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연구(5) 통치와 하나님의 주권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연구(5) 통치와 하나님의 주권

3. 하나님은 이성 없는 피조물도 다스리신다.
창세기 2:19은 동물세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이 일은 인간이 아직 타락하지 않았고 따라서 타락의 벌이 인간에게 임하기 전에 일어났으므로 이 예는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처럼 의심하는 자들에게 다음 예는 우리의 논증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해 준다. 동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능력은 노아홍수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났다. 하나님이 어떻게 모든 종류의 생명체로 노아에게 나아오게 하셨는지 보라.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창 6:19,20)
이들 모두 혈육 있는 모든 생물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아래 있었던 게 분명하다. 정글의 사자와 숲의 코끼리를 생각해 보라. 북극곰, 맹렬한 표범, 길들지 않는 늑대, 사나운 호랑이, 비상하는 독수리, 기어 다니는 악어를 생각해 보라. 이들은 본래 기질이 사나운데도 자신들을 지으신 분의 뜻에 조용히 복종해 둘씩 짝지어 방주에 들어가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앞서 무생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설명하면서 애굽에 내린 재앙을 언급했었다. 이제 이 재앙이 동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권위를 어떻게 나타내는지 보자.
하나님의 명령에 개구리들이 강에서 쏟아져 나와 온 땅을 뒤덮고 바로 왕궁과 신하들의 집으로 들이닥쳤을 뿐 아니라 자기 본성을 거슬러 침상과 화덕과 떡 반죽 그릇에까지 기어올랐다.(출 8:13 참조) 파리 떼가 애굽 땅을 뒤덮었으나 고센 땅에는 없었다.(출 8:22 참조) 그 다음은 가축이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의 손이 들에 있는 네 가축 곧 말과 나귀와 낙타와 소와 양에게 더하리니 심한 돌림병이 있을 것이며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가축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하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기한을 정하여 이르시되 ‘여호와가 내일 이 땅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하시더니 이튿날에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시니 애굽의 모든 가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한지라.”(출 9:3-6)
똑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은 메뚜기 떼를 보내 바로와 그 땅을 괴롭게 하셨는데 메뚜기 떼가 나타날 시간, 이동 경로, 피해 정도까지 미리 정해 놓으셨다.(출 10:14 참조)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존재는 천사만이 아니다. 동물도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 블레셋 지경의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이송해야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종들을 주목하면서 이들이 얼마나 완전히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지 보라.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복술자(卜術者)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까? 그것을 어떻게 그 있던 곳으로 보낼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라.’ 그들이 이르되 (중략)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하고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하니라.”(삼상 6:2-9)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가? 결과는 참으로 놀라웠다!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삼상 6:12)
엘리야의 경우도 같은 사실을 확인해 준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왕상 17:2-4) 하나님이 까마귀의 본능을 억제하셨다. 까마귀는 음식을 먹지 않고 엘리야에게 물어다 주었다.
증거가 더 필요하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나귀가 어리석은 짓을 하는 선지자를 꾸짖게 하셨고, 수풀에서 두 마리 암곰이 나와 엘리사를 조롱하는 42명의 아이들을 죽이게 하셨다. 자신의 말씀에 대한 성취로 하나님은 개들이 사악한 이세벨의 피를 핥게 하셨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졌을 때 하나님은 사자의 입을 막으셨을 뿐 아니라 바로 그 사자들이 다니엘을 참소한 자들을 찢게 하셨다.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보내 불순종한 요나를 삼키게 하셨고 때가 되자 그를 육지에 토해내게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물고기 뱃속에서 동전이 나왔고 베드로는 세금을 낼 수 있었다. 그분의 말씀 한 마디에 베드로가 그분을 부인하자 닭이 두 번 울었다. 이제껏 확인했듯이 하나님이 모든 동물을 다스리신다.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를 다스리신다. 이 모두가 그분의 주권적인 명령을 수행한다.
4. 하나님이 인간을 다스리신다.
우리가 다루는 주제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한다. 따라서 이 부분을 보다 길게 다루겠다. 그러나 먼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전반적으로 살펴본 후에 구체적인 부분을 다루겠다. 사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뿐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다스리시거나 그와는 정반대로 하나님이 다스림을 받거나 둘 중 하나다. 하나님이 인간을 통치하시거나 하나님이 통치 받으시거나(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둘 중 하나다. 이처럼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하시거나 아니면 인간이 자기 뜻대로 하거나 둘 중 하나다.
- 우리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인가?
- 우리는 인간의 불순종이 너무 심해서 하나님의 통제를 벗어났다고 결론 내리겠는가?
- 인간이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어져 하나님의 영향력 밖에 있다고 말하겠는가?
- 인간은 도덕적 책임을 부여받았으므로 하나님은 이 땅에서 인간을 완전히 자유롭게 놔두셔야 한다고 말하겠는가?
