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25) 소요리문답 강해

웨스트민스터(25)
소요리문답 강해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제 30 문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구속을 성령이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하십니까?

답 :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을 성령님이 우리에게 적용시키시는 것은(1)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키시고(2) 또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십니다.(3)

(1)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3)
(2)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3)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9)

제 31 문 효력 있는 부르심이란 어떤 것입니까?

답 : 효력 있는 부르심은 하나님의 영 성령님이(4) 하시는 일인데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시고,(5) 또 우리의 마음을 밝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6)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시고,(7) 우리를 권하사 능히 복음 중에 값없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8)

(4)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 니요(딤후 1:8,9)

(5)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 2:37)
(6)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행 26:18)
(7)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겔 11:19)
(8)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 6:44)

1. 누가 복음을 듣고 믿는가?

하나님은 복음 전파를 통하여 죄인들에게 구원을 주시기로 정하셨다.“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 세상에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주신 이유도 이 때문이다.(마 28:19,20) 갓난아기 때 죽은 유아를 제외 하고, 그리고 말의 의미를 이해할 능력이 없는 정신 이상자를 제외하고는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인간은 구원을 얻어야 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롬 10:17)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이렇게 복음을 듣고 구원 받는 다고 할 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왜 어떤 사람들은 그 복음을 듣고 받아들여 믿어 구원을 받고, 왜 어떤 사람들은 같은 복음을 듣고도 받아들이지 않고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 즉 왜 복음이 어떤 사람에게는 회개에 이르게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거부당하는가?

(1) 복음을 듣고 믿고 안 믿는 이유가 전파 되는 복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복음(福音)은 듣고 받아들이는 자에게든 그렇지 않는 자에게든 꼭 같이 전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외 없이 모든 죄인에게 복음을 통해 주어진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때 복음이 선택 된 자들 귀에만 들려진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오로지 선택 된 자만 구원하려 하시므로 복음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그들 귀에만 들려진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복음이 전도자에 의해 사람들에게 전파 될 때는 선택 된 자의 귀에나 선택 되지 못한 자의 귀에나 육신의 귀에는 다 꼭 같이 들려진다.

(2) 복음을 듣고 믿거나 안 믿는 차이의 이유가 인간 자신들 속에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어떤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우리는 받아들인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보다 더 나은 본성을 지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다 허물과 죄 때문에 본질적으로 죽었다고 말한다.(엡 2:1)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 자기 자신의 본성적인 의지와 열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니”(고전 2:14)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만일 인간을 그들 자신의 본성과 육적인 소욕 그대로 버려두신다면 어느 누구도 자기 스스로의 능력으로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3) 그러면 어떤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여 믿고 구원을 얻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복음을 받아들여 믿고 구원 얻은 사람은 효력 있게 성령님의 효력 있는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파 된 복음을 들었을 뿐 아니라 또한 그 순간 성령님에 의해 중생(重生)했기 때문에 들려진 복음을 깨닫게 되고 예수를 믿게 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이 그 과정을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1) 복음이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전파된다. 그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은 죄 아래서 죽은 자들이다. 그들은 그것을 미련한 것으로 또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복음을 믿을 수 없다.
2) 그러나 그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님이 권능으로 새 생명을 주어 살리시는 역사를 하신다. 그것을 부활(엡 2:5), 창조(엡 2:10), 출생(요 3:4,7), 죽음에서 일으키심(엡 2:6)이라고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눈먼 자, 귀머거리, 절름발이 등에게 육체적 소생을 주시는 기적을 베푸심과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 성령님이 생명을 주입하여 살리시는 하나의 영적 기적이다.
3) 성령님의 이러한 중생시키시는 사역의 결과 전파 된 복음이 권능 있는 효력을 가진다. 즉 전에는 어리석게 보이던 것이 이제는 심령을 찌르고(행 2:37), 전에는 단지 사람의 말로 들리던 복음이 이제는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살전 2:13)

단순한 부르심 효력 있는 부르심

복음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림 복음을 듣고 믿음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고전 2:14) 우리에게 보이셨으니(고전 2:10)

2. 효력 있는 부르심이란 어떤 것인가?

