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36) 중보자 그리스도에 관하여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제8장 중보자 그리스도에 관하여
제3항 : 신성(神性)의 필요성
3항 신성(神性)과 결합된 인성(人性)을 지니고 계시는 주 예수님은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시고, 한량없이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사 45:7, 요 3:34) 그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고(골 2:3), 하나님은 모든 충만으 로 그분 안에 거하게 하기를 기뻐하셨다.(골 1:19) 이는 그분이 거룩하고, 흠이 없고, 순결하고,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시어(히 7:26, 요 1:14) 중보자와 보증인의 직임을 수행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행 10:38, 히 12:24,7:22) 이 직임은 그분이 스스로 취하신 것이 아니라 성부가 맡기신 것이었다.(히 5:4,5) 성부는 그분의 손에 모든 권세와 심판권을 맡기시고, 그것을 수행하라고 명령하셨다.(요 5:22,27, 마 28:18, 행 2:36)
해설
이 조항은 중보자의 조건을 진술한다. 성자께 중보사역을 맡기신 성부는 그 일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격조건을 허락하셨다. 성부는 고난과 죽음을 감당하실 수 있도록 성자를 위해 한 육체를 예비하셨고, 성자의 그 인성(人性) 위에 성령의 은사와 은혜를 한량없이 부어 주시어 중보자의 직임을 수행하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셨다.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요 3:34)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은 성령의 권능을 통해 기적적으로 잉태되신 순간부터 가장 완전하게 형성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지니시고 공적 사역을 처음 시작하고자 하실 때도 그분의 사명을 보증하시고, 그 사역을 위한 자격을 부여하시기 위해 성령이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그분 위에 임하셨다.(눅 3:21,22)
제4항 :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卑下) 높아지심(昇貴)
4항 주 예수님은 이 직임을 기꺼이 맡으셨으며(시 40:7,8, 히 10:5-10, 요 10:18, 빌 2:8), 이 직임을 이행하시기 위해 율법 아래 나셨고(갈 4:4), 율법을 온전히 이루셨다.(마 3:15, 5:17) 그분은 영혼 안에서 느껴지는 가장 극심한 고통(마 26:37,38, 눅 22:44, 마 27:46)과 육채 안에서 느껴지는 가장 고통스 런 아픔을(마 26, 27장) 감내하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며(빌 2:8), 장사되어 사망의 권세 아래 머무셨지만 썩음을 당하지 않으시고(행 2:23,24,27, 13:37, 롬 6:9), 고난을 당하실 때의 그 육체 그대로(요 20:25,27)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며(고전 15:3-5), 하늘에 오르시어 성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다.(막 16:19) 그분은 그곳에서 중보기도를 드리시며(롬 8:34, 히 9:24, 7:25), 세상의 마지막에 다시 오시어 사람들과 천사들을 심판하실 것이다.(롬 14:9-10, 행 1:11, 10:42, 마 13:40-42, 유 1:6, 벧후 2:4)
해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의 보증인(保證人)으로서 참으로 담대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신다.(렘 30:21) 물론 그리스도는 인류 전체가 아니라 성부가 자기에게 주신 자들 곧 자신의 영적 후손으로 받아들인 자들만을 위한 보증인이시다.
이 조항은 앞의 3항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이 4항은 그리스도께서 중보자의 직임은 물론 보증인의 직임까지 기꺼이 맡으셨다고 진술한다. 보증인이란 다른 사람이 진 빚을 대신 갚아 주거나 다른 사람이 감당해야 할 형벌을 대신 감당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그런 보증인이 되셨다. 그분은 영원한 언약을 통해 선택 받은 자들이 갚아야 할 무한한 빚을 대신 갚아 주실 하나님의 율법과 정의를 만족시킬 보증인으로 택정되셨다.
성부가 성자를 보증인으로 택정하시고 성자께서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셨기 때문에 선택 받은 자들의 죄가 성자께 전가되었고 성자 예수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대표자로 나선 사람들을 대신해 복종과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다.
소시니우스주의(Sociniansim)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이 같은 보증인이 되신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해 죽으신 것은 우리를 대신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를 유익하게 하시기 위해 곧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며 인내해야 한다는 교훈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한다.
