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연구(15)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연구(15) 유기와 하나님의 주권(5) 

Arthur Walkington Pink (1886 – 1952)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롬 9:20,21)

(5) 하나님의 예정 성구에 대한 잘못된 해석들

(82호에서 계속)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행 10:34)

이번에도 우리는 같은 질문을 받는다. 성경이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신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고 거듭거듭 선언하지 않는가? 우리는 분명히 그렇다고 대답한다. 사람을 택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것을 증명한다고 말을 한다.

이새의 일곱 아들은 다윗보다 나이도 많고 신체적으로도 뛰어났으나 하나님은 이들을 지나치셨고 그 대신에 어린 소년 목동을 높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다. 주님은 서기관과 율법사들을 본 체도 않고 그 대신에 무지(無知)한 어부들을 택하여 어린 양의 사도(使徒)로 삼으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진리를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그 대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셨다.    

지혜롭고 고귀한 자들은 대다수 무시 되고 약한 자들 비천한 자들 멸시받는 자들이 부름을 받고 구원받는다. 창녀들과 세리들을 따뜻하게 강권하여 복음 잔치에 참여시키는 반면에 스스로 의롭다 하는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깨끗한 도덕성 가운데서 멸망한다. 진실로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은 날 구원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유기(遺棄, reprobation) 교리가 육신의 머리(理性)로 이해하기에 어려운 교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유기 교리가 영벌(永罰) 교리보다 어렵기야 하겠는가? 유기 교리는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진리이며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원하는 부분만 골라 만든 게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바로 이점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믿기 쉬운 교리들만 받아들이고 이해되지 않는 교리들은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주님의 단호한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걸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눅 24:25) 이들이 미련한 이유는 마음이 더디기 때문이다. 머리가 둔하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이 더디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칼빈의 말을 인용하겠다.

“그러나 이제까지 내가 일체의 모호함이나 불확실함이 없는 성경 구절들만 인용해 왔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절들을 불신하기에 바쁜 자들은 자신의 설명에 신중해야 한다. 왜냐면 만약 이들이 자신의 겸양(謙讓) 때문에 사람들에게 지혜롭게 여겨질 거라는 생각에서 무지(無知)한 척한다면 하나님의 권위 있는 작은 말씀 하나에 반대하는 것보다 더 죄악 되고 교만한 행동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회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하나님이 그것을 하시리라 믿기가 어려워! 나는 차라리 이 문제를 다루지 않겠어!’ 그러나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유기 교리를 비난한다면 이들이 하늘을 거슬리는 하잘것없는 시도를 통해 무엇을 얻겠는가? 이들의 짜증은 실제로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왜냐면 어느 세대에나 이 교리를 강력히 반대하는 경건치 못하고 속된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성령께서 오래전에 다윗의 입을 통해 선포하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시 51:4)라는 진리를 느낄 것이다.

다윗은 이러한 지나친 억측 부리는 하찮은 자들이 미쳤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이러한 자격 없는 자들은 감히 하나님과 맞서 논쟁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심판할 권한을 자신에게 부여하기까지 한다. 한편 다윗은 짧게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하늘을 향해 쏟아내는 모든 거것 말에 영향받지 않으시며 사실 비방을 안개처럼 흩으시고 자신의 의를 찬연히 드러내신다.’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기 때문에 모든 세상보다 우월하며 말씀의 높은 곳에서 이러한 안개를 비웃음으로 내려다본다.”            

종교개혁 이후의 존경받는 몇몇 신학자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 장을 마무리하겠다. 아무리 존경받는 인간이라도 그 인간의 권위에 호소함으로써 우리의 주장에 힘을 실으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이상하고 새로운 교리나 근래의 이단 사설(邪說)을 조장하고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경건하면서도 학문적으로 연구한 많은 사람이 철저히 발전시켰고 공통 적으로 가르쳤던 교리를 증진(增進)시키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이렇게 썼다.  

“우리가 하나님의 작정(作定)이라 부르는 예정(豫定)을 통해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개개인을 어떻게 하실지 스스로 결정하셨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이 비슷한 운명으로 창조된 게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생이 예정되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벌이 예정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이러한 두 운명 중 하나에 이르도록 창조되었으며 우리는 그가 생명이나 죽음 중 하나에 이르도록 예정되었다고 말한다.”(기독교강요, 1536년 판, 제3권 21장)

방금 인용한 부분을 세밀하게 주목하기 바란다. 이 글을 분석해보면 필자가 이 장에서 제시한 것이 ‘고등 칼빈주의’(Hyper-Calvinism)가 아니라 순수하고 단순한 진정한 칼빈주의라는 게 증명될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칼빈의 글을 보여주는 목적은 칼빈의 저작을 모른 채 무지하게 본서를 극단적 칼빈주의라고 정죄하지 않게 하는 데 있다.

본서는 본질적으로 칼빈이 직접 가르친 것에 대한 반복이다. 왜냐면 칼빈에게 빚진 비천한 자(필자)뿐 아니라 신학자들의 왕 칼빈도 이 에정 교리를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한때 영어권에서 가장 잘 알려졌던 ‘순교자 열전’(Book of Martyrs)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정이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인데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일어날 일을 구원에 이를지 아니면 영벌에 이를지를 스스로 미리 정하셨다.”

