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연구(16)

아더 핑크의 하나님 주권 연구(16) 실행과 하나님의 주권(1)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시작하는 말

하나님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예정해 놓으셨는가? 하나님은 일어나는 모든 일을 계획해 놓으셨는가? 이것은 사실 “세상과 그 속의 모든 인간과 모든 사물이 지금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가?”라고 묻는 또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면 그분은 분명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스리시는가 아니면 목적 없이 임의로 다스리시는가?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세상을 다스리신다면 그 목적을 언제 세우셨는가?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계속 바꾸시고 매일 새로운 목적을 세우시는가 아니면 그분의 목적은 처음부터 확정되었는가? 하나님의 행동도 우리의 행동처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조절되는가 아니면 그분의 영원한 목적의 결과인가? 하나님이 인간 창조 이전에 어떤 목적을 세우셨다면 그 목적은 그분의 본래 계획에 따라 실행될 것이다. 그분은 지금 그 목적을 이루어 가고 계시는가?  

성경은 뭐라고 말하는가? 성경은 하나님이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엡 1:11)라고 선언한다. 이 글의 독자 중에는 하나님은 모든 일을 일어나기 전에 이미 다 아신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여기서 더 나아가길 주저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모든 것을 미리 아신다면 그분이 모든 것을 미리 작정해 놓으셨다는 것도 자명하지 않은가?

하나님이 무엇이 어떻게 될지 미리 아시는 이유는 무엇이 어떻게 되도록 계획해 놓으셨기 때문이지 않은가? 하나님의 미리 아심은 사건의 원인이 아니다. 오히려 사건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결과다. 하나님이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미리 작정해 놓으셨다면 그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아시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확실하지 않다면 아무것도 미리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작정해 놓지 않으셨다면 일어나리라고 확신해서 좋은 일은 하나도 없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예로 들어보자. 십자가 죽음에 대해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말을 한다. 피를 흘리실 하나님의 어린 양 그리스도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셨다.”(벧전 1:20) 어린 양의 죽음을 작정해 놓으신 하나님은 ‘어린 양이 도수장(屠獸場)으로 끌려갈 것’을 아셨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 사실을 알리셨다. 이같이 하나님의 어린 양은 단순히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의해 죽임당하신 게 아니라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뜻과 작정에 따라 죽임을 당하셨다.(행 2:23 참조) 

그다음으로 우리가 발견하는 원리는 이것이다. 하나님이 미래의 사건들을 미리 아시는 까닭은 그분의 작정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앞으로 일어날 모든 것을 미리 아신다면 하나님이 장차 일어날 모든 일을 영원 전에 스스로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행 15:18) 즉 하나님은 처음부터 하나의 계획을 갖고 계셨고 자신 일을 임의로 자신의 계획이 어떻게 성공할지 모른 채 시작하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이제 그 예를 들어보자.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 성경을 믿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이 말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뿐더러 한순간도 창조를 우연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무엇을 창조하실 때 목적을 갖고 창조하셨고 나중에 그 목적을 이루셨다.

천지창조는 이러한 목적 성취의 시작일 뿐이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시편 기자의 말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고백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이 땅에 가득하니이다.(시 104:24)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자신의 세상을 다스리시기로 계획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하겠는가?

그러나 창조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의 끝이 아닌 게 분명하다. 하나님은 단지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그곳에 두신 후 세상과 인간을 운명에 맡기겠다고 결정하지 않으셨던 게 분명하다. 하나님에게는 자신의 무한한 완전에 합당한 큰 목적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시 33:11)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사 46:9,10)

하나님에게는 이 세상과 인간을 향한 계획이 많으며 이 모든 계획이 아주 확실하게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구절은 이외에도 많다. 성경의 예언은 이런 방법으로 봐야만 제대로 이해된다. 예언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몸을 구푸려 우리를 이끌어 그분의 영원한 계획의 방으로 들어가셔서 자신이 계획하신 미래를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이같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수많은 예언은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한 예보가 아니라 하나님이 장차 일으키려고 계획해 놓으신 일을 보여주는 계시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세상과 인류를 창조하신 위대한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성경은 이렇게 대답한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 16:4)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계 4:11) 창조의 위대한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穹蒼)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 

그러나 하나님은 다름 아닌 인간을 통해 본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된 인간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가장 찬연(燦然)하게 나타내기로 계획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위대한 창조자의 영광이 인간을 통해 나타나는가? 인간이 창조되기 전 하나님은 아담의 타락을 미리 아셨고 그로 인한 인류의 파멸도 미리 아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이 영원한 무죄 상태에서 자신을 영화롭게 하도록 계획하지 않으셨다. 이것을 배경으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간의 구주가 되기로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벧전 1:20)라는 것을 배운다.  

