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연구(2)

하나님의 주권 이해

   하나님은 야곱과 에서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들이 어머니의 복 중에 있을 때 야곱은 택하시고 에서는 유기하셨다고 했다.(롬 9:10-13)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1. 하나님의 주권이란 무엇인?(2)

(2)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자비를 베푸신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자비(慈悲)를 베푸신다. 하나님이 누구에게 자비를 베푸실 지는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자비는 인간이 하나님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자비는 하나님이 비참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구해주실 때 드러나는 그분의 아름다운 성품이다. 물론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서는 비참해야 마땅한 자들만 비참하다. 그런데 비참한 자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받는다.            

모든 비참함은 죄의 결과이므로 비참한 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은 자비가 아니라 벌(罰)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땅히 자비를 받아야 한다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그리고 자비를 베풀지 않는 게 좋다고 여기실 때는 자비를 베풀지 않으신다. 이 진리를 설명해 주는 주목할 만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두 사람이 비슷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이 전혀 다르다. 첫 번째 경우에서 모세는 단 한 번의 불순종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다.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를 들어 주셨는가? 아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신 3:26)

두 번째 경우를 보자.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하셨나이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 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하셨다 하라 하셨더라.”(왕하 20:1-6)

두 사람 다 사형선고를 받았고 두 사람 다 진심으로 여호와께 용서를 구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중략)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라고 했고 결국 죽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경우 하나님은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라고 하셨으며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다.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라는 로마서 9:15 말씀을 설명해 주는 좋은 예다.

이 같이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은혜를 베푸신다. 이 사실은 여호와께서 육신이 되어 인간들 속에 거하시는 중에도 나타났다. 예를 들어보자. 어느 유대 명절에 주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주님이 베데스다 연못에 이르셨다 그때 그곳에는 맡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병자 중에 38년 된 된 병자도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요 5:6-9)

왜 주님은 모든 병자 중에서 이 병자를 선택하셨는가? 성경은 그가 “주여!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외쳤다고 말하지 않는다. 본문에는 이 사람이 특별한 호의를 받을 만한 그 어떤 것도 암시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주님이 주권적으로 자비를 베푸신 경우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곳에 모인 모든 병자를 고칠 수 있으셨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병자를 고치지 않으셨다. 주님은 특별히 이 병자를 비참한 상태에서 구해 주셨을 뿐 나머지 병자는 고쳐 주지 않으셨다. 그 까닭은 그분만 아신다. 이것도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롬 9:15)는 말씀을 설명해 주는 좋은 예이다.

(3)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사랑하신다.” 이 말은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요 3:27)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사랑하신다.” 이 말은 하나님이 누구든지 자신이 사랑하기로 선택(選擇) 하신 자를 사랑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모두 다 사랑하지는 않으신다.

만일 하나님이 모두 다 사랑해야 하신다면 마귀도 사랑하셔야 한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마귀를 사랑하시지 않는가? 하나님이 마귀를 사랑하시지 않는 까닭은 마귀에게는 사랑할 게 전혀 얼고 그분의 마음을 끄는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본다면 타락한 아담의모든 후손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끌 만한 게 전혀 없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엡 2:3 참조)

어느 인간도 하나님의 사랑을 끌 만한 게 전혀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얼마를 사랑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이유를 하나님에게서 찾아야 한다. 즉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사랑하시는 까닭은 순전히 그분의 기쁜 뜻에 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주권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규범(規範)에 따라 사랑하시게 된다. 만약 하나님이 규범에 따라 사랑하신다면 그분은 사랑의 법(法) 아래 계시는 것이다. 만약하나님이 사랑의 법(法) 아래 계신다면 그분은 주권자가 아니라 법의 지배를 받으시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묻는다. “하나님이 모든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믿으시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답한다.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롬 9:13)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도 전 이들이 아무 선(善)이나 악(惡)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랑하신 이유는 에서와 야곱이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있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사랑하신다. 이 사실은 다음 말씀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前)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選擇)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豫定)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3-5)  ‘사랑 안에서’ 성부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자녀로 입양(入養)되도록 예정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이 무엇을 따라 예정하셨는가? 그분이 이들에게서 발견하신 특별한 무엇을 따라 예정하셨는가? 아니다. 그분이 아시는 이들의 미래 모습을 따라 예정하셨는가? 아니다. 무엇을 따라 예정하셨는지 주의 깊게 보라.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셨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렇지 못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동정의 사랑이 다르다고 생각했으며 우리는 이런 사실을 잘 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근거 없는 구분이며 순전히 인간의 창작이다. 성경은 이런 가상적인 동정의 사랑을 ‘하나님의 불쌍히 여김’이라 부르는데(마 18:33 참조), “그(하나님)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다.”(눅 6:35)

