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초대교회사

요약 초대교회사(11) 4,5세기 정통의 확립

요약 초대교회사(11) 4,5세기 정통의 확립

제11장 삼위일체 논쟁

“만일 성부(聖父)가 한 분이고 성자(聖子)는 또 다른 분이라면 그래서 성부도 하나님이고 성자도 하나님이라면 한 하나님이 아니라 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오직 한 분뿐이라면 결과적으로 그리스도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만이 성부께서 참으로 한 하나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Novatian(AD200-258) * Novatian was a scholar, priest, theologian and antipope between 251 and 258.

초대 기독교의 최대 관심 주제(主題)는 ‘예수 그리스도’였다.

▸ 과연 그리스도는 어떤 존재인가?  

▸ 그는 정말 하나님이신가?

▸ 그리스도가 정말 하나님이라면 창조주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가?

성부와 성자의 관계 즉 “성자가 하나님이고 성부도 하나님이면 둘은 어떤 관계인가?”라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문제와 관련된 기독론(基督論)은초대교회 때부터 수 세기에 걸쳐 신학자들 간의 뜨거운 쟁점(爭點)이 되었다. 이를 ‘삼위일체 논쟁’(The Trinitarian Controversy)이라고 한다.

1. 삼위일체 논쟁의 역사적 배경

주후 90년에서 140년 사이에 활동했던 속사도(屬使徒, Post-Apostolic)들은 비록 신학적 의미의 삼위일체(三位一體)에 관한 분명한 교리는 제시하지 못했으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을 했다. 그 후 삼위일체 개념은 그리스도의 선재성(先在性)이나 그리스도의 신성을 학문적으로 좀 더 체계화시킨 기독교 변증가(辨證家)들에 의해 더욱 분명해지게 되었다.  

저스틴(Justin Martyr, 100-165)은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 이전에 선재(先在)하신 로고스(Logos, 성자)는 ‘하나님의 첫아들’이며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하나님 다음 되시는 분’이다.”라고 말했다. 즉 로고스(성자)는 하나님 다음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즉 지혜와 권능과 영과 능력에서 아버지(성부)에 종속(從屬)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저스틴의 삼위일체론은 ‘성자 종속설’(聖子從屬說, Subordinationismus)과 비슷했다. 이것은 당시 대부분 변증가들의 견해이기도 했다.

기독교 초기 변증가들에 의해 상당히 발전된 삼위일체 개념은 교부들(敎父, church Fathers)에 와서 좀 더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이레니우스(Irenaeus, 130-202)는 변증가들 보다 상당히 발전된 신관(神觀)을 갖고 있었다. 이레니우스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은 분이다.

▸ 그(성자)는 만물(萬物) 이전에 존재하셨으며, 만물이 그(성자)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다.

▸ 아들(성자)은 아버지(성부)와 같이 영원(永遠)하시다.

▸ 아버지(성부)를 계시(啓示)하시는 이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오직 한 하나님 창조주가 계시는데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하는 분이다.

▸ 그(성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다.

이레니우스에 따르면 인류(人類)에 관련된 하나님의 모든 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요약(要約)된다. 이레니우스는 이같이 성자(聖子)를 성부(聖父)와 영원히 공존(共存)하시는 분으로 이해했다. 즉 이 로고스(성자)는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었다.

터툴리안(Tertullian, 160-220)은 서방교회에서 가장 성경적 삼위일체론을 제시한 인물이다. 그는 삼위일체의 ‘한 본성’(本性, one substance), ‘한 본질’(本質, nature) 그리고 ‘삼위’(三位, three persons) 하나님의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신학자였다. 이러한 그의 삼위일체 개념이 325년 니케아 회의(First Council of Nicaea) 그리고 381년 콘스탄티노플회의(First Council of Constantinople) 때 삼위일체에 관한 신조(信條) 작성의 기초가 되었다. 터툴리안이 비록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아니나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의 윤곽을 제공한 최초의 신학자였다.

