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38) 인간의 자유의지

제9장 자유의지
제1항 : 인간의 본성적 이유
1항 하나님은 인간의 의지에 생득적(生得的)인 지유를 부여하셨다. 이 자유는 강압이나 절대적인 필연성에 의해 선(善)이나 악(惡)을 행하도록 강요 되지 않는다.(마 17:12, 약 1:14, 신 30:19)
해설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가 지적한 대로 칼빈주의 자들과 아르미니우스주의 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논쟁의 대부분은 도덕적 존재의 필수 요건인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라는 문제를 어떻게 결론짓느냐에 달려 있다. 아르미니우스주의 자들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세 가지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첫째, 자유의지는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 즉 자기 자신과 자신의 행위를 주권적으로 결정하는 능력을 지닌다. 한마디로 자유의지는 스스로의 의지적 행위를 결정한다.
둘째, 무심한 상태 곧 평정상태란 의지에 아무런 선입견이 없는 상태 즉 사전에 어느 쪽으로든 전혀 치우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킨다.
셋째, 의지적 행위는 외부의 억압이나 모든 필연성이나 그 존재의 이유나 근거를 미리 결정하는 원칙과는 전혀 무관하게 우연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칼빈주의 자들은 스스로의 뜻을 결정하는 의지의 능력이 아무런 원인이 없이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한 주장이자 철학의 제1원리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의지가 무심한 상태나 평정 상태에 있으면서 선택을 하거나 무엇을 선호하는 의지를 드러내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자가당착이라는 것이 칼빈주의 자들의 생각이다. 원인이 없이 일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의지적 행위도 필연성과 무관하게 우연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여기에서 필연성이란 결과의 필연성 즉 곧 어떤 결과가 앞서 있는 것 즉 어떤 원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칼번주의 자들에 따르면 도덕적 존재의 자유는 선택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그런 행동은 외부의 강요나 억압과 상관없이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결정한 것에서 비롯하는 결과다. 아담 깁(Adam Gib)은 이렇게 말한다.(Liberty and Necessity Contemplation p. 484)
“인간의 의지와 행동이 마음의 생각과 성향에 일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성적 본성에 속하는 자유와 온전히 일치한다. 무한하신 하나님도 그 절대적으로 완전하신 본성에 따라 뜻하시고 행동하시며 최상의 자유를 누리시고 천사들도 그 완전한 본성에 따라 뜻하고 행동하며 온전한 자유를 누린다. 이런 필연성의 개념은 자유의지를 절대 훼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의지의 완전함은 그런 필연성 안에 놓여 있다. 자유의지의 본질은 외부적인 강요나 억압이 아니라 이성적 이해와 자연적 성향이 이끄는 내적 원리에 따라 의식적(의지적)으로 행동하고 선택하고 거절하는 데 있다.”
제2항 : 무죄 상태에서의 인간의 자유의지
2항 인간은 무죄한 상태에서는 하나님이 선하게 여기시며 기뻐하실 일을 원하거나 행할 자유와 능력을 지녔지만(전 7:29, 창1:26), 변하여 타락할 가능성이 있었다.(창 2:16,17, 3:6)
제3항 : 죄의 상태에서의 인간의 자유의지
3항 인간은 죄를 지어 타락한 탓에 구원을 가져다줄 영적 선(善)을 이를 능력을 온전히 상실했다.(롬 5:6, 8:7, 요 15:5) 따라서 자연인은 그런 선을 혐오하며(롬 3:10,12), 죄 가운데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엡 2:1,5, 골 2:13) 자신의 힘으로는 스스로 회개하거나 그렇게 할 준비를 갖출 수 없다.(요 6:44,65, 엡 2:2-5, 고전 2:14, 딛 3:3-5)
제4항 : 은혜의 상태에서의 인간의 자유의지
4항 하나님은 죄인을 회개시켜 은혜의 상태로 옮기실 때 죄 아래 속박되어 있는 자연 상태에서 그를 자유롭게 하시고(출 1:13, 요 8:34,36), 오직 은혜로 영적 선(善)을 바라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빌 2:13, 롬 6:18, 22) 그러나 인간은 아직 부패함이 남아 있는 관계로 선한 것만을 완전하게 행하거나 바라지 못하고 악한 것을 아울러 바라고 행한다.(갈 5:17, 롬 7:15,18,19,21,23)
제5항 : 영화의 상태에서의 인간의 자유의지
5항 인간의 의지는 영화의 상태에서만 완전하고 변함없이 자유롭게 되어 오직 선만을 추구한다.(엡 4:13, 히 12:23, 요일 3:2, 유 1:24)
해설
인간의 의지(意志)는 독자적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그것은 영혼의 기능 가운데 하나다. 선(善)이든 악(惡)이든 또 그 둘의 혼합이든 도덕적인 성향을 발휘하는 것은 인간의 영혼이 지니는 고유한 특성이다.