- 인간은 무법자이며 하나님의 통치에 맞서는 타락한 반역자인데도 하나님이 인간에게서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실 수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악인의 행위로 인한 피해를 이따금씩 회복하신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또 심판의 날이 임하고 악인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악행을 심판 받으리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수많은 비(非) 그리스도인이 이것들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려는 바는 이것이다. 가장 무법한 인간의 행위까지도 완전히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으며 모든 행위는 설령 행위자가 모르더라도 지존자의 은밀한 뜻을 이룬다.
가룟 유다가 그러지 않았는가? 가룟 유다는 가장 극단적인 예일 것이다. 가룟 유다 같은 큰 배반자도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모든 배반자에 대해 똑같이 믿기가 이보다 어렵겠는가? 여기서 우리의 목적은 철학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이지 않다. 우리의 목적은 이 심오한 주제와 관련된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이다. 성경을 살펴보자. 오직 성경만이 하나님의 통치 -그 성격과 계획과 실행 방법과 범위- 에 관해 가르치기 때문이다.
자신의 말씀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다스리는 자신의 통치 곧 본래 자신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한 존재를 다스리는 자신의 통치에 대해 무엇을 계시하셨는가?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행 17:28) 이는 참으로 포괄적인 선언이다. 이 말은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고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해 듣고 ‘조롱하는 자들’에게 했던 말이다.
그러나 아테네 철학자들에게 에피쿠로스주의 자들(Epicureans, 쾌락주의자들)과 스토아주의 자들(Stoics, 금욕주의자들)에게 사도 바울은 이들이 하나님을 힘입어(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한다고 주저 없이 선포했다. 이것은 이들의 존재와 보존이 세상과 만물을 지으신 분에게 비롯되었다는 뜻일 뿐 아니라 이들의 행동까지도 하늘과 땅의 주인께서 다스리고 주관하신다는 뜻이다. 다니엘 5:23의 마지막 부분과 비교해 보라. “미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잠 16:1) 이 말씀이 누구에게나 적용된다는 데 주목하라.
이 구절은 단순히 신자들을 말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말한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하나님이 사람의 걸음을 인도하신다. 그렇다면 사람이 하나님의 지배나 다스림을 받는다는 증거가 아닌가? 성경은 또다시 말한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 19:21)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계획하든 간에 그것을 이루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의 뜻이라는 의미가 분명하지 않은가?
예를 들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생각해 보자. 그가 마음으로 세운 계획들이 우리 눈에 드러난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하셨으니”(눅 12:17-20)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 21:1) 무엇이 이보다 분명하겠는가? 마음에서 ‘생명의 근원’(잠 4:23)이 나오기에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잠 23:7)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이 그것을 “임의로 인도하신다.” 그렇다면 통치자들과 지배자들과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이 완전히 전능자의 통치 아래 있는 게 분명하지 않은가?
이 결론에 아무런 제한도 덧붙이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좌절시키고 그분의 계획을 뒤 엎는다고 주장한다면 똑같이 분명하게 말하는 다른 구절들을 부정하는 것이다. 다음 몇 구절을 세밀히 살펴보라.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욥 23:13)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시 33:11)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잠 21:30)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사 14:27)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하였노라.”(사 46:9,10)
이런 구절들은 조금도 모호하지 않다. 이것들은 아무것도 하나님의 목적을 막지 못함을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게 확증한다. 성경을 읽으면서 인간의 행동이 선인(善人) 뿐 아니라 악인(惡人)의 행동까지도 여호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성경을 헛읽었다.
니므롯과 그의 추종자들이 바벨탑을 쌓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탑이 완공되기 전에 하나님은 이들의 계획을 좌절시키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만 부르셨다.(사 51:2 참조) 그러나 아브라함이 갈데아 우르를 떠날 때 친족도 함께 떠났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좌절되었는가? 아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라.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가나안에 이르기 전에 죽었다.(창 11:32 참조) 조카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약속의 땅에 들어갔으나 곧 그와 헤어져 소돔에 정착했다.
하나님은 이삭의 아들 중 야곱에게 기업을 약속하셨다. 그런데도 이삭은 불순종하여 어떻게든 기업)을 에서에게 물려주려 했지만 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에서는 야곱에 대한 복수를 맹세했다. 그러나 오랜 후에 형제가 다시 만났을 때 두 사람은 도리어 기뻐 울었다. 형들은 요셉을 해치려 했으나 이들의 악한 계획은 뒤집어졌다. 바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도록 허락하지 않았고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홍해에서 죽었다.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발람을 고용했으나 하나님은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하셨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달려고 교수대를 세웠으나 모르드개 대신 자신이 달렸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다. 그런데 그의 거역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 도다.”(시 2:1-3) 그러나 위대하신 하나님이 자신의 보잘 것 없는 피조물의 배반에 불안해하거나 당황하시겠는가? 절대 아니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시 2:4)
그분은 만물보다 무한히 높으시다. 그러기에 그분의 목적을 좌절시키려는 가장 넓고 가장 강력한 준비라도 그분이 보기에는 유치할 따름이다. 하나님은 이들의 하잘 것 없는 노력에 조금도 놀라시지 않으며 되레 이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으신다. 하나님은 이들의 무능력을 조롱하신다. 하나님은 원하시면 언제든 이들을 하루살이처럼 밟아버리거나 자기 입기운으로 순식간에 소멸하실 수 있다. 깨진 질그릇이 영광스런 하늘의 왕과 싸우려는 것은 헛짓이다. 바로 이런 분이 우리 하나님이다.
