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초대교회사

요약 초대교회사(1) 서론과 문제 제기

1론      

1. 초대교회사 범위와 시대구분

외형적인 기간을 중심으로 할 때 초대교회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던 주전 4년부터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Romulus augustus, 460-476)황제가 폐위되어 로마제국이 멸망하던 476년까지로 잡는다. 내면적인 교회의 역사를 중심으로 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할 때부터 로마 교황 그레고리 1세(Pope Gregory I, 540-604)가 590년 즉위하기 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를 세기별로 대별 해 보면 다음과 같다.

  • 1세기 사도시대
  • 2세기 전반은 속(屬) 사도시대  
  • 2세기 중엽은 변증가들의 시대
  • 3세기 기독교사상 확립기 : 3세기에 들어서면서 정통신학이 교회에서 서서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 4,5세기 기독교역사 분기점 : 신학적으로는 기독교 정통사상의 형성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외형적으로는 교회가 세속화로 달려가는 전환점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일련의 종교회의가 열려 교회에 분열의 요인이 되어왔던 신학적인 논쟁들을 종결지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325년의 니케아종교회의를 시작으로 콘스탄티노플회의(381년), 에베소회의(431년), 그리고 칼케돈회의(451년)가 열려 정통신학의 초석(礎石)을 놓았다.

초대교회사는 사도–> 속사도–> 변증가–> 소아시아 신학–> 라틴신학–> 알렉산드리아 신학–> 삼위일체 논쟁–> 기독론 논쟁–> 어거스틴으로 이어지는 사상적인 맥을 이해하면서 역사적인 흐름과 초대교회 역사를 이어온 사상가들을 함께 연구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박해와 이단들의 연구, 수도원 운동의 발흥, 감독제도의 발달 그리고 초대교회 선교운동은 초대교회사에서 필수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주제들이다.

2. 초대교회사 문제

초대교회사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역사구성의 논제(論題, thesis)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두 말할 것 없이 초대교회 최대의 주제였던 로고스(λόγος, logos)이다. 다시 말해 로고스는 초대교회를 이해하는 중심 열쇠이다. 1세기부터 진행된 기독교 박해, 2세기의 속사도, 변증가, 이단, 3세기의 소아시아, 알렉산드리아, 서방신학을 형성한 교부들, 4세기부터 진행된 삼위일체 논쟁, 기독론 논쟁, 이 문제들을 니케아회의(325)부터 콘스탄티노플회의(680)에 이르기까지 로고스는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로마의 최대 종교 스토아주의(Stoicism)는 점점 더 인격적인 종교로 탈바꿈했고 그 핵심에는 로고스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토아철학과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달랐고 로고스에 대한 사상도 서로 차이가 있었지만 스토아 철학과 기독교는 모두 로고스 사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스토아철학에서 로고스 사상이 차지하는 그 이상으로 당대 헬라철학 특별히 플라톤주의(Platonism)에는 로고스 사상이 더욱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로고스 사상은 기독교가 잉태되었던 그 시대에 영향력을 떨치고 있던 중기 플라톤사상과 그 후에 나타난 신플라톤주의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때문에 플라톤주의는 기독교로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로고스의 성육신 준비는 비단 그레코로만(Greco-Roman, 그리스와 로마의 혼합 양식) 배경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유대주의도 예외는 아니다. 수많은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들은 로고스의 오심을 예표하고 있는 것으로 믿었고 그 때문에 당시 메시아 고대(苦待) 사상은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성숙한 시대 속에서 로고스가 오셨던 것이다. 이처럼 초대기독교 핵심주제는 로고스이다.

이 로고스 사상은 예수님 당시는 물론 기독교가 태동되었던 1세기의 최대 주제였다. 제자들은 물론 성경의 모든 저자들은 ‘말씀(로고스)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신 그분이 인간의 구주시며 인류의 구원자’라고 믿었다. 또한 로고스는 변증가들에게도 최대의 주제였다. 로마의 클레켄의 서신에서, 이그나티우스의 일곱 서신에서, 폴리갑의 작품에서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속(續) 사도(Post-Apostolic)들의 작품과 사상에서도 로고스가 핵심에 있었다.

속(續) 사도들의 로고스 사상이 점점 더 발전되어 하나의 틀을 갖기 시작한 것은 변증가들 때에 이르러서다. 변증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는 로고스였다. 이 로고스 사상을 통해 그들은 기독교와 헬라철학을 연계시켰고 모세와 플라톤을 꿰뚫었으며 예루살렘과 아테네를 연결했던 것이다.