(4)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은혜(恩惠)를 베푸신다.” 이것은 틀림없는 진리이다. 은혜란 자격 없는 자에게 더 분명히 말하면 지옥에 가야 마땅한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好意)이기 때문이다. 은혜는 공의(公義, justice)와 정반대이다. 공의는 공정한 법집행을 요구한다. 공의는 각 사람이 더도 덜도 아닌 법이 정한 만큼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공의는 호의를 베풀지 않으며 사람을 차별하지도 않는다. 공의는 불쌍히 여기지 않으며 자비를 모른다. 그러나 공의의 요구가 완전히 충족된 후에는 은혜가 온다. 은혜를 베풀기 위해 공의를 희생해야 하는 게 아니다.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한다.(롬 5:21 참조 은혜가 의(義)를 통해 사람을 지배하여-표준새번역) 은혜가 ‘왕 노릇 한다’면 은혜는 주권적이다. 은혜란 하나님에게 공로 없이 받는 과분한 호의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를 마치 자기 권리인양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은혜란 노력 없이 받는 것이며 자격 없이 받는 과분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격이 있어서 은혜를 받는 사람은 없다. 은혜는 선물이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은혜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구원은 은혜로 받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값없는 선물이다.(롬 5:15 참조)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신다. 구원은 은혜로 받는다.

따라서 가장 악한 죄인이라도 하나님의 자비가 미치는 범위 내에 있다. 구원은 은혜로 받는다. 따라서 그 누구도 구원을 자랑하지 못하며 모든 영광은 하나님이 취하신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은혜를 베푸신다. 이 사실은 성경의 거의 모든 갈피마다 나타난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이 그들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셨다. 반대로 이스라엘은 자신의 언약 백성을 삼으셨다. 장자 이스마엘은 거의 아무 축복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났다. 반대로 부모가 늙어서 낳은 이삭은 약속의 자녀가 되었다. 마음이 넓고 용서를 아는 아들 에서는 눈물로 축복을 구했으나 받지 못했다.(히 12:7 참조) 반대로 버러지 같은 간교한 야곱은 유산을 받았고 귀히 쓸 그릇으로 빚어졌다.

신약성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진리를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숨기셨으나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셨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들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두셨으나 세리들과 창기들은 주님의 사랑에 끌리게 하셨다.      

구주께서 태어나실 때 하나님은 주권적 은혜를 놀랍게 베푸셨다.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은 우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사건을 모든 인간에게 다 알리지는 않으셨다. 대신에 베들레헴 목자들과 동방의 박사들에게만 하늘의 별로 알리셨다. 그것은 그 시대의 전체 분위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예언적 신호이자 표시였다.

지금도 그리스도가 모두에게 계시(啓示)되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모든 나라에 천사를 보내 아들의 탄생을 알리는 쪽이 훨씬 쉬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하나님에게는 온 인류가 그 ‘별’을 주목하게 하는 일도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 하지 않으셨다. 왜 그리 하지 않으셨는가? 하나님은 주권자요 자기 뜻대로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구주 탄생을 특별히 알린 두 부류의 사람들 한쪽은 무식한 목자들이었고 다른 쪽은 먼 나라 이방인들이었다. 둘 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더없이 의아한 선택이었다.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탄생했음을 알리려고 공회에 나타난 천사는 없었다. 교만과 독선 속에서 성경을 연구하는 서기관과 율법사들에게는 아무 ‘별’ 도 나타나지 알았다. 이들은 메시아가 태어날 곳을 알아내려고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메시아 탄생의 신비를 이들에게 알리지 않으셨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는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다. 무지한 목자들이 이처럼 특별하고 영광된 일에 선택되었다. 그러나 학자들과 뛰어난 자들은 제외되었다. 하나님은 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그분이 태어난 동네 사람들이 아니라 타국의 박사들에게 알리셨을까? 이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시대에 인류를 어떻게 다루실지 보여주는 놀라운 예언이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은혜를 베푸시며 자신이 원하시는 자에게 가능성이 가장 낮고 자격이 가장 없어 보이는 자에게 번번이 은혜를 베푸신다.(*) 글쓴 이 / Arthur Walkington Pink 출처 /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지은이 아더 핑크, 옮긴이 전의우(서울, 요단출판사, 2014.) < 다음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