이분을 예배하라!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요구를 바로에게 전달할 하나님의 대사(大使)로 선택된 사람은 유창하게 말을 잘하는 형 아론이 아니라 어눌한 동생 모세였다. 그런가하면 모세는 하나님께 큰 사랑을 받았으나 경솔한 말 한 마디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반면에 엘리야는 심하게 불평했는데도 가벼운 꾸지람만 받았을 뿐 마지막에는 살아서 승천했다. 웃시야는 법궤를 잠깐 만졌을 뿐인데도 즉시 죽었다. 그 반면에 블레셋 사람들은 법궤를 전리품으로 가져갔는데도 당장 아무 해도 입지 않았다.
하나님이 소돔이라도 회개시켰을 만한 은혜를 부어주셨는데도 가버나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이라도 회개시켰을 만한 이적을 행하셨는데도 갈릴리 성읍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것들이 어느 곳(소돔, 두로, 시돈)에서는 영향을 미쳤을 거라면 왜 다른 곳(가버나움, 갈릴리 성음들)에서는 그러지 못했는가? 은혜와 이적이 성읍을 구하지 못할 거라면 왜 굳이 그런 성읍에 은혜를 베프시고 이적까지 행하셨는가? 지존자의 주권적인 뜻을 보여주는 참 놀라운 예가 아닌가!
5. 하나님은 천사들을 다스리신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종이요, 사자요, 병거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수행하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할 준비를 항상 갖추고 대기한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러 천사를 보내셨더니 천사가 멸하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하시니”(대상 21:15) “여호와께서 천사를 명령하시매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대상 21:27)
천사들은 자신들의 창조자의 뜻에 복종하며 그분의 명령을 행한다. 이것을 보여주는 성경 구절은 이 외에도 많다.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하여”(행 12:11)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계 22:6)
주님이 재림하실 때도 똑같을 것이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마 13:41) 이런 말씀도 있다.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31)
악한 영들도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성취한다. 하나님이 보내신 악한 영이 아비멜렉의 진(陳)에서 배반을 일으켰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삿 9:23) 악한 영은 아비멜렉이 형제들을 죽이도록 도왔다. 하나님은 또 다른 악한 영을 보내어 아합의 선지자들의 입에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게 하셨다.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왕상 22:23)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또 다른 악한 영이 사울을 괴롭혔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삼상 16:14)
신약성경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 속에 들어가 있던 군대 귀신은 주님이 돼지 떼에게 들어가도록 허락하신 후에야 그에게서 나왔다. 그러므로 성경은 분명히 확인해 준다. 선한 천사는 물론 악한 천사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그의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하나님의 목적을 이룬다. 그렇다. 사탄마저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했을 때 사탄은 무서운 선고를 받았으나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창 3:14,15) 사탄은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까지 음에게 손을 대지 못했다.(욥 1:12, 2:6)
사탄은 베드로를 체질하기 전에 주님의 허락부터 받아야 했다.(눅 22:31 참조) 그리스도께서 사탄에게 “물러가라!”고 명하시자 마귀는 예수를 떠났다.(마 4:10,11 참조) 마지막 때에 사탄은 자신과 자신의 사자들 –타락한 천사들- 을 위해 준비된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진다.(계 20:10)
결론적으로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통치하신다.(계 19: 6참조) 그분은 무생물을 통치하시며, 동물을 통치하시며, 인간을 통치하시며, 선한 천사들과 악한 천사들을 통치하시며, 사탄을 통치하신다. 그 어떤 행성(行星)도 그 어떤 별빛도, 그 어떤 폭풍도, 그 어떤 피조물의 움직임도, 그 어떤 인간의 행동도, 그 어떤 천사의 사명도, 마귀의 그 어떤 짓도, 온 우주의 그 무엇도 하나님이 영원 전에 목적하신 일 외에 아무것도 일어나게 하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기초다. 이것이 지성(知性)의 안식처다. 이것이 영혼의 확실하고 견고한 닻이다. 우연이나 억제되지 않은 악이나 인간이나 마귀가 세상을 다스리는 게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기쁜 뜻대로 자신의 영원한 영광을 위해 세상을 다스리신다. 하늘이 생겨나기 만세 전에 장차 올 모든 해(years)와 세상들이그분의 생각 속에 있었다. 참새 한 마리 벌레 하나도그분의 다스림을 벗어나지 못하며 그분은 군주들을 왕좌에 앉히시고 자신의 뜻대로 노래하신다. (*) 글쓴 이 / Arthur Walkington Pink 출처 /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지은이 아더 핑크, 옮긴이 전의우(서울, 요단출판사, 2014.)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