또한 로고스 사상은 2세기 이단들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2세기 역사무대에 등장한 일련의 이단들 즉 영지주의, 발렌티누스, 말시온이 갖고 있던 중심주제 역시 로고스였다. 기독교를 헬라철학의 틀 속에 뜯어 고친 나머지 기독교를 아예 헬라화 시켜버린 영지주의자들의 한결같은 특징 곧 영육의 이원론 사상은 플라톤 사상에 뿌리내려져 있다. 이들은 일부 플라톤 사상을 기독교화 시켰던 변증가들이나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달리 아예 전 헬라철학을 기독교화 하려고 했다.

이런 일련의 도전을 받게 된 교회는 전통적인 사도들의 신앙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고 그것들을 통해 잘못된 신앙을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고난과 부활과 재림을 담은 로마신경이 태동되었고 이것이 오늘날과 같은 사도신경 형태로 발전되었다. 정경형성이 촉진되고 감독제도가 발달하고 신경이 발달되면서 2세기 말엽에 들어서 초대교회는 하나의 틀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감독의 발달로 교구가 구체적으로 형성되었고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는 신학자들이 등장하였다. 후대인들은 이들을 교부라 불렀다.

최초의 교부(敎父)는 이레니우스였다. 이레니우스의 사상을 한마디로 집약한다면 구속사와 성경적인 전통 및 언약사상에 근거한 로고스 ‘총괄갱신’(總括更新) 사상이다.  인류의 구속사는 창조와 더불어 시작되었고 종말까지 계속된다는 것이며 로고스의 총괄갱신(總括更新, recapitulation)이 그 역사의 정점(頂點)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레니우스의 역사관은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354-430)의 역사관과 종교개혁 특히 칼빈(John Calvin, 1509-1564)의 역사해석의 원형이 되었으며, 종교개혁 이후의 코케이우스(Johannes Cocceius, 1603-1669)를 비롯 많은 계약 신약자들의 계약신학도 이레니우스에게 상당한 빚을 지고 있다. 이레니우스의 로고스 사상은 요한복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헬라철학의 로고스 사상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또한 로고스는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이해하는 핵심열쇠이다. 알렉산드리아 신학의 원형은 저스틴(Justin Martyr, 100-165)에게서 찾을 수 있지만 필로(Philo of Alexandria, 25BC-50AD)에게까지 올라간다. 필로의 사상이 저스틴에게 와서 좀 더 성경적인 개념으로 발전되었고 이 저스틴의 로고스 사상이 알렉산드리아 신학의 원형이 되었다. 저스틴이 갖고 있던 진리라는 측면에서의 기독교와 헬라철학의 연속성이 클레멘트와 오리겐의 사상 속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터툴리안이 헬라철학이야 말로 이단의 원천이라고 개탄한 것에 반해 알렉산드리아 신학자들은 헬라철학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확신했다.            

터툴리안 역시 당대의 흐름을 주도했던 로고스 사상을 피할 수 없었고, 라티의 법률 용어를 동원하여 로고스론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터툴리안은 로고스의 성육신을 약화시키는 수많은 이단들 특별히 양태론(樣態論) 자들에 맞서 참으로 인간이시고 참으로 하나님이신 로고스를 변화시키는데 온 정열을 다했다.

이것은 또한 4세기부터 6세기까지 초대교회사의 핵심 주제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과연 하나님이신가?”라는 주제와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참으로 인간이시고 참으로 하나님이시라면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이 예수의 한 인격 안에 어떻게 연합되었는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of Alexandria, 296-373)가 수없는 추방을 당하면서도 일편단심 아리우스(Arius, 256-336)에 대항하여 니케아신앙을 변호하려고 했던 것도, 교회가 이 둘의 세력 다툼 속에서 양편가운데 어느 한편에 위치시키기 위해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정황도, 역시 로고스 때문이었다. 어쩌면 논쟁의 와중에서 고투해야 했던 4,5,6세기 교회들에게 로고스는 생사(生死)의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은 오류(誤謬)가 많은 인간들의 이기적 결정들을 거룩한 방향으로 진행시켜 주셨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출발했던 니케아회의가 기독교 정통의 영원한 토대(土臺)를 닦는 기회가 되었고 시릴과 그 일행의 야심적이고 이기적인 결정이 에베소 정통으로 정착되는 계기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교회의 머리이신 살아계신 로고스께서 그 살아계심을 교회의 역사 속에서 선포하신 것이다. 역사에 초월하여 계시면서도 역사에 개입하신 그 로고스는 이 시간도 여전히 인류역사와 나 자신의 역사에도 개입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분의  역사하심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는 것이다.(*) 글쓴 이 / 박용규 교수(총신신대원, 교회사, 성균관대학교(B.A.)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Western Evangelical Seminaryl(M.A.)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Th.M.)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Ph.D.) 출처 / ‘초대교회사’ 박용규 저, 총신대출판사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