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연구(9) 구원과 하나님의 주권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연구(9) 구원과 하나님의 주권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하였으리요.(사 53:8)
Ⅱ. 구원과 성자 하나님의 주권(2)
2. 하나님의 제한된 목적을 보여주는 성경 구절들
지금까지 그리스도 죽음의 목적이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로 제한적(制限的)이었다는 결론으로 이끌어가는 일반적인 원리를 살펴보았다. 이제 이 결론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성경 구절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사야 53장에 아들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하였으리요.”(사 53:8) 천사가 요셉에게 전한 말은 이 구절과 완벽하게 조화된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자기 백성’ 즉 이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이라는 말씀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하셨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예외 없이 다 포함한다면 왜 굳이 ‘많은 사람(for many)을 위해’라고 말했겠는가?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셨다.”(눅 1:68) 선한 목자는 ‘염소들’이 아니라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다.(요 10:11)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행 20:28) 것은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 KJV)였다. 다음은 이를 가장 강하게 뒷받침하는 말씀이다.
“그중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 도다.’하였으니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시기 위해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요 11:49-52)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가야바 스스로 예언한 게 아니라고 한다. 하나님이 구약시대에 쓰신 사람들처럼 말했다는 뜻이다. 가야바는 성령의 감동을 따라 말한 것이다.(벧후 1:21 참조) 따라서 그의 말은 가치가 있으며 이 계시(啓示)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게 분명하다.
이 구절은 또 그리스도께서 구체적으로 ‘그 민족’(the nation, 이스라엘, 하나의 몸, 그분의 교회)을 위해 죽으신 것이라 말한다. 우리는 이 ‘하나의 몸’ 이 교회임을 안다. 그리스도께서는 열방 중에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이다.
주목하라!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 전이며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기 전인데도 교회 구성원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른다. 왜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인가? 하나님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들을 선택하셨기 때문이며 그럼으로써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들이 되게 하셨기”(엡 1:4,5, 예정하셨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다.”(요 10:16,)고 하셨다.(‘있을 것이다’라고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마음과 말씀의 절정은 십자가의 진정한 목적을 밝히신 지상 사역 마지막 주간이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9)
이 구절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주님의 사람들 즉 아버지께서 주님께 ‘주신 자들’을 위한 죽음이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면 왜 이렇게 구체적인 용어를 사용하셨겠는가?”
이제 그리스도의 죽음이 보편적이며 무제한적(無制限的)인 것처럼 보이는 몇몇 구절을 좀 더 살펴보고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 고린도후서 5:14
고린도후서 5:14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14절 전체와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실이 있는데 그리스도 죽음의 목적이 제한적임을 강하게 논증한다는 것이다. 14절 전체 말씀은 이렇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헬라어 본문에는 두 번째 ‘모든 사람’에는 정관사가 있고 동사의 시제는 부정과거이다. 따라서 “우리가 판단하건대 하나가 모두를 위해 죽었다면 모두가 죽은 것이다.”로 번역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즉 바울은 한 사람이 어떤 사람들을 대신해 죽으면 법적으로 그가 대신해 죽은 그 사람들도 죽었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 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 한 사람이 죽었을 뿐이 아니라 다시 살아났다. 따라서 그가 대신 죽은 ‘모든 사람’도 다시 살아났다. 그래서 이 구절은 ‘이들이’ 살아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대리자가 어떤 사람들 대신 취한 행위는 법적으로 그들이 직접 취한 행위로 간주 된다. 하나님도 그렇게 여기신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백성과 동일시되셨고 그리스도의 백성은 그분과 동일시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죽었을 때 이들도 죽었으며(법적으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을 때 이들도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이 단락을 좀 더 읽어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며 법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새 생명을 가졌다는 내용이 나온다.(고후 5:17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은 ‘모든 사람’은 더 이상으로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그들을 대신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를 위해 살아야 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은 ‘모든 사람’은 법적 진실을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삶으로 나타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자신들을 위해 죽은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한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해 죽었다는 말은 이런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은 ‘모든 사람’은 지금 살아 있으며 그분을 위해 산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다음 몇 가지 진리를 배운다.