신(新) 율법주의(neo-legalism) 자들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보증인이 되신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의 정의를 만족시키셨지만 그분은 단지 하나님의 명예를 존중하는 데 필요한 한도에서만 죄인들을 구원하겠다는 조건에 합의하셨다.”고 주장한다. 이 밖에도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께 전가되었다는 교리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일반 속죄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 교리를 부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대리자이시고, 그분의 고난이 대리 속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분이 보증인이시라는 교리 곧 선택 받은 백성의 죄책이 그분께 전가되었고 그분이 그들이 초래한 형벌을 대신 감당하셨다는 교리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보증’(保證) 이라는 용어를 그리스도께 직접 적용한다.(히 7:22) 소시니우스주의 자들의 주장과 달리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위한 보증인 곧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확실하게 실행하시게 하기 위한 보증인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보증인 곧 선택 받은 죄인들을 위한 보증인이시다.
그분은 그들이 율법(행위 언약)에 빚진 복종의 빚을 대신 치르시고, 그 죄로 인한 형벌의 빛을 대신 갚아주셨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라는 말씀은 선택 받은 백성의 죄가 그리스도께 전가되었다는 분명한 증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불의한자들 곧 자기 백성의 죄를 위해 고난 당하셨다. 그 이유는 그분이 그들의 죄책을 대신 짊어지셨기 때문이다.(벧전 3:18, 사 53:8)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명령하신 희생제사는 모두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리키는 예표였다. 모든 희생제사는 대리적인 의미를 지닌다. 범죄자의 죄책이 속죄 제물에게 전가되었다.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으로 그 사실을 상징했다. 그런 예표는 주님이 자기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지심으로 온전히 실현되었다. 성경은 그분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고 말한다.(벧전 2:24)
이와 같은 보중인의 교리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정의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교리가 분명해야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정의를 만족시키신 공로가 그분의 백성에게 전가된다는 교리도 온전히 성립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보증인으로서 복종하셨고 고난 당하셨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시고 고난당하신 것이 그들의 공로가 되어 그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준다.(고후 5:21)
보편 구원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런 교리들은 결국 그리스도께서 성부가 허락하신 한정된 숫자의 백성만을 위해 고난당하고 죽으셨다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인류 전체를 위한 보증인이시라면 모든 인류가 구원을 받거나 아니면 분명 지옥으로 가는 자들이 있기에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온전히 이루지 못하셨거나 둘 중의 한 가지 결론만이 가능하다.
아울러 이 4항은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심(卑下)과 높아지심(昇貴)의 상태에서 모두 중보자의 직임을 수행하셨다고 진술한다.
(1) 그리스도께서는 율법 아래 나셨고 율법을 온전히 이루셨다.
여기에서 율법은 십계명과 같은 삶의 규범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永生)을 얻는 조건으로서 완전한 복종을 요구하는 언약의 율법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조건과 도덕적 원칙을 모두 만족시켜 인간의 죄를 속량(贖良)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본래 율법에 아무 빚도 지지 않으셨지만 죄인들의 보증인으로서 자발적으로 율법에 복종하셨다. 그래서 그분은 율법의 계명을 이루셨고 그 형벌을 감당하셨다.
그분이 이 같이 율법의 종이 되어 복종과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것은 그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분은 단지 율법을 성취하는 데 그치지 않으시고 율법을 ‘크게 하며 존귀하게’(사 42:21)하셨다.
(2) 그리스도께서는 영혼과 육체로 고난을 당하셨다.
그분의 고난은 다양했고 그 정도는 매우 극심했다. 그분은 일생 동안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사 53:3)로 살아가셨다. 그분은 원수들은 물론 친구를 자처하는 사람들로부터도 많은 고난을 당하셨으며 사탄의 유혹에 시달리셨다. 더욱이 그분은 피조물들에게 고난을 당하시는데 그치지 않고 재판관이신 하나님의 손에 의해 직접 많은 고난을 당하셨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사 53:10)
소시니우스주의 자들은 주님의 고난이 형벌의 성격을 가진다는 것을 부인하기 때문에 그분이 피조물들인 인간이 가한 고난만을 당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혼이 진노하신 하나님 곧 그분이 대신하는 사람들의 죄에 대해 만족스런 배상을 요구하시는 재판관의 손에 의해 직접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을 부인하면 그분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극심한 고뇌를 견디셔야 했던 일과 십자가에게 애타게 부르짖으셨던 일을 달리 설명할 근거가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사랑이 잠시 중단되는 고통을 견디시고 죄를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감당하셔야 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마 26:38),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하시며 고통 중에 슬프게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3)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죽음은 율법의 형벌이요 정당한 죗값이다. 따라서 죄인들의 보증인이신 예수님은 죽음을 감당하셔야만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계명에 복종하셨고 세상에 계시는 동안 가장 혹독한 고난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분이 죽지 않으셨다면 그 모든 것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되어 우리는 구원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죽기까지 복종’(빌 2:8)하셨다. 그분은 가장 길고,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죽음 곧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다.