효력 있는 부름의 의미는 죽음에서 살아난 나사로(요 11:)를 볼 때 쉽게 알 수 있다. 나사로는 죽었기 때문에 들을 수도 볼 수도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무덤 앞에서‘나사로야 나오너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위의 그림에서 보는 대로 단순한 부르심으로 죄인이 복음을 들었을 때와 유사하다. 그는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죽은 심령을 중생(重生, 다시 태어남, 두 번째 창조) 시키실 때는 효력 있는 부르심의 결과가 나타난다. 즉 효력 있는 부르심이란 성령님이 영적으로 죽은 죄인에게 새 생명을 주심(중생)으로 복음을 듣고 순종하여 부르심에 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 교리는 인간이 바둑판 위에 있는 바둑알 보다 더 나을 것 없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또한 성령님의 중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이 구원받기 원한다 해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하며,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어떤 사람이 성령님을 받을 때 그 사람이 구원받기 원하지 않는다 해도 구원을 받게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즉 이 교리는 마치 사람의 자유의지가 무시되고 마치 기계적인 로봇처럼 자기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버려질 수도 있고 구원받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위의 그림의 효력 있는 부르심의 교리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1) 모든 사람은 그 영혼이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외부의 어떤 영적 자극과 말에도 반응할 수 없다.

그 영혼이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육의 사람은 성령의 일을 받지 않는다. 아니 받을 수가 없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죽은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어 중생할 때에 비로써 인간은 반응하게 된다.

(2) 중생은 인간이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행동하도록 강요하는 강제적 행위가 아니다.

죽은 자는 의지가 없다. 중생(重生, 거듭남)은 죄로 죽은(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 됨) 인간의 영혼 속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의지를 갖게 하는 성령 하나님의 새 창조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이 왜 무조건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지 않고 성령님이 원하시는 사람에게만 생명을 주시느냐고 항의할 권리가 인간에게는 없다. 구원의 결정권은 죽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왜 한 시간 일한 사람과 아침부터 여덟 시간 일한 사람과 꼭 같이 품삯을 주느냐고 항의 하는 품꾼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 20:14,15) 우리가 이것을 불가항력적 은혜의 역사라고 말할 때 하나님이 사람이 자신이 원치 않는 것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는 이전에는 원치 않았더라도 원하도록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3) 어떤 사람이 이렇게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났을 때 다음 세 가지가 따른다.

1) 거듭난 사람은 복음의 진리를 알게 된다. 시력이 회복된 맹인이 황혼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듯이 거듭난 사람은 참된 복음을 들을 수 있고 알 수 있게 된다.
2) 그는 또한 자기 자신의 무가치함과 하나님 앞에 범죄 했음을 깊이 깨닫고 슬퍼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 대속의 제물로 죽어 주신 예수님이 꼭 필요함을 믿게 된다. 이것은 어떤 강요에 의해 되는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새로워진 본성이 원하기 때문에 그가 믿게 되는 것이다.
3)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주 예구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된다. 그는 이제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 한가를 깨닫고 그리스도만이 그 필요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임을 알기 때문에 회개하고 믿기를 원하게 된다.

이처럼 성령님의 구원사역은 인간에게 구원 받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눈을 열고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오게 하고,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여 그들이 죄의 용서를 받게 하며 믿음으로 성결해진 자들 가운데 거하게 하신다.”(행 26:18)

(4) 효력 있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두 가지 인간의 자기 착각이 있을 수 있다.

1) 하나님의 유효한 부르심을 받지 않았는데 어떤 감정적 느낌으로 자신이 구원 받은 자처럼 착각할 수 있다.

“더러는 흙이 얇은 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마13:5)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마13:20,21) 예수님을 판 가롯 유다는 그가 예수님을 팔아넘기기까지는 외형적으로 완벽한 주님의 제자였다. 그러나 그는 겉만 빨갛고 속은 흰 사과처럼 그의 본색(열매)이 들어나기까지 잠시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마 3:8)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 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마 7:16,17)

또한 효력 있는 성령님의 부르심은 순간적으로 인식 될 수도 있으나 서서히 점진적인 방법으로 인식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객관적인 판단의 증거가 되는 구원의 열매(갈 5:22,23)는 우리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구원이 단순한 감정적인 착각인지 아니며 정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분별하게 해 준다.

2)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에게만 성령님의 거듭남의 역사가 일어난다면 사람이 복음을 듣고 받아들여할 책임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자기는 회개하고 믿으려 하지만 하나님이 성령님을 보내 주시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인간은 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기 때문에 믿거나 믿지 않거나 언제나 회개하고 돌이킬 책임이 인간에게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를 회개시켜 구원 받게 하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고 하나님의 책임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고 믿으라고 요청하신다. 그러나 회개하고 돌이켜 예수를 믿고 구원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행하시는 하나님의 권리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고전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 12:11)(*) 글쓴 이(편저) / 정은표 목사