2. 단일신론(單一神論, Monarchianism)

성자(聖子)가 성부(聖父)와 같은 하나님이라는 사상이 성자의 신성(神性) 문제는 해결할 수 있겠지만 성부와 성자가 어떤 관계인가라는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그 결과 기독교가 한 하나님이 아니라 여러 하나님이 존재하는 다신론(多神論)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때문에 노바티안(Novatian, 200-258)은 이렇게 말했다. * 단일신론 – 하나님이 한 분임을 강조하는 신론 

“만일 성부(聖父)가 한 분이고 성자(聖子)는 또 다른 분이라면 그래서 성부도 하나님이고 성자도 하나님이라면 한 하나님이 아니라 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오직 한 분뿐이라면 결과적으로 그리스도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만이 성부께서 참으로 한 하나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부와 성자가 어떤 관계인가라는 문제는 삼위일체 논쟁의 핵심이었다.

우리는 삼위일체 논쟁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관련된 오류(誤謬)들과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人性)과 관련된 오류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관련된 오류들의 전체적인 윤곽을 제시하면 다름과 같다.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관련된 대표적인 오류는 오직 하나님은 한 분뿐임을 강조하는 ‘단일신론’(單一神論, Monarchianism)이다. 단일신론은 다시 ‘양태론적 단일신론’과 ‘역동적 단일신론’으로 나뉜다. 양태론적 단일신론은 다시 ‘성부 수난설’과 ‘사벨리안주의’로 나뉜다.

 ① 양태론적(樣態論的) 단일신론

    • 성부 수난설(Patripassiamsm)

    • 사벨리안주의(Sabellianism)

 ② 역동적(力動的) 단일신론(또는 양자론적(養子論的) 단일신론)

(1) 양태론적(樣態論的) 단일신론(Modalistic Monarchianism)

여기에 속한 초기 지도자들은 서머나의 노에투스(Noetus)와 프락세아스(Praxeas)이다. 이들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이 각기 다른 이름과 형태만을 가진 동일(同一)한 한 하나님이심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즉 한 분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으로 모습을 바꾸어서 나타났다고 하는 것이다. 이들이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설명하기 위해 흔히 쓰는 비유가 태양(太陽)과 열(熱)과 광선(光線)이다. 성부가 태양이시고 성자는 광선이시며 성령은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열이라고 본다. 이들은 성자가 성육신하신 성부이며, 따라서 성부 자신이 고난(苦難)을 받고 죽었다는 것이다. 성부 자신이 수난(受難)을 받았다고 주장함으로써 양태론적 단일신론자들은 ‘성부수난설 주의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양태론적 단일신론은 사벨리안주의(Sabellianism)이다. 이 때문에 양태론적 단일신론을 사벨리안주의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소아시아에서 발생하여 로마로 발전했던 사벨리안주의는 초대교회 기독론에 위협적인 이단(異端) 중의 하나였다. 양태론과 같이 사벨리안주의도 하나님의 단일성(單一性)을 보호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상당히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 가지 방법 또는 양식(樣式, modes)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시고 온 백성에게 율법을 주신 성부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하셨고, 동일하신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맡으셨을 때는 성자 하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셨고, 아들의 구속 사역이 완성되자 하나님은 성령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삼위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으로 상황에 따라 달리 계시하셨다는 것이다.

터툴리안(Tertullian, 160-220)이 지적했던 것처럼 사벨리우스(Sabellius)는 성부가 동정녀(童貞女)에게 잉태되어 고난을 받고 죽으셨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사벨리안주의는 성부 하나님이 친히 성자의 모습으로 오셔서 고난을 받으셨다는 성부 고난설(苦難說)에 빠졌다. 뿐만이 아니라 일체(一體)를 강조한 나머지 삼위(三位)의 구별을 무시하고 그리스도의 인성을 평가절하시키고 말았다. 사벨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디오니시우스(Pope Dionysius of Alexandria, ?-265)에 의해 260년에 추방되었다. 이같이 양태론적 단일신론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否認)하는 것이다.