그것은 저주받은 죽음이었다. 성경은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 21:23)고 말한다. 성경이 그런 형태의 죽음을 저주와 연관시킨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당하실 죽음의 성격을 미리 암시하기 위해서이다.(갈 3:10) 인간의 편에서 보면 그분의 죽음은 폭압적이었다. 왜냐하면 악인들의 손에 의해 죽음을 당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분의 편에서 보면 자발적인 것이다.(요 10:18)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대리적인 성격을 띤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분의 죽음이 그런 성격을 띠지 못했다면 선지자와 사도들과 순교자들의 죽음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고전 15:3)라고 말했다.
(4) 그리스도는 장사되어 잠시 동안 사망의 권세 아래 놓이셨다.
그리스도의 시신(屍身)을 십자가에서 내리자마자 그분이 살아나셨다면 원수들은 그분이 실제로 죽지 않으셨다고 생각했을 것이 뻔하고 또 그분을 따랐던 이들도 그분이 실제로 죽으셨다는 확실한 증거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분의 백성을 위한 희망과 행복이 걸려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것을 확실하게 입증하시기 위해 그분을 무덤에 장사(葬事)해 사흘 낮밤을 사망의 권세 아래 머물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장사되신 또 하나의 이유는 무덤이 부활의 때까지 육신이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그분을 믿는 이들에게 일깨워 주시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죄의 대가(代價)가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것인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죄 때문에 우리의 구원자 주님이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다. 우리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찬양하자. 그분은 부요하신 분이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고 그 가난함으로 우리가 부요하게 되었다.(고후 8:9)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인성만으로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다. 우리는 그분의 고귀한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갈보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의 주’(고전 2:8)이셨다. 그분은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셨을 때도 여전히 주님이셨다.(마28:6)
성령님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뒤에 있을 영광을 예고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한없이 낮아지셨다가 다시 영광스럽게 높아지셨다. 그분은 세상에서 행하신 사역에 대한 보상으로 말로 다할 수 없는 영광을 얻으셨고 교회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 계속중보 사역을 행하신다.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몇 단계를 거쳐 이루어졌다. 각각의 단계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그리스도는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
구약의 예연과 예표가 이루어지고 십자가를 통한 공의(公義)의 만족과 의로움이 온전해지려면 그리스도의 부활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확실하게 입증된 사실이다. 무엇보다 증인들의 숫자가 충분했다. 그들은 스스로 현혹되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을 현혹시킬 의도도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로운데도 그 사실을 힘써 알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다가 죽은 이들이 많았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무덤에 장사되었던 그 육체 그대로 부활하셨다. 이것은 그분의 부활하신 몸에 못 자국과 창 자국이 나 있는 사실로 분명히 입증된다.(요 20:20)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분의 부활은 그분을 믿는 모든 신자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의 근원이 된다. 그분의 지고(至高)하신 신성(神性)이 부활로 확실하게 입증되었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이 그분이 드리신 희생을 기쁘게 받아들이셨고 그분의 죽음이 구원의 효력을 발생시키기에 충분하다는 증거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을 통해 죽음과 무덤에 대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셨다. 이로써 신자들은 자신들도 장차 영광스럽게 부활하여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확실한 보증과 증거를 갖게 되었다.
-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오르셨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고난 받고 다시 살아났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셨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속한 일들을 가르치셨다. 그런 다음 감람산에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천사들의 영광스러운 호위를 받으며 세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천국의 거주자들은 환호하며 그분을 맞이했다.(시 47:5)
그리스도는 하늘에 오르사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영광을 얻으셨다. 그분은 하늘에서 성령님을 보내어 경이로운 은사들과 거룩하게 하시는 능력을 교회와 신자들에게 베푸시게 하신다. 또한 높임 받으신 왕으로 자기 백성을 보호하고 다스리시며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드리시고 장차 그들이 있을 곳과 그들에게 주실 하늘의 기업을 예비하신다.
