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에게 적용되면 단지 그분의 예지(豫知)가 아니라 그분의 은혜와 인정(認定)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암 3:2)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내가 오직 너희에게만 은혜를 베풀었다.”는 뜻이다. 로마서 11:2은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으로 선택하신 백성(이스라엘)을 마지막까지 버리지 않으셨다.”라는 뜻이다.(신 7:8 참조)

우리는 마태복음 7:23을 같은 방법으로 이해한다. 가능한 방법은 이것뿐이다. 심판 날에 주님이 많은 사람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했노라.”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주목하라. 단순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했노라.”가 아니다. 주님의 준엄한 선언은 이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인정하지 않았노라.” 이 말씀을 “나는 내 양을 알고(사랑하고) 양도 나를 안다.”(사랑한다. 요 10:14)는 말씀과 대조해 보라.      

양 자신이 주님을 택한 자들 소수는 그분이 아신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악한 자들 자신이 주님을 택하지 않은 자들 다수는 그분이 알지 못하신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도 그분은 이들을 알지 못하셨다. 주님은 도무지(never) 이들을 알지 못하셨는데, 로마서 9장은 하나님의 주권 교리와 이것이 택자와 불택자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룬다. 여기서는 우리 주제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부분만 살펴보겠다.

바로 로마서 9:17이다.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13,14절과 연결된다. 14절은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라고 묻는다. 그리고 17절에서 사도 바울은 반대주장에 대한 답변을 계속한다. 이 구절에 대한 칼빈의 주석을 살펴보겠다.(*) 글쓴 이 / Arthur Walkington Pink 출처 /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지은이 아더 핑크, 옮긴이 전의우(서울, 요단출판사, 2014.) < 다음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