그리스도를 통한 죄인 구속은 하나님의 사후 대책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문제에 대처하는 임시방편이 아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준비였다. 그래서 인간은 타락했을 때 자비와 공의가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보았다. 영원 전에 하나님은 잃어버린 죄인들을 구속함으로써 자신의 다양한 은혜와 지혜를 세상에 나타내기로 계획하셨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엡 3:10,11)

하나님은 이 영광스러운 계획을 성취하시려고 세상을 태초부터 지금까지 통치하셨으며 세상 마지막까지 통치하실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세상은 만 개의 부품으로 구성되었고 모든 게 하나의 영광스러운 목적-교회(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구원을 통해 하나님의 풍성한 지혜를 나타내는 것-을 위해 작동하는 복잡한 시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맞는 말이다. 나머지 모든 것은 이러한 핵심적인 목적에 부속된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이러한 기본 진리에 대한 이해를 기록했다. “그러므로 내가 택함을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딤후 2:10) 이제 이 같은 논의를 바탕으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실 때 그분의 주권이 어떻게 실행되는지 살펴보겠다.

1. 하나님의 세상 통치와 주권의 실행

물질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가 어떻게 실행되는지는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앞의 여러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모든 무생물과 이성 없는 피조물이 창조자의 뜻에 절대복종한다. 물질세계는 안정되고 다소간 일관되게 실행되는 법칙들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우리도 기꺼이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과 역사와 관찰을 통해 깨닫는 사실이 있다. 하나님은 원하실 때마다 이러한 법칙들을 멈추시고 이것들과 무관하게 행동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에 복이나 심판을 내리실 때 해가 멈추게 하시고 별들이 그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게도 하신다.(삿 5:20 참조) 하나님은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게도 하시고 내리지 않게도 하신다. 하나님은 질병으로 치기도 하시고 건강의 복을 주기도 하신다.

간단히 말해 그분은 하나님이며 절대 주권자이기에 자신이 창조하신 그 어떤 자연법칙에도 매이지 않으며 물질세계를 자신이 보기에 가장 좋은 대로 다스리신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다스림은 어떤가? 성경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가 실행되는 과정에 대해 무엇을 계시하는가? 하나님은 인간을 어느 정도까지 다스리시는가? 이 질문의 답을 두 부분으로 나눠 생각해 보겠다. 하나님이 의인 즉 자신이 택하신 자들을 다루시는 방법을 먼저 살펴보고 그 후에 하나님이 악인을 다루시는 방법을 살펴보겠다.

2. 하나님이 의인을 다루시는 방법

(1) 하나님은 자신이 택하신 자들에게 새 생명을 주신다.

본래 이들은 영적으로 죽었고 허물과 죄로 죽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영적 생명(生命)이다. 왜냐면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요 3:3 참조) 우리가 거듭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신다.(요 5:24 참조) 하나님은 자신의 본성을 우리에게 나눠주신다.(벧후 1:4 참조) 하나님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다.(골 1:13) 

우리 스스로는 절대 이렇게 하지 못한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이다.”(엡 2:10)라고 기록되었다. 거듭남으로써 우리는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다시 말해 우리 속에 하나의 원리, 하나의 씨앗, 하나의 생명이 주어진다. 이 생명은 성령께서 주시기에 영적이고 거룩하다.

거듭나는 순간에 받는 이러한 신성하고 거룩한 본성이 없으면 어느 누구도 영적 욕구를 일으키지 못하며, 영적 개념을 형성하지 못하며, 영적 생각을 품지 못하며, 영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영적인 일에 참여하지 못한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自然人, natural man, KJV)은 거룩을 갈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공급도 원하지 않는다.