1688년 웨스트민스터 대요리 문답은 이렇게 선언한다.

“하나님은 영원하고 불변하는 작정을 통해 자신의 영원한 사랑에서 때가 차면 나타날 자신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송케 하려고 어떤 천사들은 영광에 이르도록 택하셨으며 어떤 사람들은 영생과 그것에 이르는 방편을 얻도록 그리스도 안에 택하셨다. 또 자신 공의의 영광을 찬양하도록 자신 뜻에 따라(그분은 자신 뜻에 따라 자신의 은혜를 자신이 기뻐하는 대로 베풀기도 하고 보류하기도 하신다.) 나머지는 치욕과 진노에 이르고 자신의 죄 때문에 형벌을 받도록 그들을 지나치시고 미리 작정하셨다.”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은 ‘천로역정’(天路歷程, Pilgrim Progress)의 저자이며 ‘유기’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는데 이렇게 말했다.

“예정된 유기는 인간이 세상에 오기 전에 다시 말해 그가 선이나 악을 행하기 전에 일어난다. 로마서 9:11이 이것을 보여준다. 한 어머니의 태에 쌍둥이가 있다. 둘 다 자신의 운명을 받는데 이들이 선이나 악을 행하기 전이며 선이나 악을 행할 능력이 있기 전이며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이들의 운명은 무엇인가? 하나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며 다른 하나는 그러지 못한다. 하나는 택함을 받고 다른 하나는 유기된다. 하나는 선택을 받고 다른 하나는 거부당한다.”

‘지옥의 탄식’(Sighs from Hell)에서, 존 번연은 또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거부하고 모독하는 자들 대다수가 정죄(定罪) 받도록 작정 된 자들이다.”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rads 1703-1758)는 로마서 9:22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자신의 진노를 나타내려 하시며 자신의 능력을 알리려 하시는 하나님이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들을 오래 참으셨다니!”(vol 4. p. 306. 1743) 그는 이렇게 언급했다. “하나님의 위엄이 그분의 무서운 진노 가운데서 얼마나 놀랍게 나타나는지! 이것이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의 목적일 것이다.”  

오거스트 톱레디(Augustus Montague Toplady, 1740-1778)는 ‘만세 반석 열리니’를 비롯해 영감 어린 여러 찬송의 작사자(作詞者)이다. 그는 이런 글을남겼다. “하나님은 아담의 타락한 후손 가운데 얼마는 그들의 죄 가운데 두시고 그들을 그리스도와 그분의 은혜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영원 전에 작정하셨다.”

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성경을 근거로 단언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영광을 위해 사망에 이르도록 예정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리고 정당하게 사망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는 하나님이 많은 사람을 복 주려 사용하신 18세기의 인물이었다. 조지 휫필드는 이렇게 말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예정 교리와 유기 교리는 함께 서거나 함께 무너진다. 솔직히 인정하건대 나는 유기 교리를 믿으며 하나님이 구원의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제한된 수의 사람들에게만 주려 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아담의 타락 후에 하나님이 계속 죄 가운데 정당하게 버려두신 나머지 인류는 마침내 그 합당한 값인 영원한 죽음을 맞는다고 믿는다.”

찰스 핫지(Charles Hodge, 1797-1878)는 ‘벌하기로 준비된’(롬 9:22)이라는 어구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고 인정한다. 찰스 하지의 책 중에 가장 유명하고 가장 널리 읽히는 것은 로마서 주석일 것이다. 그는 여기서 이렇게 말한다. “나머지 한 해석은 이 표현이 하나님을 가리키며 ‘준비된’의 헬라어 단어는 완료 분사며 이 표현은 (하나님에 의해) ‘멸하기로 준비되었다.’라는 뜻이다.” 찰스 핫지는 대부분의 어거스틴주의자 뿐만이 아니라 많은 루터주의자에 의해 이 해석이 채택되었다고 했다.

그 외에 위클리프(Wycliffe), 후스(John Huss), 리들리(Ridley), 후퍼(Hooper), 크랜머(Cranmer), 어셔(Ussher), 존 트랩(John Trapp), 토마스 굳윈(Thomas Goodwin), 토마스 맨턴(Thomas Manton, 크롬웰의 궁정 목사), 존 오웬(John Owen), 윗시우스(Witsius), 존 길(John Gill, 스펄존의 전임자) 그 외에 많은 사람의 글을 인용할 수도 있다. 

우리가 이렇게 많은 이들을 언급한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의 가장 유명한 성도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가장 널리 쓰임 받은 사람들이 오늘날의 이 마지막 때에 극심한 증오의 대상이 된 이 유기교리를 주장하고 가르쳤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는 시대다. 오늘날의 이 가르침은 아주 위선적인 사람들 자신의 정통성을 자랑하고 자신의 경건을 떠벌리지만 다른 시대를 살았던 하나님의 충성되고 두려움을 모르는 종들의 신발 끈을 풀기에도 부족한 자들에게 미움을 산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謀士)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3-36)(*) 

글쓴이 / Arthur Walkington Pink 출처 /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지은이 아더 핑크, 옮긴이 전의우(서울, 요단출판사, 2014.) < 다음에 계속 >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