(2) 역동적 단일신론(Dynamic Monarchianism or Adoptionism, Patripassianism)

역동적(力動的) 단일신론은 양태론적 단일신론과 반대로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강조하고 삼위를 구분하려고 했으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약화(弱化)시켰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신성(神性)이 충만한 인간(人間)일 뿐이었다.  

역동적 단일신론의 대표적인 일파인 에비온파(Ebionites)는 예수가 세례 시부터 신성이 충만한 사람이 되었다고 믿었다. 250년경 안디옥의 감독이었던 사모사타 바울(Paul of Samosata, 200-275)도 역동적 단일신론을 가르쳤다. 역동적 단일신론의 대표적인 인물은 데오도투스(Theodotus of Byzantium)이다. 원래 예수 그리스도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세례를 받으실 때 신(神)으로서 입양(入養, adoption)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동적 단일신론’을 ‘양자설’(養子說, adoptionism)이라고도 한다.

이같이 역동적 단일신론의 특징은 세례 전과 세례 후의 예수를 구분한다. 예수가 기적적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났으며 선하고 의로운 한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으나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가 그에게 권능으로 임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완전히 순종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구주(救主)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데오도투스의 이런 사상은 안디옥 감독 사모사타의 바울(Paul of Samosata, 200-275)에게 계승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로고스(Logos) 또는 이성(理性)이 인간 예수에 강림하여 그 안에 존재하게 되었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후에 하나님이 이러한 예수를 양자(養子)로 삼으시고 그에게 일종의 신성(神性)을 주셨다는 것이다. 예수 안에 로고스가 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神性)을 부인하는 이런 ‘역동적 단일신론’ 또는 ‘양자론’은 그 후 아리우스(Arius, 256-336)에게 영향을 미쳤다. 또 단일신론은 소시니안주의(Socinianism), 합리주의(合理主義, 理性主義, Rationalism), 유니테리어니즘(Unitarianism)으로 이어지고 오늘날은 해방신학(解放神學, Liberation theology)을 통해 현대에도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

3. 아타나시우스 대(對) 아리우스 논쟁

동방에서 진행된 삼위일체 논쟁은 약 318년경 알렉산드리아 교회 알렉산더 감독(Pope Alexander of Alexandria, 250-320)과 그 교회 장로 아리우스(Arius, 256-336) 사이의 논쟁에서 발단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알렉산드리아 감독인 알렉산더 감독이 자신의 교구 장로들과 교직자들을 모아놓고 삼위일체의 통일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설명을 하였는데 그 자리에 있던 장로 가운데 한사람인 아리우스가 일어나 감독은 사벨리우스(Sabellius)의 교리를 말하고 있다고 하면서 정면으로 감독의 삼위일체 견해를 반박했다.  

아리우스는 만일 성부(聖父)가 성자(聖子)를 낳았다면 난자는 존재(存在)의 시작을 가졌을 것이며 아들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아들의 존재는 성부와 같은 본질(本質)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리우스는 성부가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신성(神性)을 가졌고 성자는 성부에게 영원히 종속(從屬)한다는 오리겐(Origen, 184-253)의 이론을 강조하였다.

아리우스의 주장은 과거에 아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만일 성부가 성자를 낳았다면 난자는 존재의 시작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은 없었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존재는 비존재로부터 나왔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오리겐의 성부와 성자의 본질(本質)의 차이를 극대화한 아리우스는 성자(聖子)가 사실상 피조물로서 ‘모든 피조물의 장자’라고 믿었다. 하나의 존재로 아들은 천사들보다 높겠지만 성부 하나님보다는 낮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나아가 아리우스는 아들이 인간이 되고 고난과 죽음 등의 인간적 슬픔을 맛보기 위해서는 하나님보다 열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방의 양자론자(養子論者)들과 같이 아리우스는 하나님의 단일성(單一性)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성부 혼자만 시작이 없으신 분이며 성부만이 참으로 하나님이시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성자는 본질적(本質的)으로 성부와 구별된다. 아들(또는 로고스)은 시작이 있으시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위해 로고스를 창조하셨다. 이 로고스는 만물 중에 첫째며 가장 높은 자이기 때문에 로고스는 하나님이지만 그렇게 표현했을 뿐이지 로고는 실상 피조물(被造物)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로고스를 통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의미에서 로고스는 창조주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아리우스 사상은 헬라의 중기 플라톤주의를 반영한다. 결국에 이런 로고스는 무(無, ex nihilo)에서 창조된 첫 피조물(被造物, first born ofcreature)이며,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이지만 성부와 같은 동질(同質, homoousios)이아니고 유사본질(類似本質, homoiousios)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아리우스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급진적인 아리안주의(Anominism)