• 어떤 사람들은 더는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
• 이들은 ‘살아 있는 자들’ 즉 영적으로 살아 있는 자들이다.
• 오직 하나님의 자녀만이 영적으로 살아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이들’이 이 구절이 말하는 ‘모든 사람’과 ‘살아 있는 자들’이며 ‘살아 있는 자들’은 자신의 허물과 죄로 죽은 모든 자와 함께 약속 아래 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그리스도가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신의 ‘모든 백성’(택하신 자들)을 위해 죽으셨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결과로 이들이 ‘살아 있다’고 말한다. 이제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들에게 이렇게 강권하신다.
- 디모데전서 2:5,6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단수 man이 아니라 복수 men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의 총칭이며 인류를 의미)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딤전 2:5,6)
이 말씀에서 ‘모든 사람’이라는 말을 살펴보자. 성경에 ‘모든’이라는 단어는 사람에게 적용될 때 두 가지로 사용된다. 첫째는 절대적 의미로 예외 없이 ‘모두’라는 뜻이다. 둘째는 상대적이거나 제한적인 의미로 사용되는데 차별(差別) 없이 ‘모두’라는 뜻이다. 특정 구절에서 이 단어가 둘 중 어느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전후 문맥을 통해 또 평행구절과 비교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모든’이라는 단어가 절대적 의미로 예외 없이 ‘모두’라는 뜻 보다는 상대적이며 제한적인 의미의 차별 없이 ‘모두’라는 의미로 쓸일 때가 훨씬 더 많다. 그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 “온(all)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all)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막 1:5)
이는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의 모든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이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뜻인가? 아니다. 이것은 예외 없이 ‘모두’가 아니라 차별 없이 ‘모두’라는 뜻이다. 즉 모든 부류 모든 처지 사람들을 의미한다. 같은 설명이 누가복음 3:21에도 적용된다.
-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all)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요 8:2)
여기서 ‘백성이 다’(all, 모든 사람)라는 말은 예외 없이 ‘모두’라는 뜻인가? 아니면 차별 없이 ‘모두’ 즉 모든 종류와 계층의 사람들이란 뜻인가? 후자의 뜻이 분명하다. 성전은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을 다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사도행전 22:15을 보라. “네가 그를 위해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여기서 ‘모든 사람’은 전(全) 인류(人類)를 의미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에 비춰볼 때 디모데전서 2:6에 나오는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라는 말은 차별 없이 ‘모두’라는 뜻일 뿐 예외 없이 전 인류 ‘모두’라는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국적(인종)과 세대와 사회 계층의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주셨다. 또한 ‘모든’ 택하신 자를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주셨다.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계 5:9) 60
- 디모데전서 2:6
더 나아가 디모데전서 2:6에 나오는 “기약이(때가)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는 한정구(限定句)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위해 자신을 주셨다면 다수가 영원히 멸망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증명되겠는가? 그러나 디모데전서 2:6이 그리스도께서 국적, 사회적 명성, 나이, 성(性)의 차별 없이 하나님이 택하신 ‘모든’ 자들을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주셨다는 뜻이라면 이 한정구의 의미는 아주 분명하다. ‘기약이(때가) 이르러’ 이것이 택함을 받은 자들의 구원을 통해 증명될 것이다.
- 히브리서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 2:9)헬라어 본문에는 ‘사람’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이 추상적인 형태로 되어있다. “그분은 모두를 위해 죽음을 맛보셨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것’(thing)이라는 단어를 여기에 보충해 “그분은 ‘모든 것’을 위해서 죽음을 맛보셨다.”로 해석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이것도 잘못이다. 주님이 죽음을 맛보신 것은 ‘온 인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을 위해서 즉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위해서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순전한 주권에서 나오는 것은 오직 지금까지 논증한 제한속죄(制限贖罪)뿐이다. 여기서 제한이란 가치와 효력의 제한이 아니라 계획과 적용의 제한이다.(*) 글쓴 이 / Arthur Walkington Pink 출처 /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지은이 아더 핑크, 옮긴이 전의우(서울, 요단출판사, 2014.)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