영혼 안에서 어떤 도덕적인 성향이 우세한가에 따라 도덕적인 행위가 결정된다. 따라서 인간의 상태가 어떠한가에 따라 의지의 자유도 달라진다. 그러므로 무죄한 상태에서 인간의 의지는 자연적으로 선을 추구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유혹의 힘에 의해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즉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부패한 상태에서의 인간의 의지는 아무런 강요나 강압 없이도 스스로 자유롭게 악을 선택할 수 있다. 타락한 인간은 죄의 속박 아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은혜의 상태에서 인간은 선도 행하고 악도 행할 수 있는 자유를 갖는다. 이 경우에는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도덕적인 성향이 혼합되어 나타나는데 어떤 성향이 더 우세한가에 따라 때로는 선(善)을 행하기도 하고 때로는 악(惡)을 행하기도 한다.
영화(榮華)의 상태에서의 인간은 온전히 자유롭게 선(善)만을 선택한다. 온전히 거룩해진 상태에서는 오직 선(善)한 것만을 바라게 된다.
3항은 인간이 타락한 상태에서는 영적으로 선한 것을 바라거나 행할 능력이 없다고 진술한다. 이 중요한 진리는 다양한 이단의 반대에 부딪쳐 왔다.
-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 자들은 “인간은 죄를 뉘우치고 행동을 교정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 인간은 타고난 기능과 능력을 활용해서 지극히 경건하고 덕스러운 단계에 올라설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반(半) 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 자들은 신앙의 의무를 이행하는 데 은혜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처음에 회개 하고 행위를 고칠 때는 영혼 안에 죄를 억제하는 내적 은혜가 필요하지 않다. 모든 인간은 타고날 기능을 발휘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또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으 며 거룩하고 진지한 복종을 실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아르미니우스주의(Arminianism) 자들은 말로는 죄인의 회개를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의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 조항은 “인간은 죄를 지어 타락한 탓에 구원을 가져다줄 영적 선을 이룰 능력을 온전히 상실했다. 따라서 자연인은 자신의 힘으로는 회개하거나 그렇게 할 준비를 갖출 수 없다.”는 말로 그런 다양한 오류를 논박한다. 이 명제를 뒷받침 하는 증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성경에는 죄인의 자연적 상태를 묘사하는 구절이 많다. 자연인은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이다. 단지 영혼의 눈이 먼 것이 아니라 ‘어둠 자체’이다. 자연인은 ‘죄의 종’이요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에 이러한 자연인은 그분의 율법에 복종하지도 않고 또 복종할 수도 없다.(엡 2:1, 5:8, 롬 6:17, 8:7, 골 1:21)
- 성경은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그리스도를 믿거나 영적으로 선한 것을 행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요 6:44, 15:5)
- 하나님은 죄인의 회개를 자신의 사역으로 일컬으시고 그 사역을 친히 이루겠다고 약속하셨다.(겔 11:19,20, 36:26,27, 렘 31:33)
- 성경은 죄인의 회계를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결과로 간주한다.(행 16:14, 살전 1:5)
- 성경은 죄인의 회개를 비유적인 표현으로 언급할 때도 그것이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암시한다. 죄인의 회개는 ‘새 창조’(엡 2:10), ‘부활’(요 5:21), ‘새 탄생’(요 1:13) 등으로 불린다.
- 죄인이 스스로 회개할 수 있다면 자신을 자랑할 근거를 갖게 될 것이고 또 은혜를 받고서도 마치 받지 않은 양 자랑하는 잘못을 범하게 될 것이다.(고전 1:29,30, 4:7)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
- 성경은 신자가 믿음과 거룩함 안에서 성장하는 것도 하나님의 사역으로 간주한다. 그런 일을 처음 시작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빌1:6, 2:13, 히 13:20,21) .
물론 인간이 도덕적으로 무능력한 탓에 영적으로 선한 것을 바라거나 행할 수 없다고 해서 그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글쓴 이 / 로버트 쇼(Robert Shaw, 1795-1863) 출처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 로버트 쇼 저, 조계광 역, 생명의 말씀사, 2014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