사람이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위해 기도하고 그것을 구하고 그것을 얻으려 노력하겠는가? 절대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본성적으로 싫어하는 것을 추구한다면 -예전에 싫어했던 것을 지금은 사랑한다면- 그것은 그의 내면에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외부의 힘이 그에게 작용했기 때문이며 그의 옛 본성과는 완전히 다른 본성이 그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이렇게 기록되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이 사람은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왔다.(행 26:18 참조) 다른 방법으로는 이 큰 변화를 설명할 길이 없다. 거듭남은 단지 죄에 대한 일시적 후회 때문에 눈물 몇 방울 흘리는 게 아니다. 거듭남은 삶의 방향을 바꾸고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대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거듭남은 이보다 훨씬 더 크다. 거듭남은 단순히 고상한 이상을 소중히 여기고 실천하는 것과 는 다르다. 거듭남은 앞으로 걸어 나와 인기 있는 전도자의 손을 잡고 결신 카드에 서명하거나 교회에 등록하는 수준보다 무한히 깊다.  

거듭남은 단순히 새잎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새 생명을 시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듭남은 단순히 개혁이 아니라 완전한 변화다. 간단히 말해 거듭남은 기적이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의 결과이다. 거듭남은 급진적이고 혁신적이며 지속적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택하신 자들의 삶에서 바로 이것을 가장 먼저 나타내신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끌어내사 살리시고 새 생명을 주신다. 하나님은 불법 가운데 빚어지고 죄 가운데 잉태된 자를 취해 자기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신다. 하나님은 마귀의 포로를 붙잡아 믿음의 가정의 일원으로 삼으신다. 하나님은 거지를 택해 그리스도의 공동 상속자(相續者)로 삼으신다. 하나님은 그분에 대한 적대감이 가득한 자에게 오셔서 그분을 향한 사랑이 가득한 새마음을 주신다. 하나님은 본성적으로 강도에게 허리를 구푸려 하나님의 선한 뜻을 바라고 행하려는 간절한 마음을 주신다.

이같이 저항 못 할 능력으로 하나님은 죄인을 성도로 원수를 친구로 마귀의 종을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격하여 노래하지 않을 수 없다. “오! 나의 하나님, 당신의 모든 자비를 내 영혼 감격하여 바라보오니, 나 그 광경에 취해 놀라움과 사랑과 찬양에 빠집니다.”(Joseph Addison)

(2) 하나님은 자신이 택하신 자들에게 새 힘을 주신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의 눈이 열려 다른 것들뿐 아니라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엡 1:19)을 알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바울은 또 이들이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길’(엡 3:16) 기도했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자신들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대적과 싸울 힘을 얻는다.

하나님의 자녀들 스스로는 아무 힘도 없다. 이들은 양일뿐이다. 양은 방어 능력이 없다. 그러나 약속은 확실하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사 40:29) 하나님은 의인 위에 의인 속에 활력을 일으키는 능력을 주시며, 이들은 이러한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방법으로 그분을 섬길 수 있게 된다. 옛 선지자가 “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미 3:8)라고 기록했다.

주님은 사도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 증거를 본다. 성경을 보면 바로 이 사람들이 후에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행 4:33)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도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4)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은 단지 공식적인 섬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베드로후서 1:3이 이것을 확인해 준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걸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성품의 다양한 은혜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하나님에게서 나오며 이에 따라서 ‘성령의 열매’라 불린다는 것을 안다.(갈 5:22,23 참조, 엡 5:9 비교)

(3) 하나님은 자신이 택하신 자들을 인도하신다.

하나님이 옛날 광야에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실 때 낯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 하나님은 지금도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데 외적인 방법이 아니라 내적인 방법으로 인도하신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시 48:14)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일하시면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심”(빌 2:13)으로써 우리를 인도하신다.

하나님이 이런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은 에베소서 2:10에 분명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자랑할 모든 이유는 없어지고 하나님이 모든 영광을 받으시기에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와 더불어 말할 수 있다.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의 모든 일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사 26:12) 그러므로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는 말씀은  참으로 진리이다.(겔 36:27a)

(4) 하나님은 자신이 택하신 자들을 보호하신다.

·많은 성경 구절이 이 진리를 보여준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시 97:10)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시 37:28)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시 145:20)신자의 책임이나 충성을 조명하는 성경 구절을 논증하거나 더 제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왜냐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호흡을 주길 그치시면 우리가 숨을 못 쉬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지 않으시면 우리가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벧전 1:5, 대상 18:6 비교)고 말씀하고 있다.(*) 

글쓴이 / Arthur Walkington Pink 출처 /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지은이 아더 핑크, 옮긴이 전의우(서울, 요단출판사, 2014.)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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