-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
이 말은 비유적이다. 왜냐하면 영이신 하나님은 육채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인간 세상에서 오른편은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영예의 자리를 뜻한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은 신성과 인성을 지니신 그분이 말로 다할 수 없는 영광과 위엄을 갖추게 되셨고 통치자로서의 주권적인 권위를 부여 받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엡 1:20,22)
또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은 그분이모든 적대자들에게서 안전하게 벗어나 온전한 안식을 누리시며, 영원히 영광스러운 상태로 존재하신다는 것을 암시한다.(히 10:12)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히 높이 되셨다. 따라서 그분의 십자가를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분은 ‘십자가를 참으사… 히나님 보좌 우편에’(히 12:2) 앉으셨다. 그러므로 세상에 있는 그분의 교회는 온전히 보존될 것이고 그분과 교회를 대적하는 원수들의 음모는 모두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시 2:1-4)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의 머리요 대표자로서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의 오른 편에 앉으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을 통해 장차 우리도 그렇게 높아지리라는 확실한 보증을 발견할 수 있다.(엡 2:6)
- 그리스도는 지금도 자기 백성을 위해 중보기도 하신다.
그분은 자기 백성을 대신해 성부 하나님 앞에 나가 속죄의 희생을 통한 공로를 그들을 대신해 기도하는 근거로 제시하시며 높아지신 상태에 합당한 태도로 소원을 말씀하신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그들을 위해 값 주고 사신 축복을 그들이 누릴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신다. 그분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자들을 위해 기도하신다.(요 17:9) 그분은 각 사람의 다양한 상황에 맞게 그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하신다.(눅 22:32)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는 새 언약의 약속과 그분이 값 주고 사신 축복들만큼이나 광범위하다. 그분은 아직 회심하지 않은 자들을 위해서는 진리를 아는 지식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이미 회심한 자들을 위해서는 유혹을 당할 때 넘어지지 않고 항상 은혜 안에 머물게 해달라고 기도하신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 그들의 인격과 섬김을 받아들여 주시기를 기도하고, 그들이 차츰 거룩해지다가 정한 때에 영화롭게 되기를 간구하신다.(요 17장)
그분의 중보기도는 항상 응답을 받는다.(시 21:2, 요 11:42) 그리스도의 중보기도가 그런 효력을 발취하는 이유는 그분이 권위 있는 중보자이시며 성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계시기 때문이다. 성부는 중보자이신 성자를 지극히 사랑하실 뿐 아니라 그분이 대신해 기도하시는 자들에게도 특별한 사랑을 베푸신다.(요 16:27) 자기 백성을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는 항상 성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다. 그분의 중보기도는 그분이 드리신 희생에 근거한다. 성부는 그리스도의 기도를 항상 기쁘게 받아주실 뿐 아니라 그분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맺으신 언약은 절대 깨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항상 신실하시다. 따라서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그리스도를 사랑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세상에서 하늘로 향하게 하고 위의 것을 사모해야한다. 또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하고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살며 그분의 대의를 추구하고 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널리 항상 힘써 행해야 한다.
-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시어 사람들과 천사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성경은 이 진리를 분명하게 계시하며 확실하게 증언한다. 아담의 7대손 에녹이 이 사실을 엄숙하게 예언했다.(유 1:14)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관한 약속의 말씀이 구약성경 도처에서 발견된다.(시 150:3, 96:13, 98:9) 사도들도 한목소리로 이 진리를 전했다.(살전 4:16, 살후 1:7-9) 천사들도 똑같은 진리를 전했다.(히 1:11) 그리스도의 확실한 증언도 이 진리를 확증한다.(마 26:64 계 22:7,12,20)
그리스도는 큰 권능과 영광 가운데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재림하실 것이다. 성삼위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날을 알고 계시지만 우리는 그날을 알 수 없다. 그날은 마치 가까이 임박한 것처럼 뜻하지 않은 순간에 갑작스레 임할 것이다.(마 25:13, 약 5:8,9) 그리스도의 재림은 곧바로 심판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분은 사람들과 천사들의 마지막 운명을 선고하시고 자기 백성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실 것이다.(히 9:28)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자주 진지하게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우리가 주님의 재림에 깊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는 말씀이 그날에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의 은사를 선용해 그분으로부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3)라는 칭찬을 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열심히 힘껏 활용하자.(눅 12:35,36) 요한 사도는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고 권고했다.(*) 글쓴 이 / 로버트 쇼(Robert Shaw, 1795-1863) 출처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 로버트 쇼 저, 조계광 역, 생명의 말씀사, 2014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