• 아들은 피조물이다.

• 아들은 시작이 있다.(아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 아들은 아버지와 교통이 없고 아버지 지식을 공유(共有)하지 않는다.

• 아들은 변형(變形)할 수 있고 죄(罪)를 지을 수 있다.

(2) 반(半) 아리안주의(semi-Arianism)

• 성자의 본질(本質)은 성부의 것과 유사(類似)하다.

아리우스가 가르친 로고스(성자)는 완전한 하나님도 완전한 사람도 아니었다. 로고스가 성부와 동질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부의 종속적(從屬的)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성부의 본질과 다른 무(無)에서 창조된 피조물(被造物)에 불과한 존재다. 또 이 로고스가 지상의 예수 안에서 인간의 영혼(靈魂)을 대신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단지 로고스를 지니고 있는 존재에 불과하다. 따라서 영혼 없는 이 예수는 완전한 하나님도 완전한 사람도 아니다.

아리우스 논쟁이 중반에 접어들었을 때 하나님이 보내신 한 교회지도자가 출현했으니 그가 바로 328년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직을 계승한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373)이었다. 아타나시우스는 니케아신조(The Nicene Creed, 325)의 기초를 세우는 데 공헌했으며 이 신조의 보호에 일생을 바쳤다. 그의 이름은 ‘니케아 정통신앙’과 동의어(同義語)가 되었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가 오리겐을 오해했다며 아리우스주의를 전투적으로 공박했다.  

사실 아리우스는 오리겐의 로고스 사상을 잘못 이해했다. 아타나시우스가 블 때 오리겐이 말한 성자의 영원성(永遠性)은 곧 성부와의 동등성(同等性)을 의미했다. 이는 아들이 아버지와 동질(同質)이라고 선언한 ‘니케아회의 신조’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아타나시우스는 삼위(三位)의 각 신격(神格)이 하나님의 단일성(單一性, oneness)을 공유(共有)하며 세 신격이 본질상 별개의 존재로 간주 될 수 없다고 반박(反縛)했다.

알렉산드리아 감독 알렉산더는 321년 알렉산드리아회의를 소집하여 아리우스와 그 동료들을 정죄(定罪)하고 출교(黜敎)시켰다. 그런데도  아리우스를 따르는 세력이 적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리우스의 견해가 다신론(多神論)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유일성(唯一性, unity)을 보호해 주는 것처럼 보였고, 아리우스가 하나님이 물질계의 창조자가 될 수 없다는 헬라 사상을 주저함 없이 수용했으며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또는 로고스를 신적(神的) 존재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니코메디아 감독과 가이사랴 감독이 아리우스를 지지하고 나섰고, 아리우스는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의 도움을 받아 은신처에서 있으면서 편지로 자신 입장을 계속 확산시켜 나갔다. 알렉산더 역시 동료들에게 서신을 보내 자신 입장이 정당함을 알렸다. 이런 상황을 감지한 황제는 문제가 확대되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호시우스 감독을 시켜 이견 조정을 시도했다.(*) 글쓴 이 / 박용규 교수(총신신대원, 교회사, 성균관대학교(B.A.)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Western Evangelical Seminaryl(M.A.)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Th.M.)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Ph.D.) 출처 / ‘초대교회사’ 박용규 저, 총신대출판사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